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七章 첫 날 (4)
저벅! 저벅! 저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넓은 대청에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귀무령 귀검이다. 그가 대천 한복판까지 걸어와서 포권을 취했다.
“부르셨습니까?”
귀검의 음성은 항상 차분하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지.”
혈천방주가 말했다.
귀검이 주위를 둘러봤다. 대청은 대청일 뿐이다. 변했다거나 이상한 점은 전혀 없다.
“뭐 이상한 점 없어?”
“제 눈에는.”
“없단 말이지? 사람이 말을 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하다 말아.”
“지저분한 냄새가 나는군요.”
귀검이 정중하게 말했다.
“지저분한 냄새에. 지저분한 냄새. 그 지저분한 냄새를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겨우 그런 식으로 말해. 손도 보태지 않았으면서. 지저분한 싸움은 싫다 이거지?”
“……”
귀검은 침묵했다.
혈천방주가 다가와 양손으로 대청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 싸움이 벌어졌었어. 호발귀를 잡으려고 했는데 놓쳤고. 호발귀만 놓쳤나? 다 놓쳤어. 등여산. 당홍. 도천패. 그것들은 넷, 여긴 나까지 여덟. 사람이 배는 많은데도 놓쳤어. 귀검, 어떻게 생각해? 한심하지?”
귀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귀검은 늘 무표정하다. 얼굴로 감정의 변화를 읽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다.
“호발귀는 그렇다고 쳐. 등여산도 봐주자고. 천살단에서 보고 배운 것이 있을 테니까.”
혈천방주가 귀검을 가운데 두고 빙글빙글 돌았다.
“당홍도 봐줄까? 독의 손녀잖아.”
툭!
혈천방주가 귀검 등을 쳤다.
귀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도천패라도 잡아야 할 거 아냐. 그런데 그 도천패가 이자(二子)하고 맞서더라니까. 아주 팽팽한 접전이었어. 삼사백 초 정도 겨루면 승부가 날까?”
귀검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우리 정보가 완전히 잘못된 거지. 자, 귀검. 귀검도 놈들을 봤잖아. 말도 해줬고. 그런데 귀검이 한 말도 틀렸네? 어떻게 된 거야? 귀검이 잘못 보다니.”
“제가 실수했습니다.”
귀검이 허리를 숙였다.
귀검은 방주의 초청장을 들고 호발귀를 만났다. 그때, 같이 있는 사람들의 무공 정도를 파악했다.
그들은 방주가 말한 만큼 강하지 않았다.
육자(六子)와 비교하면 ‘일대일 승부로 모두 잡을 수 있는 정도’라고 판단했다. 그것도 육자가 압도적인 우세 속에서 이긴다는 쪽으로 보고를 한 적이 있다.
도천패가 이자와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불가능하다. 그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등여산만 해도 그렇다. 만약 방주 말처럼 무공이 강했다면 그녀는 살천단 책사가 아니라 살단 총주를 맡고 있어야 한다. 그 정도는 되어야 방주 말이 합당하다.
혈천방주가 말했다.
“왜 말 안 들었어?”
“아시다시피 추동전(秋冬戰) 중이었습니다.”
“하하! 거참 사람 속 보이는 말을 하고 있네. 형전주를 베었을 때처럼 당당하게 말해봐. 왜 말 안 들었어?”
“추동전 중이었습니다.”
“호발귀가 언제쯤 도착할지 예상하고 일부러 빠진 거잖아. 애들 모두 데리고.”
“아닙니다. 예정된 일정이었습니다.”
귀검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귀무살은 일 년에 두 번, 합숙 수련을 한다.
봄, 여름에 하는 춘하전과 가을, 겨울에 하는 추동전이 있다.
훈련은 귀무령이 직접 주관하며, 대상은 혈천방 본방에 배치된 귀무살이다.
귀무살은 대부분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데, 그들은 하던 일을 하면 된다. 여유가 있어서 본방에 배치된 귀무살을 데리고 직접 무공 지도를 한다.
이 두 번의 합숙 수련은 귀무살의 무공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많은 귀무살이 수련 기간을 즈음에서 혈천방 본방에 배치되기를 고대한다.
이번에 호발귀가 혈천방에 방문했을 때, 귀검은 귀무살을 이끌고 방 밖으로 나가서 추동전을 치렀다.
귀무살을 쓸 수도 있으니 대기하라는 방주의 명까지 어겼다.
대체로 춘하전이나 추동전이 계획되어 있으면, 방주도 귀무살을 쓰지 않았다.
