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147화 (147/500)

第三十章 뇌격(腦擊) (2)

토초는 호발귀의 경고를 정면으로 무시했다.

팔암(八巖)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했다.

팔암 마을은 일반 농부들이 모여서 사는 지극히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밥 좀 해.”

체구가 산만한 여인이 불쑥 문을 밀치고 들어서며 다짜고짜 밥을 해내라고 했단다.

밤이 깊은 시간이다. 저녁을 먹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모두 잠자리를 펴고 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다.

밤늦은 시간에 누가 찾아온 것도 귀찮은데, 무작정 밥을 해내라니. 쌀이라도 맡겨놨나? 그리고 언제 봤다고 반말인가. 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실례해도 될까요? 남은 밥이 있으면 한 끼 주실 수 있으신지. 좋은 말이 참 많은데 명령조로 무조건 밥을 지어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아니지 싶다.

“아니, 이렇게 막무가내로 말씀하시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딱 한 마디 했단다.

사실, 토초 같은 여인은 누가 봐도 산적을 연상시킨다. 힘도 셀 것 같고, 칼도 잘 휘두를 것 같다. 시비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피하는 게 상책으로 보인다.

그런 여인에게 시비를 걸 수 있는 농부는 없다.

그저 약간 기분 나쁨을 표현하는 말? 약간의 저항? 그런 종류에 불과한 말이었다.

그런데 토초에게는 그런 저항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내 말을 깔아뭉개네? 그러잖아도 일진이 사나운데, 비위를 건드리고 있어. 죽여!”

그리고 혈겁이 시작되었다.

집에는 농부 부부와 농부의 부모, 그리고 자식 다섯 명까지 모두 아홉 명이 있었다.

그들 아홉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지는데 딱 두 호흡 걸렸다.

“귀찮아. 모두 죽여.”

두 번째 떨어진 말은 팔암 마을을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옆집 사람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혈마를 맞이했다. 그들은 자신이 왜 죽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 말을 전한 사람은 농가 부부의 어머니다.

칠순 넘은 노파가 일격에 죽지 않고 간신히 숨을 붙이고 있다가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물론 그 말을 하고는 절명했다.

사실 혈마에게 검을 맞고 오랫동안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기적이 아니다. 혈마가 목숨을 붙여놓았다.

자신이 한 일을 세상에 전하라고 일부러 손속에 약간의 사정을 남겼다.

그날 밤, 형의문(形意門)이 무너졌다.

형의문은 오수(吳須)에 위치한다. 팔암 마을에서 한 시진 정도 떨어진 곳이다.

형의문은 이미 멸문한 태허문과 입장이 비슷하다. 과거에 성세를 떨쳤다가 다소 위축되어 있다는 점도 같다. 거리도 상당히 가까운 편이다.

형의문은 태허문과 왕래가 잦은 편이었다.

한데 멸문까지도 비슷했다.

같은 사람에게 멸문당했고, 살아남은 사람이 전혀 없다는 사실도 같았다.

그들은 치열하게 반격한 것 같다.

여기저기 병기가 널려 있고, 이를 악물고 싸운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혈마를 막지 못했다.

모두 전멸당했다. 팔암 마을 사람들이나 무공을 수련한 무인이나 죽은 모습이 똑같았다.

팔암 마을과 형의문이 몰살당할 무렵, 호발귀는 강릉 한복판에 모닥불에 피워놓고 담요만 깐 채 누워있었다.

“모두가 다 볼 수 있도록 장작불을 활활 살려야 해. 너무 불길이 세서 불나면 어떻게 하나 싶을 정도로 눈길을 잡아끌어야 해. 잠도 모닥불 옆에서 자. 담요만 깔아놓고 자면 되잖아.”

등여산이 말했다.

그 말을 쫓아서 장작을 십 층이나 쌓아 올렸다. 그리고 불길을 댕기자 화마(火魔)가 확 피어났다.

“그냥 불만 쫴. 꼼짝하지 말고 불만 쬐면 돼. 쉽지?”

“불길이 너무 쎄. 뜨거워서 견디지 못하겠어.”

“그래도 누명 쓰는 것보다는 낫잖아. 누명을 쓰면 어지간해서는 벗길 수 없어.”

