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七章 첫 날 (1)
“어떠냐?”
음문촌장이 물었다.
“……”
의원이 말을 못 하고 쭈뼛거렸다.
“어떠냐니까!”
“매우, 매우 심각합니다.!”
촌장이 버럭 고함을 지르자, 그때서야 의원이 급히 말했다.
“심각한 것은 나도 알아. 의원이면 어디가 어떻게 심각한지 말해야지! 무슨 의원이!”
촌장이 한심하다는 듯이 의원을 쳐다봤다.
“장기손상이 심합니다. 회복해봐야 알겠지만, 앞으로 무공을 펼치기가……”
의원이 말을 줄였다.
장기를 심각하게 손상당하면 힘을 쓰지 못한다. 무거운 것을 들기가 힘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토초는 무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난다.
“알았다. 나가봐.”
촌장이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의원은 뒤도 안 돌아보고 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촌장은 토초에게 갔다.
배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토초를 보자 인상부터 찡그려졌다.
“사람이 검을 썼다면 이토록 심각하게 다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이렇게 찌를 수 없지. 그때, 그놈은 혈마였어. 그러니 이렇게 당한 거다.”
촌장이 침상 옆에 앉으며 말했다.
“난 아직 가능성 있어. 내가 혈마후야.”
토초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음문촌장은 인상만 찡그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토초가 혈마후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혈마가 찌른 검이 매우 이상하기 때문이다.
혈마는 인정사정이 없다. 그리고 상대방을 가지고 놀지도 않는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이 장난삼아서 희롱하며 질질 끌지도 않는다.
혈마는 단칼에 죽이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처참하게 찢어 죽이는 것은 있을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칼질을 수십 차례 하는 것도 가능하다.
혈마의 모든 공격은 죽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토초를 찌른 검이 매우 이상하다. 그녀의 배에 박힌 검은 죽이는 검이 아니었다.
검이 토초를 찌르기는 했지만, 죽음과는 거리가 먼 부위다.
만약 혈마가 죽음을 원했다면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었을 것이다. 머리를 찌르거나 목을 베었을 것이다. 혈마라면 당연히 그런 검을 펼쳐야 한다.
토초가 중상을 입은 것은 배에 박힌 검이 혈마의 흉성을 쫓아서 마구 비틀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장기손상이 매우 심각해졌다.
분명한 것은 배를 찌르는 검은 혈마라면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공격이라는 것이다.
왜 즉사할 수 있는 부위를 버려두고 배를 찔렀을까?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가설이 있다.
호발귀가 토초를 혈마후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토초는 구혼음소를 읊조리고 있었다. 혈마가 구혼음소에 반응한 후였다.
그녀를 혈마후로 인식했기 때문에 죽이지 못했다.
완전히 혈마후로 인식했다면 당연히 칼을 쓰지 않고 오히려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당시 호발귀는 토초를 막 혈마후로 인식하는 초기 단계였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다.
어쨌든 토초는 상당히 중상이다.
호발귀하고는 악연이 매우 깊다. 팔을 하나 잃었고, 이제 무인으로써의 생명도 장담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 네가 혈마후지. 그러니 일어나거라. 이까짓 것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나.”
톡톡!
촌장이 토초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렸다.
토초가 말했다.
“호발귀, 내 거야. 누구도 손대지 마.”
촌장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났다.
“내게 딸이 너 하나밖에 없는데, 누가 감히 손을 대. 염려하지 말아라.”
‘웃기는 소리!’
토초는 촌장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촌장은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처자식을 사랑해본 적이 없다. 촌장에게 자식은 아끼고 보살펴야 할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힘을 보태줄 도구여야 한다.
가치를 잃으면 자식이라도 내친다.
홀리가 돌아온 것을 알고 있다.
홀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당장 홀리를 쓸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지하 토굴에서 햇빛도 보지 못하고 가짜 혈마를 만드는 도구가 될 것이다. 여왕벌처럼 안에 틀어박혀서 가짜 혈마나 만들어내야 한다.
이제 토초는 자신의 건재함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몸조리 잘해라.”
촌장이 일어섰다.
‘호발귀! 널 잡을 거야. 잡아서 오독오독 씹어먹고 말겠어.’
토초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촌장은 지하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토초가 가짜 혈마를 만들던 지하 굴이다.