그냥 아무 곳으로나 떠나면 되는 게 아니다. 수련할 장소와 물자를 준비한다. 수련시키는 무공을 빨리 흡수하도록 미리미리 준비해놓는다.
한데, 이번에는 특별히 방주가 귀무살을 쓰겠다고 했다.
혈천방주와 귀검의 첫 번째 충돌이다.
“그래, 좋아. 춘하전과 추동전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으니 자네가 이겼어. 이 문제는 더 거론하지 않지. 귀검. 아니, 아니. 귀무령. 지금 당장 귀무살을 동원해서 도주한 놈들을 잡아 와. 이건 명령인데, 이 명령도 거부할 건가?”
“잡아 오겠습니다.”
귀검이 허리를 숙였다.
혈천방주는 귀검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주었다.
귀무령 독단으로 귀무살을 이끌 수 있을 만큼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귀무살은 강해졌고, 점점 더 강해진다.
춘하전과 추동전도 혈천방주가 언제 어느 때든 하고 싶을 때 하라고 전권을 내줬다.
하필이면 그 기간이 호발귀가 방문한 시기와 겹친 게 문제다.
혈천방주는 이번 일을 항명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귀검을 보는 눈까지 곱지 않다. 얼마 전에 형전주를 처단한 일이 있는데, 그때보다도 더 표정이 안 좋다.
혈천방주가 말했다.
“그동안 하는 걸 보면 귀무살은 제대로 하는 데 자네가 문제야. 자네가 개입하면 일이 틀어져. 남들이 보면 천살단에서 뭐라도 얻어먹은 줄 알겠어. 하하하! 그래서 이번에 하는 일을 보고 자네 보직도 고려해 볼 생각이야.”
“네.”
“이번에 못 잡으면 한 이삼 년 정도 썩을 생각해.”
탁! 탁!
혈천방주가 귀검의 어깨를 두들기며 귀에 대고 말했다.
“가봐.”
귀검이 포권을 취한 후, 돌아섰다. 그때,
“참! 월도하고 무지는 지금 어디 있어?”
혈천방주가 갑자기 생각난 듯 불쑥 물어왔다.
“제가 데리고 있습니다.”
귀검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내가 그놈들 호발귀한테 넘겨줄까 봐 빼돌린 거지?”
“아닙니다. 워낙 탁월해서 부대주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하하하! 하하하하!”
혈천방주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부대주가 될 놈들이 건들지 말라 이거네? 이거 협박인데?”
“……”
“어쨌든, 놈들 잡아 와. 잡아 오면 월도와 무지를 넘겨줄 필요도 없잖아. 못 잡으면 어디 무인도 같은 데서 한 이삼 년 푹 썩게 할 거야. 가봐.”
귀검이 걸음을 걸었다.
요즘 들어서 방주의 간섭이 부쩍 심해졌다.
마음이 쫓기고 있다. 웬만한 일에는 쫓기지 않는 분이었는데, 항상 여유가 있었는데, 상당히 급해졌다.
혈마가 눈에 보이자 마음이 급해진 것 같다.
문제는 마음이 급하면 실수를 한다는 거다.
저벅! 저벅!
귀검이 대청을 걸어 나갔다.
“저희가 방주님께 가겠습니다.”
“저희를 보내주셔야 귀무령님이 편하십니다.”
무지와 월도가 말했다.
“말하지 마라.”
귀검이 차게 말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너희가 무슨 죄가 있다고.’
무지와 월도를 보내는 것은 무인의 도리가 아니다.
귀무령이 수하를 아끼는 것은 이미 정평이 난 사실이다.
임무라면 가차 없이 내몬다. 어떤 임무라도 끝까지 수행하게 만든다. 싸움판이라면 물러서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전원 몰살을 당해도 싸우게 한다.
하지만 단 한 명만 죽는다고 해도 싸움판이 아닌 곳에는 보내지 않는다.
수하 두 명을 방주에게 보내고, 방주는 호발귀를 끌어들이는 데 사용하고, 어쩌면 호발귀에게 제물로 보내줄 수도 있고…… 이것은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정치다. 협상이다. 모리배 짓이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수하들과 상의할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귀검 자신만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만들 나가봐.”
귀검은 무지와 월도를 내보냈다.
저들은 자신들이 맡은 일을 했다. 혈마록을 찾아오기 위해서 십육비자를 쫓았고, 그들을 쫓다가 호발귀를 만났다. 혈마록을 찾기 위해서 와주와 호발귀 친우를 죽였다.
