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四章 초대(招待) (3)
둥! 둥! 둥! 둥!
사방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뭔 소리래?”
도천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이쪽 산에서도 북소리가 울리고, 저쪽 산에서도. 울린다. 계곡에서도 울리고, 산등성이에서도 울린다. 온 사방에서 일제히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누가 북을 치고 있는 것 같은데? 사냥이라도 하나?”
당홍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무인들을 피해서 이동한다는 것이 하필이면 몰이 사냥 한 복판에 서 있는 꼴이 됐다.
“이거 귀찮게 됐네. 사람들 만나서 좋은 것 없는데. 그냥 빨리 빠져나가지?”
도천패가 말했다.
“에이, 빠져나가기가 쉽나. 돼지몰이 몰라? 돼지몰이. 저것들 개도 끌고 다닌다니까?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안 들리는데, 곧 개 짖는 소리도 날걸? 그리고, 저것들은 눈에 뵈는 게 없어서 누굴 만나면 무조건 활부터 땡긴다니까. 산적이라 이거지.”
“그러다가 뒈지려고?”
“저쪽은 인원이 많잖아. 인원이 인원에 많으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요. 이쪽에서 반격할 것은 알지만, 자기만 안 죽으면 된다 이거지 뭐. 사냥하다 보면 광기가 생긴다니까.”
해자수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네요. 이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등여산이 북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등여산은 이쪽저쪽으로 자리를 이동하면서 북소리를 찾았다. 손으로 정확하게 위치까지 짚었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북소리가 들린다.
“아! 이거 그냥 사냥이 아냐. 우리가 목표야.”
등여산이 호발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목표가 우리라니? 그러니까 우리가 사냥감이라 이 말인가?”
해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우리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쫓는다고? 말도 안 돼. 우리가 적이라면 이렇게 쫓을 리 없지. 은밀히 습격해도 모자랄 판에 북까지 쳐대면 뭐 하자는 건데?”
당홍도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이다.
“더 웃긴 건 저 사람들 무공도 약해. 거의 무공을 모르거나 신출내기야. 이게 어떤 싸움인지도 모르고, 정말로 사냥놀이 하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을 거야.”
“그게 말이 돼?”
당홍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이렇게 생각해 봐요. 우리가 누군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나쁜 놈들이니 잡아야 한다, 저 산에 있을 거니까 너희가 먼저 가서 수색하고 있어라. 그럼 이렇게 돼요.”
“아니, 어떤 미친놈들이 자기 문도를 사지로 몰아넣어? 그러고도 인간이야?”
도천패가 눈을 부라렸다.
“한 문파에서 한두 명, 한 마을에서 젊은 사람 한두 명. 이렇게 모았을 거예요.”
“그러면 뭐? 죽으려고 나왔다는 거야?”
“뭐긴 뭐야. 딱 봐도 죽이라는 거네. 그렇지 않으면 저런 놈들을 앞에 내세웠을 리 없지.”
도천패와 해자수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모두 정말 죽으러 온 게 맞냐는 표정으로 등여산을 쳐다봤다. 뭐 이런 공격이 다 있나 싶다.
“저들을 죽이면 혈마 전설이 시작돼. 저들이 직접 보는 거야. 혈마가 얼마나 사납고 흉포한지. 저들을 몰살시키면 말할 것도 없이 흉포한 인간이 되는 거고, 일부만 죽여도 저들 입을 통해서 잔인함이 퍼져나가. 무조건 싸우면 혈마가 되는 거야.”
“하! 이런 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거야?”
해자수가 인상을 팍 찡그리면서 탄식했다.
“내가 싸움을 잘 못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돼. 말 그대로면 저놈들은 매우 촘촘해. 우린 빠져나갈 수도 없다고. 어떻게든 한두 놈은 쳐야 하는데, 한두 놈을 치면 와르르 달려들 거 아니야. 손 안 대고 빠져나갈 수도 없고, 죽이면 죽인다고 뭐라고 하고, 안 죽이면 죽어라고 달려들고. 하아!”
해자수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빠져나가야지.”
“해자수 아저씨 말이 맞아. 저들은 간격이 매우 촘촘해. 나무 위, 땅속 모두 다 뒤지라고 지시를 받았으니까 주변을 샅샅이 뒤지면서 올라올 거야.”
“내게 미독(迷毒)이 있는데.”
당홍이 자신의 가슴을 '탁' 쳤다.
“한 열 면쯤 한꺼번에 쓰러트릴 수 있어. 그러면 길이 열릴 거야.”
