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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69화 (169/500)

第三十四章 초대(招待) (4)

호발귀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등여산이 말할 때 유심히 귀 기울여서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해되지 않는다.

등여산은 무인들을 혼절시키면 누군가가 저들을 죽인다고,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죽여서 혈마가 한 짓을 만천하에 공개할 목적이라고 했다.

누명을 제대로 씌우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얘기는 이 말은 맞을 것이다.

그러면은 누가 살수를 쓰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천살단에서 무인을 보내 잔인하게 검을 휘두른다? 그 정도 추측으로 이해하라는 말인가?

무인들의 죽음을 혈마 짓으로 둔갑시키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정말로 잔인해야 한다. 주검이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는 되어야 혈마 짓으로 인정된다.

천살단 무인이 작심하고 검을 쓰면 그런 현장을 만들 수 있다.

대충, 이 정도만 생각하면 등여산 말이 맞는다. 어느 한구석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하나를 더 보태야 한다.

혼절한 무인들을 죽이는 자는 잔인함과 동시에 무척 강해야 한다. 그들은 혼절하지 않은 무인 중 일부를 살려두어야 한다. 그래야 혈마 악행이 입을 통해 퍼져나간다.

누가 했는지 모를 살인 현장만 제공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번에는 저들이 직접 두 눈으로 본 것을 말하는 것이니 전파되는 파괴력이 상당하다.

그러자면 흉수 역시 혈마 못지않게 강해야 한다.

초강고수!

등여산은 이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

단순히 혼절해서 저항하지 못한 무인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다. 혼절하지 않은 무인까지도 죽인다. 때에 따라서는 직접 혈마와 부딪칠 수도 있다.

누군지 모르지만 매우 강할 것이다. 어쩌면 등여산도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강하다.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 살펴볼 생각이다

쉬이이익!

호발귀는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뛰었다.

무인들이 지나간 방향은 알고 있다, 그들의 뒤를 쫓는 것도 어렵지 않다. 온 산에 생기가 득실거린다. 굳이 저들을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한눈에 보인다.

전혀 어렵지 않은 추격이다.

쉬이이이익!

호발귀는 저들이 아니라 저들 뒤에 따라붙은 초고수를 생각해서 매우 은밀하게 움직였다.

‘천살단 무인이 분명해. 벌써 와있을 텐데.’

등여산은 상당히 지친 듯 비틀거리면서 혼절한 무인들을 예의 주시했다.

그녀가 혼절시킨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것도 발로 찼기 때문에 오래 쓰러져 있지 않는다. 잠깐 정신을 놓은 정도에 불과해서 곧 깨어난다.

아주 잠깐, 그동안만 지켜주면 된다.

‘이미 사람이 혼절했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지?’

호발귀 일행이 몇 명 되지 않으니, 천살단도 많은 사람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단숨에 현장을 장악하고 살겁을 휘두를 만한 자를 보낼 게 분명하다.

살인에 능한 자, 살단이다.

요즘 살단은 예전 살단과는 많이 달라졌다. 주치균이 살단 총주로 부임한 후, 야생 늑대와 같은 기질들이 사라지고 조직화한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무작정 우르르 들이닥쳐서 물어뜯는 게 아니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쪽으로 바뀌었다.

조직 개편에서 두 총주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난다.

쌍부 십당이라는 조직구도도 주치균이 새로 만든 것이다. 미도회랑 시절에도 부단주는 있었지만, 미도회랑이 마음 내키는 대로 ‘너 해!’하는 식으로 시켰다.

쌍부, 두 명의 부단주, 그들이 오지 않을까?

십당 당주 중 몇 명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혈마를 상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부단주가 오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그들이 혈마를 상대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지만, 재빨리 몸을 피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음!”

등여산은 비틀비틀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혼절한 자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너희가 죽으면 안 돼.’

쉬이이잇!

찬 바람이 훅! 일어났다.

