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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40화 (140/500)

第二十八章 역전시도(逆戰試圖) (5)

호발귀는 시골길을 걸었다.

우마차가 다니는 길이라서 길 곳곳에 소똥이 깔려 있다.

사방이 확 트인 시골길을 걸어간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걷는다.

호발귀는 시골길이 끝나는 곳에서 작은 집 한 채를 찾아냈다.

‘저곳인가.’

호발귀는 자신이 찾은 집이 뭐 하는 곳인지 모른다. 무작정 찾아오다 보니 작은 집이 보였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도착한 곳이 이곳이다.

작은 집에서는 아주 많은 생기가 득실거린다. 그리고 또 빠르게 생기가 소멸한다.

도축장이다.

호발귀 같은 사람은 도축장을 쉽게 찾는다.

역천금령공이 이런 역할까지 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집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진한 피비린내가 확 풍겼다.

짐승이 내뿜는 특유의 비린내도 풍겼다. 비린내와 분뇨 냄새가 섞여서 지독한 악취를 풍긴다.

이제는 누구라도 이곳이 도축장이라는 것을 알겠다.

“누구요!”

호발귀가 가까이 다가서자 백정이 도끼를 꼬나들고 나왔다.

검을 찬 무인이 찾아오니 자연스럽게 경계심이 일어난 것 같다.

사실, 무인이 도축장을 찾는 일은 거의 드물다. 큰 도축장이라면 검을 시험하기 위해서 들리는 일이 있지만, 시골에 있는 작은 도축장은 찾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는 짐승을 잡는 도구가 없다. 그래서 일일이 수작업을 한다.

소를 잡는 일은 아주 큰 일이다.

주로 돼지나 염소를 잡는다. 작은 손칼 하나로 생명을 끊는 일부터 해체까지 모두 마친다.

그런 곳에 무인이 찾아오자 시비가 걸릴까 봐 우려한 것이다.

“뭐요!”

백정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호발귀를 쳐다보는 눈에는 살기까지 번들거렸다. 수작을 부리면 순순히 당하지 않겠다는 백정 특유의 광기가 번뜩였다.

“일 좀 했으면 하는데.”

“뭐요!”

백정이 재차 날카롭게 물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순화되고 있었다.

호발귀는 백정의 생기를 톡톡 다독였다.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이 차츰 가라앉는다. 경계심이 누그러진다. 호발귀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아니, 썩 괜찮은 무인이라는 생각이 일어난다.

아! 그렇구나. 짐승을 상대로 검을 시험하려고 왔구나.

무인들은 종종 짐승을 상대로 검을 실험한다. 초식을 펼쳐서 검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살핀다.

물론 그렇게 되면 짐승은 어육(魚肉)이 된다. 시장에 내다가 팔 수 없을 정도로 피떡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처음부터 짐승 값을 받고 내준다.

아주 흔한 일이다.

백정은 호발귀도 그런 생각에서 찾아왔을 것으로 생각했다.

백정의 마음이 아주 잘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편안해졌다.

“짐승을 좀 잡아볼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검초를 쓰는 게 아니라 잡겠다고요?”

“네. 잡아볼까 합니다. 해체까지 다해보고 싶은데.”

“짐승을 잡아본 적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그럼 곤란한데……”

“여기.”

호발귀가 전낭을 내밀었다.

이렇게 되면 백정은 손해 볼 게 없다. 짐승을 피떡으로 만들든, 해체를 하던 무인 마음이다.

“지금은 돼지 몇 마리밖에 없어서. 그것도 괜찮다면…… 해보슈.”

백정이 길을 비켜주었다.

우리에 돼지 다섯 마리가 있다.

한 마리는 이미 잡혀서 해체 중이었고, 다른 다섯 마리가 오늘 죽을 운명이다.

“이거 잔치에 쓰일 거라서 잘 잡아야 하는데……”

백정이 머리를 긁적였다.

돼지들은 죽음을 예감했는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왔다 갔다 안절부절못했다.

호발귀는 그중 한 마리를 점 찍었다.

“너부터 하자.”

츠으으읏!

역천금령공을 일으켜서 생기로 돼지의 생기를 감쌌다.

그러자 돼지가 잠잠해졌다. 아주 편하게, 잠을 잘 때처럼 눈까지 내리감았다.

호발귀는 단검을 들어서 목 밑 심장 부위에 댔다.

돼지는 날카로운 흉기가 몸에 닿았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푸욱!

단검이 돼지의 심장을 찔렀다.

꽤왝!

돼지가 비명을 내질렀다. 생기가 거세게 요동쳤다. 찔린 심장에서 핏물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왔다.

