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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72화 (172/500)

第三十五章 가도(呵道) (2)

탁!

어느 순간, 꼬리가 끊어졌다.

무엇이 끊어지는지 모르겠는데, 팽팽하게 당겨졌던 줄이 뚝 끊어졌다.

아득히 먼 곳에서 줄 끊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후우우우웁!”

호발귀는 큰 숨을 들이켰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토록 크고 깊은숨을 들이켜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숨이 돌아오면서 물밀 듯이 밀려오는 생기도 느껴졌다.

생기는 코를 동해서 들어온다. 들이마시는 숨과 함께 푸른 기운이 넘실대면서 흘러온다.

생기는 머리 꼭대기 천령개(天靈蓋)를 뚫고 들어온다.

머리에서 밀려온 생기가 순식간에 발끝까지 흐른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피부를 통해서도 들어온다.

피부로 들어온 생기는 안마하듯이 경혈을 두들긴다. 몸 안에 있는 장기를 다독인다.

삶의 기운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커억! 컥!”

호발귀는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생기가 사라졌던 동안 몸은 혼탁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흐르지 않고 정체된 기운이 있다.

생기가 혼탁한 기운을 밀어냈다.

거센 기침은 혼탁한 기운이 쏟아져 나가는 현상이다.

맑고 청량한 기온이 전신에 휘몰아쳤다. 근육마다, 신경마다 활력이 가득 찼다.

생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면 되살아날 수 없다.

죽은 자는 죽은 것일 뿐, 죽었다가 살아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죽은 듯이 보였던 자가 살아오기는 하는데, 이는 매우 당연한 현상이다.

처음부터 죽지 않았는데 살아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이치를 알면 놀랄 일도 없는데, 이치를 모르니 모든 게 놀랍고 신비롭게만 보인다.

생기가 모두 밀려 나간 게 아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조금만 남아서 전신 구석구석을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커억!”

거친 숨이 연신 토했다.

살았어! 살아났어! 살았어!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누군가 간절히 울부짖는다.

누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계속 살았다는 소리만 반복해서 중얼거린다.

탁! 타타탁! 타타타탁!

소리를 지른 사람이 곧 호발귀의 전신 경맥을 타통하기 시작했다.

독맥에서 시작해 임맥으로 타통한다. 양유맥(陽維脈)에서 음유맥(陰維脈)까지 고루 두들긴다.

뻑적지근하던 몸이 시원하게 풀렸다.

생기를 잃었던 동안 육신은 정체 상태였다. 죽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근육이 경직되고, 신경도 힘을 잃었다. 몸에 이상이 생기기 직전이다.

전신을 시원하게 뚫어주니 원기를 회복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타타탁! 타타탁! 타타타탁!

혈을 치는 손길이 빨라졌다.

타통하는 사람도 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한다. 딱딱하게 굳었던 혈이 풀리고 있으니 모를 리 없다. 자연히 혈을 치는 속도도 빨라졌다.

온몸에 푸른 기운이 가득 들어왔다.

호발귀는 고개를 들어서 홀리를 쳐다봤다.

홀리의 얼굴이 눈물범벅이다. 콧물 질질 흘리는 어린아이처럼 눈물 자국이 선연하다.

“언제 왔어?”

호발귀가 담담하게 물었다.

“살았어! 살았어. 나쁜 놈! 죽은 줄 알았잖아! 나쁜 놈!”

홀리가 울음 섞인 음성으로 마구 쏘아댔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동굴 밖에서 붉디붉은 햇살이 동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죽은 줄 알았잖아! 이 바보야! 죽은 줄 알았어. 죽은 줄 알았다고!”

홀리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살았어. 나 괜찮아.”

순간, 홀리가 호발귀 품 안으로 와락 뛰어들었다.

호발귀는 엉거주춤 그녀를 안았다. 와락 껴안지 못하고 손을 어디에다 둘지 망설이다가 살며시 등을 안았다. 그리고 등을 톡톡 다독여 주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어젯밤부터. 정말 살아난 거지? 진짜지?”

홀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호발귀의 심장에 귀를 대고 박동 소리를 들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제대로 들렸다.

“정말 살았네. 살았어.”

그녀는 호발귀의 볼을 꼬집어 봤다.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살펴보기도 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호발귀는 홀리가 하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일절 말리지 않았다.

홀리의 마음을 안다. 지금 홀리가 어떤 심정인지 안다.

