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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61화 (161/500)

第三十三章 공적(公敵) (1)

천위대(天衛隊) 대장(隊長) 조극복(趙克福)은 눈을 번쩍 떴다.

방 안에 누군가가 있다. 기척을 전혀 탐지할 수 없지만, 분명히 누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놈이 감히!’

조극복은 침착하게 생각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침소까지 침입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내부인조차도 침입하지 못한다.

특히 저녁이 되면 경계망이 다섯 겹에 걸쳐서 펼쳐진다. 동원되는 무인만 삼백 명이다. 특별한 날이라서가 아니라 평상시 가동되는 경계망이 그 정도다.

벌집처럼 치밀한 경계망을 뚫고 침입한 놈!

자신의 침상까지 들어온 놈이라면 지옥에 가서 염라대왕까지 죽일 수 있는 놈이다.

조극복은 침착하게 일어나 앉았다.

“누구냐?”

그는 침상에 걸터앉으며 차분하게 물었다.

“무인 감각치고는 꽤 무디군. 방심인가, 만심인가. 마음을 놓고 산다는 건 좋은 일이지.”

‘훗!’

조극복은 차갑고 굵은 음성을 접하고 전신에서 소름이 쫙 끼쳤다.

이 음성!

조극복은 이 음성을 잊지 못한다. 혈천방 방도라면 누구라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귀검!

“살아계셨습니까?”

조극복이 차분하게 말했다.

상대방이 귀검이라면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귀검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천위대 경계망을 돌파할 수 있다. 천위대는 귀검을 막지 못한다.

조극복은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

“모두 돌아가셨다고 믿었는데, 오직 귀무살만 믿지 않았죠. 귀무살 믿음이 맞았군요.”

“저승까지 갔다 왔지. 받아주지 않아서 다시 돌아왔어.”

“방주님은 뵈셨습니까?”

“아직.”

조극복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방주조차도 만나지 않고 자신의 침소부터 방문했다. 느낌이 좋지 않다. 아니, 느낌은 귀검을 접한 순간부터 좋지 않았다. 매우 불길했다.

“이렇게 늦은 밤에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로?”

“바둑이나 둘까 하고.”

조극복은 등잔에 불을 켜려고 했다.

“달빛이 좋지 않나. 달빛을 등불 삼아서 한 수 두는 것도 괜찮지 싶은데.”

불을 켜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죠.”

조극복은 탁자에 앉았다.

어둠 저편에서 날카로운 검기가 탁탁 튄다.

귀무살 귀무령 귀검이 바둑판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

바둑은 조극복이 즐기는 소일거리다. 맞상대는 없어도 된다. 혼자서 흑백 양쪽을 모두 둔다.

귀검이 말했다.

“내가 뭘 쥐어야 하지?”

“검이라면 당연히 백 돌, 하지만 바둑이라면 제가 백 돌입니다.”

“그러지.”

귀검이 흑 돌을 가져갔다.

“혹시 내가 잠을 깨웠나?”

“오늘 밤, 잠 못 자는 사람이 많습니까?”

“달빛이 시리도록 아름다우니까. 이런 밤이면 잠 못 자는 사람이 많겠지.”

이 순간, 조극복은 ‘검을 쥐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귀검을 상대할 자신이 없다는 생각도 일어났다.

귀검은 명실공히 혈천방 제일 검사다.

빈말이 아니다. 누구도 상대하지 못한다.

귀검과 일대일로 마주쳤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지금 이 방에는 단둘만 있다.

검을 뽑으면 죽는다.

하지만 때로는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검을 뽑아야 할 때가 있다. 천위대 대장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조극복이 말했다.

“달빛이 밝으면 개가 미친다는 말도 있습니다. 개가 주인을 물기도 할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알겠습니다.”

조극복은 백 돌을 가져와 앞에 놓았다.

귀검은 자신을 묶어놓기 위해 방문했다.

오늘 밤에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혈천방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니 즉시 천위대가 투입되어야 한다. 그곳을 하지 말라고 귀검이 직접 방문했다.

단, 방주를 공격하지는 않는다.