등여산이 고개를 내둘렀다.
“그것도 대안이 안 돼요. 정신을 잃는 순간, 저들은 진짜 공격을 당해요. 살지 못할 거예요.”
“누가 공격해? 앗! 뒤에서 지켜보는 놈이 있구나! 아무리 그렇다고 생각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해자수가 놀라서 말했다
“그런데 넌 이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이거 혹시?”
“맞아요. 저희 천살단에서 연구한 방법이에요.”
등여산이 순순히 시인했다.
“천살단? 천살단에서 이런 방법도 쓰나? 정도가 뭐 이래? 이런 건 하면 안 되잖아?”
일순, 정도에 대해 회의가 밀려왔다.
“이 방법이 나쁜 건 아네요. 앞에 양을 내세우고, 뒤에 호랑이가 지키고 있는 거죠. 호랑이가 없으면 누구든 쉽게 달려 나와요. 저까짓 것 하고. 일종의 유인책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호랑이를 뺐어요. 혈마와 싸우려는 게 아니니, 호랑이가 필요 없죠.”
“좌우지간 어떤 용도로 사용하건 사람을 미끼로 쓴다는 건 좋지 않아. 또 가만히 보니까 호발귀를 철저히 혈마로 만들 생각인 것 같은데, 자신들을 위해서 일한 사람까지 암살하려고 하고. 천살단도 좋은 데는 아니네.”
홀리가 말했다.
“내 이것들 앞으로 나한테 걸리면 뼈마디를 분질러 놓아야지!”
도천패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미독을 쓸게. 쉽게 때려죽이지 말고 뼈란 뼈는 모조리 부순 후에 죽여.”
당홍이 맞장구를 쳤다.
저들의 계획에는 허점이 있다.
겉보기에는 완벽해 보인다.
저들은 벼랑이나 강 같은 곳이 없는, 완만한 산을 택했다. 숨을 곳이 없다. 오직 뚫고 나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뜻이다.
그 말은 다시 말해서 혈마가 진령산맥으로 가고 있는 걸 알고 있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앞으로 어느 쪽으로 나갈 것까지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함정을 준비할 수 있었다.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 준다. 싸움을 원하면 싸워준다. 이것이 유일한 허점이다.
쒜에에엑!
등여산이 앞을 향해 치달렸다.
천살단이 무림에 퍼트린 통문에 의하면, 혈마는 반드시 죽여야 할 잡놈이다. 도천패 역시 혈마의 수족이나 마찬가지다. 죽여야 할 잡종이다.
홀리는 이백 년 전부터 혈마 수발을 든 음문촌 출신 악녀다. 지금도 혈마를 조정하고 있다. 이백 년 전의 혈한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당홍은 어떤가? 혈천방에서도 쫓겨난 독인이다.
독술이 오죽 지독했으면 나쁜 놈들이 우글거리는 혈천방에서조차 쫓아냈겠나.
해자수까지 이 다섯 명은 즉각 척살 대상이다. 다섯 명 중 누구도 동정의 여지가 없다.
반면에 등여산은 그래도 약간 고려의 여지가 있다.
그녀는 겁탈당한 여자다.
겁탈을 당하고 절반은 자포자기, 절반은 사내에게 현혹되어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중이다.
이것이 통문 내용이다.
그래서 아주 멍청한 여자, 사내에게 눈이 뒤집혀서 정신 못 차리는 여자 정도로 인식된다.
천살단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정신 차려!’ 하면서 뺨이라도 후려갈기면, 펑펑 울면서 ‘제가 잘못했어요.’ 하고 정신을 차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등여산은 절대 악마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그래서 등여산이 신형을 쏘아낸다.
앞쪽에 무인들이 보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움직임이 매우 둔했다. 적이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싸울 준비를 하지 않는다. 아주 여유가 넘친다.
쎄에에엑!
등여산은 그들을 향해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엇!”
앞에서 다가오던 무인들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곧 장창을 움켜잡고 앞으로 쭉 내밀었다. 맹수를 몰이 사냥할 때처럼 장창을 들이밀면 달려들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확실히 이들은 하수다.
쒜에에엑!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앞으로 쭉 뻗친 창대를 한 움큼 잘라냈다.
“엇!”
창대가 잘린 자들은 깜짝 놀라서 움찔거렸다.
순간, 등여산은 앞으로 치달리면서 앞에 서 있던 자를 어깨를 밀어쳤다.
“억!”
