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七章 첫 날 (5)
혈천방에는 팔당(八堂)이 있다.
여타 문파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당이 아니다. 혈천방의 당은 전투 조직이다.
귀무살이 개인 능력을 특화했다면, 팔당 무인들은 조직력을 극대화했다. 개인적으로 싸우면 귀무살보다 못하지만, 조직으로 싸우면 누구보다도 강하다.
팔당은 혈천방주가 직접 통제한다.
각 당에 백 명, 정예화된 무인 팔백 명이 혈천방주의 직속이다.
이들은 오직 방주의 명령만 받는다. 특히 팔 당주의 무공은 귀검에 비해도 손색이 없다.
혈천방 사람들은 여전히 귀검을 최고수로 칭한다. 하지만 팔 당주 역시 쉽게 승부를 내지 못할 강자로 본다.
혈천방 뒤쪽에는 큰 숲이 있다.
숲에는 마인들이 산다.
마공을 수련한 마인이 아니라 성격파탄자, 충동살인자, 패륜자 등등이 산다.
그들이 수련하는 무공도 성격과 흡사하다. 천륜을 어긴 무공을 대수롭지 않게 수련한다. 그리고 그들이 무공을 수련하는데 필요한 모든 자원은 혈천방에서 제공한다.
마인들은 숲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한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꺼리지 않고 한다. 살인하고 싶으면 살인한다. 패악한 마공을 수련하고 싶으면 연마한다.
혈천방 사람들은 뒤쪽에 있는 숲을 후옥(後獄)이라고 부르며 금역(禁域)으로 지정했다.
안에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숲에 들어가면 살아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마공 재료로 쓰이기에 십상이니까.
후옥에 있는 마인들도 무시할 수 없는 고수다.
그들이 패악한 마공을 드러냈을 때, 세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독의도 이곳에 있었다.
독의가 원하는 모든 재료를 혈천방이 제공해 주었다. 약초, 동물은 물론이고 실험 대상까지도.
당홍과 도천패는 혈천방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실을 파악했다.
당홍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혈천방, 생각할수록 굉장하네.”
“굉장하지.”
당홍과 도천패는 지붕 위에 누워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막다른 골목에 요(凹) 형태로 만들어진 지붕 위에 드러누웠다.
비스듬히 세워진 지붕이 그들을 가려준다. 한쪽 트인 쪽은 숲으로 이어진다. 지붕 위에 누워있으면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숲에서 보면 단박에 들통나지만, 숲은 금역이다.
“이 정도면 이거는 방파가 아니라 나라야.”
“내 생각도 그래. 예상은 했지만, 이건 너무 커. 천살단은 이런 걸 왜 모르지?”
“바보들이잖아.”
두 사람은 혈천방을 알면 알수록 두려워졌다. 단지 귀무살만 알고 있을 때가 훨씬 좋았다.
적어도 그때는 세상이 매우 태평스러워 보였다.
지금은 터지기 일보 직전인 화약 같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도천패가 물었다.
“팔방을 건드려보는 건 어때? 게네들 세다잖아.”
“괜히 큰 싸움 만들 필요가 있어? 그냥 눈길만 우리 쪽으로 쏠리게 하면 되잖아.”
“그래, 그럼. 이따가 오로(五路) 쪽으로 가자. 어때?”
“난 당매가 가자면 어디든 가지. 그럼 이따가 저녁 먹고 바로 움직이자고.”
두 사람이 누워있는 지붕에서는 요깃거리를 구하기도 쉬웠다.
왼쪽 지붕 밑이 바로 주방이다. 두어 번도 움직이면 따뜻한 음식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홀리는 어디로 사라졌지? 이렇게 뒤졌으면 머리카락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당홍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지?”
“잡혀있을 것 같아. 그래도 홀리는 딸인데…… 죽일까?”
두 사람은 홀리를 걱정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 홀리만 참석하지 않았다. 목적이 완전히 다르니 일부러 데려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좋게 간 것은 아니라서 안위가 염려스럽다.
“여기 뇌옥이라거나 그런 거에 대해서는 들은 것 없어?”
“없어.”
“은밀한 장소는?”
“모르지. 우린 숲에만 살았으니까.”
당홍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 오늘 또 휘젓고 다녀야 하니까 시간 날 때 자두자. 지금 아니면 잠잘 시간도 없잖아.”