귀검은 자신이 하는 행동에는 막연하게 말하지 않는다. 옳다, 그르다고 딱 부러지게 말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방주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면 오늘 밤, 천위대는 침묵한다.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표적이 누구든 귀검이 직접 움직인 일이니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탁!

귀검이 바둑돌을 놓았다.

스스슷!

어둠 속에서 구름이 흐른다. 어둠에 묻힌 구름은 움직임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순간,

툭! 풀썩!

순찰을 하던 무인 두 명이 풀썩 쓰러졌다.

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허공을 가른 칼은 매우 날카로워서, 단숨에 숨을 끊어냈다.

쉿! 쉬이잇! 쉬잇!

사방에서 무인들이 나타나 담장 위에 올라섰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무인들이 담장 안쪽 상황을 살핀다.

담장 안은 조용하다. 기습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혈천방 무인 중 그 누구도 혈천방 안에서 누군가에게 공격당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경계 무인을 제외한 모든 무인이 잠자리에 들었다.

스읏! 슷! 슷!

동쪽, 남쪽, 서쪽, 북쪽…… 무인들이 사면을 장악했다. 경계 무인들을 모두 제거했다.

쉬이이잇!

어느 순간, 지붕 위에 올랐던 무인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일제히 살육을 시작했다.

“아아악!”

드디어 비명이 따져 나왔다.

이번 공격은 은밀함의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가장 빠르게 전멸시킨다.

“엇!”

형전주는 느닷없이 터진 비명에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악!

크아악!

비명이 계속 들려온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분명히 비명이 터지고 있다.

“어떤 놈이!”

형전주는 침상을 박차고 일어나서 검부터 잡았다.

누가 감히 형전을 기습하나. 어떤 놈이 형전 무인을 죽이고 있나.

형전을 기습한다는 건. 혈천방 본방을 정면 공격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누가 감히 이따위 행동을 할까. 내란인가?

혈천방 무인이라면 누구든 내란을 일으킬 수 있다. 모두 무공에는 자신이 있다는 무인들이고, 각기 상당한 조직이 있다. 그러니 누구든 기습은 가능하다.

문제는 기습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무공과 조직이다.

현재, 혈천방에서 방주를 능가하는 무공 고수는 없다. 혈천방 전체를 압도할 만큼 강한 조직을 가진 곳도…… 귀무살!

“이것들이 정말!”

형전주는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때 덜컹! 문이 열리면서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네년 목을 베러 왔는데.”

방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귀무살 부총령 냉혼도다.

혈천방에서 형전주를 ‘년’이라고 비하해서 부르는 자는 오직 냉혼도뿐이다.

“네 놈이 감히!”

“내가 말했잖아. 언제든지 칼을 받아줄 수 있다고. 너도 언제든 싸울 수 있을 것처럼 말하던데. 지금 해볼까?”

스읏!

냉혼도가 칼을 들어 올렸다.

“네 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감히 혈천방에서 피를 불러! 형전을 급습해!”

“네년은 형전 무인을 강호로 내보냈다. 형전 무인은 강호 출입이 금지된 것도 몰라? 그래서 네년을 죽이려는 것이고, 이런 죄명에는 방주님도 어쩌지 못해. 네년은 외통에 걸린 거야.”

“너희 모두 죽여버리겠어. 형전이 만만해 보이지?”

“솔직히 만만해 보이지. 지금 형전 애들 버러지처럼 죽는 거 알아? 이런 것들을 데리고…… 후후!”

“그래? 그럼 나도 죽여봐!”

쒜에에엑!

형전주가 급공을 펼쳤다.

검을 검집에서 뽑자마자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쳐올리는 힘을 이용해서 빙글 휘돌며 내리쳤다.

까앙! 깡!

순식간에 교합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쉬링!

형전주의 검이 냉혼도의 칼을 휘감았다.

휘감는다는 말은 검신으로 도신을 말아버린다는 뜻이다. 검신을 도신에 맞댄다. 그리고 검신으로 도신을 빙글빙글 말아 감는다. 뱀이 기둥을 둥글게 말듯이 말아 감는다.

그렇다. 형전주의 검은 낭창낭창 휘어지는 연검(軟劍)이다.

타앙!