사내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등여산은 바로 발을 들어 올려서 옆에 선 자의 명치를 가격했고, 다시 뒤돌려 차서 다른 자의 안면을 후려쳤다.
“악!”
“큭!”
두 명이 동시에 나가떨어졌다.
무인들은 등여산의 움직임을 감당하지 못했다. 너무 빠르고 강해서 정신없이 두들겨 맞기만 했다.
“여기다! 적이 여기 있다!”
누군가가 사방에 도움을 청했다. 한 사람이 고함을 내지르자, 다른 자들도 가세해서 소리쳤다.
등여산은 쉴 새 없이 두 발을 쳐냈다.
쒜에엑! 퍼억!
발이 움직이면 정신 잃고 쓰러지는 자가 생겼다. 발길질 한 번에 한 명이 쓰러졌다.
와아아!
거센 고함과 함께 무인들이 그녀를 포위했다.
새로 온 무인들이 맞아서 혼절한 사람을 옆으로 끄집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등여산은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가면 이들이 죽는다!’
무인을 쓰러트리는 순간, 등여산에게는 임무가 생겼다. 누군가가 혼절한 무인들을 죽이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죽음도 혈마 짓이 된다.
쒜에에엑!
검을 휘둘러서 창대를 잘라냈다.
“헉! 헉!”
등여산은 일부러 거친 숨을 토해냈다. 자신이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보여야 한다. 사납기는 하지만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야 이들이 바싹 다가선다.
등여산은 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이리저리 사방을 노려보기만 했다.
“이거 이렇게 빠져나가도 되나? 괜히 책사한테 미안한데.”
해자수가 흙을 뒤집고 일어났다.
등여산이 스스로 미끼가 되었다. 덕분에 저들은 수색하면서 나아가지 못했다. 적이 나타났다는 소리에 들뜨고 흥분해서 우르르 달려 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은신술이면 충분했다.
땅을 파고 위장포를 뒤집어쓰는 기본 은신술만으로 무인들을 따돌렸다.
그만큼 저들은 경험이 부족했다.
“책사가 저 정도도 빠져나오지 못할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이런 것까지 걱정하는 건 책사에 대한 모욕이야.”
당홍이 말했다.
모두에게 말한 듯하지만 사실은 호발귀에게 한 말이다.
“그렇지. 책사가 저 정도도 못 빠져나온다면 말이 안 되지. 자, 우린 괜한 누명 뒤집어쓰기 전에 빨리 가자고.”
등여산이 말했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 있는 동안,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고. 그래야 이곳에서 죽는 사람이 혈마가 한 짓이 아닌 게 증명된다고.
“자! 가자! 우리도 바빠.”
도천패가 호발귀를 잡아끌었다.
“다들 가 있어. 나는 좀 지켜보다가 갈게.”
호발귀가 웃으며 말했다.
홀리가 호발귀를 노려보며 톡 쏘아붙였다.
“호발귀! 우리 계약 아직 안 끝났어! 내가 부인이야. 내 앞에서 다른 여자 걱정을 하는 거야? 등여산이 우리에게 가 있으라고 했잖아! 특히 너 호발귀가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지! 너도 들었으면서 남겠다는 건 뭐야! 걱정도 이건 너무 지나치잖아.”
홀리가 숨도 쉬지 않고 다다다닥! 쏘아붙였다.
“하하! 그런 게 아니야. 뭔가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그래. 살짝 확인만 해보고 달려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 있어. 이건 정말 확인해야 해.”
“싸우는 거 아냐?”
도천패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여기 온 사람들 봤잖아. 내가 누구하고 싸워? 싸움도 어느 정도 손발을 맞출 수 있어야 하지. 또 주의해야 할 점이 ‘죽이는 것’이니까 절대 손을 쓰면 안 되고. 걱정하지 말라니까.”
“도대체 뭘 확인한다고……”
도천패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호발귀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이놈들하고 싸우는 일이 생겨도 혈마 무공은 쓰지 말고. 이 정도야 우리 투심문 무공으로도 충분하잖아?”
호발귀는 걱정하지 말라고 도천패의 가슴을 툭 쳤다.
“자! 빨리들 가. 나도 살짝 엿보기만 하고 바로 갈 테니까. 그럼 이따 봐.”
쉬잇!
호발귀가 먼저 신형을 쏘아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지극히 태연해 보였다.
“어떻게 된 게 문주는 꼭 강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조마조마하냐? 뭘 하겠다고 하면 당장 불안하기부터 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었으면 좋겠다니까.”
“호호호!”
당홍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