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章 뇌격(腦擊) (5)
귀색무는 단순한 미혼약이 아니다.
‘생기를 건드리고 있어!’
호발귀는 귀색무가 좋지 않다는 것을 당장 알았다. 정신을 잃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원정을 직접 건드린다.
귀색무는 생기하고는 숙적이다.
음문촌 사람들은 혈마를 바로 옆에서 모셨다. 혈마후가 혈마를 가지고 놀 때, 바로 그 옆에서 온갖 수발을 다 들었다. 귀색무도 그때 알았을 것이다.
음문촌 사람들이 혈마 조정법에 능숙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귀색무는 정신을 잃게 하는 동시에 성욕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정신은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육신이 가진 본능 중 성욕을 극대화한다.
이 부분만큼은 독섬칠공으로도 어쩔 수 없다.
“으으!”
호발귀는 신음만 쏟아냈다.
묘한 것이 있다. 호발귀에게는 귀색무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혼절 시켜야 하지만 혼절 되지 않는다. 독섬칠공이 단단히 제 몫을 해주고 있다.
성욕이 극대화되어야 하는데, 성욕 대신에 살기가 일어난다.
호발귀에게는 생기를 건드리는 모든 기운이 살기로 바뀐다. 혼탁한 기운인 혼기(混氣), 성욕을 자극하는 춘기(春氣), 분노를 일으키는 화기(火氣), 싸우고 싶다는 투기(鬪氣)까지 상당히 많은 기운이 살기로 둔갑한다.
하물며 혼기와 춘기가 가득한 귀색무를 앞에 두고 역천금령공을 일으켰으니 말할 것도 없다.
역천금령공을 일으킬 때, 생기가 노출될 것은 예상했다.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만 혈마를 상대할 수 있으니까.
생기로 생기를 타격했기 때문에 혈마를 그토록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가장 우월한 능력으로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렸다. 그러니 이길 수밖에 없다.
쉬이이잇!
호발귀는 무턱대고 신형을 날렸다.
사람이 없는 곳.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달려가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를 것이다.
전신 기력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살기를 터트린다.
살기로 변한 생기가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생기가 텅 비어서 죽은 시신이 될 때까지 무조건 쏟아낸다.
전에는 효과가 있었다.
쒜에엑! 쒜에엑!
검을 휘두른다.
만약 주위에 사람이 있다면 대단히 안 좋은 장소에 있는 것이다.
호발귀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나무나 바위나 늑대나 사람이나 똑같이 베는 물체로 보인다. 그러니 제발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쒜에에엑!
정신없이 검을 쏟아냈다.
이 세상이 밉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적이다. 모두 베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것들이 나를 벨 것이다. 봐라. 모두 합심해서 공격해 오고 있지 않나.
“죽엇!”
쒜에에엑!
세상을 향해서 분노가 쏟아져 나갔다.
지금 호발귀의 광기는 광인 수준을 넘어섰다.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할 미친놈이 되어서 화를 터트린다. ‘저놈을 말리려면 죽여야 해.’라는 생각이 치민다.
퍼억!
나무가 움푹 팼다. 바위도 부서져 나갔다.
쨍강!
드디어 검도 부러졌다.
이렇게 미친 듯이 발광을 하면 검은 반드시 부러진다.
칼도 부러지고 창도 부러진다. 손에 쥔 건 모두 다 부러진다. 어떤 병기든 다 부러진다.
그다음부터는 주변에 널린 모든 것이 흉기가 된다.
바위를 들어서 바위를 내리찍는다. 부러진 나뭇가지로 사상을 후려쳤다.
이게 혈마의 분노다.
이런 식으로 검을 사용하면 주변에 남아나는 것이 없다.
혈마는 사람만 죽이는 것이 아니다, 전각이며 집기 비품이며 농작물이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그야말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다.
아니다. 폭풍 정도로는 설명이 안 된다. 천군만마가 일시에 들이닥쳐서 짓밟은 것 같다.
그러니 지금 혈마가 일으키는 혈겁은 가짜다.
진짜 혈마가 일으키는 혈겁을 보면 그 누구도 말을 잇지 못한다. 너무 놀라서 입만 쩍 벌리게 된다. 미친놈이니 어쩌니 하는 말도 하지 못한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자리 잡지 못한다.