숲에서 검은 그림자가 뛰쳐나왔다. 그는 눈 깜짝할 순간에 다가왔다. 정말 빠르다.

쒜엑!

그가 혼절한 무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타앗!”

등여산은 거센 고함을 내지르면 와락 달려들었다.

차곡차곡 쌓인 눈 위를 돌풍이 휩쓸고 지나갈 때처럼 설화팔보를 밟을 때마다 흙먼지가 확 피어났다.

쎄에엑!

등여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뜸 설화팔극검을 펼쳤다.

상대방의 신법에서 고수의 면모를 읽었다. 내리치는 검법이 매우 단순하고 깨끗했다.

검에 일가를 이룬 고수의 검이다.

검풍이 일자 눈꽃이 피어난다. 검첨이 쫙 갈라지는 듯한 환각이 일어난다. 검 끝이 나팔꽃처럼 갈라져서 상대방의 검신을 단번에 휘감았다.

까앙! 깡! 깡!

검과 검이 매우 격렬하게 부딪쳤다.

등여산은 그야말로 사력을 다했다. 애송이 무인들을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무공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뜻밖에도 너무 쉽게 설화팔극검을 막았다.

눈꽃으로 변한 검 끝이 검신을 휘감도록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검신과 검신이 닿는 순간, 격렬하게 검신을 털어내서 반탄진기를 쏟아냈다.

쉬리리릭!

상대방은 등여산의 검을 밀어내고 바싹 다가섰다. 동시에 검을 거꾸로 잡고 등 뒤로 힘껏 찔렀다. 등여산에게 등을 보인 상태로 배를 노렸다.

등여산은 급히 옆으로 신형을 비틀었다.

쉐에에엑!

검이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등여산은 수도로 상대방의 등을 타격하고, 그녀 역시 몸을 홱 휘돌리며 검을 내리쳤다.

까앙!

상대가 옆으로 비켜서며 수도를 피했다. 동시에 등여산과 같은 속도로 휘돌며 검을 쳐냈다. 회전하는 방향이 똑같고, 검을 쳐내는 방식이 같다.

까앙!

두 검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설풍검자(雪風劍刺)!”

등여산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상대방이 펼친 검초는 설화팔극검 초식이다. 등여산이 펼친 초식과 똑같다.

“당신, 누구야!”

등여산은 검을 찔러넣으면서 말했다.

쒜에에엑!

이번 공격 역시 설화팔극검 검초로 건재했다. 복부를 노리고 찔러가다가 빙글 돌리면서 위로 솟구친다. 실제로 타격하는 위치는 얼굴이다.

상대방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일색이다. 얼굴에는 복면을 썼고, 흑의 경장을 입었으며, 신발도 검은 가죽이다. 검집 역시 검은색이다.

상대방이 숲에서 뛰쳐나올 때, 검은 그림자로 보였던 것이 단순한 착각은 아니다.

까앙!

상대방이 설화비천(雪花飛天)을 막아냈다.

상대방은 등여산이 설화비천으로 공격해 올 것을 예상한 듯 아주 가볍게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렸다. 아니다. 찍어 내린다 싶은 순간, 검초가 확 변했다.

휘리리리리릭!

상대방의 검이 오히려 등여산의 검신을 휘감았다. 그리고 매우 격렬하게 비틀어댄다.

“윽!”

등여산은 신음을 흘리면서 검을 놓쳐버렸다.

상대방의 검초에는 매우 강한 회전력이 가미되어 있다. 검을 빼앗는 검초에 걸려들었다.

휘릭!

그녀의 손에서 벗어난 검이 허공에 높이 솟구쳤다.

“아!”

등여산은 탄식했다.

상대방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아니, 상대방은 설화팔극검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초식이 환히 읽히기 때문에 공격할수록 손해만 본다.

쒜에에엑!

상대방이 검초를 전개해서 심장을 찔러온다. 등여산의 검을 퉁겨내자마자 즉시 심장을 노렸다.

‘졌어!’

등여산은 죽음을 떠올렸다.

