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六章 손님접대 (2)
호발귀가 채소를 먹다가 수저를 놓았다. 그리고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혈천방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원하는 게 뭔데?”
“그래. 그렇게 고분고분한 것. 그걸 원했단 말이야. 하하하! 툭툭 쏴대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
혈천방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미친놈 아냐!”
도천패가 발끈해서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호발귀에게 제지당했다. 호발귀가 일어서지 말라고 손을 들어서 막았다.
혈천방주가 다시 닭 다리를 북 찢으면서 말했다.
“사부는 잘 계시지. 너무 활기차서 탈이야. 우리가 사부를 억지로 잡아놓았다고 생각하나 본데, 순전히 개인 뜻으로 머물고 있다고 하면 믿을까?”
“뭐라고! 이런! 어디서 개코같은 소리를!”
도천패가 다시 불끈해서 일어섰다.
“저 친구는 성격이 꽤 급하군.”
혈천방주가 도천패를 쳐다보며 웃었다.
호발귀는 이번에도 손을 들어서 도천패에게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침착하게 말했다.
“사부님에 대해서 말 좀 더 해주지? 당신 뜻으로 머무실 리가 없을 것 같아서 묻는 말이야?”
“더 말할 것도 없는데? 어차피 곧 만날 텐데, 자세한 건 만나서 말해 봐. 그냥 우리처럼 이렇게 일상생활 하면서 잘 있다고 하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려나? 사부가 어디 있는지는 식사 끝나고 가르쳐 줄 테니까 찾아가 보라고.”
호발귀와 도천패는 서로를 쳐다봤다.
혈천방주의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부가 당신 뜻으로 머문다니. 하지만 혈천방주가 거짓말을 꾸며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사부님이 우리가 여기 온 걸 아신단 말이군.”
“말해놨으니까. 식사 좀 해. 왜들 안 먹어. 이건 손님을 불러놓고 나만 게걸스럽게 먹으니까 이상하잖아.”
“문주, 넌 여기 있어. 내가 만나 뵙고 올게. 방주, 사부 어디 계시나! 안내를 붙여줘도 되고.”
도천패가 벌떡 일어섰다.
“아! 이러면 내가 좀 섭섭하지. 방금 말했잖아. 식사는 끝난 다음에 가라고.”
혈천방주가 도천패를 쳐다봤다.
“이봐. 여기 주인은 나야. 왜 자네가 주인 행세를 하고 그래. 남의 집에서 움직이려면 주인한테 먼저 양해를 얻어야 하는 거 아닌가? 손님이 왜 이렇게 예의가 없어?”
“뭐라고!”
도천패는 혈천방주를 노려봤다.
혈천방주는 사나운 도천패의 눈길을 담담하게 받았다.
방주는 도천패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호발귀도 안중에 두지 않는다. 손아귀에 든 장난감처럼 본다. 그물에 걸린 고기를 봤을 때처럼 만족해한다.
이것은 한 사람만 느낀 것이 아니다. 호발귀를 비롯해서 모두 다 같이 느꼈다.
“식사나 마저 하자고. 그리고 용건이 사부뿐만은 아니잖아? 또 물을 게 있을 텐데? 귀무살을 내달라는 말은 안 하나? 그것도 말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혈천방주가 귀무살을 내줄 것처럼 말했다.
“귀무살, 내어줄 수 있나?”
“그건 곤란하지. 내 새끼를 죽이겠다고 달라는데, 순순히 내줄 미친놈이 어디 있어.”
“조금 전에는 내줄 것처럼 말하더니. 그럼 뭐하러 물어보라고 한 거야? 흥!”
당홍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귀무살은 귀무령하고 소관이라서 내가 끼어들기 곤란해. 귀검이 귀무살은 끔찍이 아끼거든. 내가 귀무살이 있는 곳을 말해준다면, 귀검이 내 목을 노리려고 들 거야. 설혹, 칼은 뽑지 않아도 불만이 많겠지.”
혈천방주가 식사를 마쳤는지 차를 따라 마셨다.
“내가 귀무살을 말해주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아. 그건 나중에 귀검을 만나면 직접 물어봐. 압박하든 사정을 하든 난 못 본 척까지는 해줄 수 있어.”
혈천방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혈천방주는 정말로 배고팠는지 많은 음식을 먹었다. 앞접시가 온갖 음식들로 어질러졌다.
호발귀도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많이 먹었다.
