소설리스트

혈마전인-186화 (186/500)

第三十八章 이견(異見) (1)

스읏!

도천패가 대도를 들고 일어섰다.

귀무살은 모습을 환히 드러낸 채 도천패를 향해 다가왔다.

사실, 그들은 은밀히 숨어서 접근할 이유가 없었다. 도천패를 기습하고자 했던 것은 그가 도주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싸우려고 칼을 든 이상, 은밀함은 필요 없다.

휘링!

도천패가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시작한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얼핏 보면 삼십 대 일의 싸움이다. 들소를 들개 서른 마리가 에워쌌다.

당홍의 모습은 도천패에게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뒤쪽에 선 자들은 사내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여인을 볼 수 있지만, 앞쪽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타타타타탁!

도천패가 선공을 취했다. 귀무살을 향해 거칠게 달려가면서 칼을 휘둘렀다.

강하다!

대도가 떨어지는데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다. 강렬하다. 칼끝에서 뇌전이 빠자작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공기를 가르는데 불꽃이 튄다.

귀무살은 대도를 막지 못하고 이삼 보씩 물러섰다.

“이놈들아! 싸우려고 왔으면 싸워야지! 오늘 너희 다 죽었어!”

도천패가 쩌렁 고함을 질렀다.

도천패도 거침이 없었다. 어차피 귀무살에게 들켰다면, 혈천방에 들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을 떼어놓고 도주할 수가 없다면, 선택의 여지 또한 없다. 이들에게 죽거나 잡힌다. 그렇지 않으려면 귀무살 서른 명을 베어야 한다. 이건 절대적인 사실이다.

도천패는 잡힐 생각이 전혀 없다.

쒜에에엑!

도천패가 급하게 달려들었다.

“이런 멧돼지 같은 놈이!”

귀무살이 대도를 피하면서 쏘아붙였다.

“하하하!”

도천패는 크게 웃었다.

느리다. 예전 같으면 눈부실 정도로 빨라 보였을 텐데, 지금은 무척 느리게 보인다.

귀무살 이야기다.

귀무살이 느리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다.

그때, 등 뒤에서 칼바람이 일었다.

쒜에에에엑!

“이것들이!”

도천패는 급히 뒤돌아서며 뒤에서 날아오는 칼을 받아쳤다.

등에는 당홍에 매달려 있다. 그러니 당홍이 맞받아도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주된 싸움은 도천패가 한다. 당홍은 가만히 매달려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만 손을 쓴다.

타앙!

귀무살이 칼을 놓쳤다. 대도와 부딪치는 순간, 거센 반탄력이 일어났다. 귀무살이 칼을 놓치지 않으려고 버텼다면 손뼈가 박살 났을 것이다.

쒜에에엑!

도천패가 일격에 이어서 이격을 떨쳐냈다. 칼을 쳐낸 대도가 귀무살의 머리를 노렸다.

그때, 이번에는 발밑에서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도천패는 즉시 공격을 중지하고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예전 같으면 계속 귀무살을 쳤을 것이다. 귀무살의 머리가 칼 앞에 있었다. 일 푼만 더 힘을 가하면 죽일 수 있다. 더욱이 귀무살은 감히 등에 매달린 당홍을 노렸다.

지금은 느낌이 일어나는 순간, 행동으로 옮긴다.

발 쪽에서 싸늘한 기운을 느꼈다면 즉시 피하는 게 순서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고 했다. 내 안위부터 보존하고 타인을 죽이는 것은 그다음에 생각한다.

쒜에에엑!

발밑으로 검이 지나갔다.

느낌과 동시에 신형을 띄워내지 않았다면 발목이 잘렸을 것이다.

도천패는 두 발에 납덩어리를 달았다. 천근추(千斤錘)를 펼쳐서 밑으로 뚝 떨어졌다.

밑에서 공격한 자를 짓밟는다!

순간, 그자는 몸을 데구루루 굴려서 내리찍는 발을 피했다.

쿵! 꽈지지직!

한 발이 기와를 깨트리면서 밑으로 푹 빠졌다. 마치 늪을 힘껏 찍었을 때처럼 발이 쑤욱 들어갔다.

하지만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른 한 다리가 굳건히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도천패가 지붕에서 발을 빼며 일어섰다.

휘리리링!

허공에 칼을 크게 휘둘러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얘네들, 급하지 않아. 차륜전(車輪戰)이야.”

당홍이 말했다.

“나도 급하지 않아. 아직 힘이 넘쳐.”

“난 급한데? 독이 떨어져 가. 독이 다 떨어져도 동타?”

