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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71화 (171/500)

第三十五章 가도(呵道) (1)

호발귀는 동굴을 비교적 쉽게 찾아낸다.

동굴은 주로 짐승이 많이 이용한다. 그리고 짐승도 살아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기를 발산한다. 그 흔적을 쫓으면 동굴 같은 곳이 쉽게 발견된다.

물론 짐승의 흔적을 쫓아갔으니 짐승이 먼저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스읏!

호발귀는 동굴을 찾아서 들어갔다.

아주 작은 동굴이다. 그래도 두세 명 정도는 충분히 발 뻗고 누울 수 있을 만한 공간이 나온다.

“음!”

호발귀는 신음을 흘리면서 앉았다.

먼저 동굴부터 살폈다.

‘암벽은 아냐. 그러면 부술 수 있어.’

동굴을 부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혈기를 이기지 못해서 혈마가 된다면 바로 동굴을 무너트린다. 그것이 혈마가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

호발귀가 애써서 동굴을 찾은 이유다.

물론 동굴 안에 갇힌다고 해도 혈마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동굴을 뚫고 나갈까? 아마도 혈마의 파괴력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준비해놔야 한다. 이것이 최선이다.

쿡! 쿵!

혈기가 심장을 건드린다.

이유 없이 화가 끓어오르면서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무인들을 괜히 살려주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갈까? 아직 흩어지지 않았을 텐데.

“크으으윽!”

호발귀는 신음을 흘렸다.

혈기가 치솟고 있다. 오염된 생기가 전신을 돌아다니면서 신경을 긁는다.

예전 같으면 검을 마구 휘둘렀다.

사방을 쏘다니면서 분노를 폭출시켰다.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해소될 때까지 나무도 자르고, 바위도 부쉈다. 운이 없어서 사람을 만나면 거침없이 죽일 것이다.

‘시간이 없어. 이대로 버티면 당한다. 혈기를 이겨내는 방법은 전혀 없어.’

혈기가 치솟는 것은 의지로 다스릴 수 없다.

술을 마시면 취하는 것처럼, 독약을 먹으면 내장이 녹는 것처럼, 육체가 일으키는 현상이다.

츠으으으읏!

호발귀는 역천금령공을 일으켰다.

혈기가 치미는데, 혈마 무공을 사용한다? 오히려 혈마가 빨리 되겠다는 소리다. 오염된 생기를 전신에 더 빨리 유통한 결과는 감당하지 못한다.

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반대로 혈마 무공을 적극적으로 끌어냈다.

역천금령공을 이령귀화에 담았다. 아주 강한 힘이 두 손에 운집되었다.

“으으으으!”

호발귀는 자신이 신음을 흘리고 있는 줄도 몰랐다.

- 죽여. 괜찮아. 죽여. 지금 가면 죽일 놈들이 있어. 뭐가 겁나서 참는 거야? 참지 말고 터트려. 그러면 멀쩡해져. 곧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니까.

마음속에 자리한 혈마가 속삭였다.

‘속삭임까지!’

이런 속삭임이 들린 이후,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문득 깨어보면 사방천지가 초토화되어 있다. 혹은 등여산이 보였고, 혹은 홀리가 보였다.

혈마에게 침식당하기 일보 직전이다.

그 순간, 호발귀는 구혼음소를 떠올렸다.

읽지도 못하고, 뜻도 알지 못하는 도형들이 머릿속을 마구 휘젓고 다녔다.

호발귀는 구혼음소를 해독하지 못했다.

등여산도 구혼음소에 적힌 도형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글자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구혼음소를 아는 사람은 모두 짬이 날 때마다 연구를 거듭했다. 하지만 한 글자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읽는 법은 안다. 홀리가 음률로 전해준다.

호발귀는 장진 스님이 나타나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님도 나타나지 않았다

혈마록 때처럼 스님이 나타나서 해독해 주면 좋으련만.

호발귀는 구혼음소 도형을 떠올렸다.

내기로 구혼음소를 외울 때, 이상한 경험을 했다.

구혼음소가 혈마록과 섞였다. 혈마 무공의 특성을 없애고, 힘까지 소진했다.

배추, 무, 오이 등등 많은 채소를 솥에 넣고 푹 끓였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멀건 죽만 있던 셈이다. 각종 채소가 형태를 잃었다. 그리고 새롭게 탄생했다.

