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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78화 (178/500)

第三十六章 손님접대 (3)

호발귀가 움직였다.

혈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생명 없는 물체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준비해!”

토초가 말했다.

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마냥 느리게만 보였던 혈마가 섬광처럼 움직였다. 네 명이 즉시 호발귀를 포위했다.

파앗!

호발귀는 비로소 혈마들의 생기를 읽었다.

혈마는 ‘들어오라’라는 명령도 받았다. 하지만 이때는 생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죽은 상태이고, 정확하게 말하면 생기가 매우 옅었다.

‘준비하라’라는 명령을 받자, 혈기가 확 피어났다.

준비하라는 명령은 죽이라는 명령과 같다. 그래서 혈기가 피어난 것이다.

호발귀가 감지한 것은 맑은 생기가 아니다. 붉디붉은 살기도 아니다. 흐리고 탁한 기운이다.

오염된 생기다.

호발귀는 눈살을 심하게 찌푸렸다.

전에 죽인 혈마 두 명은 이런 종류의 혈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맑은 생기였다. 그러다가 혈기로 변했다. 그래서 가짜 혈마라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오염된 생기를 드러냈다.

혈천방에서 혹은 음문촌에서 인위적으로 생기를 건드렸다.

호발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혈천방주와 음문촌장을 번갈아 쳐다봤다.

두 사람은 재미있는 구경을 하는 듯 웃으면서 지켜보는 중이다.

그렇다. 이들은 생기의 존재를 안다. 생기를 건드릴 줄 안다. 먼저 만난 혈마는 가짜가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 네 명은 두말할 필요 없이 진짜다.

“혈천방주, 이러면 널 용서할 수 없잖아.”

호발귀가 중얼거렸다.

그는 비로소 이 싸움이 단순히 사부를 구하고 남은 귀무살을 찾아 죽이는 선에서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은 무림과는 전혀 상관없다.

무림에 몸담을 생각도 없고, 무공으로 명성으로 얻을 생각도 없다. 자신을 정인군자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러니 혈천방이 애꿎은 사람을 수없이 죽여도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혈마 문제는 다르다.

자신은 혈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한데 혈천방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망가트리고 있다.

혈마는 죄가 없다.

멀쩡한 사람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인간으로 바꾼 것들이 죽일 놈들이다.

솔직히 호발귀는 눈앞에 혈마가 있다면 멱살을 잡아서 내동댕이쳤을 것이다. 뭐 이런 개 같은 무공을 만들어냈냐고, 이런 정신병자가 다 있냐고 몰아쳤을 것이다.

호발귀는 혈마를 탄생시킨 혈천방주, 그리고 음문촌장을 용서할 수 없었다.

호발귀가 중얼거렸다.

“혈천방과는 공존할 수 없는 사이가 됐군.”

이번 음성은 다소 컸다. 그래서 대청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새삼스럽게.”

촌장 자녀 중 누군가가 말했다.

저들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 어려 있었다. 마치 너는 여기서 죽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내가 죽으나 너희가 죽으나 둘 중 한쪽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해. 내가 정의로워서 이러는 거 아냐. 너희, 너무 못된 짓을 했잖아.”

호발귀는 혈천방주에게 선전포고했다.

“하하하! 그것도 괜찮지. 이제 혈마끼리 선은 충분히 봤고, 싸움을 볼까?”

“죽여!”

토초가 기다렸다는 듯이 명령했다.

“죽여! 갈기갈기 찢어 죽여! 뼛조각도 남기지 마!”

토초의 입에서 악담이 쏟아져 나왔다.

호발귀를 포위하고 있던 혈마들이 원을 그리면서 빠르게 휘돌기 시작했다.

‘빠르네.’

호발귀는 혀를 내둘렀다.

혈마는 뇌가 없다. 뇌는 있지만 사용하지를 못한다. 그러니 생각도 일으키지 못한다.

그런 혈마들이 합동해서 협공을 펼친다.

호발귀가 알고 있는 혈마와는 뭔가 조금 다르다. 이들 역시 완벽한 혈마는 아닌 것 같다.

쒜에에엑! 쒜에엑!

혈마들이 번갯불처럼 움직였다.

좁은 공간에서 빙글빙글 작은 원을 그리면서 돌면 멀쩡한 사람도 어지럽다.

이들은 매우 빠르게 휘돈다.

