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七章 첫 날 (3)
크으으으…… 끄으……!
호발귀 입에서 신음인지 괴성인지 분간이 안 되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살아났어!”
등여산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도는 곧 걱정으로 바뀌었다.
혈마가 되어있으면 어떡하지? 구혼음소를 읊었는데, 토초에게처럼 거부하면 어떡하지? 자진 명령을 내리기 전에 자신을 죽이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면?
걱정은 한 번 시작되자 끝도 없이 일어났다.
등여산은 호발귀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 눈동자를 살폈다.
눈동자가 샛노랗다. 괴이한 색깔이다. 하지만 죽은 저의 눈빛은 아니다.
‘됐어. 음고가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등여산은 호발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음고가 발작을 시작하면 옷을 벗겨놓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가 찢어발길 것이다.
그런 것은 싫었다.
애정 깃든 손길은 기대하지 않지만, 사전에 자신만이라도 교감을 나누고 싶었다.
호발귀가 정신을 차리면 무엇을 할지 안다.
엄청난 고통이 몰아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분명히 등여산이 원한 게 아니다. 그러면 호발귀는 원했나? 그도 원하지 않는다. 둘 다 원하지 않는 관계를 맺는다.
호발귀의 옷을 벗겨냈다.
이곳저곳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각종 병기에 베이고 찍힌 자국이 수도 없다.
등여산은 상처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너무 억울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부부지연을 맺는 건데.’
호발귀와 나눈 신체적인 접촉이라고는 부드러운 입맞춤이 고작이었다. 그 이상은 접촉하지 않았다.
정사를 벌이는 게 억울하지는 않다. 다만 호발귀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이는 것이 억울하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한 몸이 되고 싶었는데.
스읏!
그녀는 일어나서 자신의 옷을 벗었다.
이제 서로가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호발귀는 기억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순백지신을 내준다.
그녀는 나신이 되었다.
그리고 호발귀 옆에 누웠다.
살과 살을 맞대고 호발귀를 꼭 껴안았다.
“끄으으으……”
괴성이 점점 커진다. 소리가 명확해진다.
이제는 완전히 살아났다는 걸 의식할 수 있다. 살아난 자는, 생명이 있는 자는 구혼음소를 듣는다.
“타악 투 파 비투 쏘 추우 탄 치 미탕 호 아 피우……”
등여산은 구혼음소를 읊기 시작했다.
순간, 순한 양처럼 누워있던 호발귀가 벌떡 일어섰다.
파앗!
성난 맹수가 그녀를 노려봤다.
“피틴 투 키루 하 기루차……”
호발귀는 구혼음소를 중단하지 않았다.
‘무서워.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나 등여산이야. 나 사랑한다면서? 그럼 나를 알아봐야지?’
당장 속마음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구혼음소가 먼저다. 호발귀가 자신을 혈마후로 인정할 때까지,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에 복종이 심어질 때까지 노래를 부른다.
“큿큿큿!”
호발귀가 괴성을 지르며 그녀의 목을 꽉 움켜잡았다.
‘커억!’
“처러카 미이 개자오라 도미 조 소이나……”
등여산은 비명을 쏟아내고 싶었다.
호발귀가 진심으로 목을 졸랐다. 목이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다. 하지만 계속 구혼음소를 노래했다.
사나운 손길이 그녀의 가슴을 짓뭉갰다.
연인의 손길이 아니다. 맹수가 발톱으로 찍어누른다.
등여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진정 이토록 난폭한 관계는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호발귀이니 괜찮다.
지금 호발귀 상태를 보니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호발귀가 그녀를 혈마후로 인지한다고 해도 결국은 자진 명령을 내려야 할 것 같다.
몸을 유린당하는 것은 상관없다. 자신이 원해서 시작했다. 다만 모든 게 끝났다는 사실이 슬프다.
호발기는 격렬하게 움직였다.
관계하는 여인이 어떤 상태인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입으로 거친 숨을 토해내며 욕구를 풀기에 급급했다.
등여산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굶주린 늑대 무리에게 몸을 던진 느낌이다.
이놈이 와서 다리를 물어뜯는다. 다른 놈은 뱃살을 물고 놓지 않는다. 살을 찢어내고 장기를 파먹는다. 또 다른 놈 목을 물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놓지 않을 모양이다.
