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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66화 (166/500)

第三十四章 초대(招待) (1)

호발귀의 움직임은 낱낱이 파악되었다.

무인들과 접촉하면 싸움이 일어날 게 뻔해서 산길로만 이동하고 있는데, 혈천방이나 천살단은 이동 경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꿰고 있었다.

검벽 부검주 정보란이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호발귀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또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부검주 정보랑은 나무 밑동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 기다리는 사람은 아예 탁자를 가져왔다. 집무실에서 사용하는 다탁을 깊은 산까지 가져왔다.

그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다탁에는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다. 의자를 마주 보게 놓지 않고,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나란히 옆으로 놨다.

귀무령 귀검이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있다. 멀쩡한 모습으로 차를 마시면서 기다린다.

귀검은 탁자 위에 검을 올려놓고 있다.

“아! 내가 이거 귀신을 보는 것도 아니고. 목숨 한번 질기네. 뭐가 아쉬워서 그 폭발 속에서 살아난 거야?”

휘르르릉!

도천패가 대도를 휘두르며 말했다.

사실, 그는 대도를 휘둘렀지만, 귀검과는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천패에게도 싸우기 껄끄러운 상대가 있다. 귀검도 그중 한 명이다.

귀검의 검공은 거의 신에 가깝다.

거침없이 뚫고 들어오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앉아 있는 모습만 봐도 숨이 막힌다.

하지만 적으로 맞선 이상, 칼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도천패가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호발귀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내 손님인 거 같은데.”

도천패가 호발귀를 쳐다보고는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맞다. 귀검은 누가 봐도 호발귀 손님이다.

“이번에도 또 기습하는 거 아니야?”

도천패가 불안한 듯 대도를 꼭 쥔 채 말했다.

“기습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 지금 호발귀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 난 솔직히 혈천방주가 호발귀를 어떻게 제압할지 그게 더 궁금해.”

홀리가 말했다.

“오랜만이야?”

호발귀가 반대쪽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귀검이 찻주전자를 들어서 빈 찻잔에 차를 따랐다.

또르륵!

찻잔에 뜨거운 차가 따라졌다.

근처에 있는 불 지핀 흔적도 없는데, 찻주전자가 뜨겁게 달궈졌다.

수하인지 심부름하는 시종인지, 스무 걸음쯤 앞에 있는 큰 바위 뒤에 숨어 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귀무살이 틀림없어 보인다.

기습 목적으로 숨은 것은 아니다. 대화를 나누는데 거치적거릴까 봐 자리를 피한 것이다.

“요즘 바쁘더군.”

귀검이 말했다.

“바쁘기는 그쪽이 더하지. 정말 엄청나게 쏘다니더라고? 거기다가 누명까지. 감사하게 잘 받아먹었어.”

“그 말은 좀 억울한데? 엄밀히 말하면 우린 노동력만 제공했지. 약간 누명을 씌우기도 했나? 하지만 공개적으로 온 사방에 소문을 낸 것은 천살단이잖아?”

“이거 왜 이러시나. 이젠 귀검이 발뺌까지 하셔?”

귀검이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날씨 좋지?”

“날씨 얘기나 하자고 온 건 아닐 거고. 용건은?”

“방주님께서 너를 보자신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해자수가 말했던 그 이야기다.

호발귀는 귀검을 쳐다봤다. 설마 이런 이야기를 귀검이 직접 가져올 줄은 몰랐다.

“뭐야? 귀검께서 날 마중 나온 거야?”

“비꼬는 건지 도전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말투, 상당히 마음에 들어. 차 들지. 독은 안 탔어.”

“혈천방이 하는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있어야지.”

“그런가?”

“차라리 양념으로 독 몇 봉지 넣었다고 해. 그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들려.”

“그럴까? 지금이라도 몇 봉지 넣어줄 수 있고.”

또르륵!

귀검이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리고 차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마셨다.

“거기서 어떻게 살아난 거야?”

“위험했지.”

“위험한 정도가 아니었지. 솔직히 죽은 줄 알았거든.”

“그거 등여산 작품 아닌가? 책사가 아니면 나를 그런 궁지로 몰아넣을 수 없지. 감쪽같이 속았어.”

“하하하!”

호발귀가 웃었다.