쿵!

돼지가 몸을 눕혔다.

푸드득! 하고 숨을 거칠게 뿜어냈다. 네 다리는 빳빳하게 굳어지고 있다.

츠츠츠츠츳!

호발귀는 생기를 계속 다독였다.

‘괜찮아. 괜찮아. 곧 편안해질 거야.’

돼지가 잠잠해졌다. 숨이 끊어졌다.

보통 돼지는 심장이 찔리고도 상당히 오랫동안 버티는데, 호발귀가 찌른 돼지는 아주 빨리 숨을 거뒀다.

시에 새끼가 잔잔해졌다.

호발귀가 확인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하면 가장 편안하게 죽일 수 있다.

“아! 정말 편안하게 죽었네.”

뒤에서 지켜보던 백정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 순간, 호발귀는 걷잡을 수 없는 살기에 휘말렸다.

지금처럼 생기가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면 매우 혼탁해진다. 나갈 때의 푸른 빛이 아니다. 녹색, 혹은 연녹색을 띤다. 푸르면 푸를수록 맑은데, 매우 혼탁해졌다.

그것이 살기를 일으킨다.

주치균의 생기를 억누르고 난 다음, 심한 살기를 느꼈다.

주치균의 살기는 가라앉혔지만 반면에 생기를 떨쳐낸 호발귀 자신은 아주 심한 살기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돼지는 편안하게 죽였다. 백정이 감탄할 정도로 아주 편히 숨을 거뒀다. 검에 찔렸으니 고통은 있었겠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한결 덜었을 것이다.

반면에 호발귀는 살기가 들끓는다.

돼지의 생기나 사람의 생기나 생기는 똑같다. 다르지 않다. 어떤 것을 어루만지든 밖으로 나왔다가 돌아온 들어온 생기는 혼탁함을 묻혀서 온다.

호발귀는 팔팔 끓는 물을 돼지에게 부었다. 그리고 털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배를 가르고 장기를 적출했다. 백정들이 사용하는 손칼을 사용해서 살을 발라냈다.

“어휴! 잘하네. 웬만한 백정보다 훨씬 잘하는데.”

백정이 감탄했다.

역시 무인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살을 근육이 형성된 결을 쫓아서 잘라내는데, 솜씨가 어느 백정보다도 뛰어나다.

해체가 아주 깨끗하다.

호발귀는 백정들이 행하는 적출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이런 것은 배운 적도 없다. 하지만 그가 적출해 낸 장기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그가 발라낸 살은 아주 매끄럽다.

백정들에게 이런 일은 고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호발귀에게는 살기를 다스리는 일이다. 끝없이 치솟는 살기를 손칼에 심어서 날린다. 죽은 돼지를 찢고, 가르고, 쪼개면서 살심을 녹이려고 했다.

이렇게 살기를 다스릴 수가 있을까?

이것은 또 하나의 실험이다.

살기가 일어나는 과정은 알았는데, 다스리는 방법을 모르겠다. 그렇다고 무작정 쏟아낼 수도 없다. 살기를 쏟아내면 어떻게 되나? 큰일 난다.

“휴우!”

호발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살기가 남아 있어. 누구든 죽이고 싶다.’

옆에 있는 백정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모른다.

호발귀는 백정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이 자는 매일 손에 피를 묻힌다. 피를 보아야만 삶을 유지하는 자다. 그러니 죽여도 되지 않을까? 사람이든 짐승이든 남을 죽이면 자신도 죽을 줄 알아야지.

말도 안 되는 이유가 거세게 일어난다.

혼탁한 생기가 살기를 일으킨다. 살기가 생각을 조정한다. 똑같은 상황을 보도고 살기에 맞춰서 죽일 만한 이유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매우 타당해 보인다.

생기에 의해서 생각도 조정된다.

마음이 살기로 가득 차 있으면 생각도 살기에 맞춰서 합리적으로 변해간다.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려고 한다. 죽이려는 이유를 만들려고 한다.

호발귀는 다른 돼지를 만졌다.

츠으으읏!

생기로 돼지의 생기를 톡톡 어루만졌다.

돼지가 금세 평안해졌다.

반면에 호발귀는 살기가 끓어오른다. 아주 쉽게 심장을 찔러서 죽이지 말고 몸뚱이를 난자하자는 생각이 일어난다.

이상하지 않은가? 원래 기운이란 주변에 전해지게 되어 있다. 평안한 모습을 보면 평안해지고, 살기 띤 모습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친다.