강풍에 바람개비가 돌아가듯이 맹렬하게 휘돈다.

츠읏!

호발귀는 역천금령공을 일으켰다.

양손에는 이령귀화를 운집했다. 당연히 생기도 따라서 올라왔다.

생기 없이 혈마를 상대할 수는 없다.

슈우우웃! 퍼억!

손에서 빠져나간 생기가 혼탁한 기운을 후려쳤다. 혈마의 탁기, 혈기를 쳤다.

퍼억!

호발귀는 탁기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한 명은 끝났……?’

판단이 빨랐다. 혈마의 생기를 건드렸기 때문에 살기가 감춰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빙빙 휘돈다.

“이런!”

호발귀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생기격타는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단지 혈마가 아무런 자극도 받지 못한 것이다.

츠읏!

역천금령공을 다시 일으켰다. 이번에는 아주 강하게 끌어냈다.

‘어디! 이번에도 견뎌봐!’

쎄에에에엑!

혈마를 향해 이령귀화가 터져나갔다.

원래는 생기만 쏟아내는데, 이번에는 진기와 생기를 동시에 쏟아냈다.

퍼억!

“끼아아악!”

혈마가 매우 아픈 듯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신형을 멈추지 않았다. 달리는 속도조차 늦추지 못했다.

스읏!

혈마 네 명이 일제히 기형 구절편(九折鞭)을 꺼냈다.

형태는 정상적인 구절편이다. 하지만 구절편은 머리에 봉표창을 다는데, 혈마는 칼날을 달았다.

촤라락!

혈마가 일제히 구절편을 떨쳐냈다.

그러자 구절편 아홉 마디가 창대처럼 쭉 펴졌다. 혈마가 맹렬히 회전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철편은 쭉 펴지고, 칼날은 호발귀를 향해 뻗쳐나갔다.

아직 구절편은 호발귀를 압박하지 않았다.

구절편의 길이가 몸에 닿지 않는다. 몸에 닿으려면 혈마가 조금 더 가까이 돌아야 한다.

쉐에에에엑!

혈마가 원을 좁히기 시작했다.

모두 계획된 행동이다. 병기를 들어서 구절편을 막는 순간, 구절편이 부딪친 병기를 휘감아 버린다. 그리고 빙빙 도는 회전력에 이끌려서 옆으로 딸려간다.

그 사이, 다른 세 개의 구절편이 육신을 찢어버린다.

그렇다고 공격을 방치하면 조금씩 다가오다가 결국은 또 육신을 찢는다.

‘이런!’

호발귀는 역천금령공을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이령귀화에 생기를 실어서 아주 강력하게 쳐냈다.

펑! 끼아아악!

혈마가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역시 탁기에 타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호발귀는 인상을 확 찡그렸다.

생기격타가 통하지 않는다. 혈마 무공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혈마의 혈기는 밀랍 같은 것으로 단단히 밀봉되어서 어떠한 타격도 흘려버린다.

‘흔들리기만 할 뿐 흩어지지 않아!’

호발귀는 이들이 대청 밖에 있을 때, 생기를 왜 읽지 못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이들은 절반만 인간이다.

절반은 살아있고, 절반은 죽음 속에 발을 딛고 있다.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 생각이 없고, 감각이 없다. 오감이 완전히 죽었다. 당연히 육신이 주는 고통을 인지하지 못한다. 육신이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토해낸다. 하지만 혈마는 자신이 비명을 지른 사실조차도 모른다.

살아서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머리는 텅 비었다.

그래서 생기격타가 통하지 않는다.

절반은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오로지 명령만 쫓는다.

오늘 매우 불길하다. 이들을 죽이려면 자신 역시 혈마가 되어야 한다. 혈기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 방법 외에는 없다.

등여산이 그렇게 걱정했는데, 이것이었나.

‘후후! 오늘이군. 혈마가 되는 날이. 그토록 피하려고 했는데…… 와주 할아버지. 사부. 동패. 왕소. 모두 용서를 빌어. 난 여기까지가 한계네.’

호발귀는 이미 혈기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연속해서 생기격타를 한 탓에 살심이 걷잡을 수 없이 거세게 치솟는 중이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생기에 혼탁한 기운이 묻었다.

오염되었다.

더욱이 완전한 혈마가 되는 것 외에는 혈마 네 명을 격퇴할 방법도 없다.

