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二章 구혼음소 (1)
“끄으으윽! 카아아악!”
호발귀는 연신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만 지른 게 아니다. 행동은 더욱 빨랐다. 어느새 집안으로 뛰쳐들어가서 안에 있던 사람 네 명을 무참하게 죽였다.
쒜에엑!
집 안에 있던 사람이 그냥 죽을 수 없다는 듯 검을 쳐왔다.
너무 느리다! 그렇게 느린 검으로는 기어가는 굼벵이도 잡지 못하겠다.
파라라락!
마영심도가 터졌다.
악마의 그림자가 번뜩 빛난다 싶은 순간, 이미 상대방은 옆구리, 가슴, 폐, 목을 찔렸다.
호발귀는 피의 굶주린 늑대다.
“까아아아악!”
호발귀가 또 비명을 내질렀다.
생기로 혈마 두 명을 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했다. 전에 한 명을 치고 난 후에도 온산이 폐허가 될 정도로 발광했었다. 전신 기력을 모두 쏟아내고 완전히 탈진한 후에야 광기가 멈췄다.
지금은 연속으로 두 명이나 타격했다. 혈기가 급격하게 치솟았고, 호발귀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성이 휘둘렸다. 더욱이 계속해서 피를 보고 있다.
지금은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다.
스읏!
호발귀가 또 사람 기척을 발견했다.
호발귀는 혈천방 무인만 죽이는 것이 아니다. 혈천방도가 묶어놓았던 마을 사람까지 죽인다.
집 안에 있던 네 명 중 두 명이 밧줄에 묶인 상태였다.
전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이고, 무공을 수련하지 않은 무인이지만 가차 없이 죽였다.
애꿎은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래도 호발귀는 검을 휘두른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쒜에에엑!
호발귀를 향해 검이 날아들었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느린 검으로 누구를 죽이겠다는 것인가!
스윽! 꾸르르릉! 꽈앙! 퍽퍽퍽퍽!
검을 쳐온 무인은 연속에서 주먹에 강타당했다. 왼손, 왼손, 왼손, 왼손…… 왼손만 열 번 이상을 뻗어냈고, 그 주먹이 고스란히 복부에 틀어박혔다.
구뢰마권 유감없이 터졌다.
“아! 어떡해!”
홀리는 안타까운 마음에 두 발을 동동 구르며 탄식했다.
호발귀가 선을 넘어섰다.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마인의 세계로 건너갔다.
호발귀가 늘 말하던 죽음을 안겨줄 시간이다.
까아아아악!
호발귀가 괴물처럼 울부짖었다.
홀리에게는 그 소리가 인제 그만 죽여달라는 소리로 들렸다. 더 버티지 못하겠다는 절규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너무 빨리 왔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도 호발귀는 이런 상황을 염려했다. 홀리도 걱정했다.
하지만 정말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이번에도 다른 때처럼 무사히 지나가겠지 하고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커어억!”
집안에 매복해 있던 혈천방 무인이 검을 맞고 비틀거리면서 뛰쳐나왔다.
호발귀는 무인을 쫓아가며 두 번, 세 번 계속 격타 했다.
퍽! 퍽! 퍽!
무인은 검을 맞는 동안에 절명했다. 그런데 쓰러지지도 못했다. 그가 쓰러지려고 하면 밑에서 쳐올린 검이 그를 퉁겨 올렸다. 그리고 또 가격했다.
호발귀는 피에 굶주렸다.
이것이 진짜 혈마다. 이백 년 전, 무림을 휩쓸었던 혈마의 본래 모습이다.
‘이건 안 돼. 더는 가능성이 없어.’
홀리는 방금 토초에게서 빼앗은 귀색무와 음고를 양손에 들고 망설였다.
음고를 사용하면 호발귀를 죽일 수밖에 없다.
귀색무를 사용하면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살릴 것 같다. 호발귀가 그토록 싫어하는 혈마 상태에서 말 잘 듣는 노리개가 된다.
