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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75화 (175/500)

第三十五章 가도(呵道) (5)

스읏!

해자수가 신형을 드러냈다. 그러자 촌각도 안 되어서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거참 이런 놈들이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하!”

쏟아져 나온 무인들이 굼벵이보다도 느렸다.

모두 사흘 동안 피죽 한 그릇 못 얻어먹은 사람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제대로 움직이면 단번에 서너 명은 꼬꾸라트릴 자신이 있다.

“그것참 신통방통하네.”

해자수가 자신의 손발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산길을 타고 오는 동안 몇 번이고 점검했지만, 신체 능력이 말도 안 되게 높아졌다.

해자수는 산을 원래 잘 탔다. 그래서 더 잘 타는 맛을 안다.

사람이 숨어 있는 것도 잘 파악한다. 그것도 원래 그가 가진 재능 중에 하나다.

생기격타를 받은 후, 슬쩍 흘겨보기만 해도 숨은 자들이 보인다.

혈천방도 앞에서 몸을 드러낼 때만 해도, 이들이 꽤 사나울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보니 모두 고양이 같다.

“나, 나. 해자수. 당신들 방주가 초빙해서 온 사람. 여기에서 안내받기로 했는데.”

해자수가 자신의 가슴을 탁탁 치며 말했다.

“기다려라!”

포위한 무인 중 사납게 생긴 자가 거칠게 말했다.

해자수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무인까지도 귀엽게 보였다. 그자 역시 주먹 한 대면 꼬꾸라질 것이다.

혈천방에서 중년 무인이 나왔다.

무인은 다부진 몸을 가졌다. 얼굴은 사각형이라서 딱딱해 보이는데, 눈과 입은 웃고 있다.

“해자수라고? 내가 접객당주다.”

중년 무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이봐. 나 손님. 접객당주라는 자가 손님한테 반말해서야 쓰나. 이래 봬도 방주 초청을 받고 온 사람인데. 조금 전에는 반말에 신경이 쓰여서 잘 듣지 못했어. 누구라고?”

접객당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해자수를 쳐다봤다.

해자수는 뱀처럼 차가워진 눈길을 담담히 받았다. 이상하게도 당주의 눈길이 매섭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해자수는 이미 당주의 무공을 가늠했다.

싸우면 쉽지 않은 상대일 것이 분명하지만, 자신이 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야말로 괄목상대다.

자신이 혈천방 접객당주와 손속을 나란히 할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혈천방 접객당주 수련성(水連城)입니다.”

“수씨? 참 희한한 성이네? 일단 우리 대빵을 만나야겠지? 가자고. 나도 혈마 접객당주야.”

해자수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접객당주는 호발귀 일행을 보고 눈빛을 번뜩였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상당히 놀랐습니다. 저희 경계망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두 손 모아 포권했다.

“귀검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안내도 귀무살이 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등여산이 말했다.

“저나 귀검이나 모두 방주님 수하 아니겠습니까? 심부름은 누구라도 갈 수 있죠.”

접객당주는 시종일관 공손했다.

‘이 자, 강자다!’

모두 눈빛을 반짝 빛냈다.

겉보기에는 딱 접객당주 직을 맡을 정도로 어중간하게 강한 무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숨은 비기가 있다. 이 자가 살검을 쓰면 막아내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해자수는 단숨에 베일 것이고…… 도천패와 자웅을 겨를 정도다.

숲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은 접객당주에게서 아주 강한 면모를 읽어냈다.

해자수는 아직도 그런 점을 읽지 못한 것 같다. 접객당주를 앞에 두고 강렬한 투지를 일으킨다. 싸워도 될만한 상대라도 판단한 듯하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접객당주가 먼저 앞장섰다.

순간, 숲 전체가 출렁거렸다.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이동했다.

해자수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호발귀 일행은 감시 대상이 되었다. 당장 소식이 전해졌고, 진령산맥 곳곳에 흩어져 있던 모든 부인이 은밀히 모여들었다.

전에는 이런 점들 읽어내지 못했다. 무인들이 숨어 있는 정도는 파악했지만, 전체적인 큰 그림까지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단번에 읽어낸다.

등여산이 옳았다. 안내를 받는 게 낫다. 만약 기습을 취했다면 이들 전부와 싸워야 한다.

“가서 보고 놀라지 말라고. 이것들 아예 산속에다가 아방궁을 꾸려놨어.”

