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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42화 (142/500)

第二十九章 혈마혈겁(血魔血劫) (2)

등여산은 호발귀를 빠르게 따라붙었다.

호발귀가 모습을 숨기지 않고 환히 드러낸 채 움직였기 때문에 찾기는 매우 쉬웠다.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 저렇게 다니면 위험하지 않나?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죽이겠다고 난리들인데.”

해자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감히 우리 문주 놈을 죽인다고 그래!”

“온 세상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죽이려고 날뛴다는 거 몰라? 잘 알면서 그래!”

당홍이 툭 핀잔을 주었다.

같은 말이라도 해자수가 있다면 도천패는 팔짝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홍이 말하자 도천패는 한마디 대꾸도 못 하고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거참 사람 덩칫값도 못 하고.”

해자수가 눈총을 보냈다.

하지만 도천패는 이번에도 모른 척했다.

“일부러 저러는 거예요. 공격하라고.”

등여산이 말했다.

“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일부러 공격하라니. 공격이 무슨 남의 집 애 이름인가? 그렇게 써도 되는 거야? 중원 무림이 공격하면 공적이 된다는 것도 몰라?”

“바로 그거예요. 누구든 마음대로 와서 공격하라는 거죠. 그래서 저렇게 움직이는 거예요.”

“그렇게 자신이 있나?”

“자신이 있는 게 아니고, 더는 혈천방을 찾을 자신이 없는 거죠. 혈천방이 원래 숨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잖아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해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아주 크게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다.

혈마가 혈천방 제삼대를 몰살시키면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살겁 현장을 본 사람들이 모두 혈마를 욕했다. 왜 굳이 사람들을 그렇게 처참하게 죽이냐는 것이다.

혈천방이 마인들이라는 사실은 중원 무림만 안다.

세상 사람들은 이미 옛날의 혈천방을 잊었다. 그들은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지만, 흔히 하는 말로 세상에 어떤 해악도 끼치지 않고 얌전히 사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다고 지금도 그렇게 죽인다는 것은 잘못된 행위다.

이게 사람들 생각이었다.

물론 혈천방은 지금도 마방(魔幫)이다.

그들이 정말 세상에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을까? 물론 겉보기에는 그렇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온갖 악행을 발견할 수 있다.

혈천방은 이권에 개입해서 권리를 빼앗는다. 땅을 빼앗고, 재물을 갈취하고, 사람은 납치 혹은 살해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관리 영역을 넓혀 나간다.

이 모든 일이 암암리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혈천방을 모른다.

오죽 무림만 혈천방이 마방이라는 사실을 안다.

혈천방은 자기들 일에 방해가 되는 자는 귀무살을 통해서 가차 없이 제거한다.

세상은 그런 사실도 모른다.

귀무살은 워낙 솜씨가 좋다.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연사로 처리된다.

절벽에서 실수로 실족하여 떨어져 죽었거나, 마차에 치여서 죽었거나 아니면 느닷없이 심장마비로 죽는다. 칼에 찔려서 죽더라도 주변 사람에게 죽는다.

모두 그런 식이다. 어떤 구석에서도 혈천방을 의심할 수 없다.

사실 이 점은 등여산도 간과했다.

등여산은 천살단과 혈천방의 팽팽한 대립 관계 속에서 모든 상황을 처리해왔다. 혈천방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혈천방을 생각하는 면에서 중원 무림과 세상 사람들 생각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그 사실을 깜빡했다.

그렇다고 제삼대 멸겁이 헛수고는 아니었다.

정작 혈마를 공격할 사람은 정도 무림이다. 그리고 정도 무림은 혈천방이 마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주춤하고 있다.

당장 혈마를 들이쳤어야 하는데, 다시 관망세로 돌아섰다.

그 정도만 해도 천만다행이지 않은가.

“그래도 천살단은 혈천방이 있는 곳을 알지 않나? 귀문을 없애는 것도 효과적이고.”

해자수가 등여산을 보며 물었다.

“이제 더는 천살단 정보를 이용하지 못해요.”

등여산이 곤란해하며 말했다.

해자수는 무슨 말인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등여산이 천살단을 나왔다. 호발귀 곁에서 호발귀 사람들과 함께 검을 썼다.

