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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41화 (141/500)

第二十九章 혈마혈겁(血魔血劫) (1)

“죽음의 숲에 가봤어?”

“아니. 안 가봤어. 가본 사람들이 밤에 잠을 못 잔다고 해서 괜히 꿈자리 사나울까 봐. 그런데 그렇게 지독했나?”

“어휴! 말도 마. 얼마나 지독했는지.”

말하던 사람이 부르르 치를 떨었다.

혈천방 제삼대가 몰살당한 현장은 굉장히 처참했다.

사람들이 몰살 현장을 찾았을 때는 살겁이 일어난 후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시신이 이미 부패하기 시작했다.

당홍의 독에 중독사한 시신은 피부 색깔이 새카맣게 변색하여 있다. 독기로 인해서 뼈도 쉽게 탈골된다. 이빨이 힘을 잃고 우수수 떨어진다.

무엇보다도 부패하면서 내뿜는 악취가 무척 지독하다.

도천패에게 죽은 시신도 좋은 모습일 리 없다.

잘린 팔다리는 막 잘렸을 때도 징그럽다. 하물며 며칠이 지나서 썩기까지 하면 가까이 가기도 싫어진다. 밖으로 쏟아진 오장육부는 말할 것도 없고.

해자수는 참 못된 짓을 했다. 멀쩡한 사람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악몽을 선물했다.

제삼대 몰살 현장으로 달려가서 직접 본 사람들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꿈이 뒤숭숭해서 자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본 것에 살과 뼈를 붙여서 다른 사람에게 전했다.

‘팔다리가 떨어져 있고’하고 말하면 사실적인 느낌이 나지 않는다. ‘팔다리가 떨어져서 구더기가 스멀거리고’하고 말하면 조금 사실적인 느낌이 난다.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사람이면 그런 짓 못 하지. 악귀야, 악귀.”

“악귀가 아니라 혈마라고 하던데?”

“악귀나 혈마나 그놈이 그놈이지 뭐. 사실, 혈천방이 나쁘다고 하는데, 그놈들이 우리에게 해코지한 게 있나? 아무것도 없잖아? 도대체 혈천방이 왜 나쁘다는 거야?”

“마공을 수련했다잖아.”

“마공을 수련했어도 나쁜 짓을 안 하잖아?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렇게 죽어야 해? 나는 아니라고 봐. 정종 무공을 수련했어도 나쁜 짓 하는 놈이 태반인데. 그 혈마인가 뭔가 하는 놈, 난 그놈이 제일 나쁜 것 같아.”

“위도 부근 사람들도 혈마가 몰살시켰다며?”

“어휴! 사람을 얼마나 죽여야 직성이 풀리려는지.”

“듣자 하니까 혈마가 제정신이 아니라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무인이잖아. 그 사람이 와서 그러더라. 혈마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서 눈에 보이는 사람은. 모조리 다 죽인대.”

“그럼 눈에 띄지 말아야겠네?”

“눈에 띄면 죽는 거지.”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 * *

“보고드립니다.”

방문 밖에서 묵직한 음성이 울렸다.

“흠! 이거야 원. 이제 막 옷을 벗겼는데, 눈치도 없이. 저놈이 원래 저래.”

혈천방주는 품에 안고 있던 여인에게 말했다.

“방주님께서 절 안을 운이 없는 거죠.”

고쟁을 잘 타던 여인, 형전주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방주 말대로 알몸이었다. 그녀가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옷을 집어 들었다.

“이거야 원!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까?”

“다음에 또 유혹해 보세요.”

형전주가 옷을 입고는 사락사락 방을 걸어 나갔다.

덜컥!

방문을 열자 깊이 부복하고 있는 무인이 보였다.

여인이 무인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게 엎드려 있으니까 내게 부복하는 것 같네요?”

“……”

무인은 침묵했다.

“왜 한결같이 귀무살들은 차가운지 몰라. 전임 귀무령도 심장이 얼어붙었던데.”

“입 다물어라. 네년이 언급할 분이 아니다.”

무인이 여전히 부복한 채 말했다.

“네년? 호호호! 혈천방은 확실히 귀무살 세상에야. 위아래도 없고, 방주님도 안 보이고.”

“방주님이 계시니까 네년 목숨이 붙어 있는 줄 알아. 칼을 맞대고 싶다면 언제든 환영한다.”

“그만! 왜들 그래? 같은 식구끼리. 전주는 그만 가보고. 귀무령은…… 아니지. 귀무령을 한사코 사양하니 냉혼도(冷魂刀)라고 불러야지? 냉혼도는 안으로 들어와.”