“아방궁?”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정말 아방궁이야. 곧 나오니까 직접 봐.”

해자수가 히죽 웃었다.

일행은 순탄하게 안내되었다.

누구도 나서서 시비를 걸거나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마주치는 사람도 없었다. 주위에 적어도 수백 명 이상이 따라붙고 있는데, 어느 한 사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그만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드디어 혈천방이 한눈에 보였다.

“정말 대단하네!”

당홍이 감탄해서 말했다.

해자수가 미리 놀라지 말라고 말까지 했는데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진령산맥 한복판에 대 도읍을 고스란히 옮겨놨다. 더욱이 이곳은 세간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이렇게 깊은 산골짜기에 어떻게 이런 공사를 했을까?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모여서 살고 있는데, 밖에는 전혀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특히, 등여산이 받은 충격은 컸다.

천살단도 아직 혈천방 본방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이토록 큰 도읍을 형성하고 있는데,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아예 짐작조차도 못한다.

이곳에 침입하자고? 이런 곳에서 사부를 찾겠다고?

단언하는데 혈천방주가 사부를 내주지 않는다면 결코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때, 홀리가 호발귀를 보면서 말했다.

“호발귀, 나 부탁이 있어. 꼭 들어줬으면 해.”

“휴우!”

호발귀는 홀리가 부탁한다고 하는 데도 대답을 하지 않고 한숨만 내쉬었다.

“부탁이 있다니까!”

홀리가 소리를 질렀다.

“해.”

호발귀가 담담하게 말했다.

“넌 꼭 소리를 질러야 말을 듣니? 부탁을 말하기 전에 어떤 부탁이든 꼭 들어주겠다고 약속해.”

“그래. 약속해.”

호발귀가 이번에는 순순히 대답했다.

“우리가 부부라는 약속도 어긴 남자인데, 믿을 수 있을까? 책사, 네가 보증 서. 호발귀가 내 부탁 들어주기로 했거든. 안 들어주면 네게도 책임 있는 거야?”

모두 홀리를 쳐다봤다.

혈천방을 앞에 두고 홀리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호발귀는 뭔가 아는 듯한데, 아마도 혈마 약속을 지키라는 말은 아닐지.

“알았어. 어떤 부탁이든 내가 보증할게.”

등여산이 말했다.

홀리는 입가에 쓸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곧 빠르게 말했다.

“첫째 부탁, 내가 네 손을 잡을 때까지 죽지 마.”

“손을 잡을 때까지 죽지 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이해를 못하겠어서 그래.”

등여산이 물었다.

하지만 호발귀가 이미 대답했다.

“내 목숨이 조금 질겨서. 그 부탁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나를 겪어봐서 알겠지만, 난 주위 사람들을 상당히 괴롭히거든. 염라대왕도 날 싫어해. 죽을 일 없어.”

“약속?”

“약속.”

“둘째, 나 잊지 마. 우리 약속 아직 안 깨졌어. 나 아직 네 부인이야. 맞지?”

“이게 무슨 소리야?”

도천패가 급히 말했다.

홀리의 말에서 그녀가 떠날 것이라는 암시를 받았다. 그녀가 하는 말도 모두 마지막 말처럼 들리지 않나.

하지만 이번에도 모두의 궁금증을 뒤로하고 호발귀가 대답했다.

“맞아. 잊지 않아. 그 약속을 파기해야 내가 자유로운 몸이 되는데, 파기하러 와.”

“세 번째 부탁. 책사와 반드시 결혼해. 그리고 지켜줘.”

“홀리!”

등여산이 홀리를 불렀다.

“대답해.”

호발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세 가지 부탁 모두 들어준다고 했다? 책사, 네가 보증했어? 그러니 꼭 지켜. 나는 이만 질척거릴게. 안녕.”

홀리가 갑자기 손을 들어서 흔들었다.

“아!”

“엉?”

도천패, 당홍, 등여산, 해자수는 그제야 홀리가 걸어가는 방향 쪽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노인이다.

얼굴에서부터 오른팔까지 짙은 문신을 했다.

사물의 형체를 그려 넣은 것은 아니고, 어떤 상징적인 문양을 새긴 듯하다.

음문촌 촌장이다.

촌장이 뒷짐을 진 채로 홀리를 쳐다보고 있다.

호발귀는 촌장을 벌써 알아본 것 같다. 그래서 홀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즉시 알아들었다.

