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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76화 (176/500)

第三十六章 손님접대 (1)

호발귀는 혈천방주의 만찬에 초대되었다.

“방주님께서 오늘 저녁 식사를 같이하시자고 하십니다. 잔치 같은 것은 없고, 조촐하게 같이 식사하시면서 담화를 나누자고 하시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접객당주가 직접 와서 말했다.

혈천방주는 지극히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 행동하고 있다.

어떤 음모도 엿보이지 않는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힌 사람일수록 이런 기회를 얻는 편이다.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대화를 나눠서 문제점을 풀어가자는 의도로 보인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다.

“알았어요. 그러죠.”

등여산이 호발귀 대신 대답했다.

“그러면 저녁에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접객당주가 정중히 포권을 취한 후, 물러났다.

“저것들 뭐지? 기분이 쎄한데?”

당홍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저녁 식사 초대했잖아. 잘못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기분이 묘해. 마치 똥을 밟은 느낌이야. 이거 오늘 저녁은 뒈지게 맛없겠는데.”

도천패가 말했다.

등여산은 접객당주가 나가자 바로 호발귀를 쳐다봤다.

등여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왜?”

호발귀가 물었다.

“미안해.”

등여산이 다짜고짜 한 말이다.

“뭐가? 뭐가 미안한데? 무슨 일이야?”

계속된 물음에 등여산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을 또르르 흘러내렸다.

호발귀가 다가와 등여산의 어깨를 잡았다.

“자, 울지 말고.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말을 해야 알지. 무슨 일인지 말해봐.”

“모르겠어. 도저히 모르겠어.”

등여산이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뭘? 뭘 몰라?”

“혈천방, 오늘 식사할 때 널 공격할 거야. 그건 분명한데, 어떻게 공격할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확실히 널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데, 난 전혀 모르겠어. 흑!”

등여산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겨우 그것 때문에 우는 거야? 참 바보네.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울어? 난 또 무슨 큰일이나 있나 했네. 자, 그만 울어.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호발귀가 등여산을 다독였다.

하지만 등여산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공격할 텐데, 분명히 널 잡을 자신이 있으니까 공격하는 건데, 난 그게 뭔지 도저히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안 나.”

“괜찮다니까.”

호발귀가 등여산을 가볍게 안았다.

도천패와 당홍은 서로를 보면서 멀뚱해졌다.

저녁 자리가 께름직하기는 했지만, 등여산이 펑펑 울 정도로 심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등여산이 너무 깊이 생각한 것은 아닐까?

등여산은 천살단 책사다. 비록 많은 견제를 받아서 천살단 운영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지만, 머리만큼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아니, 병법에 밝았다.

등여산은 단순한 느낌으로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혈천방의 행동 양식을 보아왔고, 마인들의 생리를 알기 때문에 한 말이다.

그녀의 판단은 옳을 것이다.

호발귀가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 그렇게 순순히 안 당하잖아. 당할 것 같아?”

“내가 알아냈어야 했는데……”

등여산이 계속 어깨를 들썩였다. 흐느낌을 멈추지 않는다.

“저녁때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더 생각해보자. 나도 생각해보고. 내 생각에는 날 공격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공격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고. 응?”

호발귀가 등여산의 얼굴을 들어서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등여산은 저녁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온갖 암습 방법을 모두 생각해봤다. 하지만 어떤 암습도 호발귀를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혈천방주가 직접 공격하나? 혈천방주는 호발귀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귀검도 상대가 안 된다. 호발귀는 모든 무인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다.

물론 혈마 무공을 사용한 후에는 혈기에 시달리는 문제가 남는다.

혈기가 치밀고, 구혼음소를 읊어서 탁한 기운을 쏟아내고, 가사 상태로 접어드는 것은 별개로 하고…… 일단 접전이 벌어지면 혈천방주고, 귀검이고 당하지 못한다.

호발귀가 사용하는 것은 정상적인 무공이 아니다. 무공이라기보다는 신비한 능력, 일종의 초능력이다.

무공과 초능력.

