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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43화 (143/500)

第二十九章 혈마혈겁(血魔血劫) (3)

혈마가 누구냐? 호발귀라는 자다.

혈마 호발귀가 어디에 있나? 형주부(荊州府) 강릉(江陵)에 있다.

호발귀는 자신이 있는 곳을 숨기지 않는다. 워낙 버젓이 드러내놓고 다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다. 아침에 어디 있고, 점심에 어디 있었는지까지 안다.

아마도 중원 무림에서 호발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호발귀는 유명해졌다.

호발귀는 자신이 혈마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혈마와 호발귀라는 이름이 연결된 것일까?

둘의 연결은 소문에서 비롯되었다.

“저, 누가 그러는데…… 당신이 혈마라고 하는데.”

누군가가 용기 내어서 물어봤다.

사실, 호발귀에게는 물어봐도 괜찮을 듯싶었다.

매일 강릉 도읍을 돌아다니는데 흉측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사나운 모습은 고사하고 미미한 시비조차도 일으키지 않는다. 혈마로 보기에는 너무 얌전하다.

호발귀는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씩 웃기만 했다.

“혈마가 맞는가 봐.”

“혈마가 왜 이렇게 얌전해?”

“얌전하기는. 풍기는 분위기를 봐라. 저게 얌전한가. 언제든 검을 뽑게 생겼구먼.”

한 사람, 두 사람 호발귀를 혈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호발귀는 혈마가 되었다.

아마도 소문의 처음 시작은 혈천방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혈천방 중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호발귀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혈마다. 내가 봤어.’라고 한마디 했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 소문이 났지.

그러고 보면 혈천방은 대중 심리를 잘 이용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환히 예측한다. 또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살짝 물꼬를 터준다. 그러면 틀림없이 그런 쪽으로 움직인다.

혈천방은 이런 쪽에 경험이 많은 게 틀림없다.

스윽!

호발귀가 음식점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안에 있던 사람이 식사를 멈추고 일제히 빠져나갔다.

호발귀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혈마라는 인식만으로 화들짝 놀라서 피한다.

그냥 물러나는 것도 아니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면서 사라진다.

“이것들이 정말! 누가 잡아먹나!”

홀리가 기분 상한 듯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씨. 냅둬요. 편하고 좋은데 뭘. 혈마가 꼭 나쁜 건 아니야. 어디를 가나 자리가 텅텅 비니까 기다릴 필요도 없고, 군소리 안 해서 좋고. 딱 좋기만 한데 뭘.”

해자수가 말했다.

홀리와 해자수는 호발귀와 만났다.

‘멀리 떨어져 있어봤자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데 뭐하러 떨어져 있느냐. 괜히 떨어져 있을 필요가 없다’라고 한마디 했는데, 호발귀가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우리 뭐 먹을까?”

“오리구이 먹어요. 오리구이. 여기 오리구이가 아주 별미라네?”

“우리 뭐 먹어?”

홀리는 해자수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호발귀를 향해 재차 물었다.

“오리.”

“거봐요. 오리 먹자니까. 여기, 주인장!”

해자수가 주인을 불렀다.

그때, 호발귀가 불쑥 말했다.

“혈마를 부릴 수 있다는 주문이 뭔지 알려줄 수 있나?”

“안 돼!”

홀리는 호발귀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말했다.

아주 단호한 거절이다.

“알려준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잖아?”

“안 돼! 알려줄 수 없어!”

홀리는 너무 단호했다.

“그래, 알았어. 포기. 오리나 먹자. 여기 온 지도 꽤 됐는데, 이곳 별미를 못 먹어봤네. 후후!”

호발귀가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 * *

태허문(太虛門)은 사두시(沙頭市)에 위치한다.

백여 년 전에는 태허구검(太虛九劍)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당금에는 문파가 쇠락하여 형주부에서도 서열 사오 위로 밀리는 중소 문파로 전락했다.

현재, 태허문 무인들은 초긴장 상태다.

혈마 호발귀가 머무는 강릉에서 동쪽으로 십 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바로 십 리 앞에 혈마가 있으니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만약 혈마를 죽여야 한다는 의결이 나오면 제일 먼저 앞장서서 달려가야 할 문파로 선정될지도 모른다.

태허문은 당연히 선봉에 서고 싶은 마음이 없다.

