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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70화 (170/500)

第三十四章 초대(招待) (5)

“당신 누구야?”

등여산이 복면인에게 물었다.

복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 나타날 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묵묵히 검을 들어 올렸다.

“당신, 어떻게 설화팔극검을 그렇게 잘 알아?”

등여산이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복면인은 태산파에서 등여산과 함께 무공수련을 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태산파 무공에 능통했다.

물론 복면인이 펼친 검초는 설풍검자 한 초식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설화팔극검을 어느 정도나 잘 알고 있는지, 경지까지 읽힌다.

주변에 늘어선 무인들이 보기에는 아주 간단한 초식이다.

몸을 휘돌린다. 몸이 휘도는 탄력을 이용해서 검을 앞에서 등 뒤로 후려친다.

이것을 굳이 초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다. 분명히 설풍검자다.

설풍검자와 일반적인 동작은 검을 사용하는 운용법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일반적인 동작은 그냥 몸을 휘돌리면서 검을 후려치는 것으로 끝난다. 몸을 휘돌리는 속도가 빠를수록, 힘이 강할수록 옆으로 후려치는 검도 빨라진다.

설풍검자는 엄밀히 말하면 회전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설풍검자를 펼칠 때, 몸의 중심은 오른발 뒤꿈치에 실린다. 오른발 앞쪽에 중심을 실었다가, 휘돌리기 직전에 뒤꿈치로 옮겨가서 중심을 유지한다.

이 순간, 검은 검자로부터 수직으로 떨어진다.

손잡이 부분, 검머리로 땅을 내리찍는다 싶을 만큼 폭발적으로 내리친다.

그 순간, 검이 휘돈다.

몸의 중심이 뒤꿈치로 옮겨가 있어서 검을 내리찍기만 하면 검신이 비틀리면서 옆으로 긋는 초식이 된다.

설풍검자는 일부러 검을 옆으로 휘돌리지 않는다. 나는 내리그으면서 몸만 옆으로 돌린다. 그러면 검이 저절로 휘도는 검으로 변해서 쏘아진다.

이때, 검의 빠르기는 몸이 도는 회전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믿기 어렵지만 내리긋는 힘에 의존한다. 검머리를 얼마나 폭발적으로 떨어트리냐에 검속이 좌우된다.

내가 검끝을 돌린 게 아니다. 검 끝이 저절로 돌아간다.

이것이 설풍검자다.

등여산이 설풍검자를 펼칠 때, 복면인도 같은 초식을 구사했다.

두 사람의 검에는 본신진기 외에도 검이 떨어지는 낙하력(落下力), 몸이 휘도는 회전력(回轉力), 발뒤꿈치가 땅을 받쳐주는 반탄력이 가미되어 있다.

단순히 휘돌려 치는 것보다 적어도 세 배 이상 강하다.

그래서 검끼리 부딪쳤는데도 마치 철퇴끼리 부딪친 듯 격렬한 소리가 울린 것이다.

등여산이 말했다.

“당신이 말 안 해도 상관없어. 일단 당신을 잡아놓고 복면을 벗겨보면 알겠지.”

저벅! 저벅!

등여산은 복면인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녀는 설화팔보를 밟지 않았다. 신법을 펼치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검도 축 늘어트렸다. 몸도 환히 열렸다. 칠 때면 쳐보라는 듯이 온몸을 활짝 열었다.

스읏!

복면인이 검을 들어 올렸다.

조금 전처럼 검을 검신이 하늘로 향하게 옆으로 뉘었다. 검 끝은 등여산 심장으로 향했다.

잔잔한 검에 살기가 흐른다.

복면인의 검은 무서운 쾌검이 되어서 몰아칠 수 있다. 혹은 다른 초식으로 변화될 수도 있다. 찌르는 척하다가 내리칠 수도 있고, 발등을 찍을 수도 있다.

복면인의 몸에서는 탄탄한 강기가 뭉클 일어났다.

마공관에 토혈사검(吐血死劍)이라는 마공이 있다.

피를 토하면서 죽는 검법?

검법이 하도 특이해서 무심히 비급을 펼쳐봤다.

마공관에 수집된 무공은 하나같이 사악하다. 정공이든 마공이든 들여다볼 가치가 없다.

토혈사검도 마공으로 분류된다.

먼저 개혈(開穴)한다. 전신 혈도를 활짝 열어젖힌다. 그러면 공격할 곳이 너무 많아진다. 머리를 노리는 무공이든, 발등을 노리는 무공이든 어떤 무공이든 공격 가능한 형태가 된다.

무방비 상태로 서 있을 테니까 공격하라는 소리다.

무인이라면 절대도 이런 상태를 놓치지 않는다. 강한 자건 약한 자건 무조건 공격한다.