혈천방주가 침상에서 일어나 옷을 입으며 말했다.

냉혼도가 말했다.

“제삼대가 몰살했습니다.”

“그래? 언제?”

“시월 스무이레입니다.”

“혈마?”

“네.”

“허어! 이거야. 한시도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없으니. 귀문을 날린 것도 모자라서 제삼대까지 친 거야? 그런데 혈마가 제삼대를 어떻게 알고 찾아갔나?”

“귀무살 난검이 꼬리를 잡힌 것 같습니다.”

“음! 귀무살이 꼬리를 잡힐 만하지. 혈마에 근접했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그런데 제삼대가 몰살당한 게 이상합니다. 호발귀는 대주를 비롯한 이십여 명만 죽였습니다. 나머지는 도천패, 당홍, 홀리, 등여산이 죽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호발귀가 전부 죽인 게 아니야?”

“네.”

“흐음! 혈기를 꽤 누르고 있네? 이제 곧 터질 텐데.”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호발귀를 저희가 쳤으면 합니다. 허락해 주시기를!”

냉혼도가 허리를 숙였다.

“아니, 그러지 마. 이런 일에 괜히 귀무살을 희생할 필요가 없어.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하지. 그건 그렇고…… 귀무령에 취임하지 않을 거야?”

“귀검께서 살아계십니다. 제가 어찌.”

“내가 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어줄 건가?”

“……”

냉혼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하하! 그렇지? 그런 상황이면 틀림없이 죽었어. 살 수가 없지. 그런데 귀검은 살았다 이거지? 자네들 귀무살…… 어떻게 보면 내가 아니라 귀무령을 추종하는 것 같단 말이야.”

“아닙니다!”

“하하하! 그렇다고 정색할 필요까지는 없고. 가봐. 호발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넷!”

냉혼도가 깊이 부복한 후, 물러났다.

저벅! 저벅! 저벅!

혈천방주는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지하 특유의 음습한 습기가 밀려왔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공기가 후덥지근해진다.

땅을 파서 만든 곳이라 땅 냄새도 진하게 풍겼다.

숨이 막힌다. 가슴이 답답하다.

두더지도 아니고 두 달 이상을 빛 한 점 들지 않는 땅속에서 버티는 인간들은 도대체 뭔가.

‘음문촌 놈들이란.’

혈천방주는 미간을 찡그리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끝에는 지하 광장이 펼쳐져 있다.

광장 한가운데에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트린 노인이 앉아 있다.

노인이 손을 들어서 혈천방주를 가리켰다. 그러자,

쉬익!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리며 비수가 날아왔다. 그리고 혈천방주가 든 횃불을 싹둑 끊어냈다.

“하아! 이런!”

혈천방주가 혀를 찼다.

지하는 어둠으로 뒤덮였다. 옆에 사람이 있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 덮였다.

혈천방주조차도 어둠에 눈을 익혀야만 했다.

“웬만하면 불 좀 켜지.”

혈천방주가 못마땅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무리 산에서만 살아온 야만인이라고 해도 딸내미 잠자리까지 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음문촌 촌장 음성이다.

“아직도?”

“다 끝나가.”

“이 냄새는 뭐야? 굉장히 역겨운데? 여긴 환기도 안 되는데, 이런 냄새를 피워도 되나?”

“귀색무(鬼索霧)라고 하지. 반 각이면 방주도 나가떨어진다는 데 천 냥 걸지.”

“아! 그런 내기는 관심 없어. 해독단 있으면 한 알 주지?”

“다 떨어졌어.”

“후후! 그럼 빨리 나가야겠군. 혈마, 쓸만해?”

“가짜는 가짜일 뿐이야. 그저 무공이 터무니없이 강한 실혼인(失魂人) 정도라는 편이 맞아. 저놈, 절대 혈마가 안 돼. 혈마는 귀색무를 맡고도 하루를 버텨. 저놈은 한 시진 만에 나가떨어졌어. 차이가 나도 워낙 크게 나.”

“그럼 혈마와 싸우면 안 되겠네?”

“실혼인이니까 어느 정도 효과는 볼 수 있겠지. 왜?”

“그냥 한 번 들러봤지. 대법(大法)이 어느 정도나 진행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후후! 상황이 무척 급해졌다는 말로 들리는데?”

“하하하! 역시 음문촌 눈은 속이지 못한다니까.”

“후후후! 호발귀가 꽤 잘하나 보군.”

“그런데…… 호발귀가 정말 혈마가 되면 당신 딸 홀리가 놈을 낚아챌 수 있을까?”

“내일 해가 뜨는 것보다 더 확실하지.”

