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章 뇌격(腦擊) (3)
도천패와 당홍은 홀리와 혈마의 싸움을 봤다.
발각되지 않을 만큼 멀리 뚝 떨어져서 보았기 때문에 세세한 초식까지 구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혈마의 움직임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다는 사실은 알았다.
“저거 잡을 수 있어?”
당홍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말했다.
“힘들겠는데.”
도천패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혈마의 빠름을 잡을 자신이 없다.
“저 검을 막을 수는 있고?”
“그것도 힘들어. 독은 어떻게 안 될까?”
“혈마는 온몸이 약물로 뭉쳐졌어. 근육, 신경, 뼈. 온몸에서 약물 냄새가 진동해. 아마 독도 안 통할 거야.”
“그럼 결국 우리는 걸리면 안 된다는 거네.”
도천패가 피식 웃었다.
싸움이라고 해봐야 겨우 십 합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지만 혈마의 진가가 단숨에 파악되었다.
혈마와 부딪치면은 당홍과 도천패가 합공을 취해도 힘들다.
독이 안 통하고 도천패의 칼이 안 통한다.
뭐 이런 놈이 있나 싶다.
사실 주위에도 이런 자가 있다. 호발귀가 있지 않나. 호발귀와 검을 맞댈 필요가 없어서 생각하지 않았다 뿐이지, 호발귀와 싸울 생각을 하면 매우 답답해진다.
혈마가 혈겁을 저지르는 장면도 봤다.
당장 뛰쳐나가서 살겁을 막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처럼 일어났다.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하지만 이건 뭐라고 해야 할지.
노루가 호랑이를 만난 느낌이다. 너무 차이가 크게 벌어져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다.
혈마가 검 쓰는 걸 봤다.
혈마는 일반인을 죽이든 무인을 죽이든 똑같이 최선을 다한다. 혈마에게는 사람에 대한 기준이 없다. 어린애와 어른에 대한 기준도 없다. 모두 다 똑같이 빼앗을 생명일 뿐이다.
혈마는 생명을 끊는 것이지 무인과 싸우는 게 아니다.
그러니 일반인을 죽일 때도 전력을 다한다.
다른 혈마와 싸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서 검을 휘두른다. 상대가 농부라고 해서 특별히 가볍게 상대하지는 않는다.
혈마가 그런 식으로 검을 쓰기 때문에 혈마의 무공을 아주 똑똑히 파악할 수 있었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강하다.
혈마와 마주 섰다고 생각하고 칼을 휘둘러봤다. 혈마의 공격을 막아봤다.
결과는 마찬가지다. 도저히 혈마의 검을 막을 수가 없다. 태허문주나 형의문주처럼 일 검에 베인다. 이쪽에서 일 촌을 움직일 때, 혈마는 일장을 움직인다.
상대가 안 되는 초강적이다.
도천패와 당홍은 멀리멀리 뚝 떨어져서 혈마를 쫓았다.
태어나서 이토록 무기력하기는 처음이다.
당홍과 도천패 앞에 호발귀가 나타났다.
모두 다 모였다. 이리저리 흩어지고 갈라진 지 참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뭐가 어째! 강화에 뭐가 있어!”
도천패가 그때 일을 잊지 못하겠는지 만나자마자 냅다 고함부터 내질렀다.
도천패와 당홍은 호발귀 주위를 맴돈 지 오래되었다. 멀리서 떨어진 곳에서 호발귀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면서 말한 것은 그날 이후 처음이다.
“미안!”
호발귀가 씩 웃었다.
“내 네 놈만 만나면 당장 멱살부터 잡으려고 했거든! 일단 귀싸대기부터 후려칠 생각이었는데! 너 산 줄 알아! 이게 어디서 사람을 속이고 그래!”
“하! 이거 문규가 개판이네. 보위가 문주에게 꼬박꼬박 반말을 해요. 조사님이 보시면 땅을 치고 통곡하실 거야. 문파가 왜 이 지경이 되었냐면서.”
“뭐야!”
“이거 문규를 다시 세우든가 해야지.”
호발귀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도천패를 쏘아봤다.
“솔직히 말해봐. 너 이 중에서 내가 제일 만만하지? 다른 사람한테는 다 쩔쩔매면서 나한테만! 어휴! 이게 정말!”
도천패가 호발귀 앞으로 다가와서 불룩 나온 배를 쑥 내밀었다.
퉁!
호발귀가 배에 떠밀려서 뒤뚱 물러섰다.