그녀 말대로 몸이 어둠에 묻히지 않도록 유의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발귀 일행을 봤다. 도심 한가운데서 불길을 일으켰으니 보지 않을 수 없다.

해자수가 준비한 마른 장작은 바싹 말라 있어서. 불길이 활활 치솟았다, 새벽녘까지 꺼지지 않았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뭐 하는 거야?”

“이젠 별짓들을 다 하네.”

호발귀는 아침까지 모닥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하면 당장 등여산이 가로막았다.

“조금만 참아.”

이렇게 들떠나지 않았다

그날이 혈마가 혈겁을 일으킨 날이다.

이제 강릉 사람들은 호발귀가 혈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았어?”

등여산은 대답하기 전에 홀리부터 흘깃 쳐다봤다.

“괜찮아. 말해. 너 우리 음문촌 사람들 인간으로 보지 않는 거, 알아. 할 말 있으면 해.”

홀리가 툭 쏘듯이 말했다.

“음문촌 사람들을 좀 연구했는데.”

“연구까지?”

홀리가 즉시 말꼬리를 잡았다.

“가만히 있겠다며? 다 말하라며?”

“알았어. 말해. 이젠 정말로 가만히 있을게. 말해.”

등여산이 다시 말했다.

“음문촌 사람들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은데. 성격이나 마을 사람들의 습성, 이런 거를 좀 파봤어.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이, 이 사람들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튕겨 오른다는 거야.”

“흥! 당연하지. 그러니까 왜 건드려. 처음부터 건드리지 않으면 당할 일도 없지.”

홀리가 코웃음 쳤다.

“쫌!”

등여산이 홀리는 보면서 눈을 상큼 추켜 떴다.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홀리가 급히 손을 들어서 말 안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등여산이 홀리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토초가 혈마후가 된 것은 굉장히 획기적인 일이었을 거야. 음문촌이 그동안 고대했던 일이 성사된 거잖아. 그런데 무림이 출두하자마자 딱 막혔거든.”

“아직 막힌 건 아니지. 싸워본 적이 없으니까.”

홀리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등여산도 말을 이었다.

“하지만 토초는 혈마가 호발귀를 상대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어. 당연히 화가 나지.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당한 것도 돌려줘야 하고.”

“음!”

호발귀가 침음했다.

“길어봤자 이틀 안에 일이 벌어질 거로 생각했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네. 토초, 당하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지? 화가 많은 체질이야.”

“인정.”

홀리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어쨌든 이걸로 이제 누명은 벗겨진 거지? 어휴! 하지도 않은 짓을 했다고 지랄들 하는 바람에 어찌나 화가 치밀었든지. 내가 혈마가 될 뻔했다니까.”

해자수가 좋아서 말했다

하지만 등여산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렇게 쉽게 누명을 벗지는 못해. 이 누명은 무려 이백 년을 이어온 거야. 단숨에 벗겨내지 못해.’

사람들은 호발귀를 보고 있지 않다. 혈겁을 보면서 이백 년 전 혈마를 떠올리고 있다.

현재, 이백 년 전 혈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자가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죽은 자가 되살아나고 있다.

혈마가 사람들 뇌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곧 무림인들 사이에 회자하는 혈마 전설이 일반인들이 귀에도 들릴 것이다.

“혈마가 한두 놈이 아닌가 봐?”

“그렇지? 나도 그 생각을 했는데. 한 놈은 여기서 나보란 듯이 불을 피우고, 다른 놈은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쳐 죽이고. 에이, 빌어먹을 놈들!”

“그러게. 가만있는 사람들을 왜 쳐 죽이고 지랄들이야.”

“쉬잇! 가만히 있어. 자네 저놈 당할 수 있어? 검 뽑으면 감당할 수 있냐고!”

“설마 뽑을까?”

“정말 화나면 뽑겠지, 안 뽑겠어?”

해자수는 사람들 말을 들으면서 입을 쩍 벌렸다.

‘이거 뭐라는 거야?’

사람들이 여전히 호발귀를 혈마로 보고 있다. 이번에 일어난 혈겁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호발귀의 명령을 받은 자들이 죽였다는 식으로 말한다.

호발귀는 ‘나 아니다!’라고 표식한다.

중원 무인들이 떼로 달려들어서 공격할 것을 우려해서라는 말이 많다.

