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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74화 (174/500)

第三十五章 가도(呵道) (4)

“왼쪽으로.”

호발귀가 말했다.

“왼쪽?”

해자수가 길 없는 숲을 쳐다봤다. 얼핏 봐도 수림이 빼곡해서 길을 뚫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쪽은 꽤 힘들어 보이는데? 길이 끊길지도 모르고. 산에서 길을 잃으면 고생한다니까?”

해자수는 길 없는 숲으로 들어가길 꺼렸다.

원래 길을 잘 아는 사람들이 낯선 길로 가는 것을 꺼린다. 그것도 멀쩡한 길이 있을 때는 더욱더 그렇다. 괜히 고생하는 것 같아서 싫어한다.

“갑시다.”

호발귀가 먼저 숲으로 들어섰다.

호발귀는 생기를 이용해서 생기를 탐지한다. 무인이 펼치는 감각보다 훨씬 먼 곳을 본다.

해자수가 가자는 길로 가면 감시자의 눈에 발각된다.

혈천방 사람인지, 천살단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좌우지간 산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자칫하면 먼젓번처럼 무공도 약한 무인들이 겁도 없이 혈마를 잡겠다고 덤비는 수가 있다. 그들은 두렵지 않지만, 그들 뒤에 있는 복면인이 신경이 쓰인다.

아예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이 훨씬 좋다.

“어휴! 이 자식들, 정말 좀 집구석에 가만히 좀 처박혀 있으면 안 되나?”

해자수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미 호발귀가 앞장섰으니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

해자수는 고생길이 훤한 왼쪽 산길로 길을 잡았다. 그리고 길 없는 능선을 헤쳐나갔다.

그날 이후, 호발귀는 아예 대놓고 벗들의 생기를 건드렸다.

허공을 격한 채 생기를 건드리는 방식이 아니다. 직접 다가와서 등 뒤 명문혈에 손을 대고 생기를 직접 타격한다.

허공을 격하고 생기를 건드리는 것과 직접 살을 맞대고 타격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건드리는 것만이 아니라 누르고, 문지를 수도 있다.

호발귀는 양해를 얻은 만큼 거침없이 행동했다. 또 강해져서 대신 싸워달라고 하니 거절할 수도 없다.

그래서 모두 편한 마음으로 생기격타를 받아들였다.

스읏!

명문혈에 손을 댔다.

시간이 흘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생기로 생기를 타격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진기를 주입하면 상대의 진기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 순간부터 명확하게 감지된다.

진기가 어떤 경맥을 통해서 어느 지점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것이 느껴진다.

생기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

호발귀가 명문혈에 손을 대고는 있지만 어떤 느낌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아무 일도 없다.

하지만 생기격타는 분명히 매우 큰 효과를 안겨준다.

생기격타가 끝난 후, 운공을 취해보면 진기가 매우 정순해진 것이 단번에 알게 된다.

진기 흐름이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흐른다.

개울물처럼 촐싹거리면서 흐르는 것이 아니다. 깊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진기에서 잡기가 싹 사라졌다.

몸속 진기를 다 빼내서 깨끗하게 거른 후에 다시 집어넣은 것 같다.

진기만 정순해진 것도 아니다. 경맥도 깨끗이 닦였다. 혈액순환도 정순해졌다. 근육에는 힘이 넘친다. 무인 신경은 잘 간 칼처럼 예민해진다.

한 번 연공을 하는데 백 일 연공한 효과가 일어난다. 삼일만 연공하면 일 년 연공과 버금간다. 그러니 생기격타보다 더 뛰어난 영약이 어디 있나.

실제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깨우치지 못했던 무공 초식들이 한순간에 깨우쳐졌다. 지금까지 깨우친 줄 알았던 초식들도 새롭게 재정비되었다. 이토록 좋은 무공은 지금까지는 왜 이런 식으로밖에 펼치지 못했나 하는 후회도 치밀었다.

그 정도로 무공이 성취되었다.

호발귀는 분명히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면 본인은 어떤가?

생기격타를 끝내면 호발귀는 죽은 듯이 침묵에 들어간다. 어떤 때는 정말 숨을 쉬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된다.

너무 걱정스러워서 코밑에 깃털을 갖다 대기 보기도 했다. 깃털이 움직이지 않았다. 숨조차 쉬지 않는다는 거다. 동굴에서처럼 완벽하게 죽는다.

사람이 어떻게 매일 죽을 수 있나.

