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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55화 (155/500)

第三十一章 본색(本色) (5)

터엉! 터엉! 터엉!

역천금령공이 일정한 음률로 진동한다.

혈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줄 때는 요란했는데, 정작 그들 앞으로 다가서자 오히려 움직임을 멈췄다.

스읏! 슷!

호발귀 앞으로 사내 두 명이 나타났다.

한 명은 얼마 전에 싸운 적이 있는 혈마다.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자다.

두 명 모두 검은 동공이 매우 작게 축소되었다.

두 눈을 보면 흰자위만 가득하다. 보일 듯 말 듯한 깨알 하나가 동공이다.

혈마는 이성과 본능을 잃었다. 하지만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잠자고, 배설한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을 유지한다.

두 사람을 보면 이성을 잃은 것 같지도 않다. 눈에 흰자위가 많다는 것만 빼면 보통 사람과 똑같다.

말을 하지 않고 다짜고짜 행동에 옮기는데,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은 있다. 워낙 과묵해서 말을 하지 않는 사람, 절정검(絶情劍)을 수련해서 감정 없이 검을 쓰는 사람 등등 혈마와 비슷한 사람을 찾자면 그리 어렵지 않다.

혈마는 사람이다.

혈천방만 아니었으면 지금도 웃고 떠들고, 술을 마셨을 멀쩡한 사내들이다.

토초는 혈마를 네 명 만들었다고 했다.

멀쩡한 사람 네 명을 살인 도구로 만들었다.

토초, 이 여자는 도저히 안 되겠다. 일행에게는 놓아주자고 했지만, 눈에 띄면 바로 죽일 참이다.

스릉!

호발귀는 검을 뽑았다.

사실 호발귀에게는 이미 혈마록에 적힌 무공이 소용없어졌다. 원충 노인의 팔십일수도 나약한 무공이다. 역천금령공이 이령귀화에 실려서 터져나가면 누구도 막지 못한다.

생기로 생기를 친다. 상대방이 무공을 쓰기 전에 원정부터 공격한다. 그러니 이것보다 강력한 무공이 있을 수 없다. 어떤 무인도 막지 못한다.

파앗!

역천금령공이 이미 거세게 일어났다.

스읏!

홀리는 뒷담을 넘어 집안으로 잠입했다.

호발귀는 그녀가 잠입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모든 신경은 혈마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역천금령공이 혈마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움직임을 탐지하지 못한다.

이런 부분을 호발귀와 함께 걸어오면서 눈치챘다.

호발귀는 자신이 혈마로 변하면 죽여달라고 했다. 그럴 수 있다. 그리고 혈마 호발귀를 죽이는 데는 귀색무가 필요 없다. 귀색무는 혈마를 조정할 때만 소용된다.

홀리는 귀색무 대신에 음고(淫蠱)를 지니고 다녔다.

살을 파고 들어가서 회음혈에 달라붙는 벌레인데, 음고가 기생하면 사람이건 동물이건 아주 강력한 발정상태가 된다. 춘약(春藥) 중 최상위를 차지한다.

혈마를 살기에서 욕정으로 눈을 돌리는 데는 음고만한 것도 없다.

혈마가 마음껏 욕심을 토해내는 동안 구혼음소를 읊는다.

일단 절대적인 위치, 혈마후의 위치를 차지한다. 호발귀의 뇌리에서 일체의 모든 것을 망각시킨다. 그리고 오직 혈마후만 존재하게 만든다.

혈마의 주된 관점에 살기에서 혈마후로 옮겨진다.

혈마를 죽이기는 쉽다. 아주 쉽다. 혈마에게 자진 명령을 내리면 혈마는 즉시 천령개(天靈蓋)를 후려친다. 자신이 자기 머리를 부수면서 죽는다.

여기서 음고와 귀색무는 차이가 현격히 벌어진다.

귀색무는 일시 욕정이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살기에서 욕정을 눈을 돌릴 때만 나타난다. 그리고 혈마후가 자리 잡은 후에는 살기처럼 명령이 있을 때만 일어난다.

귀색무는 제 역할을 마친 후에는 소멸한다.

음고는 살아있는 벌레다. 그러므로 욕정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혈마후를 인식한 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계속해서 욕구를 해소하려고 한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진 명령을 내릴 것이니.

하지만 홀리는 호발귀를 살려야 할 경우도 생각했다. 반드시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혈마가 되었어도 좋게 통제하면 되지 않을까?