도천패가 팔을 쭉 뻗었다.
그러자 당홍이 매우 자연스럽게 팔을 벴다.
“이리 와. 나 좀 꼭 안아줘.”
당홍이 손에 다 잡히지도 않는 우람한 허리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도천패는 당홍을 꼭 껴안았다.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해.”
당홍이 말했다.
그들은 혈천방을 떠날 수 없었다.
호발귀와 등여산이 꼭 혈천방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호발귀 상태가 좋지 않으니 혈천방이 그들을 쫓지 못하도록 눈길을 잡아끌 필요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호발귀나 등여산에 대한 말을 일절 꺼내지 않았다.
도주할 때, 호발귀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지금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는 게 두렵다. 혈마가 됐을 것 같아서 말하기가 겁난다. 어쩌면 호발귀와 등여산, 둘 다 목숨을 끊었을지 모른다. 늘 그런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그들에 대한 말은 아예 하지 않는다.
“잘 자.”
“당매도.”
두 사람은 지붕 위에서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스스슷! 스슷!
사방에서 움직임이 일어났다.
도천패는 눈을 번쩍 떴다.
고개를 돌려서 당홍을 쳐다보자, 당홍도 눈을 뜬 채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뭐야?”
“손님.”
“손님? 우리가 여기 있는 걸 눈치챈 건가?”
“그런 것 같아.”
“언제부터 깨어 있었어.”
“나도 방금 일어났어. 누군지 모르지만 상당한 고수야. 움직임이 매우 날렵해.”
“가만! 이거 포위됐잖아?”
도천패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혈천방을 휘젓고 돌아다녔지만 포위된 적은 없었다.
혈천방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오지 않았고, 진짜 고수들도 나타나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 포위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무인이 꽤 많이 움직였다. 혈천방이 두 사람을 더는 방치하지 않고 잡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다.
“팔방 무인들은 아니고, 후옥도 아냐. 그럼 귀무살이네.”
당홍이 말했다.
“귀무살에게 포위당했으면 도주하는 게 낫지 않나? 우리 목적은 싸우는 게 아니잖아. 눈길을 잡아끄는 거지.”
“그렇다고 걸어온 싸움을 피해?”
“아니,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도천패가 당황해했다.
“자꾸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가 사나운 여자처럼 보이잖아. 이렇게 꼼짝 못 하는데.”
“끄응! 그렇지. 절대 사나운 여자가 아니지.”
도천패가 당홍을 힘껏 껴안았다.
“숨 막혀! 살살 좀 해.”
“흐흐흐! 저놈들 미칠 거야. 자기들은 병기 뽑아 들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러고 있으면.”
“호호호! 정말이네. 우리 모습 보면 복창 좀 터질 거야. 그런데, 싸울 땐 싸우더라도 밥은 먹어야지?”
“밥 먹을 시간이 있을까?”
“있지. 그만한 준비는 해놨지.”
당홍이 도천패를 밀쳐내며 일어섰다.
“편하게 있어. 밥 먹을 시간은 있으니까.”
당홍이 한쪽 눈을 찡긋거리더니, 주방으로 스며들었다.
스으으읏!
귀무살이 지붕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조용히 두 사람을 향해 접근했다. 그때,
“윽!”
지붕에 엎드려서 살살 기어가던 귀무살이 나직한 비명을 질렀다.
“왜?”
옆에서 같이 행동하던 귀무살이 물었다.
“뭐가 찔렀어.”
귀무살은 손바닥을 들어서 살펴봤다.
기와에 손을 대는 순간, 느닷없이 손바닥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어났다.
“독이네. 제길!”
귀무살이 투덜거렸다.
당홍이 독공 고수다. 독의의 손녀로 독섬칠공은 온전하게 이어받았다. 그걸 알면서 기습하는데, 독에 대해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이미 피독단을 복용한 상태다. 그런데,
“어?”
갑자기 귀무살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귀무살을 쳐다봤다.
“왜?”
같이 움직이던 귀무살이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끼고 쳐다봤다.
손이 새까맣게 죽어간다.
손가락에서 시작한 변색이 손등을 지나 손목을 잠식했다. 그리고 곧장 팔꿈치를 향해 올라간다.