지식(止息)을 연마하는 것도 아니고, 숨을 쉬지 않은 상테로 버티면 오장육부인들 편할까.

이런 일이 반복되면 호발귀는 반드시 쓰러진다.

하지만 내버려 두어도 쓰러진다. 무공만 펼치면 혈기가 치미는데 어떻게 하나. 호발귀가 여기에서 길을 찾고 있으니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호발귀는 아침이 되면 눈을 뜬다.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금방 멀쩡해지지는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도 한 시진 정도는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는다.

그래서 진기 타통을 해 준다.

진기 타통은 주로 등여산이 한다.

그녀는 태산금나의 후인이다. 타혈(打穴)이라면 그녀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

등여산은 양손을 동시에 움직여서 타혈한다. 일지공을 펼칠 때도 있고, 이력음유지를 펼칠 때도 있다.

타타타타탁! 타타타탁!

호발귀의 몸통에서 북소리가 울린다. 타혈이 작은 북처럼 잔잔한 진동을 일으킨다.

태산금나는 다른 사람이 한 시간 동안 타통할 것을 반 시진 만에 해낸다.

“수고했어.”

호발귀는 정신이 수습되면 등여산을 말린다.

“조금 더 남았어. 가만히 있어.”

등여산은 호발귀가 말린 후에도 거의 반 시진 이상을 더 타통했다.

아예 습관이다.

“우리 이번에는 심심한데 이쪽 길로 가볼까?”

해자수가 앞장서서 길 없는 숲으로 들어갔다.

호발귀는 이제 길을 인도하지 않았다. 생기로 숨어 있는 자들을 파악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은신자를 찾아냈다.

일행 중 내력이 가장 약한 해자수까지도 누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아낸다.

“이것들 몰래 가서 엉덩이를 차버릴까?”

“차버리면 우리가 이쪽 길로 간 게 들통나잖아. 그거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빙빙 도는데.”

“차버리고 다른 길로 가는 거지 뭐.”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거는 알게 돼.”

도천패와 당홍이 심심풀이로 농을 주고받았다.

이십 장 밖에 무인 한 명이 숨어 있다. 땅에 굴을 파고 들어가서 산길을 감시한다.

진령산맥과 가까운 곳이니 아마도 혈천방도일 것이다.

“이렇게 움직이면 정말로 우릴 못 찾을까? 저놈들이 워낙 눈이 넓게 깔려 있어서.”

도천패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혈천방과 천살단은 호발귀가 어디쯤 움직이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호발귀 일행은 일체 접촉자 없이 이동하는 중이다.

“우리처럼 세상에서 꼭꼭 숨은 사람도 없을 거야. 이 상태만 유지하면 아무도 못 찾아.”

당홍이 자신 있게 말했다.

호발귀와 홀리는 맨 뒤에서 묵묵히 따라왔다.

“토 미 토 가리 학 투루음.”

“토 미 토 가리 학 투루음.”

홀리가 노래를 부르고, 호발귀가 바로 뒤따라 불렀다.

홀리는 구혼음소를 삼 년에 걸쳐서 외웠다. 그것도 심하게 맞아가며 외웠다.

등여산은 한 달 만에 절반이나 외웠다.

확실히 등여산의 머리는 비상한 면이 있다. 습자지가 먹물을 빨아들이듯 쭉쭉 흡수한다.

그런데 한술 더 뜨는 사람이 나타났다.

호발귀는 등여산보다 한참 늦게 배웠는데, 어느새 삼분지 이를 외우고 있다.

그러니 진도가 맞지 않아서 등여산은 같이 배우지 못한다.

등여산은 따로 배우고, 호발귀는 길을 가는 도중 노래를 부르듯이 구혼음소를 외운다.

“이거 어디 문자지? 아무리 생각해도 뜻을 모르겠어.”

문득 호발귀가 물었다.

“이 세상 문자가 아닌 건 분명해.”

홀리가 농담하듯 말했다.

등여산은 조금 진지한 편이다.

“남만, 천축, 서장…… 거의 모든 나의 문자를 알고 있는데, 이런 문자는 없어. 구혼음소의 유래를 알면 좋겠는데. 아는 방법이 없을까?”

등여산이 홀리를 보며 물었다.

‘아버지!’

홀리는 음문촌 촌장을 떠올렸다.