상대의 기운을 보고 내가 반응한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호발귀는 살기로 들끓는데, 돼지는 편안하다.

서로의 기운이 분리돼 있다.

주치균의 살기를 무너트릴 때, 호발귀는 살기로 들끓었다.

그때도 서로의 기운이 분리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상대방이 호발귀의 기운을 읽지 못한다. 호발귀가 만들어 낸 기운에 감응한다. 진짜 기운은 전혀 모른다.

역천금령공이 생기를 감쌌다.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막는다.

스으읏! 꿰에엑!

단검을 찔러넣었고, 돼지가 비명을 내질렀다.

“고맙습니다.”

호발귀는 백정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이죠. 전 돼지들이 그렇게 편안히 죽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역시 무인은 칼 쓰는 솜씨가. 여기 고기를 좀 쌌습니다.”

백정이 나뭇잎으로 감싼 돼지고기를 내밀었다.

호발귀가 해체한 고기 중 일부다.

“감사합니다.”

호발귀는 사양하지 않았다.

백정의 말에 조금이라도 반대되는 말을 하면 당장 살기가 터질지도 몰라서 지극히 조심했다.

호발귀는 휘적휘적 걸었다.

돼지를 죽인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멍청한 짓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돼지 다섯 마리를 죽이자 살기가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왔다.

돼지들은 편하게 죽었다. 백정은 돼지가 웃으면서 죽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만큼 편안한 죽음이었다. 살을 째는 솜씨도 깨끗해서 태어날 때부터 백정이 아니었나 싶었단다.

호발귀가 떨쳐낸 생기는 세상을 편안하게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호발귀 자신은 살기가 쌓였다. 돼지 다섯 마리를 잡은 후에는 도저히 살기를 누를 수 없어서 급히 뛰쳐나왔다. 그래서 백정이 하는 말에 토하나 달지 않고 순순히 응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삐딱하면 즉시 살기가 쏟아질 것 같아서.

살기로 상대방의 생기를 다독거리면 안 된다. 무공을 펼칠 때 떨쳐내는 생기만으로도 혈마가 되기에 충분하다. 다른 일까지 하면 살기가 더욱더 짙어질 뿐이다.

호발귀는 깊은 산으로 들어섰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검을 뽑아 들고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쒜에에엑! 퍼억! 쒜에에엑! 퍽!

나무가 잘려 나갔다. 아니, 도끼에 찍힌 듯 거칠게 부서졌다. 검이 바위도 치고 물도 갈랐다.

쨍겅!

검이 바위에 부딪히면서 검신이 뚝 부러졌다.

개의치 않았다. 죽을힘을 다해서 검을 떨쳐냈다. 검을 잡은 손이 거센 충격을 받아서 찢어졌다.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래도 발광을 멈추지 못했다.

계곡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검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간다

옆에 누군가에 있다면 갈기갈기 찢어져서 흔적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호발귀는 미친 듯이 검무를 추었다.

“하악! 학! 하아악!”

호발귀는 진기가 고갈된 다음에야 발광을 멈췄다.

산에 큰 대 자로 드러누워서 하늘을 쳐다봤다.

검을 들고 있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 거의 한 시진에 걸쳐서 모든 기력을 싹 쏟아냈다. 지금은 어린아이가 와서 검을 휘둘러도 막을 수 없다.

전신에 힘이 다 빠졌다.

그런 다음에야 살기가 감소하였다.

위도에서처럼 정신을 잃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다.

“후웁!”

산속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공기 속에는 우주 자연의 생기가 섞여 있다. 땅도 살아있고, 나무도 살아있고, 새도 살아있다. 당연히 생기가 존재한다. 그 생기를 들이마셔서 잃어버린 생기를 보충한다.

원정에 푸른 빚이 쌓인다.

혼탁한 생기가 아니라 맑고 깨끗하게 생기다.

“하아! 하! 후우웁!”

호발귀는 계속 생기를 들이켰다.

살기가 형성되는 과정을 알았다.

생기를 쓰면 살기가 일어난다는 것은 명확하다. 생기는 오로지 내 육신을 보호하는 데만 써야 한다. 그때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 아니 오히려 생기가 더 굳건해지고 강해진다. 삶에 활력이 넘치게 된다. 내 몸에만 쓰는 것은 무조건 좋다.

이백 년 전, 혈마는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혈마도 자신과 같은 고민을 했을까?

호발귀는 문득 이백 년 전 혈마와 동질감을 느꼈다. 단순한 살인마, 혈마가 아니라 고뇌하는 인간의 아픔이 가슴에 와닿았다.

“혈마.”

호발귀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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