호발귀는 고개를 돌려서 등여산을 쳐다봤다.

혈마가 되기 전, 마지막 얼굴을 본다. 지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별로 아름다웠던 기억이 없다. 항상 걱정만 끼쳤다. 못된 짓만 했다.

‘여산. 고마워. 고마웠어. 힘들어하지 말고, 꿋꿋하게.’

페레레레렉!

기형 구절편이 살을 찢기 시작했다.

호발귀는 역천금령공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이령귀화는 생략했다. 대신 구뢰마권을 운집했다.

등여산은 호발귀가 쳐다보자 일시 온몸이 굳었다.

호발귀의 눈길을 접하자마자 그가 절절하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를 읽었다.

“안 돼!”

등여산은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쿠르르릉! 꾸르르릉!

대청에 우렛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역천금령공을 바탕으로 구뢰마권을 펼치면 단언하건대 부수지 못할 물체가 없다.

터엉!

혈마가 쳐낸 구절편이 구뢰마권에 퉁겨나갔다.

동시에 호발귀가 혈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른 구절편이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몸을 완전히 내주면서 오직 한 명에게만 달려들었다.

쒜에에엑! 퍼억!

호발귀가 혈마를 잡았다. 와락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쇠망치가 되어버린 주먹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퍼억!

혈마의 머리가 단숨에 으깨졌다.

퍼억!

호발귀는 다시 한번 머리를 가격했다.

머리가 으깨진 혈마는 바람 넣은 돼지 오줌보처럼 거칠게 떨어졌다가 퉁겨 올랐다.

퍼어어억!

호발귀는 혈마의 복부에 주먹을 틀어박았다.

혈마를 절명했다. 첫 번째 일격에 절명했고, 두 번째에 저승길마저도 차단당했다. 세 번째 일격에는 멀리 나가떨어져서 토초와 부딪칠 뻔했다.

퍼퍽! 퍼퍼퍽!

구절편 세 자루가 호발귀를 내리찍었다.

호발귀는 아픔을 모르는 듯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손을 휘돌려서 뼈까지 뚫었을 법, 굉장히 깊이 박힌 구절편을 와락 움켜잡았다.

호발귀는 몸에 박힌 칼날을 뽑아내서 천정으로 홱 던졌다. 그러자 혈마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구절편을 휩쓸려 비틀거렸다. 빙글 원을 그리는 대신 멈칫거렸다.

쒜에에에엑!

호발귀는 어느새 검을 뽑았다.

혈천도법 중 바위를 일격 양단한다는 혈천겁이 혈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퍼억!

혈마가 푹 꼬꾸라졌다.

생기격타는 소용없었지만, 혈마 무공은 통한다.

역천금령공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혈마의 혼탁한 원정은 감당하지 못한다.

쒜에엑! 퍼억!

혈마의 머리를 쪼갬과 동시에 다른 혈마의 머리를 뒤돌려 찼다.

혈마가 머리를 맞고 비틀거렸다.

호발귀는 즉시 쫓아가며 목을 향해 쳐냈다. 무정삼절 제일식 멸천겁이다.

쒜에엑! 투툭!

혈마의 머리가 수수깡처럼 베어졌다.

호발귀는 다른 혈마를 향해 돌아섰다.

남아있는 마지막 혈마는 혈마 세 명이 죽었는데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원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상황의 유불리를 따지지 못한다.

쒜에에엑!

혈마가 호발귀를 향해 구절편을 쳐냈다.

호발귀는 슬쩍 상반신을 굽혀서 구절편을 피했다. 동시에 혈천도법을 쳐냈다.

가슴에 바람구멍을 내는 혈흉개공이다.

퍼억! 퍽! 퍽! 퍽! 퍽!

격타음이 연속적으로 터졌다.

혈마의 상반신에서 피 분수가 확 솟구쳤다. 아무리 못 잡아도 십여 군데 이상 바람구멍이 숭숭 뚫렸다.

호발귀 눈에 음문촌 사람들이 들어왔다.

저벅! 저벅!

호발귀는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호발귀는 완전히 변했다. 두 눈이 악마처럼 새빨갛다. 입술은 파랗게 질렸다. 전신에서는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온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쫙 끼친다.

“크크큭!”

호발귀가 검을 들어 검신에 묻은 피를 핥아먹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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