두 사람을 옆에서 보면 마치 오랜 벗이 만나서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충고 하나 할까?”

귀검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는 앞에서 친다. 앞에서 날아오는 칼이야. 그러니까 두려울 필요가 없다. 천살단은 뒤에서 찌르는 칼이다. 정작 조심해야 하는 쪽은 천살단이야.”

“이건 뭐 고양이 쥐 생각해 주는 것도 아니고.”

호발귀도 찻잔을 들어서 차를 마셨다.

독 같은 것은 없다. 귀검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어떤 목적이 있었다면 지금 당장 검을 뽑았을 것이다.

귀검이 웃으면서 말했다.

“후후! 우리가 천살단보다 압도적으로 강해 보이나? 귀무살이 이 정도로 모였으면 꽤 강한데, 그래도 천살단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단지 상호 견제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

호발귀는 귀검을 쳐다봤다.

귀검이 아름다운 풍경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천살단을 건드리면 승패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걸 알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는 거야. 천살단도 마찬가지. 혈천방이 겉모습뿐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거지. 지금 혈마라는 실체가 하나 드러났고, 또 다른 실체가 언제 드러날지는 모르지. 분명한 것은 천살단에도 이만한 힘이 있다는 거야.”

호발귀는 숨죽였다.

혈마가 전부가 아닌가? 도대체 혈천방이 어디까지 나아간 것인가. 적어도 혈마와 비등한 힘이 또 있다는 말이지 않나. 귀무살이나 살단은 겨우 겉을 포장하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하고, 실체는 따로 있다는 말이다.

귀검이 말했다.

“난 근본적으로 이런 비열한 수들을 싫어해. 하지만 나 역시 조직에 매인 몸, 방주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귀검이 차를 마셨다.

“그 팔자도 썩 좋은 팔자는 아니네.”

호발귀도 차를 마셨다.

“동행은 서로 불편할 거고. 천살단이 만든 함정에 괜히 우리까지 휘말릴 이유도 없고. 혈천방이 진령산맥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진령산맥까지 와라. 우린 거기서부터 안내하지.”

“되도록 빨리 가도록 하지.”

귀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차를 마셨다.

등여산은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고민에 빠졌다.

“또 뭐가 걱정인데?”

홀리가 옆에 앉으며 물었다.

“혈천방에 해월류가 있었다며?”

“그게 고민이야? 해월류, 별거 아냐. 동영 인자라고 하더라고. 술사야. 신경 쓸 거 없어.”

“해월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잖아.”

“그게 중요해?”

“중요해.”

“넌 참 복잡하게 산다. 그런 거 일일이 다 신경 쓰고 어떻게 살아? 그만 고민하고 가자. 밥 다 식어.”

홀리가 등여산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등여산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말했다.

“그게 중요한 거야. 알지 못했다는 것.”

“진짜 고민이 뭔데?”

“아까 귀검이 말할 때, 칼이라는 표현을 썼어. 지금 곰곰이 생각 중인데, 천살단에 그런 칼이 있나? 나는 모르는 일이거든. 아무리 생각해봐도 천살단에 또 다른 수는 없어.”

등여산의 실질적인 고민은 천살단, 그리고 혈천방의 실질적인 힘이다.

귀검이 바로 그 부분을 짚었다.

귀검은 다른 문제도 제기했다. 그 조직에 실질적인 힘이 있는데, 정작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귀검은 혈천방이 가진 힘을 모른다고 말한 것이나 진배없다.

등여산은 귀검 입장에 서서 천살단을 되돌아봤다. 자신은 천살단을 얼마나 알고 있나.

천살단에서 가장 강한 힘은 살단이다.

살단은 독자적으로 움직이며 아주 강한 파괴력을 구사한다. 살단이 움직이는 곳은 초토화된다.

하지만 살단을 깊이 들여다보면, 살단은 언제나 천살단이 가진 치밀한 조직망 속에서 움직인다. 천살단이 정보, 지리, 물자를 제공해 주고, 그 틀 속에서 힘을 쓴다.

그래서 살단의 위용이 두 배, 세 배로 불어난다.

