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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62화 (162/500)

第三十三章 공적(公敵) (2)

“아함!”

혈천방주는 기지개를 길게 켜며 일어났다.

지난밤에는 아주 꿀잠을 잤다. 기분 좋게 꿈 한번 꾸지 않고 푹 잤다. 아니, 깨어나기 싫을 정도로 매우 달콤한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꿈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간만에 푹 잤군. 몸이 다 개운해.”

혈천방주는 팔을 휘둘러서 목 주변의 근육을 풀었다.

그때, 문밖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일어나셨습니까?”

“귀검?”

혈천방주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귀검이 살아서 돌아왔다. 그것도 이른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바로 보고한다.

벌써 무슨 일인가를 저질렀다.

- 도종점료(到鍾點了), 마상행동(馬上行動).

시간이 왔다. 즉시 행동하자.

일종의 행동을 촉발하는 문구다.

귀검은 이 문구에 가장 적합한 자다. 일단, 시간이 온 것을 정확하게 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늦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가장 적절할 때 움직였다.

시기를 잘 잡으니 행동하는데도 거침이 없다.

‘지금이다!’ 싶으면 가차 없이 행동한다. 죽일 사람을 죽이고, 쫓아낼 사람은 쫓아낸다.

이번에는 무슨 일인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군.”

“보고 드릴 일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기분이 매우 좋았는데…… 아마도 일진이 사나울 것 같군. 자넨 사람 기분 망치는 데는 일가견 있지. 뭔가? 아침 댓바람부터 보고할 일이?”

드르륵!

문이 양쪽에서 열렸다.

혈천방주는 열린 문을 통해서 마당 양쪽에 쭉 늘어서 있는 귀무살 무인들을 봤다.

천위대가 움직이지 않았다.

귀무살이 천화전(天和殿)을 차지할 동안, 방주를 호위한다는 천위대 무인들은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천위대 대장 조극범이 배반을 한 것은 아니다. 조극범의 인물 됨됨이는 누구보다도 혈천방주가 잘 안다. 천위대가 움직여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장악되었다.

조극범이 움직였다면, 귀검은 천위대까지 잘라냈다.

이것은 명확하다.

“일을 단단히 벌였군.”

혈천방주가 차분하게 말했다.

저벅! 저벅! 저벅!

귀검이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손에 들린 목함을 바닥에 놓았다.

귀검은 그제야 두 손 모아 읍했다.

“이게 뭔가? 고약한 선물일 것 같은데?”

“형전주의 머리입니다.”

“후후!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잖아?”

혈천방주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서 매우 놀라지 않았다.

목함을 봤을 때부터 사람 머리가 들어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귀검이 들고 온 머리라면 형전주일 것이다. 형전주는 본분에 맞지 않는 일을 많이 벌였다.

귀검은 굳이 형전주를 죽일 필요가 없었다.

형전주가 한 일은 혈천방 방규에는 맞지 않지만, 죽을 정도로 심하지도 않았다.

그저 잠깐의 일탈일 뿐이다.

형전주가 다소 오만했던 면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귀검이 돌아오는 즉시 정리된다. 귀검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면, 형전주는 당장 움츠러든다.

형전주는 일종의 본보기다.

누구라도 혈천방에 위해를 가한다면 그 즉시 죽이겠다는 협박이다.

방주와 잠자리까지 한 애첩이자 형전을 맡은 형전주까지 죽였는데, 누구인들 죽이지 못하겠나.

조심해라!

음문촌 사람들에 대한 경고다.

음문촌 사람들은 죽이면 싹 죽여야 한다. 한 명이라도 남겨두면 후환이 된다. 아니, 혈마 때문에라도 지금은 음문촌 사람들이 필요하다. 쳐낼 필요는 없지만 눌러둘 필요는 있다.

귀검은 형전에서 벌인 일뿐만 아니라 음문촌 사람들이 벌인 일도 알고 있다.

귀검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방주님 허락 없이 형전주의 머리를 받았습니다. 선참후계(先斬後啓). 용서 바랍니다.”

“자네는 어디를 갔다 왔으면 다녀왔다고 보고부터 해야지. 일부터 저질러?”

“죄송합니다.”

“쯧! 형전주가 너무 나갔으니 죽을 만하지. 그런데, 이번에는 귀무살도 너무 나갔어.”