혈마와 싸우면 문파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고수 대부분이 죽을 게 뻔하다. 어쩌면 태허문이라는 현판을 내리고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혈마와 싸우는 게 두렵지는 않으나, 최전방에 서고 싶은 생각은 없다. 될 수 있으면 단순한 공조만 하고 싶다. 한데 혈마가 십 리 앞에서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태허문의 경계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오늘도 별일 없이 지나가네.”

“그러게. 혈마 놈은 왜 가지 않고 강릉에서 버티는 거야? 에이!”

언제든지 싸울 수 있도록 전투 경장을 입은 태허문도가 단단히 긴장한 채 경계를 섰다.

그때, 우람한 체구의 여인이 땅을 쿵쿵 울리면서 걸어왔다.

여자는 갑옷만 입으면 영락없이 장군이다. 체구가 웬만한 남자보다 더 크다.

인상도 험상궂다.

코뼈는 맞아서 폭삭 주저앉았고, 양쪽 귀도 유술(柔術)을 한 사람처럼 뭉개졌다. 눈은 부리부리하고, 무엇보다도 피부가 무척 단단하고 거칠다.

여인은 사내로 착각된다.

쿵! 쿵! 쿵!

여인이 거침없이 다가오더니 현판을 쳐다봤다.

“여기가 태허문이구나.”

“누구요!”

경계 무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여인은 무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현판만 쳐다보면서 말했다.

“저 글씨는 참 잘 썼어. 아마도 태허검성(太虛劍聖)이 쓴 것 같은데, 맞지?”

“누구신데 조사님 별호를 함부로 입에 담는 거냐!”

경계 무인이 와락 고함을 내질렀다.

태허검성은 태허문을 창건한 조사다.

태허구검을 창안했으며, 당시에는 무림 십대 고수로 거론되던 검의 달인이다.

“쯧! 저 때만 해도 태허문이 이런 꼴은 아니었는데. 됐어. 여기야. 시작해.”

여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자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여인 옆에 사내 한 명이 서 있었다.

사내의 미간에는 붉은 혈선이 쭉 그어져 있다. 혈마의 상징인 혈안(血眼)이다.

가로로 쭉 그어진 혈안이 금방이라도 벌어질 것 같다.

혈선은 눈꺼풀이다. 혈선이 벌어지면 틈새에서 새빨간 눈알이 나타난다.

“허억! 혈마!”

경계 서던 무인이 깜짝 놀라서 경악성을 내질렀다.

여인이 말했다.

“한 놈 남김없이.”

여인의 말은 곧 명령이다. 거부하지 못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절대명령이다.

쒜에에엑!

허공에서 검풍이 일었다.

“커억!”

경계를 서던 무인 둘은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풀썩풀썩 쓰러졌다.

한 명은 목이 반이나 잘렸다. 다른 한 명은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상반신이 크게 배였다. 장기는 물론이고 갈비뼈까지 단번에 우두둑 잘려 나갔다.

휘리릭!

이마에 혈선이 새겨진 혈마는 검을 허공에 휘둘러서 검신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냈다. 그리고 태허문 안으로 거침없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혈마다!”

“혈마가 나타나서 살인을 저지른다!”

사방에서 혈마를 외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여인은 유유히 혈마의 뒤를 따르면서 혈마의 구경했다.

혈마는 굉장히 빠르다. 검법은 무정삼절이다. 아니, 무정삼절을 흉내 낸 이상한 검법이다.

신법은 혈마가 전개했다는 마형귀적(魔形鬼跡)가 비슷하다.

몸은 이미 움직임을 멈췄다. 이동이 끝났다. 벌써 검이 상대를 쑤시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여전히 이동 중인 것처럼 보인다. 움직이면서 남긴 잔상 때문이다.

푸욱!

사내가 태허문도의 명치에 검을 찔러넣었다.

명치를 뚫고 들어간 검이 등 뒤로 삐죽 튀어나왔다.

사내는 태허문도의 머리를 발로 차서 가격했다. 그러자 몸에 꽂힌 검이 쑥 빠져나왔다.

사내는 검을 빼내는 반동을 이용해서 곁을 스쳐 가는 여자의 등을 후려쳤다.

퍽!

여인의 등이 쫙 깔리면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너무 빨라. 천천히.”

여인이 말했다.

혈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인의 말에 순종한다.

혈마가 천천히 움직인다.

지금까지는 비호처럼 움직였는데, 이제는 아주 여유 있게 걷는다.