‘하아! 이런!’

너무 답답해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호발귀를 혈마로 완전히 낙인찍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혈겁이 벌어질 시간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닥불을 쬐고 있었어도 혈마는 혈마다. 혈마가 수하나 동료를 시켜서 혈겁을 일으켰다.

소문이 이래서 무섭다.

사람들의 편견을 갖기 시작하면 여간해서는 깰 수 없다는 것도 이제야 알겠다.

혈겁이 일어나는 동안 모닥불을 피워서 존재를 드러낸 일이 오히려 가증스러운 일로 전락했다.

기가 막히다!

세상 사람들이 편견을 가질 때, 이렇게까지 답답할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자신이 이런데 정작 당하는 호발귀는 어떻겠나.

“이거 돌아가서 뭐라고 말하나? 누명이 벗겨진 줄 알 텐데. 거참 답답하네. 이거 꼼짝없이 함정에 걸려들었잖아?”

해자수가 툴툴거리면서 걸었다.

“차라리 혈마를 치자.”

홀리가 말했다.

“어휴! 토초에게 혈마가 넷이나 있다며? 그럼 혈마를 공격하다가 오히려 되잡힐 수도 있지.”

해자수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토초는 머리를 못 써. 늘 힘으로 밀어붙이잖아. 함정 같은 것은 없어. 공격하자. 그게 제일 빨라.”

홀리가 호발귀를 보며 말했다.

“책사, 책사 생각은 어떤데?”

해자수가 등여산에게 물었다.

“토초는 가짜 혈마가 호발귀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짐작했어요. 그러니 함정을 만들 거예요.”

“거봐! 함정이 있을 거래잖아.”

해자수가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등여산이 계속 말했다.

“하지만 여기 있을 수도 없어. 이미 여기 있는 이유가 사라졌어. 여기서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 다가올 것으로 생각하지만, 다가오는 사람은 없어.”

등여산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나씩 정리해보자. 천살단은 움직이지 않겠지?”

호발귀가 말했다.

“응. 움직이지 않아. 혈마가 혈겁을 일으키기 시작했으니까 당분간 지켜볼 거야.”

“혈천방도 공격하지 않는다고?”

“맞아. 공격 안 해. 대신 주변을 맴돌면서 계속 혈겁을 일으킬 거야. 답답하면 네가 먼저 오라는 식이지. 이건 기다림의 싸움인데, 이 싸움은 우리가 져.”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벌써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 애꿎은 사람들까지 혈마에게 죽는다.

혈마가 혈겁을 일으키는데 거치적거리는 것은 없다.

혈마가 일반인들을 무서워하겠나? 무인들을 무서워할까? 걸리는 대로 죽일 뿐이다.

더욱이 강릉 상황도 악화하고 있다.

강릉 사람들이 호발귀 일행에게 더는 호의적이지 않다.

객잔에서는 물을 주지 않는다. 음식도 주지 않는다. 잠잘 곳도 제공하지 않는다. 억지로 뺏을 수는 있지만, 자기들이 먼저 주지는 않겠다고 한다.

아예 바로 앞에서 말하는 사람까지도 있다.

“검만 뽑으면 되는 것을 왜 위선을 떠는지 모르겠네.”

모든 행동이 위선이다.

모두 이렇게 생각하니 더 할 말도 없다.

“혈천방은 그렇고…… 중원 무림은?”

“관망.”

등여산이 짧게 말했다.

“언제까지 관망할까?”

“무림은 이게 우리 짓이 아니라는 걸 알아. 하지만 혈천방에 따지지도 못해. 당분간은 관망하겠지만, 나중에는 공격해 올 거야. 혈마 무공을 가진 것은 사실이니까.”

“그럼 결론이 정해졌네. 홀리 말해도 혈마를 찾는 수밖에 없잖아. 함정이라고 해도 혈마에게 가야지.”

호발귀가 말했다.

“잘 생각했어. 내 생각에도 그게 최선이야.”

홀리가 말했다.

“그럼 뭐냐…… 혈마만 찾으면 되겠네? 그런데 우린 정보도 없고, 혈마를 어떻게 찾지?”

해자수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등여산이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 왜 우리만 있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이 더 있는데?”

“도천패! 벌써 혈마를 쫓고 있구나!”

해자수가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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