“한 번 동타면 끝까지 동타지. 당매, 넌 내가 지켜. 아예 아무것도 하지 말고 편안히 잠이나 자. 자고 일어나면 이것들 싹 정리되어 있을 테니까.”

“호호호!”

당홍이 웃었다.

쒜에에엑!

도천패가 귀무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귀무살이 슬쩍 몸을 빼냈다.

철저하게 싸움을 피하면서 힘을 소진시킨다.

“이놈들아! 안 싸울 거야!”

“흐흐흐! 안 싸우려는 놈, 따라잡아서 죽이는 것도 무공이다. 아직 그 정도는 안 되나 봐? 어이, 멧돼지! 계속 서 있기만 할 거야? 빨리 춤춰봐.”

귀무살이 느물느물 웃었다.

사실, 귀무살은 잔뜩 긴장한 상태다. 한 발만 삐끗하면 바로 황천길로 직행한다.

귀무살은 도천패가 달려들 때마다 옆으로 피했다.

도천패는 사납고 강렬하다. 하지만 귀무살도 이런 칼을 상대할 방법이 있다. 상대할 수는 있다.

문제는 도천패가 아니다.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당홍이 신경 쓰인다.

일단, 당홍은 도천패에게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도천패가 정면에 서거나 위로 솟구치면 전혀 안 보인다. 그러다가 불쑥 튀어나와서 독분을 뿌린다.

귀무살은 피독단을 복용했다. 하지만 독은 여전히 무섭다. 특히 당홍이 쓰는 독은 어떤 독인지 몰라서 더욱 경계한다. 독고일 수도 있지 않나.

“천천히 해. 기운 너무 빼고 있어.”

“하하! 이 정도는 괜찮아!”

도천패는 대도를 들어 귀무살을 가리켰다.

도천패 앞으로 한 사람이 걸어왔다.

그도 귀무살인 것은 틀림없는데, 기도가 남다르다. 왠지 더 강해 보인다.

그가 나타나자 다른 귀무살이 슬쩍슬쩍 자리를 비켜주고 있다.

“이건 독타로 하는 게 어때? 내가 내릴게.”

“한 번 동타면 끝까지 동타라니까.”

도천패는 당홍이 등에서 내리지 못하게 한 손을 뒤로 돌려 그녀를 잡았다.

“알았어. 안 내릴게. 싸움이나 신경 써.”

당홍이 도천패의 등을 다독거렸다.

파옥도 패가신이 칼을 쳐들었다.

칼 대 칼이다.

귀검은 방주 앞에서 자진한 냉혼도 자리에 파옥도를 임명했다.

파옥도 패가신이 귀무살 부대주다.

귀무살에게 파옥도는 백칠로 불린다. 백칠 파옥도다. 혈천방에서 공식적으로 하달한 임무를 백칠 번이나 성공했다.

말이 백칠이지, 백칠이라고 하면 단 한 차례도 실패하지 않고 모든 임무에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파옥도는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귀문을 맡을 수 있다. 혈천방은 그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방식으로 귀무살을 키울 수 있게끔 모든 조력을 해줄 것이다.

그런데도 파옥도는 귀무살에 남았다.

귀문을 맡기 보다는 귀무살에 남아서 야인으로 활동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파옥도는 조용하다. 무심하다.

휘이이잉!

바람이 지붕 위를 쓸고 지나갔다.

파옥도가 말했다.

“대도문 대력금강도가 이렇게 뛰어난 무공인 줄은 처음 알았군. 너 같은 놈 하나만 대도문에 있었어도 멸문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대도문주가 땅을 치고 후회하겠어.”

“네놈들은 칼로 싸우는 법을 배워야겠어.”

“……!”

“뭔 놈의 사내새끼들이 나불나불 말이 많아! 칼을 봤으면 들어오던가, 무릎 꿇던가!”

도천패가 도발해도 파옥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스읏!

그가 옆으로 발걸음 이동했다.

순간, 도천패는 대도를 꽉 쥐었다가 다시 풀었다.

파옥도는 신형만 이동하려고 했던 게 아니다. 방금 공격을 해오려고 했다. 하지만 틈을 놓쳤다. 그래서 공격해오지 않고 멈춰버린 것이다.

스읏!

파옥도가 다시 옆으로 반걸음 이동했다.

이번에도 도천패는 대도를 꽉 쥐었다가 풀었다.

“사내새끼가 졸보냐! 왜 들어올 둥 말 둥 지랄이야! 그렇게 들어오기가 겁나!”

스읏!

파옥도가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칼을 겨누고, 언제든 공격할 태세를 갖춘 채 움직인다.