아버지라면 구혼음소의 유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귀색무 제조비법을 알고 있으니, 다른 부분도 깊이 있게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구혼음소는 혈마를 노예로 만드는 주문이다. 하지만 그 말이 엉터리라는 것은 이미 알아냈다.

구혼음소는 혈마에게 아주 강한 타격을 준다.

생기가 쏙 빠져나가는 타격은 당장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일으킨다. 머릿속이 텅 비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 속에서 한 사람만 기억된다.

혈마후가 혈마의 부인이라서 추종하는 게 아니다.

혈마에게는 혈마후가 이 세상에 남은 오직 한 사람이다. 그리고 언제든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복종하는 것이다.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구혼음소를 만들었는지 속내를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혈마 무공과 마찬가지로 구혼음소도 비밀이 많다.

그런데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음문촌 촌장도 구혼음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토초는 혈마를 네 명 만들었다.

정사하지 않고 혈마가 버티는 시간이 두 달이라고 한다. 격렬한 정사를 벌인 후, 토초의 체력이 회복되는 기간은 보름이다. 그러니 네 명이 한계다.

이 말도 엉터리다.

혈마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기간이 두 달일 것이다. 정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혈마후가 되기 위해서 처음 한 번 행하는 정사는 사실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후에 벌이는 정사는 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혈마 눈에는 혈마후밖에 안 보인다.

호발귀 덕분에 구혼음소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등여산의 말에 홀리가 대답했다.

“기회가 닿으면 음문촌을 뒤져볼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야.”

호발귀는 두 달 만에 진령산맥에 도착했다.

드디어 혈천방이다. 몇 발자국만 더 떼어놓으면 모든 은원을 끝맺을 수 있다.

목적 하나, 사부를 구출한다.

목적 둘, 강하에서 죽은 와주와 동패와 왕소의 복수를 한다. 그들을 죽인 귀무살을 죽인다.

이 두 가지 목적만 이루면 미련 없이 손 털고 무림을 떠난다.

그때는 혈마 무공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구혼음소에 관해서 연구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할까? 안내를 받을까, 몰래 잠입할까? 귀검이 직접 안내하겠다고 했으니 함정은 없을 것 같은데.”

해자수가 말했다.

진령산맥에 들어서자마자 물 샐 틈 없는 경계망이 감지되었다.

열 발자국을 걸을 때마다 한 사람씩 부딪칠 만큼 혈천방 경계는 치밀했다.

“어떤 것도 가능해. 내가 혈천방 본방 위치를 알고 있잖아. 저놈들 눈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니고.”

해자수가 자신 있게 말했다.

“여기 월영류도 있다면서?”

홀리가 물었다.

“그까짓 것…… 나도 옛날 해자수가 아니라니까요. 지금은 이거 보이죠? 이거. 이게 천 리를 본단 말씀이야.”

해자수가 자신의 두 눈을 가리켰다.

등여산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안내를 받는 게 좋겠어. 잠입하면 함정은 피할 수 있지만, 사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아무리 찾는 걸 잘해도 숨기는 것에는 못 당해.”

“아닌데. 우리 투심문은 숨기는 것보다 찾는 걸 더 잘하는데.”

도천패가 불쑥 말했다.

당홍이 당장 눈짓으로 힐책했다.

병법은 등여산이다. 모든 행동지침은 등여산이 결정한다. 어느덧 호발귀 일행의 머리 역할은 등여산이 하고 있었다.

등여산이 계속 말했다.

“일단 사부가 본방에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고, 귀무살은 더더욱 없을 거야. 양쪽 모두 얻어내야 해. 혈천방주에게 압박은 통하지 않을 것 같고. 일단, 혈천방주가 파놓은 함정에 걸리더라도 안내를 받자는 게 내 생각이야.”

“그럼 뭐 안내받지 뭐. 안내받는 거나, 몰래 들어가서 뒤통수를 치는 거나 사실 똑같거든.”

“그게 똑같아?”

홀리가 눈살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럼요. 똑같죠. 칼 들이대고 사람 내놓으라 하는 거나, 좋게 가서 원하는 게 뭐냐 물어보고 우선 사람부터 내놓으라 하는 거나 뭐가 달라요. 사람부터 내놓으라 해서 말 안 들으면 어차피 치고 들어가지 얌전히 물러설 거예요?”

“결국은 싸운다는 거네?”

“아이고, 아씨도. 혈천방에 왔는데 싸우지 않고 일이 순순히 풀릴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내가 갔다 와?”

해자수가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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