검초가 육신이 달라붙을 찰나, 신형이 팍! 사라진다.

사실은 상대가 달려드는 방향으로 마주쳐 간다. 상대방과 한 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스치듯이 지나친다. 한데 움직이는 속도가 가히 번갯불이다. 너무 빨리 움직이다 보니까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린 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모든 혈을 개혈하되, 엄지발가락 옆쪽 은백혈(隱白穴), 대도혈(大都穴). 태백혈(太白穴) 삼혈(三穴)에 진기를 응축시킨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탁! 퉁겨낸다.

전신 진기가 오직 삼혈을 통해서만 퉁겨진다.

그러면 내공의 강약과는 상관없이 화약이 폭발하는 듯한 탄력을 얻는다.

신형이 거의 순간이동한 것과 마찬가지로 빨라진다.

그것이 마치 상대방에게는 사람이 사라진 것처럼 착각이 일어나게 만든다.

여기에 하나 더, 검을 꼭 잡고 움직인다.

검초를 펼칠 필요는 없다. 마주쳐 오는 상대방과 한 뼘 거리만 두고 움직이면 된다. 그러면 이동하는 순간, 꼭 잡은 상태에서 같이 움직인 검이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쓸어낸다.

나는 움직이기만 했는데, 상대방이 베인다.

겉보기에는 매우 강한 쾌검 중 하나다. 누구라도 욕심이 날 만한 무공이다.

하지만 토혈사검은 엄연히 마공이다.

전신 진기를 삼혈에 집중시키고, 일시에 폭발시키면 시전자 역시 막대한 충격을 받는다.

이 충격은 인간의 육신이 버텨내기에는 너무 강하다.

경혈이 흔들리고, 경맥이 뒤틀린다. 진기를 일으킨 단전도 타격을 받는다. 원정 손실도 크게 일어난다.

토혈사검을 펼치면 한 번 시전할 때마다 이 할에서 삼 할 가까이 원정 손실을 본다. 그리고 손상된 원정은 아예 짓뭉개진 상태이기 때문에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다.

토혈사검은 펼치면 펼칠수록 내력이 약해지는 무공이다.

처음 한두 번? 혹은 두세 번 정도까지는 무적에 가까운 검공을 선보이지만, 그 후에는 제대로 진기도 일으키지 못하는 폐인으로 전락한다.

만약 신체 능력 저하를 무시하고 계속 검법을 펼치면 끝내는 피를 토하면서 죽는다.

토혈사검이란 검주(劍主)가 피를 토하며 죽는다는 뜻이다.

인간을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생각할 때나 사용할 수 있는 공부다.

산동(山東) 노룡방(怒龍幫)이 토혈사검을 손에 넣었다.

노룡방주는 문도에게 이 검공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을 싸움 전면에 내세웠다.

노룡방은 단숨에 산동성을 장악했다.

산동 무림이 단 한 달 만에 반 토막이 났다고 말할 정도로 사망자가 많이 나왔다.

노룡방은 무적이었다. 노룡방에 맞선 모든 문파가 멸문을 면치 못했다. 노룡방에 갓 입문했다는 자가 십 년 수련한 무인을 단숨에 죽였다.

하지만 노룡방이 산동을 장악할 즈음, 노룡방도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무적검을 휘둘렀던 무인 대다수가 피를 토하면서 처절하게 죽었다.

물론 노룡방에 입문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소문도 퍼졌다.

노룡방은 산동을 장악하는데, 한 달 걸렸다. 하지만 멸문하는 데는 삼 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등여산은 토혈사검을 펼쳤다.

전신 모든 혈이 활짝 열렸다. 찌를 수도 있고, 벨 수도 있다. 머리부터 다리까지 어떤 곳도 가격할 수 있다.

“토혈사검! 마공을!”

복면인이 낮게 중얼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당신 누구야? 이것도 아네?”

등여산이 거침없이 걸어가며 물었다.

복면인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살기를 품은 차가움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날 반드시 죽일 생각이야.’

복면인이 누군데 이토록 심한 살기를 쏟아내나.

‘당신이 누군지 반드시 알아야겠어.’

등여산은 복면인을 향해서 다가섰다. 복면인은 등여산이 다가온 거리만큼 물러섰다.

그는 토혈사검의 무서움을 알고 있다.

토혈사검은 천살단 마공관에만 존재하니, 마공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러면 역시 천살단에서 보낸 무인인가?

“계속 피하기만 할 거야?”

사아아아앗!

등여산이 다소 빠르게 다가섰다. 그러자 복면인은 같은 속도로 물러섰다.

등여산이 멈춰 섰다.

상대방이 계속 피하기만 한다.