“그 정도인가? 하하! 자, 그럼 난 할 말 다 했으니까, 이 냄새에 나가떨어지기 전에 나가봐야지. 수고!”

혈천방주가 어둠 속에서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 * *

남자가 돌침상에 묶여 있다.

사지가 쇠밧줄로 단단하게 결박되어서 아무리 힘을 써도 움직이지를 못한다.

토초는 사지가 묶인 남자를 올라탔다.

“후욱!”

토초의 입에서 거친 숨이 쏟아졌다.

혈마후가 되려면 혈마로부터 아내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제일 먼저 귀색무를 피워서 정신을 잃게 만든다. 하지만 인간이 가지는 본능은 살아있다. 오직 정신만 놓을 뿐, 몸은 여전히 본능대로 움직인다.

이것이 귀색무의 특징이다.

혈마후는 정사를 통해서 혈마의 생기에 접근한다.

무공으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혈마 무공이 생기를 단단히 감싸고 있어서 어떤 진기든 접근하기만 하면 퉁겨낸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다.

혈마는 의식을 잃으면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다.

몸뚱이는 칼로 저밀 수 있고, 망치로 으깰 수 있지만, 진기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혈마후는 인간 욕구 중 성욕을 파고들었다.

일단 귀색무를 펼쳐서 정신을 잃게 만든 후, 정사를 벌인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벌이는 정사, 동물적인 정사다. 하지만 무의식 속에는 정사를 벌인다는 사실과 상대가 누구라는 사실이 단단히 각인된다.

정사를 통해서 내가 네 부인이라는 사실을 단단히 각인시킨다.

주문도 외운다. 구혼음소(句魂音素)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말이 아니라 신호다.

“딱! 따악! 따악! 딱!”

소리를 내어 뇌를 자극한다.

무의식에 자극을 가해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계속 확인시킨다.

귀색무와 구혼음소는 혈마를 정신 잃은 무공 병기로 둔갑시킨다.

혈마후의 말만 쫓는 실혼인이 된다. 실혼인과 다른 점은 혈마후만은 똑똑히 인식한다는 점이다.

이후, 혈마는 혈마후와 부부가 된다.

혈마후와 부부 관계를 맺을 때마다 혈마후는 구혼음소를 흘린다. 혈마의 뇌를 계속 자극한다.

귀색무는 처음을 제외하고는 필요 없다.

혈마는 날이 갈수록 혈마후에 대한 충성심은 깊어진다. 혈마가 혈마후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일편단심 오로지 순종하는 마음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노예처럼 보인다.

구혼음소는 일명 ‘주문’으로 불린다. 모두 천이백팔 개의 신호를 토해내야 한다. 중간에 한 글자라도 틀리면 무효가 된다. 계속 같은 음률로 신호를 보낸다.

“후욱! 훅!”

토초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음문촌 여자들은 남녀관계에 상당히 개방적이다. 남녀가 같이 자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래서 정을 통한 사이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든 검을 겨눌 수 있다.

토초도 사내 경험이 많다. 음문촌에서 방년을 넘길 때까지 처녀로 있으려면 정말 독해야 한다.

토초는 많은 사내를 눕혔다.

그녀의 몸이 사내처럼 단단하고, 근육이 넘치며, 얼굴도 험한 사내 인상이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오는 사내가 없다. 그래서 그녀가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편이다.

사내를 눕혀놓고 관계를 맺는 데도 익숙하다.

“따악! 딱! 따아악!”

토초는 계속 구혼음소를 토해냈다.

이윽고, 발버둥 치던 사내가 축 늘어졌다.

사내는 정사를 더 잇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혈마의 생기에 그녀의 음기가 닿았다.

토초는 혈마의 원정에서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말이 있다. 혈마가 힘을 잃고 정사를 끝내면 원정에 음기가 닿은 것이다. 음기가 닿지 않았다면 혈마는 몇 날 며칠이고 여인을 탐한다.

“후우!”

토초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귀색혼령대법(鬼色魂靈대法)이 이틀 만에 끝났다.

이틀 동안 꼬박 쉬지 않고 대법을 펼쳤다.

가짜가 이런데 진짜는 어떨까? 혈기가 가짜보다 훨씬 강할 텐데, 견딜 수 있을까?

혈마후가 되기도 쉽지 않다.

“홀리 그 계집애, 실패할 거야. 가짜도 이렇게 힘든데. 더욱이 그 계집애는 사내 경험도 없어. 틀림없이 실패할 거야. 아! 힘들어. 혈마! 넌 이제 내 거야!”

토초는 쇠밧줄에 묶인 사내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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