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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58화 (158/500)

第三十二章 구혼음소 (3)

첫 번째 혈마는 홀리 때문에 죽은 것이나 진배없다.

홀리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시간을 끄는 바람에 제때 살인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명령은 없었지만, 혈마는 본능적으로 싸웠다.

살의를 가지고 달려든 것에 비하면 겨우 일할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사실상 전력을 다해서 싸웠다.

그런데도 일초지적!

두 번째 혈마도 단 일 초 만에 무너졌다.

호발귀가 이미 이성을 잃었다. 혈기에 침식당하고 있다는 게 눈에 빤히 보인다.

토초는 귀색무를 쓰고 싶었다.

홀리에게 귀색무를 빼앗겼지만, 귀색무가 그것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또 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귀색무를 사용하면 호발귀를 낚아챌 수 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홀리, 등여산, 도천패, 당홍을 막아줄 혈천방 무인들이 꼼짝달싹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된 것이 매복 장소에서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다.

그러니 홀리가 달려들어서 귀색무를 빼앗아가지.

호발귀를 낚아챌 좋은 기회인데…… 호발귀를 잡는 동안 홀리나 다른 자들이 들이닥치면 꼼짝없이 저승행이다. 그때는 저들도 손속에 사정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틀렸어!’

토초는 즉시 신형을 튕겨냈다.

호발귀의 다음 목표는 그녀였다.

혈마 두 명을 죽인 호발귀가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때마침 뒤늦게 매복 무인들이 경각심을 돋궈서 집안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혈천방 무인들은 토초가 이미 빠져나간 사실도 몰랐다.

그만큼 토초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의 본능이 집 안에 있으면 죽는다고 말했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가 이름 모를 농가 집안이다.

호발귀는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였다.

토초의 판단이 옳았다. 그녀가 재빨리 몸을 튕겨내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호발귀 검에 죽었다.

‘가짜는 상대가 안 돼. 저게 진짜인데. 저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거지? 저건 무공이 아니야. 힘이야.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준 힘, 천력(天力) 신력(神力)이야.’

토초는 눈빛을 반짝거렸다.

그녀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기회만 닿으면 호발귀를 낚아챌 심산이었다.

그래서 호발귀가 움직이는 모습을 세밀하게 지켜봤다.

홀리가 호발귀 앞에 섰다.

이것도 기회다. 홀리가 호발귀에게 귀색무를 쓰는 순간 좋은 기회가 생긴다.

홀리가 아무리 뻔뻔해도 귀색혼령대법을 만인 앞에서 펼칠 수는 없다. 단둘만 있는 장소로 가야 한다. 구혼음소를 각인시키려면 먼저 혈마후가 되어야 한다. 호발귀와 정사를 가져야 한다.

홀리가 단 둘만의 장소에 갔을 때 들이친다.

지금 자신은 상대가 안 되지만, 혈천방 무인들을 동원하면 홀리 정도야.

그 후에 호발귀를 차지한다.

아직도 기회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런데 홀리가 귀색무를 쓰지 않는다. 귀색무를 손에 쥔 것까지 확인했는데, 뿌리지 않는다.

“저 멍청한 년이! 빨리 뿌려, 이 년아!”

홀리는 결국 귀색무를 뿌리지 않았다. 그리고 호발귀를 엉뚱한 여자가 채갔다.

“저런 멍청한 년!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얼굴만 반지르르해서 하는 짓거리라고는!”

토초는 화가 팍! 치밀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귀색무를 쓰지 않았다면 혈마는 여전히 주인 없는 사내다. 엉뚱한 여자가 혈마를 채갔지만, 보나 마나 혈마 손에 죽을 게 뻔하다.

혈마가 어떤 존재인지 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식으로 혈마를 데려가지 않는다.

혈마는 반드시 나타난다.

어디선가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 혈마가 한 짓이다. 길 가는 사람을 이유 없이 죽였다거나, 마을을 초토화했다거나, 산에 있는 맹수들이 모두 도륙되었다면 혈마 짓이다.

그때 호발귀를 장악하면 된다.

“혈마가 나타나면 즉시 알려줘! 빨리! 곧 인근에 나타날 거야! 어서 가라니까!”