그렇게 온몸이 찍혀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등여산은 무방비 상태로 축 늘어졌다. 맹수가 물고 뜯어도 일절 저항하지 않았다.
“취저 처 타마 뭘롱 닌비라 가마러……”
구혼음소를 읊는 음성도 점점 잦아들었다.
맹수는 사납게 물어뜯을 뿐, 그녀를 혈마후로 의식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 구혼음소를 말하다 보면 그냥 느껴진대. 교감이 이루어지는 거지. 그때 명령을 내리면 돼. 어떤 교감인지, 교감이 이루어지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는 나도 잘 몰라. 해본 적이 없잖아?
언제 혈마후로 의식하며, 언제 명령을 내리는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교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루파 나후 사라 럼 로럼 루미리.”
구혼음소가 끝났다.
천이백팔 자의 주문을 모두 외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
“끄으익! 끄윽!”
호발귀는 여전히 맹수다.
구혼음소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등여산은 자진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되는지 모르겠다. 홀리가 말해준 상황과는 너무 다르다. 정사를 나누는 중에, 아니 폭행을 당하는 중에 교감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교감은 없었다.
호발귀가 혈마가 됐다는 사실만은 확인했다.
호발귀의 눈동자가 샛노랗다. 악귀의 눈이다. 호랑이의 눈과 흡사하다. 차디차면서 도도하게 굽어본다. 조용한 듯하지만 살기로 가득 차 있다.
“그래. 이렇게 끝내줘. 널 지켜주지 못했으니까 화내도 돼.”
등여산은 이대로 끝나는구나 싶었다. 구혼음소는 통하지 않고, 음고는 계속 작용하고 있다. 호발귀는 그녀의 몸에서 음기를 모두 갈취할 때까지 정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사를 나누다가 죽는다.
이렇게 죽는 것도 괜찮다. 호발귀 손에 죽는 것이니. 일이 끝난 후에도 살아남을 호발귀가 불쌍하다. 결국은 혈마에다가 색마까지 되어서 무림을 떠돌아야 한다.
지금 죽여야 하는데, 죽일 방법도 없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호발귀가 기력이 다했는지 옆으로 툭 떨어져 나갔다.
한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폭풍이 지나간 후,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녀의 몸에서 묵중한 물체가 떨어져 나갔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지? 맹수가 덮쳐서 난폭하게 육신을 찢어발긴 것 같은데.
‘이런 건 다시 하고 싶지 않아.’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울고 있기보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해냈다.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호발귀는 혈마가 되었다. 그러니 이 상태로 무림에 돌려보낼 수 없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죽여야 한다.
“끄응!”
등여산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너무 만신창이가 되어서 일어설 수가 없다. 온몸에 뼈란 뼈는 전부 부러진 느낌이다. 특히, 하복부와 다리는 완전히 마비되어 감각이 없다.
“으으…… 으!”
등여산은 사력을 다해서 손을 뻗었다.
드디어 검이 잡혔다.
정사를 벌이는 동안 자진 명령을 내리지 못했으니, 그냥 죽일 생각이다. 지금까지 호발귀가 취한 행동을 보면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는 틀렸다.
괜히 깨웠다.
이럴 줄 알았다. 하지만 기적을 믿었다.
또 호발귀를 죽이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죽이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 되어버렸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스읏!
검을 끌어와서 호발귀 목에 댔다.
그때, 호발귀가 손을 들어서 검을 잡았다. 검신, 검 끝을 맨손으로 잡았다.
등여산은 깜짝 놀라서 진기를 끌어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무너진 육신은 진기가 운집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몸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단전조차 의식되지 않았다. 경맥은 더욱 안 보였다.
호발귀를 죽여야 하는데, 깨어나면 안 되는데.
혈마를 상대할 방법은 없다. 한숨 돌린 호발귀에게 또 능욕을 당해야 하나? 기적을 바랄 때는 기꺼이 동조했지만, 지금은 고통일 뿐이다.
그때, 호발귀가 말했다.
“미안. 정말 미안.”
순간, 등여산은 모든 긴장이 와르르 무너졌다.
“정신! 정신이 든 거야!”
호발귀가 손을 뻗어서 그녀를 껴안았다.
“이 죄를…… 미안해서 이 죄를 어떻게 갚지? 정말 미안.”
