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章 뇌격(腦擊) (1)
“책사는 안 올 것 같습니다.”
천원주 주당염이 말했다.
“그렇지? 내기 뭐라고 했나? 우리 사람이 아닐 거라고 했잖아. 우리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 물러.”
단주가 손으로 턱을 만지며 말했다.
“아직 포기하시기는. 제가 직접 만나볼 생각이에요. 확실히 돌아오게끔……”
“쯧!”
단주가 천원주의 말을 끊으려는 듯 혀를 찼다.
“정리할 것은 그만 정리하자고.”
“……”
“그 아이, 아직도 몰라? 천원주가 가서 설득한다고 해도 돌아올 아이가 아냐.”
“네.”
천원주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등여산의 직책은 책사다. 책사라면 무림 동향을 파악하고 천살단이 움직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천살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단주는 등여산에게 그런 일을 맡기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책사가 해야 할 자잘한 일들까지 단주 자신이 직접 챙겼다.
혈천방이나 천살단은 겉으로는 무척 조용했다. 서로 묵묵히 내실을 기하면서 상대방의 빈틈을 찾는 단계였다. 그러니 책사라고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단주는 등여산에게 특별 임무를 맡겼다.
혈천방과의 싸움에서 혈마록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혈마록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서 싸움의 승패가 갈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일을 등여산에게 맡겼다.
오직 혈마록에만 집중하라!
등여산도 단주의 뜻을 받들어서 오직 혈마록 해독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단주는 등여산이 천살단 사람이 아니라고 봤다. 등여산은 너무 여리고 물러서 천살단의 풍토와 습성, 성격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책사라는 직책을 주고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가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는지 자세히 관찰했다. 정말로 천살단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천살단을 위해서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지 살폈다.
그녀는 그럴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천살단의 성격이 지금과 다르다면, 혈천방과 흡사하게 이기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측면으로 돌아선다면 틀림없이 반기를 들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했다.
그래서 그녀가 무림에 나가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애당초 천살단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동안 지켜본 등여산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리할 필요는 있다.
“그럼 앞으로 저희는……”
끄덕! 끄덕!
단주가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등여산과 관계를 정리한다. 등여산에게서 책사라는 직위를 회수한다. 등여산을 파문한다.
“네. 알겠습니다.”
천원주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했나? 그 애한테 정을 주지 말라고 했잖아. 마음 아플 때가 온다고. 왜 내 말을 듣지 않고는…… 못난 사람 같으니.”
“죄송합니다. 공과 사는 분명히 합니다.”
“알지. 자네야 믿지. 참! 주치균은?”
“마공관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래. 잘했네.”
단주가 빙긋 웃었다.
마공관 앞 전실(前室)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주치균과 마공관주, 그리고 형전주가 앉아서 침묵을 유지한 채 묵묵히 차를 마셨다.
마공관주와 형전주는 마공관 열쇠를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을 마공관으로 함께 불렀다는 것은 마공관을 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왜 마공관을 열려고 하지?’
전실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다.
마공관에는 세상에 나가서는 안 될 패악한 마공이 가득하다. 심신을 피폐하고 만들고, 인성을 변하게 만들며, 수련 방법이 잔혹해서 도리에 맞지 않는다.
진작 불태웠어도 하등 아쉽지 않은 쓰레기 무학들이다.
저벅! 저벅!
회랑을 울리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은 일제히 일어섰다. 걸어오는 사람이 단주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단주의 발걸음 소리는 매우 차분하고 무겁다. 소리만 들어봐도 딱 표시가 난다.
“앉아. 앉아.”
단주가 가까이 오기도 전에 손을 들어서 않으라는 시늉을 했다.
세 사람은 단주가 자리에 앉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그리고 단주가 앉은 다음에서 자리에 앉았다.
“열쇠는?”
단주가 두 사람을 보고 말했다.
“아! 네.”
마공관주와 형전주가 각기 소장하고 있던 열쇠를 꺼냈다.
마공관은 두 사람이 동의할 때만 열린다. 하지만 단주가 열겠다면 막지 못한다.