이렇게 움직이면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생긴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도 버틸 사람들은 버틴다.

태허문을 보존하려면 일단 문주는 있어야 한다. 문도도 도주하지 못한다. 그들까지 태허문을 버리면, 이후 태허문은 영영 무림에 발을 딛지 못한다.

쒜에에엑! 퍼억!

혈마가 테허문도의 머리를 반으로 쫙 갈랐다.

검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다.

“혈마냐!”

태허문주가 말했다.

“혈마보고 혈마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 여기가 혈마, 내가 혈마후. 됐어?”

토초가 건방진 표정으로 말했다.

“강릉에 있는 혈마는 누구냐?”

“얘잖아. 그렇게 안 보여?”

“혈마를 봤다. 이놈은 아냐!”

태허문주가 혈마를 향해 검을 쳐들었다.

“웃기네. 혈마에게 혈마가 아니라고 하면 누가 혈마지? 얘가 혈마가 아니면 충분히 이길 수 있겠네? 자, 싸워봐.”

토초가 큰 입을 벌리면서 씨익 웃었다.

순간, 태허문주의 눈가에 의아스러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강릉에 가서 혈마를 봤다. 혈마가 지척에 있으니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강릉에 있는 혈마는 이지가 있다. 혼자 움직이고 말한다. 옆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도 나눈다. 음식도 먹고, 차도 마신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다.

한데 이 자는 이지가 맑지 않다.

소문에 듣던 혈마 모습과 흡사하다. 정신을 잃고 혈마후의 명령에 복종한다더니, 딱 그 모습이다.

언제 강릉 혈마가 이런 모습이 되었지? 아니면 혈마가 되었다가 정상인이 되기를 반복하나? 영문은 모르지만, 태허문에 횡액이 닥친 것은 사실이다.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태허문주가 소리쳤다.

순간, 혈마를 포위하고 있던 태허문도가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큭큭큭!”

혈마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그리고 곧 혈마는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거북이를 마음껏 짓밟는 늑대다.

쒜에에엑! 퍼억!

혈마가 검을 내리친다.

태허문도는 감히 검을 받지 못하고 물러섰다. 그러면 즉시 쫓아와서 재차 검을 쳐냈다.

“컥!”

태허문도가 쓰러졌다.

빠름에서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

아니, 문제는 빠름이 아니다. 혈마는 전신에서 혈기를 뿜어낸다. 아주 사납고 흉포한 기운이 물씬 풍긴다. 검을 맞대기도 전에 공포부터 일어난다.

퍼억!

태허문도가 혈마의 등을 쳤다.

혈마는 등뼈가 환히 보일 정도로 심한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즉시 돌아서서 검 쓴 자의 목을 쳐냈다.

뚝뚝! 후두둑!

혈마의 등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혈마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저승사자다. 검이 날아오면 누구나 흠칫하게 되어 있는데, 혈마는 그런 것조차 없다 이까짓 목숨 가져가려면 가져가라는 식이다.

도대체가 날아오는 검을 피하지 않는다. 내가 한칼 맞아줄 테니, 너도 한칼 맞으라는 식으로 검을 쓴다. 한데 그 수에 넘어가서 검을 쓰면 영락없이 죽는다.

혈마가 한 수 더 빠르다. 대부분 같이 검을 쳐내지만, 혈마를 베지 못한다.

“아아악!”

태허문도가 속절없이 쓰러졌다.

태허문주는 부르르 치를 떨었다.

혈마 무공이 이토록 잔인할 줄 몰랐다. 강한 무공이 아니다. 잔인한 무공이다.

잔인한 검과 마주치면 반드시 죽는다. 죽지 않더라도 몸에 상처가 생긴다. 반드시 한칼을 맞는다. 이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잔인하다는 거다.

쒜에에엑!

태허문주는 태허구검 중 사검 일검견혈(一劍見血)을 펼쳤다.

‘검을 떨쳐내면 반드시 피를 본다’라고 해서 필즉사(必卽死)의 무공으로 통한다.

그 순간, 혈마가 검을 들어서 머리 위에서 아래로 쭉 내리쳤다.

머리카락이 베인다. 얼굴이 갈라진다. 몸이 찢어져 나간다. 검을 든 손도 뎅겅 잘렸다.

“아아악!”

태허문주는 죽는 한이 있어도 비명을 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기어이 비명을 쏟아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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