“감각을 뺏는 거야. 네가 칼을 쓰는 시간을 뺏고 있잖아. 여기에 현혹되면……”

“조용.”

도천패가 당홍의 말을 막았다.

도천패는 당홍이 하는 말이면 무엇이든지 다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말을 듣고 있을 여유가 없다. 오로지 귀무살에게 집중해야 할 순간이다.

당홍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도천패가 너무 긴장하고 있기에, 긴장을 풀어주려고 한 말이다. 그런데 도천패는 그런 말조차도 들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긴장한다.

스읏!

파옥도가 또 옆으로 움직였다. 순간,

“거참 짜증 나게!”

도천패가 소리 지르면서 지붕을 박찼다.

쒜에에에엑!

대도가 빙글빙글 휘돌면서 파옥도를 내리쳤다. 대력금강도 십륜십도다.

스읏!

파옥도는 왼발을 축으로 해서 빙글 몸을 돌렸다. 허리가 뒤로 꺾였다. 등이 지면을 향하고 배가 하늘을 쳐다보는 자세에서 칼을 쭉 뻗어냈다.

도천패와 파옥도는 서로를 거꾸로 쳐다보고 있다.

도천패는 하늘에 떠서 땅에 누워있는 파옥도를 본다. 파옥도는 당에 누운듯한 자세로 도천패를 올려다봤다.

누가 봐도 도천패가 우세하다.

도천패는 힘의 집중에 칼에 있다. 칼을 잡은 손이 중심점이다.

파옥도는 지붕을 밟고 있는 두 다리가 중심점이다. 다리가 흔들리면 상반신도 무너진다. 그때,

타악!

지붕에 누가 있어서 파옥도의 등을 힘껏 떠민 듯, 파옥도가 벌떡 일어났다. 칼이 쭈욱 뻗어왔다. 대도를 무시하고, 도천패의 심장을 쑤신다.

“내 너 그럴 줄 알았다!”

도천패는 내리치는 칼에 더욱 강한 힘을 보탰다.

도천패가 완벽하게 우세한 형세다.

도천패의 대도에는 낙하력(落下力)까지 보태져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반면에 파옥도는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처럼 힘들게 올라와야 한다.

까앙! 깡!

대도와 칼이 부딪쳤다.

그런데…… 대도가 절반쯤 싹둑 잘려 나갔다. 파옥도에 잘려서 허공으로 퉁겨지는 칼날이 보인다.

슈웃!

파옥도는 도천패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왔다.

그때, 도천패의 등에 붙어 있던 당홍이 손을 쭉 뻗었다. 당홍의 손에서 검은 물체가 확 뿜어졌다.

파옥도는 즉시 칼을 물렸다.

도궤(刀軌), 칼의 궤적이 변했다. 도천패를 치지 않고 오히려 반대쪽 기와를 찍었다.

타악!

파옥도는 신형을 오보쯤 떨어진 곳까지 물렸다.

“음!”

도천패는 신음을 흘렸다.

자신의 대도가 잘려 나갈 줄은 몰랐다.

대도는 묵강한철로 만들어졌다. 자신이 직접 제련해서 만든 칼이다. 믿을 수 있다.

도천패는 대도를 만들면서 어떤 칼이든, 어떤 방패든 모두 잘라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날카로움이 덜해서 잘라내지는 못할지라도 짓뭉갤 수는 있다.

그런데 칼이 잘렸다.

싸우기 직전,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 싸움은 좋지 않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그래서 당홍이 하는 말까지 자르면서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당홍이 도천패의 등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칼이 좋아. 무공도 좋지만, 칼이 좋지 않았으면 어림도 없어.”

도천패가 파옥도의 칼을 봤다.

칼이 멋있다. 한눈에 봐도 몹시 매끄럽고 정명하다. 맑고 웅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귀무살이 정명한 칼을 갖고 있다. 웃긴 얘기다.

“취롱도(翠瓏刀).”

도천패는 파옥도의 칼을 알아봤다.

도천패가 바로 투심문 문도 아닌가. 세상 보물이란 보물은 모두 알고 있다.

취롱도는 도신이 맑은 비취색을 띤다. 그래서 칼을 쓰면 풀잎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또 칼 소리가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처럼 맑다.

도천패는 비로소 상대방을 알아봤다.

귀무살 부대주 파옥도 패가신.

상대방의 병기를 잘라낸 후, 단숨에 심장을 찌르기로 유명한 도객이다.

그가 쓰는 칼이 취롱도다.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하! 저 칼을 왜 지금까지 못 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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