아무래도 오늘 상황이 좋지 않다. 우선 속이 든든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대청 안으로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등여산의 생각이 기우라고 여겼다. 하지만 식사를 하는 동안, 정말로 싸움이 있을 것이라는 걸 예감했다.
식욕은 없지만 억지로 쑤셔놓는다.
혈천방주가 말했다.
“다른 할 말은 없나 보지?”
“사부를 넘겨주고, 귀검과 무슨 일이 있든 상관하지 않는다. 상당히 후한 조건인데. 단지 나보고 혈천방을 건드리지 말라는 소리로는 들리지 않고.”
“하하하! 잘생긴 것만큼 눈치도 빠르네. 이쯤 해줬으면 나도 부탁 하나쯤은 할 수 있겠지?”
“아까 말하라니까 뜸 들이더니.”
“식사는 끝내야지.”
“말해 보쇼. 요구사항이 뭔지.”
“혈마 무공. 그걸 보고 싶어. 혈마 두 명을 단숨에 벤 것도 보고 받았는데,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어떤 식으로 벴는지 내 눈으로 직접 봤으면 해서.”
“방주께서 직접 나서시겠다?”
“하하하! 내가 바보인 줄 아나? 내 무공으로는 어림도 없고. 우리 방에 최소한 이삼 초 정도는 받아낼 만한 사람이 있단 말이지. 괜찮으면 보자고.”
“지금?”
“여기 장소 넓잖나. 하하하!”
혈천방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 굳이 살려줄 필요는 없어. 죽여도 좋아. 최선을 다한 무공만 보여주면 돼.”
시녀들이 바쁘게 음식상을 치웠다.
다섯 사람이 앉았던 의자는 한쪽에 나란히 놓였다. 남은 사람은 차분히 앉아서 구경하자는 뜻으로 읽힌다.
혈천방주가 앉고, 도천패가 바로 옆에 앉았다.
호발귀가 위험해지거나, 기습이 벌어진다 싶으면 바로 혈천방주를 공격할 생각이다.
도천패 옆에는 당홍이 앉았다. 그리고 등여산이다.
호발귀가 앉았던 의자는 주인을 잃은 채 등여산 옆에 놓였다.
혈천방주는 남은 사람이 어떻게 앉든 개의치 않았다. 재미있는 구경을 한다는 듯 활짝 웃었다. 사뭇 들뜬 표정까지 보였다. 잔뜩 기대에 찬 모습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싸움이 아니다.
방주는 호발귀를 위협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자, 시작하지. 들어오라고 해.”
혈천방주가 말했다.
덜컹!
대청 문이 열렸다. 그리고 한 사람이 들어섰다.
“엇!”
“아! 저 사람은!”
도천패와 당홍이 들어선 사람을 알아봤다.
혈천방에 들어서기 전에 만난 사람, 얼굴에서부터 팔까지 이상한 도형을 문신한 사람, 음문촌 촌장이다.
모두 깜짝 놀랐다.
“홀리는……”
당홍은 음문촌장에게 홀리의 안부를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생각이 떠올라서 중간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음문촌장은 좋은 관계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홀리가 오히려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을 괴롭힐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가 가까운 사람을 건드리는 것이다. 홀리를 걱정하는 듯한 모습은 분명히 약점이다.
조금 있자, 열린 문으로 다른 사람들도 들어섰다.
토초가 섞인 오남일녀.
들어선 사람은 한결같이 거칠어 보인다. 말쑥한 모습이 아니라 방금 산에서 내려온 산도적들 같다. 생김새, 피부, 입고 있는 옷, 행동 등등 모두 거칠다.
홀리의 형제들이다.
그들은 미리 예행 연습이라도 한 듯, 아니면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는 듯 망설이지 않고 왼쪽 구석에 가서 섰다.
“어떻게 해볼 만해?”
혈천방주가 음문촌장에게 물었다.
“해볼 만하지.”
“고맙군. 솔직히 큰 기대를 하기 어려웠는데.”
“기대하라고. 지금 같아서는 이기는 것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후후!”
음문촌장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럼 어디 구경이나 해볼까?”
혈천방주가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옆에서 도천패가 살기를 뿜어내고 있지만, 전혀 느끼지 못한 듯 쳐다보지도 않았다.
“시작하자.”
음문촌장이 말했다.
“들어와!”
최종적으로 명령을 내린 사람은 한쪽 팔이 없는 토초다.