이 부분, 혈마에게 살인 명령을 내리지 않을 때 혈마가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혈마후가 최고 위치를 차지한다면 살기도 누그러지지 않을까 추측한다.

호발귀는 토초를 놓아주자고 했지만, 홀리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토초에게서 귀색무를 받아내야 한다.

귀색무 속에는 촌장만 알고 있는 약초 네 가지가 배합되어 있다. 그 약초가 무엇인지는 오직 촌장만 안다. 귀색무를 사용하는 토초도 모른다.

홀리가 귀색무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토초가 가지고 있는 것도 촌장이 만들어준 것이다.

음문촌 사람들은 철저하게 서로를 믿지 않는다.

비기라거나 귀색무 제조비법 같은 것은 꼭꼭 숨겨놓고 발설하지 않는다.

스으읏!

홀리는 은밀히 집 뒤쪽으로 잠입한 후, 창문을 소리 나지 않게 열었다.

토초가 보였다.

생각한 대로 토초는 호발귀와 혈마 싸움에 정신이 집중되어 있다. 혈마에게 명령을 내려야 해서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전혀 없다.

스으으읏!

홀리는 창문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순간,

투욱! 툭툭! 툭!

그녀의 등 뒤에서 묵직한 것이 풀썩풀썩 떨어졌다. 큰 울림은 아니고 작은 쌀가마니가 옆으로 쓰러지는 듯했다.

홀리가 살짝 고개를 들어봤다.

무인 네 명이 쓰러져 있다.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움켜잡고 사지를 바르르 떤다. 입에서는 하얀 거품을 쏟아내고 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경련만 극심하게 일으킨다.

홀리 배후를 습격하려던 자들이다.

호발귀가 말한 대로 토초 주변에는 많은 무인이 깔려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호발귀가 건드려놓은 생기 때문에 대다수가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지극히 일부다.

홀리는 멀리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고 있는 당홍에게 살짝 손을 들어 주었다.

그녀가 어느새 마을로 진입해서 뒤를 봐주고 있다.

차앙! 창!

토초와 홀리는 거의 동시에 검을 뽑았다.

하지만 홀리가 한 호흡 빨랐다. 토초가 검을 뽑았을 때, 홀리는 이미 검을 그녀의 목에 댄 후였다.

“후후! 많이 컸네. 기습도 다 하고.”

토초가 웃었다.

토초와 홀리, 예전에는 팽팽한 호적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한쪽 팔을 잃었다. 더욱이 아직도 잘린 팔이 그대로 붙어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오른팔이 잘렸으니 왼팔로 검을 뽑아야 하는데, 여전히 오른팔을 움직였다.

“살려줄게.”

홀리가 말했다.

“그냥 살려줄 리는 없고. 원하는 게 뭐야?”

“귀색무.”

“뭐? 호호호! 계집애, 너 그럴 줄 알았다. 저놈 보니까 데리고 놀고 싶지?”

“한마디만 더 하면 죽이고 뒤질 거야. 네 품을 뒤져보면 나오겠지.”

스읏!

홀리가 검을 들이밀었다.

그녀는 정말로 토초를 죽이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귀색무를 얻는 게 더 선급했다. 품 안? 음문촌 사람들은 귀중한 것일수록 은밀히 보관한다. 절대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두지 않는다.

“너 급하긴 급했구나? 어쭙잖은 공갈까지 치고.”

“맞아. 공갈이야.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는 빨리 죽이는 게 낫지.”

파락!

홀리가 검을 쳐들었다.

검에서 살기가 묻어나왔다. 어두운 살기가 토초의 목을 깊게 파고들었다.

토초는 밖을 쳐다봤다.

호발귀와 혈마가 싸우려고 한다. 즉시 혈마에게 지시를 내려야 한다. 지금 홀리하고 실랑이를 벌일 틈이 없다.

급하기는 토초도 마찬가지였다.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혈마는 아주 손쉽게 죽는다. 아무 저항도 하지 않는 목석이 된다. 본능적인 움직임은 일으키겠지만, 그 정도로는 호발귀를 상대하지 못한다.

“뒤. 서랍. 네 번째.”

토초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토초는 남의 집에 와있다. 생면부지 사람 집이다. 그런데도 남의 집 서랍 속에 귀색무를 넣어놨다.

이 순간, 홀리는 또 한 번 갈등했다. 그냥 토초를 죽여?

