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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73화 (173/500)

第三十五章 가도(呵道) (3)

밤이 깊었다.

모두 모닥불을 중심으로 둥글게 누워서 깊은 잠에 빠졌다.

무인의 잠은 참 신비롭다.

잠들어 있을 때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숙면한다. 옆에서 들쥐가 짹짹거려도 깨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살의만 띄면 곧바로 정신을 번쩍 차린다.

무인은 살기, 악기에 민감하다.

호발귀는 모두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조용히 생기를 지켜봤다.

드디어 모두 잠들었다.

호발귀는 슬그머니 일어나 앉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지금까지 지켜본 생기를 차분하게 다독여 주었다.

스읏! 츠읏!

손을 들어 올리자 역천금령공이 일어났다. 이령귀화도 따라서 일어났다. 두 진기 속에 생기가 머금어져 있다. 강한 진기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출렁거렸다.

호발귀는 진기를 발출하지 않았다. 대신, 이령귀화에 깃든 생기만 쏟아냈다.

철썩!

생기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바로 옆자리에서 잠들어 있는 등여산을 어루만지듯 살짝 후려쳤다.

생기가 너무 강하면 등여산이 깨어난다. 본인 스스로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약하게…… 깨어나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게 생기를 건드린다.

생기격타다.

이 세상에 생기격타라는 말은 없다. 진기격타라는 말도 이해하기 쉬운 말은 아니다.

출렁!

등여산의 생기가 물결처럼 출렁거렸다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호발귀는 안마하듯이 부드럽게 생기를 쓰다듬었다. 출렁거리면 물결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고, 잔잔하게 가라앉으면 다시 톡 건드렸다.

생기가 흔들리면 더 많은 파동을 일으킨다. 주변에서, 우주에서 더 강한 기운을 끌어온다.

등여산의 생기는 더 강해진다.

한눈에 봐도 활기찬 기운이 엿보인다. 몸과 진기는 더 강해진다. 운공조식을 취하면 영약을 복용한 것처럼 무척 빠른 진전을 보인다. 간혹, 사부가 제자의 성취를 위해서 진기 손실을 감수하고 진기 주입을 할 때가 있다.

직접 내력을 불어넣어서 진기 양성을 돕는다.

생기격타는 진기도인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불러온다.

호발귀는 등여산의 생기를 대략 일다경 동안 건드렸다. 적어도 열다섯 번에서 스무 번 정도 타격했다.

생기격타 한 번은 운공조식을 십 회 취한 것보다 더 좋은 효과를 불러온다.

일다경이 지나가 이번에는 홀리를 타격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부터 멀리 있는 사람까지, 도천패, 당홍, 해자수까지 모두 격타했다.

‘후우!’

호발귀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생기격타를 이끌었다.

이때쯤, 호발귀는 혈기의 급습을 받는다.

지금까지 정성스럽게 보살피던 사람들을 일장에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에 휘감긴다.

‘이건 뭐 정신병자도 아니고……’

호발귀는 피식 웃었다.

미친놈도 이렇게 감정변화가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느닷없이 불쑥불쑥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에 휘감기지도 않는다. 이건 살인 중독자보다도 심하다.

느닷없이 치민 살기는 금방 폭력을 불러온다. 잠시만 지체하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이어진다.

호발귀는 즉시 구혼음소를 읊었다.

‘타악 투 파 비투 쏘 추우 탄 치……’

호발귀는 곧 딱딱하게 굳었다.

육신이 점점 죽음으로 향한다.

어차피 혈기를 이기기 위해서 자진할 운명이라면, 자신이 베풀 수 있는 것을 아낌없이 쏟아낼 생각이다.

생기는 나쁘지 않다.

온전히 보전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힘을 준다. 호발귀처럼 생기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천벌을 내린다.

나쁜 것은 자신이 안고 간다. 이들은 좋은 것만 가지면 된다.

진령산맥에 도착할 즈음, 이들은 최소한 두 배는 강한 무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호발귀는 의식이 가물거렸다.

그래서 급히 몸을 눕혔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전에 깊은 잠에 취한 사람처럼 편히 눕는다.

이윽고, 정신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내가 요즘 눈이 아주 맑아졌어. 저 멀리 있는 것까지 확 보인다니까. 한 십 년은 더 젊어진 것 같아. 글쎄 온종일 걸어도 피곤하지 않다니까? 이렇게 산을 타는데도 몸이 가뿐해. 나 회춘하나? 새장가 갈까?”

해자수가 저녁을 먹으면서 무심히 말했다.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모든 시선이 일제히 호발귀에게 향했다.

호발귀는 잘 구운 토끼고기를 뜯어먹다가 멈칫거렸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호발귀는 고개를 들어서 일행을 쳐다봤다.