한참 동안 호발귀를 살펴보던 홀리가 품에 꼭 안겼다. 그리고는 잠잠해졌다.

아니다. 잠잠하지 않다. 홀리는 말 없이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울기 시작했다. 겉으로 표시도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끅끅거리면서 오열했다.

호발귀가 살아난 게 그녀에게는 기적이었다.

호발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에게 말했다.

혈기가 일어나자 역천금령공을 일부러 운용했으며, 구혼음소를 상기한 것까지 모두 말했다.

모두 같이 생명을 나눈 사이다.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도움도 받아야 한다.

등여산이 홀리를 보며 물었다.

“구혼음소가 그냥 주문만은 아닌 것 같네. 혹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유래 같은 거 알아?”

“몰라. 이백 년 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져 왔다는 것밖에는.”

홀리가 고개를 저었다.

홀리는 구혼음소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 뜻도 모른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음률, 신호 체계다. 하지만 지금 조금 더 알았다. 혈마 무공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까지.

“그런데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돼. 구혼음소의 뜻도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르고, 그냥 도해만 떠올렸는데, 그게 어떻게 작동하지? 그림만 생각했는데 운기가 됐다는 말이잖아”

“구혼음소. 나도 배워야겠어.”

호발귀가 말했다.

“알았어. 가르쳐줄게.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아. 잘 외우는 게 중요하지. 쟤도 헤매고 있잖아.”

홀리가 등여산을 가리켰다.

“호발귀는 나와 달라. 난 구혼음소, 외우지 못했지만, 호발귀는 외웠잖아. 나보다 똑똑해.”

“어? 야!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난 뭐가 되냐!”

홀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진령산맥으로 가는 발걸음이 늦어졌다.

“시작한다. 타악 투 파 비투 쏘 추우. 해봐.”

“타악 투 파 비투 쏘 추우.”

홀리가 노래를 부르듯이 구혼음소를 읊조렸다.

호발귀와 등여산이 바로 따라서 노래를 불렀다. 등여산은 능숙하게 불렀고, 호발귀는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어멋! 너 노래 못하지?”

홀리가 호발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노래하고 무슨 상관이야. 다음 말해봐.”

“다음은 무슨.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 타악 투 파. 해봐.”

“타악 투 파.”

이번에는 호발귀만 따라서 했다.

등여산은 이미 통과한 부분이다. 그녀는 벌써 삼분지 일 정도를 외우고 있다.

“아니 그게 아니고 투에서 길게. 그리고 좀 강하게. 해봐.”

홀리가 말했다.

“타악 투 파.”

“어휴! 어떡하냐? 외우는 건 잘하는데 음률은 영 엉망이네. 감각이 전혀 없어.”

홀리가 등여산을 보며 말했다.

“그런 것 같네. 호호호! 호발귀도 못 하는 게 있었네? 말 나온 김에 노래 한 번 불러봐. 노래 한 번도 못 들어봤잖아.”

등여산이 호발귀를 다그쳤다.

“노래는 무슨!”

호발귀가 질색했다.

“이거 정말 웃긴다. 구혼음소는 ‘이제부터 내가 당신 여자다. 당신 부인이다.’ 하는 주문인데, 이걸 네가 배우고 있으니까. 정말 느낌이 묘하네.”

홀리가 말했다.

호발귀는 운공에 몰입했다.

사실, 그가 하는 운공은 무인이 하는 운공과는 상당히 다르다.

역천금령공을 운기 할 때만 해도 다르지 않았지만, 얼마 전부터는 많이 달라졌다.

생기, 푸른 빛을 지켜본다.

호발귀가 하는 일이라는 것은 생기를 지켜보는 일일 뿐, 그것을 키우거나 강하게 만들 수는 없다.

생기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총체다.

식사, 들이쉬는 숨, 마시는 물, 감정의 고저, 성격 변화 등등 살아있는 것과 관계된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어울려서 생기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인위적으로 다듬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건강하게 잘 사는 게 중요하다.

다만, 지켜볼 줄 아는 자는 운기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도 생기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꿈도 꾸지 못 하는 일이지만, 호발귀는 할 수 있다.

최선의 운기법.

몸 안에서 생기를 움직이면 혈마 무공이 된다. 몸 밖으로 생기를 쏟아내면 생기 방출이 된다.

생기를 가볍게 움직였다. 동시에 홀리에게서 배운 구혼음소를 속으로 읉었다.