토초는 혈천방 무인들을 다그쳤다.

호발귀가 사라지자 혈천방 매복자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그들은 혈마 두 명이 너무 손쉽게 죽자, 전의를 상실했다. 싸울 힘을 잃어버렸다.

더욱이 까닭 모를 공포도 겪었다.

분명히 공격하려고 매복을 했는데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호발귀와 홀리가 지나가는데,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혈마가 싸우기 좋도록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어 놔야 했는데, 사전 작업을 하지 못했다.

어떤 기운에 짓눌린 게 아니다. 누구도 자신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싸울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싸울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워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이 치미는 것은 분명히 공포다.

그리고…… 혈마의 죽음에 이어서 호발귀가 터트리는 잔인한 손속을 보았다.

혈마가 이토록 끔찍한 줄은 몰랐다.

이것이 혈마 본색이라면 혈마는 이 세상에 나타나면 안 된다.

호발귀가 떠나자 혈천방 마인들도 병기를 지니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 호발귀 동행이 몇몇 남았지만 그대로 공격할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다.

혈천방 무인들은 전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 * *

호발귀에게는 정보망이라는 것이 없다. 정보를 전해줄 사람도, 조직도 없다.

도천패도, 당홍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흩어지면 뿔뿔이 흩어진다. 두 번 다시 모일 기회가 없다. 어쩌다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면 만날 수 있으려나? 누군가 사건을 저지르면 그때 또 만날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러지 않는 한, 영영 만나지 못한다.

“여기 밖에 없나?”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어딘지도 모르는 산속에서 호발귀를 기다린다. 마을을 공격하기 전에 머물렀던 곳이다.

만약 호발귀가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혹 이곳을 찾아올지도 모른다.

사실, 호발귀의 상태를 본 사람이면 그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등여산은 벌써 호발귀 손에 죽었을 것이다.

호발귀가 이상행동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다. 곧 혈마 본색을 드러낼 것이고, 등여산은 시신도 남기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는다.

이제 곧 어디선가 혈마가 나타난다.

호발귀가 살인귀로 변해서 무지막지한 무공으로 세상 전체를 휩쓸어 버릴 것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혈마후에게 조정되는 것도 낫겠다 싶다.

혈마후에게 조정되면 특정 세력만 죽인다. 이백 년 전 혈마는 정도 무림만 멸살했다. 마도와 사도는 혈마 휘하로 모여들었고, 막강한 위세를 떨쳤다.

비록 그런 세상일 망정, 일반 사람들은 무사하지 않나.

호발귀는 무인, 일반인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죽일 것이다. 눈에 띄는 모든 생명체를 멸살시킬 것이다.

“이거 참!”

해자수가 답답해서 하늘만 쳐다봤다.

“며칠만 기다려 보지 뭐. 혈천방을 쫓는 일이 아니면 딱히 할 일도 없잖아?”

당홍이 말했다.

호발귀나 등여산이 이곳으로 찾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며칠 동안은 기다릴 생각이다.

“귀색무를 왜 안 썼어?”

당홍이 물었다.

“쓰려고 했는데, 목숨을 걸었잖아요.”

“책사?”

“혈마가 되는 걸 보느니 차라리 죽겠다는데, 목숨 걸고 호발귀에게 죽여달라는데, 그걸 어떻게 말려요. 언니도 봤으면서. 언니 같으면 말릴 수 있어요?”

“휴우!”

당홍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도천패가 슬쩍 끼어들어서 말했다.

“내가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문주놈하고 책사하고 사실은 이미 콩작콩작한 사이거든. 동굴에서 문주놈이 미쳐서 확 덮쳤는데. 옷도 다 찢어지고.”

도천패가 차마 말을 잇기 힘든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어?”

당홍이 놀라서 물었다.

“그게…… 문주놈이 눈이 확 돌아서 그냥 겁탈을…… 책사 옷도 다 찢어지고, 살이 다 드러나서…… 너무 순식간이라서…… 그래서 내가 그놈한테는 눈독 들이면 피곤하다고 말했던 건데. 이건 문주놈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

도천패가 홀리를 힐끔 쳐다봤다.