무공도 상황에 따라서는 초능력을 앞설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써는 단연 호발귀가 우세해 보인다.

혈천방주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이토록 자신만만한가.

“준비되셨습니까?”

접객당주가 찾아왔다.

당주는 가마를 네 개나 동원했다.

먼 길을 가는 것도 아니고 방 내 이동이다. 가까운 거리를 간다. 하지만 일행 모두에게 가마를 대령했다.

최 극상 대우다.

이것만 보면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순간, 등여산이 바들바들 떨었다.

호발귀는 등여산의 손을 꽉 쥐었다.

“정말 조심해.”

등여산이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저녁 식사를 미루고 싶다. 하지만 미룬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귀검이 와서 혈천방주가 초대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온갖 암습 방법을 떠올렸다. 그때부터 몇 날 며칠 시간이 날 때마다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공격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랬는데, 하루 이틀 더 미룬다고 방법이 생각날 리도 없다.

사부를 구하고 친구들을 죽인 귀무살을 찾아내려면 혈천방주를 만나는 것이 제일 빠르다.

믿을 수 없는 저녁 식사 자리이지만 가야 한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호발귀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를 태운 가마가 제일 앞에서 섰다. 바로 뒤에 당홍, 그리고 호발귀다. 맨 뒤에 등여산이 탔다.

일부러 이런 식으로 탔다.

호발귀는 괜찮다고 했지만, 지금부터는 철저히 호발귀를 보호한다.

길은 넓게 쭉 펼쳐졌다.

산속 깊은 곳에 정말 큰 도읍을 만들어놨다. 이 사람들이 전부 혈천방 문도인가?

사람은 구경하지 못했다.

마차가 다닐 수 있는 큰길을 가는데도 사람이 일절 보이지 않았다.

혈천방에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모두 숨어 있다. 건물 뒤쪽에 달라붙어서 가마가 지나가는 것을 은밀히 구경한다.

‘담장 뒤. 지붕 위. 음!’

도천패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뒤를 돌아봤다.

당홍이 알아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천패는 다시 앞을 봤다.

어디서 기습을 가해와도 당장 받아칠 수 있게끔 만반의 준비했는데…… 기습은 없을 것 같다. 숨어서 지켜보는 사람은 많아도 살기는 엿보이지 않는다.

‘책사가 괜한 우려를 하는 거 아냐? 아무리 살펴봐도 싸우자는 놈은 안 보이는데.’

도천패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신경만은 바싹 곤두세웠다.

가마는 큰 마당이 있는 저택으로 들어섰다.

가마 네 대가 나란히 놓였는데도 마당이 넉넉해 보였다. 상당히 큰 저택이다.

마당에는 화려한 화복을 입은 중년인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혈천방주?’

중년인을 보자마자 긴장이 된다.

중년인에게서는 사악한 빛이 일절 엿보이지 않았다. 아주 잘 생겼다. 키도 크고, 풍채도 좋다. 얼굴도 시원하게 생겼다. 마방 방주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도 명숙처럼 보였다.

“어서 오시게.”

가마가 도착하자 혈천방주가 팔을 활짝 벌리면서 환영했다.

“얼굴 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하하! 자네가 호발귀? 어후! 잘 생겼네.”

혈천방주는 거침없이 호발귀에게 다가와서는 가슴을 툭 쳤다.

매우 친근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스스럼없다.

“이분이 그 유명한 천살단 책사신가? 우리 귀문 하나를 박살 내셨다고? 하하! 우리 자칫했으면 평생 얼굴 한 번 못 보면서도 으르렁거릴 뻔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만나게 되네.”

“등여산입니다.”

등여산이 정중히 인사했다.

“책사, 책사, 책사.”

혈천방주가 급히 다가와 포권하려는 등여산의 두 손을 잡아 내렸다.

“우리 딱딱한 격식은 치우자고. 서로 웃으면서 말하면 되는 거지, 포권은 무슨.”

혈천방주가 뒤돌아봤다.

“아! 자네가 도천패? 하하!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알겠네. 대력도강이 일품이라고? 척 봐도 알겠어. 내게도 자네 같은 보위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자넨 인복이 참 많아.”