‘타악 투 파 비투 쏘 추우 탄 치 미탕 호 아 피우……’

노래를 부르듯이 잔잔하게 구혼음소를 불렀다. 음률에 신경 쓰면서 진동을 일으켰다.

‘온다!’

호발귀는 역천금령공이 무너지는 것을 봤다.

혈마 무공이 깨진다.

‘이게 생기가 사라지는 현상!’

호발귀는 홀리를 통해서 자신이 밤새도록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적어도 일곱 시진 이상, 한나절 이상 죽은 상태로 지냈다.

홀리가 진맥한 것이니 틀림없다.

사람이 일곱 시진 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면 살아날 수 없다. 마지막 생기 한 줄기가 몸에 있었기 때문에 살아났다. 그 한 줄기마저 없었다면 죽었다.

삶과 죽음은 실로 종이 한 장 차이다.

역천금령공이 무너지는 순간, 호발귀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평소. 죽는 것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죽음이 실제로 눈에 보이자 모든 행동이 당장 멈춰졌다.

일단 일어나기 시작한 구혼음소 반응은 멈추지 못한다. 이 상태는 끝까지 가야 한다. 중간에서 멈추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몸으로 버텨야 한다.

대신 머릿속을 깨끗하게 비웠다.

구혼음소를 생각하지 않는다. 음률도 읊지 않고, 도해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자진할 생각은 없다.

구혼음소와 역천금령공의 관계를 알아보고 싶었는데, 생각한 대로 반응해 주니 고맙기만 하다.

드디어 자진하는 방법을 찾았다.

“너 또!”

홀리가 허리에 손을 얹고 살쾡이 눈으로 쏘아보았다.

“뭘? 왜 생사람 잡고 그래? 내가 뭘 했다고.”

호발귀는 짐짓 억울한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순간,

“큭큭큭!”

“호호호! 호호!”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거 뭐냐. 그 얼굴 좀 보고. 동경 없나? 물에라도 얼굴 좀 비춰보고 거짓말을 하든가.”

해자수가 말했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어휴!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는데 몰라? 방금 죽었다 깨어난 사람 같구먼. 그냥 사실대로 말이나 하던가. 거짓말도 잘 못 하면서 뭘 안 했다고 뻐팅겨?”

호발귀는 난감한 눈으로 홀리를 쳐다봤다.

“구혼음소, 몸에다 펼치지 말라고 했지! 앞으로 구혼음소, 배울 생각 하지 마! 안 가르쳐! 거짓말쟁이 같으니. 송충이! 말미잘! 지렁이! 구더기! 나쁜 놈!”

홀리가 성질을 부리더니 찬바람 나게 지나쳐갔다.

“하! 배부르겠다. 욕 뒤지게 많이 얻어먹네. 킥킥!”

해자수가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그렇게 표시가 나나?”

호발귀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구혼음소는 생기를 밀어낸다. 당연히 육신이 피폐해진다. 면역력도 약해져서 병이 쉽게 찾아온다. 몰골로 말이 아니다. 아픈 환자처럼 보이는 게 당연하다.

대략 짐작은 했는데,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나빠질 줄은 몰랐다.

그래도 구혼음소를 연구해야 한다.

동굴에서처럼 약간의 생기만 남을 수 있어도 거침없이 사용하겠다. 하지만 동굴에서의 일이 운이 좋아서 약간 남아있던 것이라면 시행하는 즉시 죽는다.

호발귀는 등여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홀리, 화가 많이 난 것 같지?”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지! 왜 자꾸 하는 거야! 사람이 어떻게 한시도 마음 편하게 안 해줘!”

등여산이 소리를 빽 질렀다.

호발귀는 멍청해져서 등여산을 쳐다봤다. 등여산이 이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이다.

“사람이 왜 항상 걱정만 끼치게 하는 거야! 좀 괜찮을 때는 마음 좀 편하게 내버려 두면 안 돼?”

“아니, 그게 저, 저기. 그거……”

“뭐!”

“……”

호발귀는 거친 응대에 말을 하지 못하고 얼굴만 쳐다봤다.

등여산이 고개를 홱 돌려 당홍을 보면서 말했다.

“이 사람만. 오늘 저녁밥 주지 마세요. 이런 사람은 배가 쫄쫄 굶어봐야 정신 차려요.”

등여산은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표독스러운 눈으로 호발귀를 쏘아본 후 횅하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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