혈천방주가 침상에서 일어나 걸어왔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목함을 집어서 탁자로 걸어갔다.

목함을 탁자에 놓고 뚜껑을 열었다.

목함 안에는 형전주의 머리가 들어있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듯했다.

“쯧! 어제 같이 자자니까 굳이 빼더니. 병기는 칼이군. 일도에 머리를 잘라냈어. 들어간 칼보다 나온 칼의 위치가 조금 높아. 위로 휘어졌군. 챔질이 조금 빨랐어. 많이 빠른 건 아니고 아주 조금. 이 정도 칼이면 냉혼도겠군.”

“제가 베었습니다.”

귀검이 대답했다.

혈천방주는 귀검의 말을 듣지 않았다.

“형전주는 죽여도 무방해. 하지만 내 여자는 곤란하지. 내 여자는 가족이야. 가족을 건드리면 누구라도 화가 나지. 나도 마찬가지고. 형전주가 내 아이를 갖고 싶었던 건 아나?”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자네 입장이고, 가족을 잃은 내 입장은 달라. 냉혼도. 책임져야지? 가라.”

짧은 명령이다.

순간,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던 귀무살 중에서 제일 앞자리에 서 있던 냉혼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귀무령, 먼저 갑니다.”

냉혼도가 짧게 말했다.

그는 어느새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목을 쭉 그었다.

푸아악!

피가 솟구쳤다.

냉혼도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의 머리를 자신이 직접 떼어내겠다는 듯 칼을 더 깊이 찔렀다.

그때, 뒤에서 강직한 음성이 들렸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칼이 날아왔다. 칼은 정확하게 냉혼도의 목덜미를 강타했다.

퍼어억!

냉혼도의 머리가 뚝 떨어졌다.

지켜보던 귀무살이 칼을 썼다. 그렇지 않으면 냉혼도가 죽을힘을 다해서 바둥거렸을 것이다.

냉혼도를 친 무인이 머리 잃은 동체를 받쳐 들었다.

다른 자가 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두 손으로 받들어서 육신 앞에 놓았다.

혈천방주는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귀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훗! 귀무살은 죽는 순간에도 귀무령에게만 보고하네? 참 대단한 충성이야.”

귀검은 침묵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닥만 내려다봤다.

“이번 일은 이것으로 용서하지. 이제 자네가 돌아왔으니 귀무살도 제 몫을 하겠군. 냉혼도가 이끌 때는 영 형편없었어. 호발귀를 데려오라고 했는데, 그걸 못해.”

또르륵!

혈천방주가 물잔에 물을 따라서 꿀꺽꿀꺽 들이켰다.

방주가 말했다.

“가서 호발귀를 데려와. 죽이지 말고.”

귀검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뜩잖은 명령이다. 하지만 방주가 내린 명령이다. 무조건 받들어야 한다.

혈천방주가 말했다.

“혈마 그거, 우리가 만들어내기는 아직 무리야. 아무리 만들어내도 소용이 없어. 진짜하고 차이가 크게 나. 이번에 혈마가 일 초에 나가떨어졌다는 소리, 들었나?”

혈천방주는 냉혼도의 죽음은 벌써 잊은 듯 태연했다.

“오다가 들었습니다.”

귀검도 차분했다.

“일 초야. 일 초. 혈마가 일 초반에 나가떨어졌어. 겨우 그런 걸 만들려고 이십 년, 삼십 년 그 애를 쓰면서 끙끙거렸으니. 도대체 우린 뭐 한 거야?”

“……”

“도대체 뭐가 부족했을까? 혈마도 사람인데. 살기 충만하고, 귀색혼령대법도 통했고.”

혈천방주가 귀검에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진작 호발귀를 죽였으면 우리가 만든 혈마로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야. 그러면 이렇게 힘들지도 않았잖아. 살단 총주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자를 놓아주었어.”

“……”

“이런 걸 보고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하는 거지. 자네, 내 명도 가끔은 존중해 달라고. 귀무살, 너무 나가지 않게 통제 좀 하고. 가 봐. 가서 호발귀를 데려와. 꼬맹이 얼굴이나 보자고. 아! 살아온 거, 축하해.”

탁탁!