그런데 귀검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혈천방에서 혈마가 겨우 실체 하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만한 힘이 천살단에도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야! 세상에 책사도 모르는 힘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럼 천살단주가 그만한 힘을 책사에게조차 숨겼다는 건데, 천살단주라는 사람 도대체 어떤 인물이야?”

“자상한 할아버지.”

“지랄! 무슨 할아버지가 손녀를 암살하냐?”

등여산은 피식 웃었다.

홀리는 남의 아픈 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푹푹 쑤셔대는 경향이 있다. 홀리가 생각하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그냥 말한 것일 거다.

하지만 홀리의 농담이 등여산에게는 상당히 아픈 부분이다.

천살단 단주는 정말 할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늘 친근하고 포근했다. 책사라는 직무가 있어서 어리광 같은 것은 부리지 않았지만, 가끔 그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잘한 일은 칭찬해주고, 잘못한 일은 감싸주는 분.

그런 분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벽 부검주를 시켜서 암살을 지시했다. 이번 기회에 등여산을 확실히 제거하겠다는 뜻이었다. 상당히 아프다.

거기에 등여산조차 모르는 힘이 있다?

그것이 뭘까? 천살단에는 금역이 금액이 두 군데 있다.

한 군데는 호발귀가 갇혔던 참회동이다.

참회동은 등여산도 가봤지만, 한적한 곳에 숨겨진 동굴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또 한 군데는 마공관이다.

마공관은 금역 중 금역이다. 마공관을 출입하기 위해서는 마공관주와 형당주가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 두 분이 열쇠를 동시에 내놓아야 한다.

등여산은 단주의 배려로 마공관을 들어가 봤다.

혈마록을 해독해야 하고, 마공을 연구해서 천살단 무공을 수정, 보완시킬 의무도 있었다.

마공관은 말 그대로 마서를 쌓아놓은 창고다.

마공관에는 마공이나 패공 비급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비밀 통로 같은 것도 없다.

천살단 금역 두 군데가 귀검이 말한 힘과는 전혀 무관하다.

등여산이 이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이 문제가 바로 호발귀 안위와 직결되어서다.

등여산이 말했다.

“혈천방주를 만나기 전에 이걸 풀어야 하는데. 이들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아야만 호발귀가 제대로 상대할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혈천방주에게 잡혀.”

그때, 호발귀가 걸어왔다.

“우리 책사 연인이 오시네.”

홀리가 등여산의 어깨를 딱 치고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등여산이 홀리 손을 잡았다.

“가지 마.”

“뭐? 호호호! 내가 가는 게 연인끼리 얘기하기 좋잖아?”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그냥 셋이 친구처럼 같이 지내.”

“친구?”

“그래. 친구.”

“바보. 그게 되냐? 그런 건 없어. 내가 물러설 때 순순히 받아들여. 그렇지 않으면 후회해.”

“나, 당분간 더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고. 너도 그러면 우리 전부 다 편하게 지낼 수 있어.”

등여산은 오직 호발귀만 염려한다.

호발귀가 혈마가 되었을 때, 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연인이 되는 것조차, 마음을 드러내는 것조차 꺼린다. 어떻게 보면 홀리의 눈치까지 살핀다.

홀리도 그럼 마음을 안다. 하지만 놀리는 것도 재미있다. 아니, 정말로는 호발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겉으로는 호쾌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앓고 있다.

“너 그 말 후회한다?”

“알아. 특히 너처럼 저돌적인 여자한테는 이런 말 하면 안 된다는 것 잘 알아.”

“그럼 포기하지 말고 뺏어야겠다.”

“그래.”

“넌 정말 바보네. 호발귀가 혈마가 되면 내가 죽이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아니, 믿어. 그러니까 호발귀에 대한 연심, 거두지 마. 계속 그를 아껴줘.”

‘그래야 호발귀가 혈마가 되었을 때 죽일 수 있잖아.’

홀리는 등여산이 하지 못한 말까지 들었다.

“하! 이런 바보.”

두 사람이 서로 호발귀를 양보하고 있을 때, 호발귀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뭐해? 어서 밥 먹어. 밥 먹고 출발하게.”

“겨우 그 말을 하고 온 거야? 연인에게 사랑을 속삭이려고 온 거 아냐?”

“저저…… 좌우지간 틈만 나면 놀려대니.”

호발귀가 머리 아픈 듯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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