혈천방주가 호발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무 과해도 비례(非禮)라도 했는데, 처음 본 사이에…… 대력도강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여줄 수는 있소.”

도천패가 혈천방주를 적의에 찬 눈으로 싸늘히 쳐다봤다.

“그런가? 하하하! 그럴 수도 있지. 독의께서 운명하셨다고? 쯧! 편하게 가셨어야 하는데.”

혈천방주가 당홍을 쳐다보며 말했다.

“궁금하면 따라가서 여쭤보던가.”

당홍도 좋은 말은 하지 않았다.

독의가 혈천방에서 축출당하는 순간부터 혈천방과는 공존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더욱이 등여산이 곧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적의가 스며 나왔다.

“거참 젊은 사람이 매섭네. 우리가 처음 만나서 그런가? 하하! 자! 들어가자고.”

혈천방주가 일행을 안으로 안내했다.

아주 큰 대청이다.

안에서 비무를 해도 좋을 정도로 넓다. 대청 넓이만 거의 삼백 평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음식상은 대청 한가운데 차려졌다.

음식은 원탁에 차려져 있다. 거지 스무 명이 달라붙어도 다 먹지 못할 만큼 많은 음식이 놓여 있다.

하지만 대청이 워낙 크고, 음식상이 조그맣게 보인다. 또 한가운데 차려져 있어서 매우 이상한 기분이 든다. 편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의자는 다섯 개뿐이다.

다른 손님은 없다. 방주 외에 동석하는 사람도 없다.

혈천방주가 말했다.

“음식을 일부러 한가운데 마련했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어떤 말이든 비밀이 보장되지.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아. 누군가가 염탐하고자 하면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 기척을 놓칠 사람들이 아니지 않나. 자, 앉지.”

혈천방주가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당홍은 앉지 않았다. 누가 말릴 틈도 주지 않고 먼저 음식상으로 가서 음식들을 살펴봤다. 물과 술 그리고 차는 직접 잔에 따라서 음용까지 했다.

“됐어요. 독 같은 건 없어요.”

등여산이 말하면서 의자에 앉았다.

음식에 독을 타는 것도 생각해봤다.

독술은 혈천방주가 시도할 수 있는 공격 방법의 하나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독으로는 호발귀를 해칠 수 없다.

호발귀는 독섬칠공을 수련했다. 그 사실은 이미 혈천방에도 전해져 있을 것이다.

“하하! 역시 책사는 사람 마음을 읽는군. 자, 우리 음식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사실 난 점심도 굶었어. 요즘은 어찌나 바쁜지 밥 먹을 시간도 없어요.”

혈천방주가 손을 뻗어 닭을 잡았다.

저녁 식사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음식에는 독이 없었다. 술과 물에도 독을 타지 않았다. 공기도 깨끗했다.

주변에 암살자도 없다.

누군가가 숨어 있다면 당장 눈치챘을 것인데, 어떤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기습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남은 건 기관(機關)이다. 하지만 기관은 눈이 없어서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기관을 작동시키면 같이 앉아서 식사하는 혈천방주도 타격 대상이 된다.

이것도 등여산이 생각했던 것인데, 사용할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호발귀가 말했다.

“사부님을 봬야겠는데.”

“하하하! 성격 참 급하네. 이제 막 닭 다리 하나 뜯었는데.”

“솔직히 음식 먹자고 온 건 아니니까.”

“사부만 주면 되나?”

“귀무살까지. 누구를 찾는지는 알 거고.”

“요구가 많군.”

“후후! 내가 뭘 요구할지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 초청할 때는 요구사항을 들어줄 생각이었을 테고.”

혈천방주가 손을 들어서 술병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 쪼르륵 따르며 말했다.

“그러면 자네도 요구만 할 게 아니라 뭘 내놓아야지. 설마 대가 없이 무조건 달라고만 할 생각은 아니었겠지? 그건 우리 혈천방을 너무 얕보는 것이라서 동의할 수 없어.”

팟! 파팟!

호발귀와 혈천방주의 눈길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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