그때, 토초가 홀리의 마음을 읽은 듯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날 죽이면 혈마가 너를 공격해. 네가 공격 일 순위로 바뀌어. 혈마후가 죽었으니까. 네가 죽으면 호발귀도 미쳐서 날뛸 거고, 그러다가 저놈도 혈마가 되겠지? 어차피 이 세상 미쳐서 돌아가. 그래도 검을 쓸래?”

스읏!

홀리가 검을 거두고 서랍으로 갔다.

토초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서랍 속에 검은 가죽 주머니가 있고, 그 안에서 단환 형태로 만들어진 귀색무 냄새가 풍겼다.

“나중에 봐. 아마 우린 꼭 봐야 할 거야.”

스륵!

홀리는 침입했던 대로 창문을 통해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터엉!

생기가 빠져나가 혈마의 생기를 쳤다. 순간, 호발귀에게 다가오던 혈마가 움찔거렸다.

호발귀는 즉시 달려들었다.

쒜에엑!

팔십일수 중 일지공이 전개되었다.

잡념을 배제하고, 뜻을 손가락에 모으며, 힘을 급하게 쓰지 않는다.

퍼억!

일지공이 혈마의 손등을 쳤다.

순간, 혈마의 손등에서 우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호발귀는 이미 검을 혈마의 목에 댔다. 그리고 좌에서 우로 빙글 호선을 그렸다.

투욱!

혈마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혈마가 단 일 초 만에 죽었다.

호발귀가 생기로 생기를 친 이유도 있지만, 토초가 제때 명령을 내리지 못한 탓도 있다.

터엉!

호발귀는 즉시 신형을 돌리며 두 번째 혈마를 타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기 타격이 통하지 않았다. 혈마가 갑자기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다.

팟!

‘이형환위(移形換位)!’

호발귀는 즉시 역천금령공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이령귀화에 금빛을 실었다.

파아아앗!

호발귀의 전신에서 역천금령공이 쏟아져 나갔다.

사람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지만, 혈마 눈에는 선명한 금빛이 보일 것이다.

“켁!”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혈마가 어깨를 움츠렸다.

이번에는 생기 타격이 제대로 이루어졌다. 혈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빛이 급격하게 스러졌다.

슈웃!

호발귀는 왼손으로는 천변마라수를 펼치면서 오른손으로는 혈천도법을 전개했다.

첫 번째 혈마처럼 두 번째 혈마도 일격에 쓰러트릴 심산이다.

혈마는 이미 생기에 타격을 받아서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무인으로 치면 진기가 일시 소멸한 상태나 마찬가지다. 생기가 스러졌다는 점에서 진기 소멸보다 더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런데,

“큭!”

혈마를 공격하려던 호발귀가 갑자기 신음을 쏟아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검을 들고 있는 손이 중풍이라도 걸린 것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고, 사방에서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혈기! 혈기가 일어났다.

‘이런!’

호발귀는 이를 꽉 깨물었다. 아랫입술까지 잘끈 깨물어서 붉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혈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단 거칠게 일어나고 있는 살기부터 죽여야 한다. 그때,

쒜에에엑!

잠시 움츠렸던 혈마가 쾌속하게 급공을 취해왔다.

조금 전, 호발귀가 펼치려고 했던 혈천도법이다. 몸을 머리, 몸통, 다리로 분리한다는 혈신삼분 초식을 펼치고 있다.

호발귀는 극심한 살기가 치솟았다.

혈마를 깨끗이 죽이고 싶지 않다.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다. 뼈라는 뼈는 모두 분질러 버리고 싶다.

“카아아아아악!”

호발귀는 거칠게 비명을 쏟아냈다.

하지만 몸은 이미 혈마를 향해 쏘아졌다.

혈마도 지지 않고 마주쳐 왔다.

차앙! 창창창창!

혈천도법과 혈천도법이 부딪쳤다. 그 순간, 팔십일수 천변마라수가 혈마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빠악!

머리뼈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호발귀는 순간적으로 검초를 혈천도법 혈흉개공으로 바꿨다.

퍽! 퍽퍽퍽퍽! 퍽퍽!

검이 육신을 난타했다.

혈흉개공은 가슴에 바람구멍을 낸다는 초식이다. 한데 혈마는 가슴뿐만이 아니라 몸통 전체에 바람구멍이 났다. 적어도 이십여 차례에 걸쳐서 검에 꿰뚫렸다.

혈마는 즉사했다.

“까아아아악!”

호발귀는 괴성을 내지르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살아있는 자!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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