굴은 공기 순환이 잘되지 않아서인지 귀색무 냄새가 진하게 배여 있다.
“혈마로 만들 놈들은 또 있는데……”
촌장이 중얼거렸다.
혈천방주는 혈마 열 명을 만들어냈다.
열 명만 만들었는지 그 이상 만들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촌장에게 만든 게 이것뿐이라면서 열 명을 내주었다. 그러니 아마도 다른 곳에 더 있을 것이다.
그중 여섯 명을 잃어버렸다.
이번에 잃어버린 네 명은 혈마 가까이 근접했다. 하지만 진짜 혈마와 부딪히니 일초지적도 안 된다.
가짜 혈마 수십 명을 만들어내느니 진짜 혈마 호발귀를 얻어야 한다.
“잘하면 호발귀를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호발귀는 놓치기에는 정말 아까운 놈이다. 놈을 통제할 수단이 있어서 더 아깝다.
촌장은 마지막 계단을 밟고 바닥에 내려섰다.
촌장은 계속 걸어서 안쪽에 있는 벽으로 갔다. 그리고 벽에 세워져 있던 병기대를 옆으로 밀었다.
드르르륵!
병기대가 옆으로 밀려나면서 지하로 내려가는 굴이 나타났다.
굴에 또 굴이 있다.
화아악!
촌장이 횃불을 밝혔다.
불빛이 사방을 비추자, 제일 먼저 온갖 형구(刑具)가 눈에 들어왔다.
벽에 형구가 잔뜩 걸려있다.
형구는 바닥에도 떨어져 있다. 물고문도 하는 듯 물통이 보이고, 인두를 담가놓은 화로도 보였다. 가시 철망으로 만든 의자에는 살과 피가 묻어 있었다.
촌장이 횃불을 들어 올리자 비로소 한쪽 구석에 묶여 있는 여인이 보였다.
피투성이가 된 여인은 촌장이 들어온 것도 모른 듯 축 늘어져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촌장은 물동이를 들어서 여인의 얼굴에 쫙 끼얹었다.
“으음!”
여인이 신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살짝 들어 촌장을 바라봤다.
홀리! 홀리다. 홀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지하 음침한 곳에 갇혀 있다.
홀리는 촌장을 확인하고는 다시 고개를 뚝 떨궜다.
촌장이 홀리에게 다가와서 그녀를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 형구가 걸려있는 벽에 기대 앉혔다.
“구혼음소를 외부에 노출했더구나.”
‘구혼음소가 노출?’
순간, 홀리의 눈빛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촌장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구혼음소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등여산이 구혼음소를 썼다. 호발귀가 혈마 직전까지 치달렸는데, 등여산이 빼내갔다.
촌장은 단지 구혼음소를 노출했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는데, 홀리는 모든 상황을 한눈에 꿰뚫어 봤다.
“호호호호! 호호호호!”
그녀가 통쾌한 듯 깔깔대면서 웃었다.
‘호발귀. 등여산. 그럴 줄 알았어. 너 빠져나갈 줄 알았어. 잘했어. 정말 잘했어. 등여산, 고 계집애도 여간 아니네. 구혼음소를 알려주기는 했지만 불안했는데.’
구혼음소를 펼치면 그다음에 벌어질 일은 더 최악이다.
홀리는 뒷일까지 걱정하지는 않았다. 당장 호발귀가 촌장 손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좋았다.
‘정말 좋아. 이렇게 기분 좋은 적은 없었어. 아! 속이 다 시원해.’
“호호호! 호호호호호!”
홀리가 미친 듯이 웃었다.
“그놈이 빠져나간 게 그렇게도 좋으냐?”
“빠져나가면 뭐 해. 어차피 죽을 거. 그게 좋은 게 아니고, 혈마가 되지 않은 게 좋아.”
“이런! 너 설마 그놈에게 마음을 준 것이냐?”
“내가 혈마후가 되려고 했잖아. 그러니 당연히 마음도 주었지. 그게 뭐 새삼스럽다고.”
“구혼음소도 주고, 마음도 주고. 그래, 넌 뭘 받아왔니?”
“그런 거 묻는 아버지가 어디 있어? 딸이 힘들면 다독여줘야지, 추궁하면 안 되는 거야.”
“방금 어차피 죽을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이냐?”