이 순간, 호발귀가 번갯불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제 두 번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상대방이 심장을 찌르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마치 죽이는 것을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등여산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즉시 신형을 퉁겨서 옆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검을 주워들었다.

“당신, 누구야!”

등여산이 재차 소리쳤다.

마치 상대방이 자신을 잘 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방금, 살초를 전개했으면서도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한 것도 자신과 안면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읏!

상대방은 대답 없이 검을 쳐들었다.

검에서 막강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등여산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

‘날 죽일 생각이야.’

등여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토록 살의가 강력한데, 방금은 왜 머뭇거렸을까?

“어디 이번에도 쳐내 봐!”

쒜에에엑!

등여산은 설화팔보를 펼쳐서 어지럽게 움직였다. 설화팔보 속에는 팔괘(八卦)의 묘리가 담겨 있다. 각 움직임이 상생을 쫓기기 때문에 매우 부드럽다.

상대방은 검을 옆으로 뉘었다. 검신이 하늘을 향하도록 방향을 살짝 틀었다.

찌르는 검이다.

스읏!

상대방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현란한 설화팔보는 우직함으로 깬다. 화려하게 화초밭을 쟁기로 쭉 갈아버린다.

일보, 일보, 일보……!

등여산의 보법이 무뎌졌다. 팔괘가 펼쳐지지 못한다. 우직한 검기에 밀린다.

‘뭐가 이렇게 강해!’

아니? 아니다. 강한 듯 보였는데, 강하지 않다. 우직한 기운 사이로 허점이 보인다. 발걸음이 묵직한 것이 아니라 무거워 보인다. 힘들게 걷는다.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다. 상대방이 갑자기 진기를 몽땅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은 든다.

등여산은 홱 고개를 돌려서 옆으로 봤다.

호발귀!

등여산은 당장 어찌 된 일인지 알았다.

호발귀가 혼절한 자들 곁을 지키고 있다. 검을 뽑아 들고 묵직하게 서 있다.

그는 등여산이 하고자 하는 일을 알고 있다. 등여산이 도주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도 안다.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산을 에워싸고 달려들었던 무인도 호발귀에게는 병기를 들이대지 못했다.

호발귀에게서 감히 범접하지 못한 위엄이 서릿발처럼 퍼져 나왔다.

무인들은 호발귀가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그런 자극이 일어났다.

우리가 상대할 사람이 아니야!

무인들은 호발귀를 포위만 했을 뿐, 공격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그들은 등여산과 검은 복면인이 싸우는 모습을 봤다.

무인들이 보기에는 신의 무공이다. 굉장히 강하고 빠르고 현란하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격렬하게 움직인다.

무인들은 그제야 등여산이 자신들을 얼마나 봐줬는지 새삼 깨달았다. 만약 등여산이 전력을 다해서 공격했다면 벌써 수십 명이 죽어 있을 것이다.

무인 중에는 부르르 치를 떠는 자도 있었다.

자신들의 저승 문턱에 발을 들여놨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다.

사실, 호발귀는 굳이 나서서 혼절한 자들을 지킬 이유가 없었다.

등여산이 복면인을 막아주고 있으니, 차분히 지켜보기만 해도 충분했다.

그런데…… 숲에는 아직도 뛰쳐나오지 않은 자들이 있다.

그들이 움직일 기미를 보였다. 더욱이 복면인은 등여산을 밀어붙이고 있다.

복면인의 무공이 월등히 강해서 등여산을 압도하는 게 아니다. 태산파 절기를 환히 꿰뚫고 있어서 모든 공격이 읽힌다.

복면인은 등여산이 검잡은 모습만 보고도 다음 공격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이 싸움은 등여산이 패한다.

더욱이 복면인은 살의까지 보탰다. 등여산을 압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죽일 생각이다.

호발귀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등여산이 쳐다보자, 호발귀가 말했다.

“저 사람, 태산파 무공을 잘 알아. 다른 무공으로 싸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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