“괜찮아. 괜찮아. 정말 살아난 거지? 멀쩡한 거지? 혈마 아니지? 나 누구야?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등여산은 호발귀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폭풍처럼 말을 쏟아냈다.
호발귀는 손에 힘을 줘서 그녀를 꽉 껴안았다.
몸과 몸이 부딪혔다. 살과 살이 부딪혔다.
조금 전까지 격렬하게 부딪힌 몸이지만 서로가 상대를 처음 의식한다.
등여산은 호발귀 품에 얼굴을 묻었다.
“다행이야. 살아나서. 다행이야. 멀쩡해서.”
등여산은 호발귀에게 대답을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호발귀가 힘주어 안는다. 그 행동 하나만으로도 호발귀에게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신했다.
호발귀는 등여산의 말을 듣고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안았다. 그리고 입맞춤을 했다.
홀리가 음고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음고가 일반적인 사람에게 작용할 때는 그녀가 알고 있는 게 맞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호발귀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호발귀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움직였다. 생기가 들어오면 살고, 있는 것마저 빠져나가면 죽는다.
한 가닥 생명을 붙잡고 있는 끈은 매우 끈질기고 강하다. 벌레가 건드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하다. 그리고 음고가 자극을 가할 때,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후우웃!
생기가 휘몰아쳐 들어왔다.
생기는 제일 먼저 음고부터 타격했다. 생명의 기운을 건드리는 병균은 제거 대상이다.
생기는 음고도 병균으로 보고 제거했다.
생명의 대기운은 음고를 한 줌 먼지로 만들어서 몸 밖으로 퉁겨내 버렸다.
호발귀는 음고에 휘둘려서 등여산을 덮쳤지만, 이미 음고는 소멸한 상태였다.
등여산이 당한 일은 음고의 여력 때문에 일어났다.
단지 여력만으로 그만한 일이 일어났다. 그러니 음고가 제대로 움직였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홀리는 왜 음고를 사용하면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까?
혈마에 관한 일은 대부분 사람이 생각해낸 상상이다. ‘진실이 이러니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가정이다. 실제로 경험해서 확인한 것은 거의 없다.
구혼음소도 마찬가지다.
이백 년 전, 음문촌은 구혼음소로 혈마를 제압했다. 하지만 호발귀에게는 구혼음소가 전혀 다른 측면으로 작용한다. 이백 년 전의 혈마와 다른 과정을 밟고 있다.
“그럼 이제 혈기는 소멸한 거야?”
“아니.”
“아냐?”
“생기 오염을 막지 못하면 혈기가 일어나. 생기를 사용하면 오염은 반드시 되고. 혈기를 막을 방법이 지금은 전혀 없어. 그러니 아직 괜찮은 건 아냐.”
“그래도 이제는 내가 있으니까. 음고만 준비하면 되겠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아니. 너에게 이런 고통을 또 줄 수는 없어.”
호발귀가 등여산을 어루만졌다.
등여산의 몸은 멍투성이다. 목에도 올가미를 걸은 것과 흡사한 자국이 생겨났다. 손으로 누른 자국인데, 얼마나 세게 눌렀으면 저런 자국이 생길까.
“어쨌든 한 가지 방법은 생겼잖아.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천천히 찾아. 손대볼 만한 것은 있어? 구혼음소?”
폭행을 당한 사람은 그녀인데, 그녀가 오히려 호발귀를 위로했다.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잃기 전에 혈기가 어느 정도나 일어나는지 알아보고 있었지. 어디까지는 괜찮다 하는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저번 같으면 기준도 필요 없지만.”
등여산은 단번에 호발귀의 말뜻을 알아챘다.
오염을 집중적으로 살핀다. 이후, 구혼음소를 이끌어서 가사 상태로 들어간다. 정신이 멀쩡하게 들면 혼절하기 전에 파악했던 오염 정도까지는 괜찮은 것이다.
모두가 걱정할까 봐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호발귀는 생기격타를 꾸준히 늘려왔다. 구혼음소가 한층 격렬해졌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는 상태였다.
그런 걸 숨겨왔었다.
등여산이 말했다.
“일어나. 언니하고 보위가 혈천방에 있어. 아마 잡혔을 거야. 가서 구해야 해.”
등여산이 말을 하면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곧 아랫배를 움켜잡고 다시 주저앉았다.
“왜? 어디 아파?”
호발귀가 급히 물었다.
“몰라!”
등여산이 소리를 빽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