“호호! 호호호호!”

홀리가 웃긴 듯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도천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홀리를 쳐다봤다. 이게 전혀 웃긴 말이 아닌데.

“그러니까 지금 호발귀가 책사를 겁탈했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게…… 믿지 못하겠지만, 아! 나도 믿기 싫다니까. 내 눈으로 보지만 않았어도……”

“그 바보가요? 호호호! 그럴 만한 주제라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 바보, 그러지도 못해요. 뭔가 잘못 알았어요.”

홀리는 도천패가 직접 봤다는 데도 믿지 않았다.

음문촌 사람들은 남녀 관계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이다. 혼외 관계도 상당 부분 인정한다. 그래서 동침을 한 남녀가 보이는 모습을 잘 안다.

호발귀나 등여산은 지금까지 손 한 번 잡지 않았다. 서로 애틋하게 연모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숨기려고 한다.

이런 모습은 동침한 남녀가 보이는 행동이 아니다.

호발귀가 등여산을 겁탈했다면, 그리고 두 사람의 지금 마음이라면 벌써 알콩달콩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옆에 있어도 개의치 않았을 거다.

정말로 겁탈이든 동침이든 무엇이든 같이 잤다면 애정 문제에서는 거칠 것이 없다.

확신한다.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

책사의 옷이 찢어졌다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책사가 호발귀 장삼을 입어야 했던 것도 내막을 들어보면 정말 별 것 아닐 것이다.

홀리가 말했다.

“호발귀, 내가 마음에 상처받을까 봐 염려하는 거 알아요?”

“알지.”

당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발귀가 정말 등여산을 겁탈했다면 혈마 문제 때문에 나와 계약하지도 않았어요. 그때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을 테니까 생각할 것도 없고.”

“그러네. 뭘 잘못 본 거 아냐?”

당홍이 도천패에 힐문했다.

“똑똑히 봤다니까. 찢어진 옷을 누가 볼까 봐 조심스럽게 땅에 묻고…… 어휴!”

홀리는 도천패의 말을 못들은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호발귀가 내 걱정을 얼마나 하는 줄 알아요? 걱정 미치게 많이 하지. 정말 미치게 많이. 걱정하는 얼굴, 말투. 그런 걸 볼 때마다 사람 미친다니까. 훗!”

홀리가 웃었다.

도천패와 당홍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저, 저거 호발귀 아냐? 호발귀 맞지!”

해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러자 모두 일제히 일어나서 두 사람을 쳐다봤다.

맞다. 호발귀와 등여산이다. 두 사람이 그들이 머무는 곳으로 걸어왔다.

“어떻게 멀쩡하네? 저렇게 멀쩡할 수도 있나?”

당홍도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쯤 등여산이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호발귀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어도 등여산을 죽인 죄책감 때문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등여산이 일행을 보고 크게 손을 흔든다.

“정말 멀쩡하네. 어떻게 빠져나왔지? 완전 미치광이였는데.”

해자수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눈을 비비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쉬이잇!

도천패는 단숨에 호발귀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도천패가 대뜸 물었다.

“그럼. 문주인데 괜찮지. 이까짓 거에 당할까 봐?”

“야! 문주놈이면 문주놈답게 걱정 좀 그만하게 하면 안 되냐! 무슨 문주놈이 항상 걱정을 달고 살아! 네 놈 때문에 내가 제명에 못 죽겠어!”

“미안. 그런데 그 걱정,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네.”

호발귀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완전히 빠져나온 건 아냐?”

호발귀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쩝! 난 멀쩡하게 오길래 완전히 빠져나온 지 알았지. 그럼 뭐 어때! 다음에 또 걸려들면 다시 빠져나오면 되지. 우리가 슬쩍 빼내는 건 천하제일이잖아. 그런 식으로 빠져나오면 돼.”

“비켜! 우리도 회포 좀 풀게. 멀쩡하네?”

홀리가 등여산을 보며 말했다.

“걱정했지? 미안.”

“아니, 걱정은 왜 해? 그런 거 하나도 안 했어. 우리 마침 술 마시려던 참인데. 같이 한잔할래?”

홀리가 등여산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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