쒜에에에엑! 퍼어억! 퍼억! 꽝! 우르릉!
호발귀는 어딘지 모를 절곡을 폐허로 만들었다.
“하악!”
호발귀가 드디어 거친 숨을 토하며 무너졌다.
이제 더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결국…… 이렇게 되나.’
토초 옆에 장승처럼 서 있던 혈마가 생각난다.
곧 그런 모습이 되어야 하나? 그러다가 지금처럼 미친 짓을 벌이게 되고.
방금 그는 혈마였다.
검을 쓰면서 이성을 찾지 못했다. 정신없이 역천금령공이 쏟아져 나갔다. 생기가 전신 기력을 모두 끌어내어서 쏟아붓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이게 혈마지 무엇이 혈마인가.
영구적인 혈마와 순간적인 혈마 차이만 있을 뿐이다.
“확실히 네가 나보다 유리하네.”
등여산이 말했다.
“내가 유리하다고 했잖아. 미안한데…… 지금 가봐야겠어.”
홀리가 말했다.
“가봐.”
“괜찮아?”
“괜찮아. 정말 괜찮아. 너라서 안심이야.”
홀리가 팔을 들어서 등여산의 팔을 쓰다듬었다.
“호발귀, 잘 부탁해.”
등여산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러자 홀리도 등여산처럼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호발귀하고 강변을 산책한 적이 있어.”
“그랬어?”
“그날. 내가 혈마와 싸운 날. 혈마를 물리치고 난 후, 호발귀하고 강변을 걸었어.”
“풋! 좋았겠네?”
“좋았지. 같이 걸은 적이 없잖아. 얼마나 좋았는데. 그런데…… 걷다 보니 팔짱을 끼고 싶은 거야. 근데 못 끼겠더라. 같이 걷기는 걷는데, 이 남자 마음속에는 다른 여자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차마 못 하겠더라고.”
“우리 무슨 운명인지 모르겠다.”
“그러게. 이러니 내가 널 원망하지. 너만 없었으면 쟤 망설이지 않고 유혹했을 텐데.”
“나도 네가 원망스러워.”
“내가? 왜?”
“너를 몰랐다면 난 지금 호발귀에게 달려갔을 거야. 아무것도 해줄 게 없지만, 그래도 옆에 있어 줘야 하니까.”
“풋! 그럼 피차일반이네? 간다.”
“그래.”
홀리와 등여산은 서로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박! 사박! 사박!
홀리가 천천히 걸어왔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등여산은 호발귀를 홀리에게 맡기고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떠나갔다.
현장에는 귀색무에 중독된 일반인이 서른 명이나 있다. 또 숲에 귀무살이 있다. 혼절한 무인들도 곧 깨어날 것이다. 당홍과 도천패, 해자수만으로는 힘들 수 있다.
자칫 공격이라도 시작되면 굉장히 위험해진다.
현장에는 한 사람이라도 손길이 더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좀 풀려?”
홀리가 폐허로 변한 주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호발귀는 대답하지 않았다. 홀리가 다가온 것을 알면서도 멍하니 하늘만 쳐다봤다.
“나 조금 전에 두려웠는데.”
“……”
“말로 널 죽이게 될 거 같아서.”
“귀색혼령대법이지?”
호발귀가 불쑥 말했다.
“알았어? 그런 걸 쓸데없이 왜 물어보고 그래.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말해주지 않을 때는 곤란한 일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안 돼?”
“……”
“이제 알았으니 내가 더 징그럽겠네?”
“귀색혼령대법…… 혈마를 조정할 때는 펼쳐야 한다지만, 죽일 때도 사용하나?”
“일단 너를 잠재워야 하니까. 맞아. 사용해야 해.”
호발귀는 침묵했다.
혈마가 되면 죽여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런 말도 못 하겠다.
실이 그렇다면 홀리에게 너무 심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자신은 죽으면 그만이지만 홀리는 평생 어떤 흔적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죽여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죽기는 해야겠고, 마음은 자꾸 등여산만 쳐다보고.
호발귀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쳐다봤다.
깨알처럼 펼쳐진 별들이 너무도 태연하게 빛을 뿜어낸다.