혈천방주가 귀검의 가슴을 두들겼다.

귀검은 토굴을 걸어 내려갔다.

귀검은 음침한 곳을 싫어한다. 어두운 곳에서 음모나 꾸미는 자들을 경멸하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음문촌 사람들은 경멸 대상이다.

저벅! 저벅!

계단을 밟아 내려가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귀색무가 요란하게 번져 나온다. 사람을 깊은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미약이 자욱하게 깔렸다.

음문촌 사람들은 귀색무 속에서도 자유롭게 오간다.

“후욱! 훅! 후우욱!”

토굴 깊은 곳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음성이 아닌 것 같다. 상처 입은 짐승이 헐떡이는 소리로 들린다.

토초라는 여자가 혈마를 만들고 있다.

방주가 만들어 낸 실혼인은 모두 열이다.

놈들은 사람도 아니니 ‘개수’로 말해져야 한다. 열 명이 아니다. 열 개를 만들었다.

토초는 그중 네 개를 혈마로 만들었다. 그리고 두 개가 죽었다.

토초는 나머지 중에서 두 개를 혈마로 만들고 있다. 사내를 깔아뭉개고 위에 올라타서 연신 헐떡거린다.

‘더럽군.’

귀검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때, 귀색무를 뚫고 촌장이 나타났다.

“살아 돌아왔다는 말은 들었네. 명줄이 길군. 오자마자 일을 벌였다고? 그거 아마도 우리에 대한 경고겠지?”

촌장이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경고하러 왔다.”

“경고? 왔다? 자네는 어른에 대한 예의도 없나?”

“혈마로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귀무살을 이용하지 마라. 귀무살 앞도 가로막지 마라. 눈에 거슬리면 벤다. 음문촌, 자신들을 너무 믿지 마라.”

귀검이 차갑게 말했다.

“하하하!”

촌장이 크게 웃었다.

촌장은 귀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음문촌이 괜히 음문촌이 아니다. 혈천방과 쌍벽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혈마를 조종하는 혈마후가 있어서만은 아니다. 음문촌 사람들은 강하다.

귀검은 지금도 다른 자들의 체취를 느낀다.

주위에는 적어도 대여섯 명 이상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지 못했다. 귀색무 속에 숨어 있는데, 귀검의 안목까지 가린다.

아마도 촌장 자식들일 것이다.

이들의 무공만 해도 녹록지 않은데, 촌장에게는 마을 사람도 있다.

음문촌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촌장이 꼭꼭 숨겨놓았는데, 혈천방의 눈길을 철저히 피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일거에 휘몰아칠 때는 큰 분란이 생긴다.

음문촌은 이미 거대 세력이다.

혈천방 깊은 곳에 생각이 다른 거대 세력이 존재한다.

“귀검이 지옥유부검을 수련했다는 소리는 진작 들었지. 그 검으로 반야호신공을 깬 것도 알아. 살단 총주는 참 죽이기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후후! 하지만.”

촌장이 귀검을 쳐다봤다.

“그렇다고 막 나가면 곤란해. 우린 무시나 당하자고 온 것이 아니니까. 귀무살? 그까짓 것 이용할 수 있지 뭘 그래. 이용하면 벤다고? 후후! 그럼 언제 지옥유부검 한 번 구경하지.”

파팟!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촌장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촌장은 지옥유부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살단 총주가 죽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지옥유부검이나 반야호신공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아주 잘 아는데도 이렇게 말한다. 그만한 자신이 있는 것이다.

“언제든. 경고, 했다. 앞으로 귀무살에 찝쩍거리면 누가 되었든 예고 없이 벤다.”

말을 마친 귀검이 돌아섰다. 순간,

츠읏! 츳!

귀색무 속에서 예기(銳氣)가 출렁거렸다.

사방에서 예기가 일어나 귀검에게 집중된다. 호랑이가 달려들려고 움츠린 발에 힘을 준다.

그때, 촌장이 말했다.

“보내줘라. 경고하러 왔다지 않니. 말 몇 마디 하러 온 놈을 죽이려고 하면 쪼잔하지.”

귀검이 돌아서서 씩 웃으며 말했다.

“잘했어. 덕분에 당신 자식들, 조금 더 살 수 있게 됐으니까. 내 경고,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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