“문주, 내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인제 그만 말하지? 우리에게 무슨 짓 한 거야?”

도천패가 말했다.

“무슨 짓?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호발귀가 말을 이어갈 때, 홀리가 차갑게 말허리를 끊었다. 몹시 차갑고 낮은 어조다.

“호발귀, 한 번만 더 거짓말하면 나 떠난다.”

“……”

호발귀는 입을 꾹 다물었다.

홀리는 앙칼지게 성질을 낼 때보다 지금처럼 차분하게 말할 때가 더 무섭다.

“조금 도와준 것뿐이야. 도움이 되라고. 이거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그래서 날마다 꼴이 그 모양이야?”

홀리가 톡 쏘아붙였다.

“아니. 그거 하고는 상관없어.”

호발귀는 모두에게 숨겼던 일을 말해주었다.

구혼음소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하게 말했다.

“어쩌면 혈마가 되기 전에 자진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아흑!”

호발귀가 말을 끝내자마자 홀리가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었다. 호발귀의 말을 차마 들을 수 없었다.

등여산도 고개를 돌려버렸다.

두 여인이 울고 있다.

“휴우!”

도천패는 땅이 꺼지라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홍은 토끼고기만 만지작거렸다.

모두 답답했다. 밤새도록 연구한 것이 자신하는 방법이라니. 죽는 방법을 연구했다니.

“내가 죽여준다고 했잖아!”

홀리가 펑펑 울다가 고개를 번적 쳐들며 쏘아붙였다.

“귀색혼령대법은 너한테 아주 큰 상처가 돼. 난 귀색혼령대법을 할 수 없어.”

“이 바보야! 너 아직도 몰라? 너 죽으면 나도 죽어! 나는 산골 촌 여자라서 한 남자밖에 안 봐!”

홀리가 빽 소리쳤다.

등여산이 같이 친구처럼 지내자고 한 말이 실수였나? 홀리가 점점 자신의 감정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좋아한다는 표현을 넘어서 훨씬 깊이 들어왔다.

등여산도 그런 면에서는 지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저 웃으면서 지나갔을 만한 일도 이제는 직접 말로 표현한다. 아마도 첫 입맞춤을 한 날부터일 것이다. 확실하게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게.

호발귀는 묵묵히 고기만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가벼운 농담조가 아니다. 호발귀도 진중하게, 마음속 말을 꺼냈다.

“혈마 무공, 이건 누가 왜 만들어냈을까? 도대체 왜 이따위 무공을 만들어낸 거야? 혈마, 이 때려죽일 자식! 이따위 무공을 만들었으면 저나 쓸 것이지, 혈마록은 왜 남겨?”

호발귀가 너무 진중하게 말해서 누구도 끼어들지 못했다.

“그렇게 혈마만 원망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생각이 확 바뀌더라고. 난 정말 혈마의 저주만 물려받았을까? 생기를 이용하는 게 정말 그렇게 나쁜 거야?”

호발귀가 고개를 쳐들고 모두를 쳐다보며 말했다.

“난 혈마 무공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실제로 이 무공을 이용해서 여기 있는 모두에게 강한 힘을 주고 있어. 적어도 무공 성취만큼은 정상적인 성장이야. 여기에 방법이 있어. 생기를 정상적으로 이용할 방법만 찾으면 이것처럼 강한 무공이 없어. 또 이것처럼 많은 이득을 주는 무공도 없어. 그러니까 인제 나 좀 믿어. 내가 방법을 꼭 찾을 테니까.”

호발귀가 또박또박, 한 자 한 자 자신 있게 말했다.

“알았어. 믿을게. 우리가 해 줄 일은 없어?”

등여산이 물었다.

“있지. 지금까지처럼 내가 해주는 거 거부하지 말고 받아.”

“그건 안 돼!”

홀리가 당장 거부했다.

호발귀는 홀리를 보면서 말했다.

“혈천방에 가면 힘들게 싸워야 하는데, 난 많이 싸울수록 힘들어지잖아. 그러니 많이 강해져서 내 앞을 막아줘야지. 당장 귀검이 나타나면 누가 싸울 거야?”

“그래도 안 돼! 난 안 받아!”

“약속했잖아. 내가 꼭 방법을 찾는다고. 이 약속, 내 모든 것을 걸고 지킬게.”

홀리가 호발귀를 빤히 쳐다봤다.

“나쁜 놈.”

“훗! 고마워.”

호발귀가 활짝 웃었다.

역천금령공을 어느 정도 사용하면 어떻게 빠져나올지 대충 윤곽을 잡았다.

물론, 생기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잠시도 정체해 있지 않다. 물처럼 출렁거리면서 항상 움직인다.