“자네들은 그만 가봐. 바쁠 텐데.”
“네.”
두 사람이 일어서서 마공관을 빠져나갔다.
책상 위에 그들이 놓고 간 열쇠 두 개가 덩그렇게 놓여있다.
“호발귀에게 검도 뽑지 못했다고?”
“네.”
주치균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기분이 어때?”
“완벽한 패배였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주치균이 머리를 숙였다.
“호발귀에게 당했다는 사실은 언제 알았나?”
“호발귀와 헤어진 직후, 바로 알았습니다. 그만한 기회도 찾기 힘들었는데, 죄송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까?”
“……”
주치균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은 다르다. 호발귀에게 완전히 짓눌렸다. 기세에서 눌렸다. 자신이 짓눌리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는데, 어느새 짓눌리고 있었다. 완벽한 패배다.
그런 상태에서 검을 뽑은 들 무슨 소용이 있나. 검초를 전개한다고 해도 상대가 안 될 것이다.
난 앞으로 이 자를 상대할 수 없어.
이것이 당시 생각이었다. 처절한 절망감에 검을 놓고 은거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왕부로 돌아가서 글이나 읽으며 한세상 보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호발귀를 생각하면 등여산이 떠오른다.
등여산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하겠다. 호발귀를 죽이면 등여산을 찾을 기회도 오지 않을까? 아니, 호발귀가 마인이라는 증명만 해도 등여산은 돌아올 것이다.
등여산은 호발귀에게 속고 있다.
호발귀는 진정 마인인데, 혈마인데, 지독한 살인광이 되어서 천하를 피로 물들일 자인데…… 등여산은 그런 호발귀를 구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등여산이 호발귀 옆에 있는 이유다.
그래서 포기하지 못하겠다. 무공만 호발귀보다 앞선다면 등여산을 찾을 기회가 생길 것 같다.
호발귀에게 패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단주가 마공관 열쇠를 집어서 주치균에게 내밀었다.
“들어가서 다른 거는 보지 말고 팔 열 십육 단에 있는 것만 봐.”
“팔 열 십육 단입니까?”
“미도회랑 오택골의 무공은 반야호신공이 아니었어. 반야호신공으로 위장했을 뿐.”
단주가 전임 살단 총주를 거론했다.
‘이게 진짜 총주의 무공? 팔 열 십육 단!’
주치균은 눈빛을 반짝 빛냈다.
“어디 네 재질은 어떤지 보자. 미도회랑이 그걸 칠 성만 수련했어도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 쯧!”
단주가 일어섰다.
주치균은 깜짝 놀라서 단주를 배웅해야 한다는 생각도 잊어버렸다.
단주가 지금 뭐라고 했나? 칠 성만 수련했어도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럼 전임 살단 총주가 마공을 수련했고, 칠 성도 못 된 상태에서 그만한 위력을 떨쳤다는 것인가?
“으!”
주치균은 신음을 흘리면서 일어섰다.
마공을 수련한다는 게 께름칙하다. 하지만 찬 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지금은 강한 무공만 배울 수 있다면 염라대왕에게 혼이라도 팔겠다는 심정이다.
주치균은 열쇠를 들고 마공관으로 다가섰다.
천살단에 와서 평생을 지냈지만, 마공관에 와본 것은 처음이다. 더욱이 마공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상상도 못 했다. 하물며 마공을 수련하게 될 줄은.
‘괜찮아. 전임 총주도 수련한 무공이야.’
주치균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마공관을 나온 단주는 형옥으로 발길을 옮겼다.
단주는 형옥에 갈 일이 거의 없다. 근래에는 더더욱 갈 일이 없었다.
“이 길도 잃어버리겠어.”
단주는 형옥으로 향하는 길이 낯설었다.
전갈을 받은 형전주가 입구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공관 열쇠는 나중에 돌려받아.”
“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고.”
“네. 철저히 함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로 걸음 하셨는지?”
“노괴(老怪) 좀 만나야겠어.”
“아! 네.”
형전주가 급히 길을 안내했다.