토초는 살기 띤 표정으로 호발귀를 쳐다보고 히죽 웃으면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대청 밖에서 사내 네 명이 들어왔다.
그들은 매우 이상하다. 얼굴빛이 창백하다 못해 하얗다. 분칠한 듯 뿌옇게 빛난다. 입술은 새카맣게 죽었고, 눈은 피를 머금은 듯 새빨갛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다.
‘시신?’
시신도 아니다. 시신은 움직이지 않는다.
“혀, 혈마!”
등여산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이들이 진짜 혈마다. 호발귀가 죽인 혈마는 인간다운 모습이라도 했다. 그들은 이들처럼 얼굴이 창백하지 않았다. 입술도 까맣지 타들어 가지 않았다.
이들은 괴기스럽다. 이들이 대청으로 들어서자마자 대청 전체에 싸늘한 살기가 어린다.
호발귀가 죽인 혈마보다 한 단계 더 발전했다.
더 강해지고 잔인해졌다. 인간의 감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공포, 분노, 살기 등등 어떤 감정이나 기운도 일으키지 않는다. 오직 죽여야 할 사람만 죽인다.
이들 네 명은 토초의 혈마다.
오직 토초 명만 따른다. 누구를 구해라, 살리라고 하는 명령은 듣지 않는다.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듣지 못한다. 생포하라는 명령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죽이라는 명령만 따른다.
파르르르!
등여산이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이들이 호발귀를 잡을 병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호발귀는 이들을 물리칠 것이다. 이들이 진짜 혈마라고 해도 호발귀가 훨씬 강하다.
하지만 혈마를 물리친 후, 호발귀는 바로 쓰러진다. 본인 스스로 죽음을 일으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혈마가 된다.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광기 어린 혈마가 된다.
혈천방주의 노림수가 이것이었나.
등여산은 혈마도 생각했다. 토초가 혈마 네 명을 데리고 나오는 것도 가정해봤다.
역시 상대가 안 되었다.
호발귀는 혈마 두 명을 죽인 경험이 있다. 그러니 네 명도 순식간에 죽인다.
예전 같으면 이쯤에서 호발귀는 혈기와 마주쳤다. 혈마가 되거나 구혼음소를 일으켜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구혼음소를 조정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싸움으로는 혈마가 될 정도로 혈기가 일어나지 않는다.
등여산은 혈마가 발전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토록 진짜와 똑같은 혈마가 나타날 것은.
“아아!”
등여산은 미약한 신음을 흘리며 바르르 떨었다.
그때, 호발귀가 등여산에게 다가가서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귓속말로 말했다.
“나 지켜줄 거지?”
등여산은 호발귀의 말을 듣자마자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켜줄게. 지켜줄게.”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호발귀가 다시 귓속말했다.
“그래. 지켜줘. 나, 너 믿고 싸워.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렇게 떨지만 말고, 나를 지켜봐. 너 믿고 가니까. 네가 정신 놓으면 나도 죽어.”
순간, 등여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정말 찰나다. 찰나 만에 등여산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싹 바뀌었다.
등여산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호발귀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음성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혈마 네 명은 힘들지?”
끄덕! 끄덕!
뜻밖에도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싸우기도 전에 힘들다고 말하는 건 처음 봐. 정말 힘든가 봐?”
“다른 사람의 생기는 다 읽었는데, 저들, 네 명은 읽지 못했어. 저들이 들어올 때, 나도 놀랐거든.”
“생기를 읽지 못했다고?”
“지금도 안 느껴져. 죽은 사람처럼. 싸우면서 이유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아.”
“그럼 정말 힘들겠네. 알았어. 싸워. 내가 지켜줄게.”
등여산이 시종일관 차분하게 말했다.
호발귀가 이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다고 해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표정이다.
꾸욱!
호발귀가 등여산의 손을 힘주어 잡은 후, 슬쩍 손등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뒤돌아섰다.
“언니. 독은 통하지 않아요. 언니가 있는 걸 아니까 모두 피독단을 복용했을 거야. 독 말고 다른 거 있어요?”
“있어. 걱정하지 마. 나도 그 정도는 생각했어.”
“신호가 오면 즉시 뿌리게 준비해줘요.”
“신호가 와? 누가 보내는데?”
“호발귀요. 호발귀 모습을 보면 언니도 알게 될 거예요.”
등여산이 침착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