“아! 저기 계셨네. 난 언제나 오시나 했지. 저기…… 난 솔직히 아씨를 따르는 몸이라서.”

“홀리, 잘 봐주세요.”

등여산이 호발귀 대신 말했다.

“아씨는 왜 쓸데없이 심각한 소리를 해서는. 우리 또 만나게 될 거야. 촌장님하고 잠시 몇 마디만 나누면 될 것 같으니까 후딱 다녀올게.”

“아저씨가 음문촌에 연락한 거예요?”

“아씨가 해달라고하잖아. 원래 음문촌은 한 번 인연을 끊으면 영영 남인데, 뭔 일로 다시 찾는지. 돌아가봤자 좋은 꼴 못 보는데. 에구! 나 갈게.”

해자수가 급히 홀리 뒤를 쫓아갔다.

“먼 길을 오셨으니 오늘 하루는 푹 쉬십시오.”

접객당주가 네 사람을 화려한 객사로 안내했다.

해자수가 아방궁이라고 표현한 것이 절대 과장되지 않다. 무척 화려한 전각이다.

네 사람은 고대광실보다 더 화려한 객실로 안내되었다.

바닥에는 대리석이 깔렸고, 탁자는 옥으로 만들어졌으며, 의자에는 호랑이 가죽이 덮여 있다.

객실이라고는 하지만 방이 세 개나 된다. 한쪽에는 욕탕도 준비되어 있다. 언제든지 목욕할 수 있게 따뜻한 물이 받아져 있고, 욕탕 밑에서 불을 때기 때문에 물이 식지도 않는다.

“목욕부터 하세요.”

시녀 세 명이 사뿐사뿐 걸어왔다.

상당히 아름다운 여인들이다. 하지만 전신에 살이 환히 보이는 나삼을 입고 있다.

살결은 물론이고 속곳까지 환히 보인다.

“됐습니다. 시중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호발귀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시녀들에게는 그 음성이 아주 강렬하게 다가갔다. 그녀들의 생기가 퉁! 하고 울렸다.

이 사람, 건드리면 안 돼!

시녀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울림이 일어났다. 그리고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어색해졌다. 이대로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까지 치밀었다.

“그럼 저희는……”

시녀들이 총총히 사라졌다.

호발귀는 옷을 벗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시녀들 외에는 방해꾼이 없다. 감시하는 무인조차도 없다.

호발귀는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목욕을 즐겼다. 모순되게도 적진 한가운데서.

모두 깔끔한 모습이다.

목욕하고 새 옷을 갈아입으니 완전히 딴 사람들 같다.

“이것들, 우릴 완전히 풀어놓네. 마음대로 하라는 거잖아?”

도천패가 귀를 후비며 말했다.

목욕을 마치고 모두가 모였는데도 감시하는 자가 없다.

모두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척 정도는 쉽게 탐지한다. 지붕 위에 숨어 있어도 알아냈을 것이다. 대청 밑바닥에 숨어서 귀를 기울이기는 자가 있다면 당장 찾아낸다.

혈천방은 네 사람을 전혀 감시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까 축 늘어지더라고. 난 깜빡 졸았다니까.”

도천패가 말했다.

“혈천방은 시녀가 목욕 시중을 들어주는데, 누가 오지 않았어?”

당홍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물었다.

당홍은 혈천방에서 지낸 경험이 있다. 그래서 혈천방 상황을 잘 안다. 그녀가 살았던 혈천방은 이곳 진령산맥이 아니지만, 혈천방 습성을 환히 꿰뚫고 있다.

“아니? 안 왔는데? 그동안 뭐가 많이 바뀌었나 보지.”

도천패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무도 안 왔다고?”

“아무도 안 왔어. 정말이야.”

도천패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도천패가 워낙 강하게 말해서 정말로 아무도 오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등여산이 피식 웃으면서 호발귀에게 물었다.

“누가 왔었지?”

“세 명. 가라고 하니까 가던데?”

“봤어요, 언니?”

“저, 저, 저! 에휴!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이거야 원. 자기만 떳떳하면 된다 이거지. 생기인가 뭔가로 쓱 밀어내기만 하면 숨죽이고 나간다 이거지. 그런 거 못 쓰는 놈, 서러워서 살겠나.”

도천패가 당홍의 눈치를 보면서 급히 말했다.

혈천방은 아무 연락도 취해오지 않았다.

네 사람을 객사로 안내한 접객당주조차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대신 저녁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푸짐하게 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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