형옥은 다른 곳과 다를 바 없는 전각이다.
전각 안에는 방이 스무 개가 있고, 거주하는 인원은 오십여 명이다.
옥사(獄舍)는 전각 지하에 있다. 일 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철창으로 막힌 옥사가 즐비하게 나온다.
하지만 지하 일 층에는 거의 사람이 들어있지 않다. 일 층은 형벌을 받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공간이고, 본격적으로 취조에 들어가면 지하 이 층으로 옮겨진다.
지하 이 층부터는 밀실이다.
방음 시설이 철저하게 갖춰져 있어서 전쟁이 터져도 밖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지하 삼층부터는 정말로 세간에서 말하는 뇌옥이다.
일 년에서 이 년 정도 갇히는 자가 머무는 공간이다. 그 이상의 형을 받거나, 종신형을 받은 자는 형옥에 가두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
마지막으로 지하 사층이 있다.
절대 출입금지 구역이다.
오직 형전주만 출입할 수 있을 뿐, 그 누구도 출입이 금지된다. 사실 출입하고자 해도 사층 입구에 거대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어서 들어갈 수도 없다.
삐걱!
묵중한 철문이 열렸다.
일 년 열두 달 열리지 않던 문이 간신히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 살짝 열렸다.
“그럼 다녀오십시오.”
형전주가 부복했다.
사층은 상당히 넓었다. 장정 십여 명이 뛰어다녀도 부딪치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또 지하 사층인데도 상당히 밝았다. 공기도 맑았다.
밖에서 햇볕을 끌어오고, 바깥 공기가 유입하는 것까지 고려해서 건축한 최고급 시설이다.
저벅! 저벅!
단주는 뇌옥 한가운데에 벌렁 드러누워 있는 작은 동체를 향해 걸어갔다.
인간이 아닌가?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몹시 말랐다. 살과 근육은 없고 뼈에 가죽만 붙여놨다. 키도 작아서 마치 열넷, 열다섯 정도 외는 어린아이가 기아에 허덕인 모습처럼 보인다.
그는 머리를 치렁치렁 길었다. 머리가 바닥에 닿아서 질질 끌린다. 작은 동체에 머리만 길어서 꼭 머리가 이불을 뒤집어쓴 것처럼 보였다.
“오랜만이네.”
단주가 말했다.
“네놈은 어찌 날이 갈수록 말투가 더 느끼해져. 무게 좀 그만 잡아. 내가 네놈 고추를 본 놈이다.”
“허! 저저 말투하고는.”
단주가 괴인을 나무랐다. 하지만 괴인은 단주의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하는 일은 어떻게 됐나?”
“그 말을 묻기까지 이십 년 걸렸네? 이십 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왜 말을 꺼내?”
“혈천방에서 혈마를 만들었어. 통제도 잘 되는 것 같아. 원하는 곳에서만 혈겁을 일으키고 있어.”
“큭큭큭!”
노괴가 웃었다.
“그럼 그건 혈마가 아니지. 혈마는 살기를 분노로 바꿔서 꽉 뭉쳐놨다가 팍! 터트려야 하거든. 그래야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그려지는 거야. 혈천방에서 만들었다는 놈, 무공 강한 실혼인일 뿐이야. 혈마가 아냐.”
“자네 연구는 어떤가?”
“킥킥킥!”
노괴는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아직 미완성이지. 완성됐으면 진작 내놨지. 킥킥! 대략 일 년만 참아.”
“아! 일 년이면 되는가? 그럼 다 된 거 아냐! 이 사람, 진작 좀 말해주지.”
단주가 반색했다.
“큭큭큭! 일 년이든 십 년이든 내놓지 못하면 미완성이지. 일 년만 더 숨죽여. 그러면 혈천방 같은 것은 일거에 싹 쓸어버릴 수 있어. 혈마? 큭큭큭! 두고 봐. 이백 년 전 혈마 그놈이 나타나도 내가 만든 것에는 안 돼. 큭큭!”
노괴가 눈을 데룩데룩 굴리면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