구혼음소가 그런 작용을 했다.

구혼음소를 외울 때 딱 한 번 경험한 일이라서 확실히 그렇다고 단정하지는 못한다.

혼합의 끝이 무엇이며, 어떻게 변할지는 모른다.

그래도 어차피 혈마에게 침식을 당할 바에는, 그 방법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역천금령공을 이령귀화에 실었다. 엄청난 힘이 손을 통해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 순간, 구혼음소를 일으켰다. 그저 이상한 도형을 생각만 했다.

스으으읏!

역천금령공이 물처럼 흐물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섞여서 뒤죽박죽된다.

혈기, 진기, 생기…… 모든 것이 뒤섞인다.

구혼음소가 어떤 작용으로 기운을 섞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몸 안에 있는 모든 가운을 뒤섞는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다. 구혼음소는 혈마후를 만들 때 사용한다. 그러니 혈마가 될지, 정신 잃은 상태로 누군가의 노예로 전락할지 알지 못한다.

‘구혼음소가 역천금령공을 녹이고 있어. 이다음은 어떻게 되나?’

이백 년 전, 혈마도 이 부분은 몰랐을 것이다.

혼탁한 생기가 전신으로 퍼졌다. 순간,

“컥!”

호발귀는 격하게 기침을 토해냈다.

갑자기 현기증이 치밀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머리가 땅으로 똑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뱃속도 좋지 않다. 마구 니글거리면서 구토가 일어났다.

‘잘못됐다!’

뭐가 잘못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현기증은 더 심해지고, 구토는 이미 토악질로 변해서 끅끅거린다는 것만 안다.

‘안 돼!’

호발귀는 손을 들어서 검을 떨쳐내려고 했다.

혈마가 되느니 동굴을 무너트린다. 이대로 폐쇄한다.

하지만 검조차 날리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검을 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몸에서 힘이란 힘은 모조리 빠져나갔다.

‘안 돼……’

호발귀는 정신을 차리려고 이를 꽉 깨물었다. 어떻게든 일어서보려고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이미 머릿속에서 시위가 당겨졌다. 머리가 핑 돌았다.

호발귀는 정신을 잃었다. 무엇이 어떻게 된 건지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툭 떨궜다.

“이럴 줄 알았어!”

홀리가 호발귀 앞에 내려섰다.

홀리가 누구인데 호발귀를 혼자 보내겠나.

무엇인가 알아볼 게 있다는 말을 듣고도 혼자 보낸다면 홀리가 아니다.

홀리는 호발귀를 은밀히 뒤따랐다.

호발귀의 감각이 상상 이상이기 때문에 가까이 따라붙지는 않았다. 간신히 점으로 보일 만큼 거리를 멀리 떼어놓고 행동을 예의 주시했다.

호발귀가 아무런 일이 없으면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다.

호발귀가 등여산과 함께 움직여도 따라가지 않는다.

하지만 등여산과 함께 있다가 혼자만 움직인다면 분명히 무슨 일인가 생긴 것이다.

호발귀가 혼자 움직인다.

“무슨 일이 생겼어!”

홀리는 즉각 뒤쫓았다.

오면서 등여산에게 안심하라고 한마디 했는데, 등여산이 바로 멈췄다.

귀색혼령대법을 펼치려면 일단 정사를 벌여야 한다.

반드시 귀색혼령대법을 펼친다고는 볼 수 없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따라오지 않는다.

홀리는 등여산이 즉각 멈추자,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정말 끝까지 바보 같은 여자다.

그리고…… 호발귀를 쫓아온 끝이 이것이다.

홀리는 호발귀 앞에 서자마자 즉각 맥문부터 움켜잡았다.

맥이 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맥이 너무 느려서 잡히지 않는 것인가? 빈맥(頻脈)인가? 맥이 너무 안으로 숨어서 감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후우!”

홀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맥을 짚었다. 역시 맥이 잡히지 않는다.

이번에는 손을 들어서 목 밑 동맥에 대봤다.

동맥도 뛰지 않는다.

홀리는 그제야 불길한 예감이 와락 치밀었다.

“안 돼!”