“이게 뭐지?”
“글쎄, 독인 것 같은……”
귀무살이 말을 끝내기도 전, 휘익! 바람 소리가 일어나더니 파옥도(破鈺刀) 패가신(貝可宸)이 내려섰다.
쒯!
파옥도는 중독된 무인 앞에 내려서자마자 즉시 검을 휘둘렀다.
“크윽!”
귀무살이 비명을 토해냈다.
칼은 어깻죽지를 파고들어서 오른팔을 싹둑 잘렸다. 단 일도에 어긋남이 없이 깨끗하게 잘랐다.
중독된 무인이 파옥도를 쳐다봤다.
“독고다. 촌각만 늦었어도 넌 심장마비로 죽었어. 독고를 몰랐다니 말이 돼! 가서 치료를 받아라.”
“아! 감사합니다.”
그제야 귀무살이 파옥도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신형을 날려 자리를 떴다.
파옥도가 말했다.
“예전 독고는 침입하는 즉시 숙주를 마비시키는데, 이것은 중독 현상을 보여주면서 서서히 올라온다. 예전 독고와 달라. 이 독고에 중독되면 즉시 중독 부위를 잘라내라. 전달!”
독고가 침투하면 피부색이 검은색으로 변한다.
전신이 마비되고,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 독고에 파먹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일단 중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독고애 중독되어서 검게 변한 살은 절대로 만져서는 안 된다. 만지는 즉시 감염된다.
파옥도가 잘라낸 팔이 지붕 위에 떨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집지 않는다.
치울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파옥도가 팔을 잘라낼 때는 팔꿈치까지 변색했는데, 지금은 끊긴 부위까지 완전히 검은색으로 변했다.
독고는 죽은 살도 먹는다.
이렇게 되면 은밀히 다가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기와에 독고가 묻어 있으니 엎드려 있을 수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독고가 신발을 뚫지 못한다는 것이다.
살만 닿지 않으면 된다.
귀무살이 기습을 포기하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귀무살, 맞네.”
도천패가 대도를 꾹 잡았다.
“어떻게? 독타(獨打)? 동타(同打)?”
“이번에는 사람이 많으니까 동타로 하지. 독타로 가면 당매가 신경 쓰여서 제대로 못 싸워.”
“어휴! 손발이 다 오글거리네.”
당홍이 양손으로 어깨를 붙잡고 치를 부르르 떨었다.
독타와 동타는 두 사람이 만들어 낸 말이다. 혈천방을 휘젓다 보니 매일 싸우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각기 싸워야 하는지 합공을 해야 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독타는 각기 싸운다. 동타는 협공한다는 뜻이다.
두 사람은 협공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도천패가 천하 역사고, 당홍이 독공 달인이기 때문에 양쪽 장점을 고루 갖춘 협공 방식을 찾아야만 했다.
당홍이 도천패의 등에 업힌다.
등 쪽 허리띠에 두 발을 걸고 매미가 나무에 앉듯이 매달린다.
두 발을 잘 걸기만 하면 당홍은 매우 편하다. 업힌 것처럼 편히 있을 수 있다. 도천패는 당홍을 업고도, 아니 등에 걸치고도 자유롭게 대력금강도를 펼친다.
주된 싸움은 도천패가 한다.
당홍은 틈이 날 때마다 도천패의 등을 발판 삼아서 도약하며 독을 뿌린다. 그리고 다시 등으로 내려선다.
도천패가 허공으로 솟구치면, 당홍은 거기서 더 높이 튀어 오를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독을 뿌린다. 그리고 떨어져 내리는 도천패의 등으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도천패와 당홍은 이 합공 방식을 수도 없이 연습했다.
“자.”
도천패가 등을 내줬다.
당홍은 익숙하게 펄쩍 뛰어서 허리띠에 두 발을 걸었다. 그리고 들판처럼 넓은 등에 손을 얹었다.
“이번 싸움 끝나면 옷 좀 빨아야겠다. 땀내가 많이 나.”
“아! 미안.”
“무조건 미안하대. 이런 건 내가 미안한 거야. 낭군, 옷 하나 제대로 빨아주지 못하고.”
“방금 뭐라고 했어? 낭군이라고 했지?”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지금 싸워야 해요.”
찰싹!
당홍이 도천패의 등짝을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