뭐가 잘못된 일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혈마록을 회수해 오라고 지시한 사람은 자신과 혈천방주다.
그 죄를 저들에게 모두 뒤집어씌울 수는 없다.
아니. 그런 거는 문제가 안 된다. 정작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혈천방과 음문촌은 혈마를 위해서 존재하는 혈마의 방파다.
음문촌은 혈마를 보필하고, 혈천방은 혈마의 수족이 되어서 중원을 누빈다.
그렇다면 음문촌이나 혈천방의 주인은 혈마 호발귀다.
이것이 진짜 큰 문제다.
호발귀는 아직 완전한 혈마가 되지 않았다. 혈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러니 지금 단계에서 주인이니 뭐니 말할 계제는 아니다.
혈천방주와 음문촌장은 호발귀를 장악해서 살인 병기로 활용할 생각이다. 혈마를 만들되,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혈마가 되어야 한다.
혈천방과 음문촌은 변했다. 이백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때의 혈천방과 음문촌이 될 수는 없다.
호발귀가 진짜 혈마로 변하더라도 혈천방은 혈마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때가 되면 살천단과 힘을 합쳐서 혈마를 죽이려고 할지도 모른다.
혈천방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
혈천방의 주인은 혈마라는 귀검과 혈천방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방주와 언젠가는 부딪칠 것이다.
혈마라 호발귀라는 것도 문제다.
호발귀는 귀무살에 원한이 있다. 그리고 귀검은 귀무살을 내줄 생각이 전혀 없다.
주변 모두가 귀검과 뜻이 맞지 않는다.
이런 싸움이기 때문에 귀검이 일부러 빠진 것이다.
그러면 방주가 귀검의 마음을 모를까? 안다. 알면서도 호발귀를 잡아 오라고 한다. 말로는 호발귀 일행을 잡으라고 했지만, 중심에는 호발귀가 있다.
호발귀도 포함해서 잡아 오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밖으로 내치겠단다.
“훗!”
귀검은 웃었다.
이럴 때는 밖으로 내쳐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제는 귀무살이다. 이들을 방치하면 이리저리 엉뚱한 데로 끌려다니다가 모조리 죽어갈 것이다.
저들이 얼마나 뛰어난 무인들인데 이런 식으로 죽어야 하나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혈천방 본방에는 귀무살이 서른두 명이나 있다. 상당히 많은 인원이 귀검을 보좌한다.
본방 귀무살은 할 일도 없다. 온종일 무공수련만 한다.
그들이 본방에 있는 이유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다. 천살단과 싸움이 벌어지면 곧장 천살단으로 달려가서 천살단주의 머리를 베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죽음의 결사대가 될 자들이다.
그래서 본방 귀무살은 할 일이 없지만,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귀검은 그들 모두를 불러모았다.
“말해라.”
귀검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보고가 이어졌다.
“도천패와 당홍이 같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본방을 떠나지 않고, 계속 주변을 맴돌면서 시비를 겁니다. 본방 시선을 호발귀로부터 돌리려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다음.”
“등여산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가 추격에 나섰을 때는 모든 흔적을 지우고 사라진 후였습니다.”
“다음.”
“홀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토방(土房)이 의심스러운데, 들어가지 말라고 하셔서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잘했어. 토방에는 들어가지 마.”
귀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방에 들어가면 죽는다. 자신이 직접 저들 무공을 타진해 봤다. 강하다. 귀무살 상대가 아니다.
“해자수는?”
“해자수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홀리와 함께 토방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귀검을 고개를 갸웃거렸다.
토방은 음문촌의 중심이다.
음문촌이 혈천방에 와서 제일 먼저 요구한 것이 뇌옥을 자신들이 쓰겠다는 것이다.
원래 토방은 혈천방 반역자들을 가두는 지하 뇌옥이었다.
그런 곳을 거처로 삼겠다니.
하지만 내줬다. 혈마를 키워내려면 은밀한 장소가 필요하여서 기꺼이 내줬다.
음문촌이 지하 뇌옥을 거처로 택한 것은 출입자를 철저히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토방은 중요한 곳이 되었다.
홀리는 토방에 가둘만하다. 하지만 해자수는 외인이다. 토방에 가둘 이유가 없다.
“지금부터 당홍과 도천패를 잡는다. 지금이 유시초(酉時初:오후 5시). 술시정(戌時正:오후 8시)까지 잡아 와.”
“넷!”
귀무살이 일제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