형전주는 휘감는 힘을 이용해서 냉혼도의 칼을 퉁겨냈다.

냉혼도는 연검이 쳐낸 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비칠거리면서 물러섰다.

이번 일격은 힘으로 밀어낸 것이 아니다. 연검의 회전력을 최대한 이용한 공격이다. 형전주의 진기가 최소한 네 배 이상 증폭한 효과가 있다.

냉혼도는 칼 쥔 손이 찢어질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촤라라라락!

형전주는 검 끝을 부챗살처럼 넓게 펼치면서 압박해 들어갔다.

이것도 연검의 묘용 중 하나다.

손잡이를 굳게 잡고 약간만 진기를 쏟아내도 검 끝이 팔랑개비처럼 요란하게 움직인다.

냉혼도가 뒤로 물러서면서 발로 탁자를 차올렸다.

형전주는 일격에 탁자를 부숴버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압박해 들어갔다.

촤라라라라락!

연검이 더욱 요란하게 검음을 토해냈다.

방울뱀이 꼬리를 흔들듯이, 매미 날개처럼 얇은 연검이 검신을 파르르 떨었다.

타악!

냉혼도는 한쪽 구석에 서 있는 검대를 잡아당겼다.

우당탕!

검대가 무너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검대 역시 막강한 강기(剛氣)를 담은 연검 앞에서는 한낱 종잇조각처럼 가볍게 썰려 나갔다.

형전주는 승기를 잡았다. 그래서 계속 밀어붙였다.

이번 승기를 놓치면 오히려 냉혼도에게 되잡힐 것이라는 불안감마저 일어났다.

쒜에에엑!

연검이 광풍조락(狂風殂落)이라는 검초를 펼쳤다.

광풍이 일어나면 과일들이 떨어진다. 나뭇가지가 부러진다. 기와도 날아간다. 천년 거암도 버티지 못하고 굴러서 떨어진다. 모든 것이 죽어서 떨어진다.

파파파팟! 파파팟!

방안이 온통 연검의 그림자로 가득 찼다. 휘장이며 서가며 닥치는 대로 갈라냈다.

그 속에서 냉혼도가 힘들게 버티고 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도 겨우겨우 생명을 이어간다.

형전주가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귀무살 무공이 이것밖에……”

순간, 날카로운 칼날 한 조각이 광풍조락을 뚫고 불쑥 들어섰다.

“컥!”

형전주는 눈을 부릅떴다.

냉혼도의 칼이 가슴에 박혀있다.

“형전주라는 사람이 귀무살을 전혀 모르고 있었군. 귀무살은 무공이 강한 게 아니야. 싸움에 강해. 이런 소리는 수십 번도 더 들었을 텐데, 꼭 싸움을 시작하면 잊어버리더라고.”

“너, 너!”

“이번 일, 내가 주도한 게 아니다. 귀검께서 돌아오셨다.”

“뭐, 뭐라고!”

“네년이 편히 죽으라고 해주는 말이다.”

“으!”

형전주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귀무살이 형전 무인들과 형전주를 죽였다.

방주가 이런 일을 허락했을 리 없다. 한 마디로 귀무살은 방주 명령 없이 독단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니 이번 기습이 성공하더라도 귀무살 역시 숙청된다.

하지만 귀검이 살아서 돌아왔다면 말이 달라진다.

강호 출입이 금지된 형전이 강호에 무인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 토초를 도와서 호발귀를 공격했다. 물론 호발귀를 혈마로 만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먼젓번에 귀무살을 동원했는데, 그들이 말도 없이 빠지지 않았나.

형전은 오히려 그 일을 문책할 생각이었다. 이번 기회에 귀무살의 콧대를 눌러놓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역으로 당했다.

귀검이 형전의 규율위반을 문제 삼는다면 방주도 묵인할 공산이 크다.

완벽한 패배다.

“인제 그만 가라.”

쉬잇!

냉혼도가 가슴에 박힌 칼을 빼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휘둘렀다.

형전주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냉혼도는 손을 뻗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머리를 받아냈다. 그리고 준비한 목함에 넣었다.

냉혼도가 형전주의 머리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래서 내가 충고했잖아. 함부로 날뛰면 죽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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