그녀가 천살단 정보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렇다고 저렇게 놔둘 수는 없잖아?”

홀리가 말했다.

“당분간 지켜봐.”

“뭐라고! 저렇게 내버려 두자고!”

“누군가는 호발귀를 공격할 거야. 혈천방이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고, 호발귀가 혈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어떻게든 이용하려고 할 거고. 누군가는 어떤 식으로든 접근할 거야. 회유하든 공격을 하든.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책이야.”

“귀색혼령대법도 있어.”

“응?”

“그런 게 있어.”

홀리가 말끝을 흐렸다.

음문촌에는 귀색혼령대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두 명 있다. 홀리와 토초다.

홀리는 토초를 염려한다.

호발귀가 혈마로 들어섰을 때, 토초가 나타나서 호발귀를 채갈 수도 있다.

그녀는 호발귀를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이 영 불안했다.

등여산이 말했다.

“그럼 다른 사람은 한 걸음 물러서서 지켜보고, 홀리 넌 바짝 붙어. 네가 바짝 붙어 있는 것도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니까 더 가까이 다가가도 괜찮을 것 같아.”

“그래? 알았어.”

홀리가 비로소 안심한 듯 활짝 웃었다.

등여산은 홀리가 왜 불안해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불안해하는 것은 읽을 수 있다. 그것이 아마도 그녀가 말한 귀색혼령대법과 연관 있을 것이다.

귀색혼령대법이 그녀가 말한 혈마 주문인가?

‘맞아. 음문촌에 홀리 말고도 촌장 여식이 또 있다고 했어. 그걸 염려했구나.’

등여산은 금방 홀리의 불안을 읽었다.

“가봐. 호발귀에게 맛있는 것 좀 해주고.”

등여산의 홀리의 등을 떠밀었다.

* * *

팔십일수가 막히는 이유를 알았다.

원인은 무심무실공에 있었다.

무심무실공은 천하에 다시 없는 절공이다. 하지만 역천금령공에 비하면 한 수 쳐진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이 역천금령공보다 처진다.

무공은 진기로 운용된다.

역천금령공은 진기가 아니다. 우주 자연의 기운이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해서 비교할 대상이 없다. 그러면서도 특별히 양성하지 않아도 된다.

역천금령공은 운공법이 아니다. 자연의 기운을 끌어서 사용하는 도인술(導引術)이다. 자연의 기운을 어떻게 사용하라고 설명해 주는 설명서다.

그러니 이보다 강한 힘은 있을 수 없다.

무심무실공은 역천금령공이 감싸고 있는 생기에 비하면 분명히 하위 무공이다. 상위 무공이 있는데 하위 무공을 펼치려고 하니 역천금령공이 제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팔십일수를 펼칠 수 없나? 역천금령공으로 펼치면 된다. 하지만 생기를 사용하면 살기가 치민다.

결국, 지금처럼 계속 하위 무궁을 억지로 일으키거나 아니면 살기를 감수하고 생기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역천금령공을 배제하고 무심무실공을 펼칠 수는 없다.

생기를 사용한 후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일까?

그 부분에 대한 해답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어쨌든 팔십일수가 왜 막히는지, 왜 억지로 일으켜야만 펼쳐질 수 있는지 원인은 찾아냈다.

스으읏!

역천금령공을 기반으로 해서 삼마돌각수를 펼쳤다.

손가락 세 개가 굳건하게 오므려졌다. 손끝에서 푸른 빛이 일렁거렸다.

생기가 발출하는 푸른 빛은 오직 생기를 운용하는 사람만 볼 수 있다. 생기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푸른 빛도 보이지 않는다. 진기를 느끼는 무인과 느끼지 못하는 일반인의 차이와 같다.

파앗! 퍼억!

삼마돌각수로 나무를. 찍었다.

손가락 세 개가 나무껍질을 파고 들어갔다. 물이 흐르는 속살을 후벼팠다.

삼마돌각수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다.

삼마돌각수에 맞으면 살이 찢긴다. 뼈에 구멍이 뚫린다.

팔십일수 중에는 일지관(一指貫)도 있다.

손가락 하나로 찌르는 것인데, 창으로 뚫는 것만큼 강한 위력이 나타난다.