진기처럼 십이경맥에 틀어박혀 있지도 않다.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몸 전체를 관통한다.

호발귀가 변하면 생기도 변한다.

무엇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선까지 생기를 움직여도 탈이 나지 않는지 약간 느낌이 왔다.

호발귀는 느낌을 쫓아서 역천금령공을 펼쳤다.

진기는 일으키되, 이령귀화는 쳐내지 않는다. 운집만 시킨다. 생기를 움직이는 도구로 혈마 무공을 사용한다. 그리고 정작 생기만 흘려낸다.

이 방법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도 걱정이 산더미 같은데, 일부러 말해서 하지 않아도 될 걱정거리까지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미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다.

호발귀의 모습이 날이 갈수록 초췌해졌다. 건강하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피부가 푸석해지면서 염증이 생겼다. 머리카락도 한 움큼씩 빠진다. 눈가에는 검은 그늘이 덮였다. 손톱도 쩍쩍 갈라져서 부러지기까지 한다.

처음에는 뭐라고 쏘아붙이던 홀리도 이제는 포기해버렸다.

호발귀가 구혼음소 속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는 듯하니 어떻게 말리겠나. 혈마가 되지 않으면서 혈마 무공을 정상적으로 사용하겠다는데 말릴 수 없지 않나.

“여기서 준비하자.”

당홍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깊은 산치고는 매우 평평한 곳이다. 잠시 앉아서 쉬기에는 더없이 적합하다.

“이제 겨우 오시초(午時初: 11시)밖에 안 됐는데? 조금 더 가지?”

호발귀가 말했다.

“잠자코 앉아 있기나 해. 여기 너 좋아하는 사람, 한 명도 없어. 아주 큰 골칫덩이라니까.”

“풋!”

호발귀는 피식 웃었다.

당홍이 왜 쉬자고 하는지 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다. 간단히 육포(肉脯) 몇 조각 씹어먹으면 되는데, 굳이 번거롭게 쌀을 씻고 불을 피워서 따뜻한 밥을 해 준다.

구혼음소를 말릴 수는 없지만, 날이 갈수록 몸이 안 좋아지니 먹는 거라도 잘 먹이겠다고 심산이다.

그 마음을 왜 모르겠나. 그래서 기꺼이 받아들였다.

“사람 입은 다섯이고, 고기라고는 이거 하난데…… 뭐라도 더 잡아 올까?”

도천패가 허리에 차고 있던 꿩을 내놨다.

도천패는 길을 가다가도 짐승이 나타나면 곧바로 쫓아가서 잡아버린다. 그리고 식사 때가 될 때까지 가지고 다닌다. 어떤 날은 사슴 고기를 짊어지고 두 시진 동안 걸은 적도 있다.

호발귀에게 고기 한 점이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됐어. 그거면. 우린 육포 불려서 끓여 먹으면 되고, 그건 미운 사람이나 줘.”

“그럴까? 그럼 통째로 구워버려야겠다.”

도천패가 꿩을 가지고 개울로 갔다.

호발귀는 도천패를 말리지 않았다. 뭐라도 한 마디 하면 당장 두 마디를 얻어듣는다.

참 곤란한 사람들이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인데 참으로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안긴다.

이제 이들은 가족이 되어 버렸다.

“자, 할까?”

“좋아.”

등여산과 홀리가 목검을 들고 비무를 하기 시작했다.

홀리의 검은 매우 거칠다. 난폭하다. 빠르고 경쾌하지만, 파괴력이 강하다. 반면에 설화팔극검은 질서 있게 잘 짜여 있다. 초식의 결을 따라야지만 위력이 표출된다.

야생에서 싸움으로 살아온 맹수와 체계적으로 싸움 기술을 배운 맹수의 비무다.

쒜에엑! 쒜에에엑!

두 사람이 휘두르는 목검 소리가 우렛소리처럼 우렁차게 들렸다.

생기격타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등여산의 무공이 복면인과 싸울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족히 삼사 년 동안 폐관 수련을 한 것 같은 효과가 나왔다.

예전의 홀리라면 크게 낭패했을 것이다.

하지만 홀리도 강해졌다. 그녀도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호발귀가 혈마록에서 얻은 정통 혈천도법을 알려주었는데, 아주 정확하게 구사한다. 비록 역천금령공으로 펼치는 혈천도법은 아니지만, 변형된 혈천도법보다도 훨씬 강하다.

호발귀는 큰 대자로 쭉 누웠다.

팔자가 좋아서 늘어지는 것이 아니다. 온몸을 활짝 열고 지기(地氣)를 받아들인다. 땅의 기운을 생기로 변화시켜서 강력한 힘을 얻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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