“호호호! 자, 그럼 지금부터는 공평하게 서로 하나씩 묻기. 내 질문부터. 내가 뭘 물을지는 알지?”
홀리가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는 호발귀가 구혼음소에 당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환하게 밝아왔다.
모든 근심 걱정이 탁 풀어졌다.
이제 끝났다. 사랑도, 걱정도, 은원도 모두 끝났다.
등여산이 구혼음소를 펼칠 정도였다면 상황이 얼마나 나빴는지 짐작된다.
호발귀는 살지 못한다.
등여산도 호발귀가 혈마로 변하는 것은 보지 않을 것이니, 틀림없이 자진 명령을 내릴 것이다.
이제 자신도 삶을 정리하려고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정도 하고, 구걸도 하면서 듣고자 했던 말이지만 지금은 담담하다.
말해줘도 그만, 안 해줘도 그만이다.
말해주면 혹시 모르니까 호발귀 무덤을 찾아가 볼 때까지만 목숨을 연명하고, 말해주지 않으면 당장 끝내고자 한다.
이제 사는 데는 미련이 없다.
촌장이 말했다.
“또 그 얘기냐?”
“난 이해가 안 되는데. 구혼음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말해주는 게 왜 비밀이야? 그런 걸 말해주지 않을 이유가 있나? 알면 말해주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
“모른다.”
“그렇구나. 알았어. 이제 두 번 다시 묻지 않을게.”
“이제 네가 대답할 차례지. 어차피 죽는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
“나도 몰라.”
촌장이 홀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홀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넌 여기 조금 더 있어야겠다.”
“평생 있을게. 걱정하지 마.”
촌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호발귀는 구혼음소를 벗어났다. 혈마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데, 순식간에 벗어났다. 그리고는 등여산이 펼친 구혼음소에는 즉시 반응했다.
정말 궁금한 것은 이것이었다.
호발귀가 어떻게 구혼음소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아야만 한다.
등여산이 구혼음소를 알고 있으니 귀색혼령대법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호발귀는 등여산을 혈마후로 모실 것이다. 하지만 구혼음소를 처음 일으킨 사람은 토초다. 어쩌면 토초를 진짜 혈마후로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호발귀가 구혼음소를 벗어나게 된 이유를 알아야만 혈마를 되찾을 것인지, 죽일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촌장이 일어서면서 말했다.
“못난 것 같으니. 호발귀를 잡을 수 있는데도 다른 여자한테 양보하고. 너같이 멍청한 계집애는 세상천지에 없을 거다. 이건 네가 너무 좋아할까 봐 말해주지 않으려고 한 건데, 호발귀 그놈…… 구혼음소에서 벗어났다.”
“뭐?”
홀리가 고개를 빠짝 쳐들었다.
“확실히 예상 밖이야. 혈마가 구혼음소를 다 벗어나고. 놈이 어떻게 벗어났는지도 모르겠지?”
“몰라. 그런데 정말 구혼음소 유래 몰라? 알고 있잖아. 말해주면…… 안 될까?”
홀리 음성이 다시 온순해졌다.
촌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호발귀는 처음에 분명히 구혼음소를 벗어났다. 그 말을 해준 것뿐이다. 뒤에 등여산이 또다시 구혼음소를 펼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홀리가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말하다가 다시 온순해졌다.
구혼음소의 유래에 대해서 시큰둥해졌다가 적극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모든 게 호발귀와 관계있다.
홀리는 호발귀가 구혼음소에서 벗어난 이유를 알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촌장이 횃불을 끄고 걸어 나가며 말했다.
“오늘은 좀 쉬어라. 나도 신경을 많이 썼더니 피곤해.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구혼음소의 유래를 알고 있다.
처음, 구혼음소의 유례에 관해서 물었을 때, 기광이 번뜩였다.
분명히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 말을 안 해준다. 이것만이, 유래를 아는 것만이 호발귀를 혈마의 저주에서 빼내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호발귀를 떠나 지옥으로 왔다.
이제 평생 호발귀 곁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혈마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면 반드시 알아낼 생각이다. 육신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나도 참…… 나한테 좋다는 말 한마디 안 한 사내를 위해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호호! 구혼음소를 벗어나? 책사 계집애, 한숨 돌렸겠네. 호호호!”
홀리는 캄캄한 굴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마음이 시원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