원래 삼마돌각수나 일지관은 피부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겉에는 아무 표시도 나지 않지만, 속이 멍드는 격공타혈(擊空打穴)과 흡사한 수법이다.

무심무실공을 버리고 역천금령공을 이용하면 완전히 다른 공부가 된다.

사실, 손가락이 세 개냐 한 개냐의 차이만 있을 뿐, 삼마돌각수나 일지관이 같은 수법으로 변한다. 일지관은 뚫고, 삼마돌각수는 치는 것인데, 지공의 특성이 무너진다.

“훗!”

호발귀는 역천금령공을 거뒀다.

잠깐 시연을 했을 뿐인데도 살기가 치밀어오른다.

“아미타불!”

오랜만에 장진 스님이 모습을 보였다.

“공부가 깊어졌네?”

장진 스님이 삼마돌각수에 움푹 파인 나무를 보면서 말했다.

“정말 반갑지 않은 사람이야. 스님이 나왔다는 거는 또 뭔가 변화가 있다는 거겠지? 이번에 뭔데?”

“너무 투박하지 마라.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장진 스님이 히죽 웃었다.

호발귀는 불길한 예감을 받았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럼 혈마가 되기 직전이라는 소리다.

혈마가 되면 정신을 잃는다. 온정신으로 살지 못한다. 당연히 장진 스님도 알아보지 못한다.

정말 알아보지 못할까? 아니다. 정반대일 것이다. 혈마가 되면 더 잘 알아볼 것이다. 그러면 장진 스님이 육신을 지배하고, 호발귀는 사라진다는 뜻인가?

“무슨 소리야? 마지막이라니?”

“그건 네가 알아내야지.”

“그동안 만난 인연이 있는데, 충고는 해줄 수 있잖아? 암시(暗示), 제시(提示), 시의(示意). 뭐 어떤 거라도 툭 던져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충고는 해줄 수 있어.”

“뭔데?”

“포기하고 살아.”

“그게 충고야?”

“이 세상은 버텨도 안 되는 건 안 돼. 세상사가 원래 다 그래. 그러니 아등바등하지 말고 그냥 닥치는 대로 네 팔자려니 하고 감당하면서 살아. 그러면 편해.”

“정말 도움이 안 되네.”

“하하하! 도움이야 벌써 줬지. 혈마 무공을 알려줬잖아. 그게 네가 똑똑해서 깨달은 줄 알아? 다 내가 요소요소 설명해 줬으니까 쉽게 배웠지.”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니, 나도 한 마디. 혈마 무공, 감사하게 받았다. 덕분에 와주와 동패, 왕소의 복수를 할 수 있었어.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혈마 무공이 없었다면 오히려 그놈들로부터 도망 다니기 급급했을 거야. 고맙다.”

“그래? 원래 혈마 무공이 독 든 사과야. 사과를 먹었으면 독 먹은 값도 내놔야지.”

“하나만 묻자. 장진 스님 당신, 혈승(血僧)이야, 선승(禪僧)이야? 헷갈려서 그래.”

“굳이 구분하자면 마승(魔僧)? 사과를 주되 독까지 주니까.”

“하하하!”

“아미타불. 다음에 또 봤으면 좋겠네? 아미타불.”

장진 스님이 호발귀를 향해 두 손 모아 합장했다.

장진 스님이 나타난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호발귀는 혈마록을 다시 들췄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올챙이 글자들을 하나씩 다시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혈마록을 장진 스님이 해독해 주었다. 장진 스님이 말하는 것을 무심히 받아들였다.

혈마록이 원하는 대로 배운 것이다.

혈마록 처지가 아닌 호발귀 입장에서 혈마록을 다시 읽어나갔다.

‘똑같아.’

일 권을 읽어봤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책의 내용이 한 치도 다르지 않다.

그래도 또 읽었다.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가 대자연의 기운을 이용하는데 살기가 치민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우주 자연의 질서는 순리(順理)에 있다.

역리(逆理)는 질서를 깼을 때 일어난다.

무엇인가 생기를 깼기 때문에 살기, 혈기가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생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오염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 혈마록이 원하는 대로 혈마가 되는 수밖에 없다.

혈마록을 읽고 또 읽었다.

다른 부분이 찾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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