어색함은 단박에 가셨다. 모두 옛날 모습 그대로 돌아갔다.
“혈마는 어디 있어요?”
등여산이 물었다.
“저 앞에. 그런데 아무래도 찜찜해. 꼭 누가 또 있는 것 같은데, 너무 멀어서 파악이 안 돼.”
당홍이 대답했다.
토초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살펴보려면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하지만 혈마 때문에 접근할 수가 없다. 안전거리에서 대략 직감으로 눈치채야 한다.
“꼭 누군가 있는 것 같단 말이야.”
당홍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언니도 참. 뭘 그런 걸 고민하고 그래. 우리에게 냄새 잘 맡는 사냥개가 있잖아.”
홀리가 당홍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사냥개?”
“토초, 혈마. 또 누가 있어?”
홀리가 호발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서 대답하면 내가 사냥개가 되는 거지?”
호발귀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대답 안 해도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잖아. 이미 사냥개라고 인정했는데? 호호! 몇 명이나 있어?”
홀리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좌측에 일곱, 우측에 여덟. 토초와 혈마까지 모두 열일곱.”
호발귀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언니, 맞지? 사냥개.”
“맞네.”
홀리와 당홍, 그리고 등여산까지 모두 웃었다.
“문주, 그런 것까지 읽을 수 있어? 여기서 저긴 거의 이백 장이나 떨어져 있는데, 사람이 보여?”
도천패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저 정도 읽는 것은 기본 아냐? 도대체 대력금강 말고는 배운 게 없나 보네?”
호발귀가 놀렸다.
생기로 생기를 감지하는 것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진기로 진기를 느끼는 것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르다. 진기로 진기를 파악하려면 나의 내공이 닿는 거리로 들어가야 한다. 또 내가 먼저 진기를 흘려서 여타 진기를 탐색해야 한다.
생기는 굳이 생기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
멀리서 연기가 피어나는 것을 보는 것처럼 푸른 빛이 일렁거리는 것을 보기만 하면 된다.
물론 호발귀가 말한 인원 속에는 짐승도 포함된다.
저들이 개를 한 마리씩 데리고 있다면 사람 숫자는 절반으로 감소한다.
생기 측면에서는 개나 사람이나 똑같다.
빛깔이 같고, 강도가 같다. 다만, 무인일 경우에는 생기에 다른 기운도 실린다.
살기, 혈기, 투기처럼 맹렬한 기운이 섞이면 푸른 빛이 강하게 일렁거린다. 흡사 물결이 흔들리는 것처럼 푸른 빛이 이리저리 크게 흔들린다.
호발귀가 말한 인원은 생기 숫자다.
생기 속에 포함된 진기 강도가 매우 높다. 살기가 지나치게 강해서 푸른 빛이 요동친다.
“열다섯 명이라면 음문촌 사람은 아냐. 음문촌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같이 다니지 않아.”
홀리가 말했다.
“내 생각에는 귀무살이 아닐까 하는데. 꽤 강해.”
호발귀가 말했다.
“이렇게 해. 숨어 있는 자들이 귀무살이라면 우리도 어느 정도는 대응할 수 있어. 나와 당 언니는 우측을 맡고, 보위께서는 좌측을 맡아주세요. 그 사이에 둘이 공격해. 호발귀는 혈마를, 홀리는 토초를. 토초가 음문촌 사람이니까. 어때?”
호발귀가 홀리가 싸움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귀무살을 막아선 사람들이 위험하다.
“다른 위험은 없을까?”
해자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건…… 없어.”
호발귀가 다시 한번 혈마가 있는 곳을 살폈다.
다른 생기는 엿보이지 않았다. 혈마가 네 명이라고 하지만 이곳에는 한 명밖에 없었다.
이 정도의 함정이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모두 이른 저녁을 먹었다.
밥을 지어서 먹을 수는 없고, 건포(乾脯)를 물에 불려서 천천히 씹어먹었다.
어두워지면 기습한다.
날이 밝을 때 공격해도 무방하지만, 숨어 있는 자가 귀무살이라면 충분히 조심해야 한다.
자칫 상처라도 입으면 곤란해진다.
이런 일쯤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끝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생기 숫자가 급속도로 불어났다.
“잠깐!”
호발귀가 미간을 찡그리며 앞을 살폈다.
잘못 보지 않았다. 생기가 부쩍 많아졌다. 적어도 오십 명은 훌쩍 넘는다. 그렇다면 공격을 보류해야 한다.