‘죽이는 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잖아. 일단은 제압부터.’
홀리는 검은 가죽 주머니에서 귀색무 단환을 꺼냈다. 그리고 손에 넣고 비벼서 가루로 만들었다.
그때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쉬잇!
호발귀 앞에 등여산이 내려섰다.
그녀는 검도 뽑지 않았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호발귀를 향해 걸어갔다.
“저런 미친!”
도천패가 황급히 등여산 앞을 가로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도천패는 오히려 홀리에게 꽉 잡혔다.
“가서 어쩌려고?”
“뭣! 지금 그걸 말이라고!”
“가서 같이 죽게?”
“……!”
“호발귀를 이길 수 있어? 뒤로 물릴 수 있어? 호발귀 앞에서 먹잇감을 빼내 올 수 있어?”
연속된 질문에 도천패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호발귀는 보위도 알아보지 못해. 지금 가면 죽어. 그러니까 쫌! 그냥 봐줘!”
홀리의 나중 말은 울음까지 섞여 나왔다.
홀리는 말을 하면서도 호발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손에 귀색무를 들고 사용할까 말까 갈등하는 중이다. 사용하면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 수밖에 없어서 안간힘을 다해서 최선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도천패는 자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홀리 말이 맞는다. 무공으로 따지면 호발귀의 일초지적도 되지 않는다.
혈마가 순식간에 쓰러졌다.
만약 혈마가 도천패에게 달려들었다면, 도천패는 그렇게 쉽게 무너뜨리지 못했다. 아니, 쓰러트리기는커녕 도천패가 무너졌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토록 빠르고 강한 칼을 단숨에 무너트렸다.
무공으로는 호발귀를 가로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책사를 살릴 수 있는 거지?”
“호발귀는? 죽여?”
“……”
이번에도 도천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당홍이 도천패를 끌어당겼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큭큭큭! 큭큭!”
호발귀가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등여산을 향해 걸어왔다.
등여산은 그런 호발귀를 보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사람들한테 이러지 마.”
그녀가 조곤조곤 말을 꺼냈다.
“왜 이렇게 죽여? 제정신으로, 무공으로 죽여. 그러면 아무도 뭐라고 안 해. 이건 아니야. 지금 뭘 하는지도 모르잖아. 정말 살인귀가 될 거야?”
“큭큭큭!”
호발귀는 등여산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호발귀는 이미 이성을 잃었다. 두 눈에서는 오직 살광만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사람이 기운 하나 변했다고 이렇게 달라지나?
살기, 혈기에 휘감긴 호발귀는 악마로 보인다. 그 누구도 앞에 서기가 두렵다.
등여산이 호발귀에게 걸어갔다.
“이렇게 혈마가 되면 어떡해. 나보고 그걸 어떻게 보라는 거야? 너무 잔인하잖아.”
등여산은 여전히 호발귀를 혈마로 보지 않았다. 완전히 미친 살인광인데도 예전의 호발귀를 대하듯 차분하게 말했다.
“킥킥!”
쒜에에엑!
호발귀가 달려들었다.
등여산의 가슴에 검을 꽂아 넣으려고 한다.
혈천도법 중 가슴을 십자(十字)로 쪼갠다는 십자탈명(十字奪命)이 펼쳐졌다..
“뭐해!”
도천패가 부지불식간 소리쳤다.
홀리도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귀색무를 뿌리려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녀는 봤다. 등여산을.
‘책사, 정말 죽으려고 해.’
등여산은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입가에는 웃음이 슬프게 흘러나온다. 호발귀를 쳐다보는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다. 호발귀가 불쌍해서 흘리는 눈물이다.
홀리는 등여산의 마음속에 호발귀가 어느 깊이로 자리 잡고 있는지 확실히 알았다.
등여산은 혈마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혈마가 되었다가 정상인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단 일 푼만 있어도 이런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등여산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안다.
이별의 순간이다. 아니, 이미 이별은 시작되었다. 호발귀는 등여산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미 의식이 무너졌다. 몸뚱이만 호발귀일 뿐이다.