토혈사검은 반드시 상대방이 질주해 오는 상태에서 펼쳐야 한다.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형체가 사라져서 검초나 신형을 변형시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공격 중이거나, 검초를 전개하는 도중이어야 한다.

복면인처럼 물러서기만 하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

스읏! 툿!

복면인이 들고 있는 검으로 등여산을 가리켰다. 그리고 검 끝을 까딱거렸다.

널 반드시 죽이겠어!

복면인이 검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쉬이이잇!

복면인은 검을 까딱거린 후, 즉시 신형을 날려서 숲으로 사라졌다.

등여산과 싸움을 피한 것이다. 아니, 토혈사검과는 부딪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죽기가 싫었던 것인가, 아니면 죽은 후에 복면이 벗겨질 것을 우려했나.

등여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복면인이 사라진 숲을 쳐다봤다.

마음 같아서는 쫓아가서 누구인지 알고 싶지만, 쫓아가면 오히려 당할 수도 있다.

숲에는 복면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 복면인과 비슷한 정도의 무인이 네 명이나 더 있다.

공격자는 모두 다섯 명이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움찔거렸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등여산과 복면인이 싸우는 중에도 움찔거리거나,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꽤 많이 보였다.

뛰어나오고 싶은데 망설여진다.

호발귀가 저들을 억눌러주었다.

그들은 등여산과 싸우던 복면인이 돌아오자,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숲을 떠나갔다.

이번 일은 실패다!

그들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호발귀.’

등여산이 호발귀에게 걸어갔다.

호발귀가 혼절한 무인들을 비로소 마음이 확 놓였다.

호발귀를 너무 위하는 바람에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깜빡 잊고 있었다. 호발귀가 혈마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커서 무조건 그를 밀쳐냈다.

지금도 호발귀는 매우 위험하다.

주변에 늘어선 무인들이 호발귀에게 덤비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호발귀가 그들의 기운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호발귀 말을 빌리면 생기로 생기를 짓눌렀다.

무인의 말로 바꾸면 격산타우(隔山打牛)와 흡사한 진기 타격이 되겠다. 오직 진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체전공(異體傳功)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산을 사이에 두고 황소를 친다.

다른 사람에게 진기를 전한다.

어떤 방식이든 진기를 일으켜서 손도 까딱하지 않은 상태로 상대방의 진기를 타격한다는 소리다.

호발귀의 진기 타격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무인이 진기로 행하는 진기 타격은 오직 한 사람에게 밖에 시전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호발귀는 매우 많은 사람의 생기를 누르고 있다. 무인의 진기 타격보다 몇 배는 높은 상승 공부다.

하지만 이 말은 다시 말해서 혈기가 생길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등여산이 판단한 역천금령공은 고수에게 사용하나 하수에게 사용하나 똑같은 강도, 똑같은 크기로 전개된다.

경중을 가리는 장치가 아예 없다.

약한 상대라고 해서 살살 공격하지 않는다. 강한 상대라고 일부러 전력을 끌어내지도 않는다.

항상 몸에 있는 모든 것이 쏟아져 나간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다. 무림 초고수가 동네 어린이와 간단한 비무를 하는데, 진기를 있는 대로 끌어모아서 전력을 다해 검초를 펼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인은 진기를 통제할 수 있지만, 호발귀는 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불안하다. 그래서 호발귀에게 먼저 가 있으라고 한 것인데…… 만약 정말로 갔다면 죽을 뻔했다. 복면인은 정말로 그녀를 죽일 생각이었다.

“고마워.”

등여산이 호발귀에게 말했다.

호발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수습할 수 있지?”

호발귀가 대뜸 말했다.

“뭐?”

등여산은 화들짝 놀라서 호발귀를 쳐다봤다.

그렇다. 호발귀는 이번에도 생기를 내보냈다가 다시 거둬들였다. 어김없다. 혈기가 치밀고 있다. 또 혈마 무공을 사용한 부작용이 일어난다.

호발귀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솜털도 곤두섰다. 손끝도 파르르 떨린다.

“아, 안 돼!”

등여산 눈에 공포가 어렸다.

그러자 호발귀가 두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아. 잠시 운기 좀 하면 될 것 같아. 여기 정리할 수 있지?”

등여산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 잘하고. 정말 괜찮아. 운기만 끝내고 바로 따라갈게. 약속 장소에서 봐.”

호발귀는 말이 끝내자마자 바로 신형을 쏘아냈다.

“이걸 어떡해!”

등여산은 발을 동동 굴렀다.

호발귀는 아무것도 아닌 듯 말하지만, 그가 급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겠다.

그때, 홀리가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넌 여기 정리해. 내가 따라가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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