“여기 있어. 살펴보고 올게.”
“잘못 본 거 아냐?”
“……”
“잘못 볼 리가 없지만, 너무 급작스러워서. 나 같으면 오십 명을 투입하느니 차라리 다른 혈마 한 명을 더 보태겠어. 그게 아무래도 더 나을 것 같은데.”
등여산이 말했다.
“일단 살펴보고 올게.”
호발귀는 일행을 남겨두고 살며시 앞으로 나갔다.
말은 살펴보고 온다고 했지만, 상황이 닿으면 단독으로라도 공격할 생각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혈마만큼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음!”
호발귀는 침음했다.
생기가 갑작스럽게 불어난 것은 맞다. 하지만 무인이 아니다. 저들은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다.
토초가 인질을 한 무더기나 끌고 왔다.
토초 앞에 서른 명쯤 되는 사람들이 꿇려 앉혔다. 그리고 십여 명쯤 되는 무인이 그들 목에 검을 붙이고 있다. 여차하면 즉시 베겠다는 뜻이다.
“나와!”
토초가 말했다.
“나와!”
무인 십여 명이 토초의 말을 받아서 힘껏 소리 질렀다.
“갈수록 태산이군. 정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러니.”
호발귀는 토초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쉬이잇! 쉿!
등 뒤에서 파공음이 들리며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다가왔다. 무인들이 내지르는 함성을 듣고 쫓아온 것이다.
“뭐야?”
홀리가 대뜸 물었다.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호발귀가 있는 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환히 보였다.
“저거 지금 뭐 하자는 거지?”
해자수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토초가 다시 말했다.
“너 온 것 안다. 나와. 너 혼자 와. 허튼수작하면 이 사람들 다 죽일 테니까 알아서 해. 이 자들이 죽어도 좋다면 어쩔 수 없고. 하지만 이 자들만 죽는 게 아니야. 안 나오면 열 개 마을에서 대략 칠팔백 명쯤 죽을 거야.”
무인들이 그녀가 한 말을 힘껏 복창했다.
토초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에는 화탄이 들려 있었다. 인근 마을에 신호를 보낼 생각이다.
주변 마을에도 이미 무인들이 깔려 있다.
혈천방이 애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무인을 동원했다.
“우리가 나타날 걸 어떻게 알았지?”
해자수가 말했다.
“강릉에도 혈천방 사람이 있으니까,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고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강릉을 떠난 후에는 쫓아온 사람이 없는데. 정말 어떻게 알았지?”
등여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행은 없었다 미행하는 자가 있었으면 진작 눈치챘을 것이다.
‘혈마. 혈마다.’
호발귀는 혈마를 쏘아봤다.
혈마가 자신을 느끼고 있다. 이곳에 자신이 왔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혈천방도가 아니다. 혈마, 저자의 느낌이다. 최대한 혈마와 비슷하게 만들었다더니 생기를 느끼는 것인가?
“내가 나갈게.”
호발귀가 말했다.
“위험해!”
등여산에 재빨리 말했다.
호발귀는 등여산 대신 홀리를 보며 말했다.
“홀리. 부탁해.”
호발귀가 홀리를 쳐다봤다. 홀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호발귀만 쳐다봤다.
호발귀가 혈마 무공을 사용하려고 한다는 건 익히 짐작된다. 그리고 혈마가 될지도 모를 정도까지 심하게 사용할 생각이라는 것도 알겠다.
예상했던 모든 일이 때가 되면 하나씩 일어난다.
호발귀가 혈마가 되고, 정말 그를 죽여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호발귀가 홀리에게서 눈을 떼며 말했다.
“제일 먼저 토초의 팔을 잘라낼 거야. 화탄이 쏘아지면 안 돼. 그런 후, 혈마를 공격할 거야. 그동안 책사와 홀리는 오른쪽 귀무살을 막아줘. 형수님과 형님은 왼쪽 귀무살을 막고.”
“형님?”
도천패가 얼굴을 활짝 펴며 웃었다.
“저 사람들은 버리는 거야? 그대로 하면 저들이 당할 텐데?”
홀리가 잡혀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아니. 저들은 베지 못해. 이건 내가 장담하고. 모두 귀무살을 막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까, 저들은 해자수께서 맡아주시죠?”
호발귀가 해자수를 쳐다봤다.
“나? 나 혼자 열 명을? 에이! 어림도 없어?”
해자수가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미 호발귀는 일어서고 있었다. 이미 그렇게 결정 났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