그녀는 급히 호발귀의 심장에 귀를 댔다. 그리고 심장 박동 소리를 탐지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코 밑에 손을 대봐도 공기의 움직임이 없다.

호발귀는 육체적으로 죽은 몸이다.

홀리는 멍해졌다. 호발귀가 길길이 날뛴다면 음고를 쓸 생각이었다. 귀색혼령대법을 치르고, 호발귀에게 자진 명령을 내리고, 그를 묻어준 다음에 자신도 죽을 생각이었다.

늘 생각했던 날,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 싶었다.

그런데 호발귀가 죽었다.

음고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정사를 나눌 수도 없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너 참 웃긴다.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이러는 건데?”

홀리는 호발귀를 보면서 쭈그리고 앉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생각도 일으키지 못한 채 멍하니 호발귀만 쳐다봤다.

날이 어두워졌다.

동굴 속이라서인지 어둠이 더 빨리 찾아왔다.

호발귀의 얼굴이 어둠에 묻혔다. 얼굴도 몸도 보이지 않는다. 축 늘어진 모습이 안 보인다.

호발귀가 없으니, 갑자기 한가해졌다.

할 일이 정말 없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상관하지 않는다. 혈천방이 어떻고, 음문촌이 어떻고…… 엿이나 먹으라고 해라. 등여산? 그 계집애는 얼마나 울어댈까.

‘못된 놈. 나쁜 놈.’

홀리는 호발귀에게 욕을 했다.

세상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사람은 생기가 있다고 말한다. 죽은 사람은 사기(死氣)를 풍긴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사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살아있을 때 생기를 띈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죽으면 어떠한 기운도 띄지 않는다. 생기가 소멸한 상태이며, 생기가 떠난 자리에는 어떤 것도 들어서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생기가 없는 상태다.

생기가 없는 상태가 사기인가? 그것은 아니다. 사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공포심이다.

인간은 생기가 소멸한 모습이 두려워한다.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니 더 자세히 봐야 하는데, 오히려 더 보지 않으려고 한다. 보기 싫은 것이다.

사기는 실체가 없다.

생기는 실체가 있다.

무인이 아니더라도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생기를 느낄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생기 순환이 빠르다. 병에 걸렸다가도 금방 일어난다. 생기가 힘을 북돋워 준다.

병들고 노쇠한 사람은 생기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몸에 있는 생기도 약하고 느려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들어오는 생기보다 나가는 기운이 더 많다.

지금 몸에 지닌 생기가 완벽하게 다른 생기로 전면 교체되기까지는 육 개월이 걸린다.

노쇠해서 죽는 사람은 마지막 순간, 육 개월에 걸쳐서 우주로 생기를 돌려준다.

나가는 기운은 있는데 들어오는 기운은 없게 된다.

선(禪)을 깨달은 사람은 우주와 합일된 기운이라고 말하곤 한다.

우주가 가진 기운과 몸 안에 있는 기운이 같아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내 몸이 우주로 확장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생기 때문이다.

마음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나 모레 죽을 거야.’하고 말할 수 있다.

생기를 잘 지켜본 사람이면 죽음도 예견한다. 생기가 완전히 빠져나갈 때, 죽음이 일어난다.

이렇게 생기는 실체를 지닌다.

구혼음소는 생기를 몸 밖으로 밀어내는 작용을 한다.

역천금령공과 이령귀화가 마구 섞인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다. 혈기가 몸 밖으로 밀려 나가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역천금령공이 제 효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것이 섞이는 것처럼 보였다.

구혼음소는 생기가 없는 상태를 만든다.

호발귀는 이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구혼음소를 떠올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데,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다만 역천금령공과 이령귀화를, 혈마 무공을 마구 뒤섞어주니까 여기에 어떤 방법이 있지 않나 생각했다.

그런데 생기가 소멸한다.

생기가 소멸하니 혈기도 소멸한다.

사람이 죽으니 생기가 없어지는 건 당연하다. 혈기가 없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살기, 투기 등 온갖 기운과 분노, 질투 같은 온갖 감정이 일시에 소멸한다.

모든 기운이 다 없어진다.

구혼음소는 자신이 자신에게 내리는 자살 명령이나 다름없다.

구혼음소가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을 벌이는지는 모르지만, 호발귀에게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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