그래서 호발귀 손에 죽으려는 것이다.
‘그래. 죽는 것도 좋아.’
홀리는 손에 들고 있던 귀색무를 땅에 흘려버렸다. 그리고 음고를 꺼내 들었다.
등여산이 마음의 결정을 쉽게 해 주었다.
모두 다 결정할 때다.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호발귀가 혈마로 변하는 순간, 세 사람이 죽게 되어 있다.
‘죽어. 호발귀는 내가 죽일게. 내 몫은…… 할게.’
홀리는 호발귀가 등여산을 죽일 때까지 음고를 쓰지 않고 지켜볼 생각이다.
등여산은 호발귀에게 다가섰다.
정말 희한하게도 호발귀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악마처럼 날뛰는데 전혀 두렵지 않았다.
검이 가슴을 찢으려고 한다.
그녀는 오히려 가슴을 활짝 열었다. 호발귀가 찌르기 쉽게 검을 향했다.
쒜에에엑!
검이 날아온다.
호발귀의 검을 봤으면 좋겠는데, 번쩍! 빛나는 섬광밖에 보이지 않는다.
‘됐어. 후회 없어.’
등여산은 눈을 감지 않았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호발귀의 얼굴을 봐야 한다.
호발귀의 검은 인정사정없이 터질 것이다. 순식간에 숨을 끊을 것이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잡고 얼굴을 쳐다보아야만 한 번이라도 보고 죽는다.
쒯!
검음이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어깨가 화끈거렸다.
이제 고통이 시작되나 보다. 의외로 고통스럽지 않은데? 상당히 아픈 줄 알았는데.
슈웃!
호발귀가 쳐낸 십자탈명은 그녀를 찌르지 않았다. 어깨를 찢어내기는 했지만, 귀밑을 스치며 지나갔다.
덜컹!
그녀의 등 뒤로 검이 떨어졌다.
호발귀가 검까지 놓아버렸다. 그리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
순간, 등여산은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호발귀는 자신을 알아봤다.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안아주었다. 이성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는데……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
“고마워.”
등여산이 호발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매서운 일격을 쏟아냈다.
퍼엉!
촌음명이 호발귀의 단전을 가격했다.
“정신이 들면 내 어깨를 깨물어. 나 놓지 말고. 꼭 껴안고 있어.”
퍼엉!
“크윽!”
호발귀가 신음을 쏟아냈다.
“정신이 돌아와?”
호발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안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퍼엉!
등여산은 촌음명을 또 쏟아냈다.
단전으로 들어간 진기가 즉시 뇌로 향한다. 호발귀의 뇌를 바늘로 변한 진기가 찌른다. 뇌 신경을 가닥가닥 끊어놓을 정도로 강력한 타격이다.
“커어억!”
호발귀가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문득, 등여산은 이곳에 적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혈마가 또 있을지 모른다. 혈천방 무인들이 득실거리는 것은 사실이다. 호발귀를 혈마로 만들려는 무리도 있다. 토초는 귀색무를 소지했다.
‘귀색무가 터지면 어쩔 수 없이 혈마가 되어야 해.’
이곳, 굉장히 위험하다.
등여산은 호발귀의 허리춤을 붙잡고 전력을 다해서 신형을 쏘아냈다.
쒜에에엑!
그녀는 마을을 지나쳐 뒷산으로 달려갔다.
‘이건 기적이야!’
홀리는 등여산이 사라진 뒷산을 쳐다봤다.
허탈했다.
등여산은 귀색무나 음고 없이도 호발귀를 혈마에게서 끄집어냈다.
아직 완벽하게 끄집어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혈마가 살기를 누르고 검을 놓았다.
결과는 기적이다. 하지만 그 전에 등여산이 이번 일에 목숨을 내놓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두 사람…… 훗! 어쩔 수 없네. 내가 포기해야지. 목숨까지 내놓는데 어떻게 갈라놔.”
홀리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