* * *
정확히 예정된 순서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혈마는 호발귀의 상대가 안 될 줄 알았다. 혈마가 무너지면 토초도 무너진다. 하지만 호발귀도 무사하지 못한다. 귀색무 때문에 정신없이 살기가 치밀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상황이 가늠된다.
호발귀가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있다.
무인도 죽이고, 인질도 죽인다. 토초도 죽이고. 혈마도 죽인다. 완전 광인이 된다.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홀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즉시 귀색혼령대법을 시전한다.
그때 그 순간을 노려서 호발귀를 낚아채는 방법이 있다.
두 번째는 딱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다.
귀색무에 살기를 느낀 호발귀가 자리를 피하는 경우다.
그러면 귀무살은 남은 자들을 친다. 등여산을 비롯해 뒤에 남은 자, 다섯 명을 공격한다.
그렇다. 이번 함정의 주요 공격 대상은 호발귀가 아니다. 호발귀 곁에 있는 사람들이다.
윗분의 전략은 호발귀 주변에 있는 사람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다.
주변을 정리해서 호발귀를 외톨이 늑대로 전락시킨다. 홀로 세상을 떠돌게 한다. 그러다 보면 공격할 기회가 훨씬 많아진다. 지금처럼 머리 아프지 않아도 된다.
호발귀 곁에 있는 사람들은 무공이 강하다. 안다. 하지만 귀무살도 강하다. 저들 한 명당 귀무살 세 명이 달라붙는다면…… 어떻게 질 수 있나?
딱 예상했던 대로 일이 벌어졌다. 호발귀가 뛰쳐나갔다.
귀무살은 일제히 공격태세를 갖췄다.
그런데 의외의 변수가 발생했다. 등여산과 홀리가 현장을 팽개치고 호발귀를 쫓아갔다. 현장에는 당홍과 도천패, 해자수만 남아서 쓰러진 자들을 보살폈다.
그렇다고 변한 건 없다. 세 명이라도 벤다.
귀무살 열다섯 명은 일제히 움직였다. 그때, 귀무살의 신경을 건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딱! 딱! 딱!
쇠붙이로 바위를 치는 소리다.
한데 그 소리가 너무 귀에 익었다.
‘이 소리는!’
귀무살들은 서로를 마주 쳐다봤다.
그들은 눈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맞아! 그 소리야!
소리에 대한 확신이 들자,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공격을 포기했다. 그리고 스르르 방향을 바꿔서 소리가 울린 곳으로 스며들었다.
스스스스슷!
좌우로 갈라서 있던 열다섯 명이 일제히 한곳으로 모였다.
그들은 곧 무심히 앉아서 검으로 바위를 치고 있는 한 사람을 찾아냈다.
사내는 검을 어깨에 얹고 앉아있다. 손가락으로 검집을 툭! 퉁겨 올렸다가 떨군다. 그러면 검집이 바위에 부딪히면서 딱! 하고 명쾌한 소리를 울린다.
“영주님!”
“살아계셨군요!”
귀무살들이 왈칵 반가움을 쏟아냈다.
귀무살 귀무령 귀검, 그가 살아서 돌아왔다.
그는 멀쩡하다. 어느 한 군데도 다치지 않았다. 대폭발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너무나 멀쩡하다.
“이번 일, 방주님의 명령이냐?”
귀검이 차게 물었다.
오랜만에 수하들을 봤는데도 반갑다거나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당연한 듯이 지금 하는 일부터 물었다.
“그렇습니다!”
귀무살이 대답했다.
“방주님 직접 명령이냐?”
“전해 들었습니다.”
“누가 명을 데리고 있나?”
“……”
이번에는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딱! 딱! 딱!
귀검이 검집으로 바위를 쳤다.
맑은소리가 정적을 일깨웠다.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영원히 같은 소리가 반복될 것 같았다.
“형전주로 추측됩니다.”
귀무살이 말했다.
“이번 일은 여기서 접는다.”
“네.”
귀무살은 어느 한 사람 이의를 표시하지 않았다.
귀무살에게 귀무령은 절대적인 존재다. 방주 말은 듣지 않아도 귀무령 말은 듣는다.
귀검이 일어섰다.
그는 호발귀가 사라진 방향을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무심히 고개를 돌려서 숲을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