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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39화 (139/500)

第二十八章 역전시도(逆戰試圖) (4)

“뭐? 상양으로 간다고?”

주치균은 이를 꽉 깨물었다.

눈가에 핏발이 서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피는 두 배나 빠르게 뛰고,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이토록 철저하게 기만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등여산에게 뒤통수를 얻어맞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을 하지 않았다.

“그런가. 마음이 완전히 돌아섰나. 이제는 천살단조차도 눈에 보이지 않는 건가. 단주가 내린 명령조차 무시하나. 무엇이 널 이렇게 비뚤어지게 만든 거야.”

주치균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등여산은 맑고 명랑했다. 단주를 철석같이 믿고 따랐다. 주변 사람들한테 마음을 푸근하게 썼다. 언제나 정도만 생각했다. 혈천방이라면 이를 갈았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단주가 직접 내린 명령도 거부하고 듣지 않는다.

자신이 쫓아오는 걸 아는 알고는 일부러 전서구를 날려서 살단을 돌려보내게 했다.

호발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런 등여산의 행동은 아무리 좋게 봐도 배신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주치균은 하마터면 등여산을 보지 못 할 뻔했다. 혈천방 제삼대로 오지 않고 계속 호발귀의 흔적을 쫓아서 나갔다면,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지 못했다.

사실은 그러려고 했다.

오는 도중에 호발귀가 이미 제삼대를 빠져나갔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래서 다른 길로 뒤쫓아가려고 했다. 한데 무엇인가 끈끈한 것이 뒷머리를 잡아당겼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이런 꼴을 보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자꾸 발걸음이 제삼대로 향했다. 그리고 끝내는 한 번 들려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까지 치밀었다.

그래서 제삼대로 왔다.

처음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조용했다. 호발귀가 몇몇 사람을 죽이고 떠났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제삼대는 여전히 무탈했다.

그랬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도천패가 칼을 휘두르는 것은 이해한다. 홀리가 활을 쏘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등여산이 설화팔극검을 사용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혈천방 마인이니까 죽여도 된다고? 맞다. 죽여도 된다. 하지만 그건 살단이 할 일이다. 책사가 할 일이 아니다. 또한, 등여산은 자신이 직접 사람을 죽이는 일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검을 휘두른다. 호발귀를 위해서 싸운다. 옷에 피를 묻히면서.

“오늘. 이 선택. 후회할 거야. 내가 꼭 후회하게 해줄 거야. 내가!”

등여산을 볼수록 화가 치민다.

등여산의 저런 행동이 호발귀 때문이라는 사실이 피를 거꾸로 치솟게 만든다.

“호발귀처럼 더러운 놈에게 안기는 꼴은 눈 뜨고 못 보지. 왜 하고많은 놈 중에 마인이야. 왜 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피에 절은 혈귀 놈이냐!”

주치균은 이를 악물었다.

“호발귀는 내 손으로 죽인다. 반드시!”

예전에는 등여산이 고귀하기 이를 데 없었다. 너무도 순결하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 생각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호발귀와 엮었다는 것을 안 순간, 갑자기 더러워졌다. 피에 절은 모습으로 검을 휘두르는 꼴을 보니 추해서 쳐다보기 힘들었다.

주치균은 등여산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호발귀는 많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뒤를 쫓을 수 없을 만큼 흔적이 전혀 없다.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놓쳤다!’

주치균은 추격을 포기했다.

자신이 직접 흔적을 쫓았는데도 종적을 놓쳐버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놈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관도를 따라서 걷고 있다. 주루에서 술을 마신다. 벌건 대낮에 장터에 나타나 물건 구경을 한다. 잠도 객잔에서 잔다. 기습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놈이 하도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서 그를 쫓는 사람조차 의아하게 만들었다.

사실, 호발귀를 쫓는 사람이 많다.

그들 모두가 호발귀의 종적을 놓쳤다가 다시 찾아냈다.

주치균은 안강(安康)이라는 도읍으로 들어섰다.

호발귀가 모습을 드러낸 곳이다. 어제저녁에 이곳에서 잠을 잤고, 오늘 아침에는 길거리를 배회한 후에 다루에서 차를 마시는 중이라는 정보다.

저벅! 저벅!

주치균은 호발귀가 들어갔다는 다루를 향해 걸었다.

지금 싸우면 호발귀를 이길 수 있을까? 예전에는 상대도 되지 않았는데.

그는 혈마 무공이 강한 것을 알고 있다.

참회동에서 싸웠을 때는 말도 안 되게 무참히 패했다. 검벽주가 한낱 애송이에게 무너졌다.

하지만 창피하지는 않다.

호발귀는 살단 총주를 무너트렸다. 혈천방 귀검도 쓰러트렸다. 그러니 자신이 패한 것도 큰 창피는 아니다. 오히려 놈을 잘 아는 계기가 되었다.

주치균은 이번에 아주 단단히 준비했다.

전임 살단 총주의 무공인 반야호신공을 수련했다. 몸이 돌처럼 단단해서 병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설혹 살을 뚫고 들어와도 치명적인 요혈을 치지는 못한다.

두 번째로 준비한 것도 있다.

반야호신공이 수비식이라면 공격에 활용할 무공도 준비했다.

비장의 무기다. 그걸 사용하면 아무리 혈마라고 해도 죽을 수밖에 없다.

자신한다!

자신이 인제 인간이 배울 수 있는 최고의 무궁을 다 배웠다.

남은 것은 오랜 숙련과 내공 양성뿐이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만드는 일만 남았다.

만약, 이번에도 진다면 무공이 약해서가 아니다. 수련이 부족해서다. 하지만 수련이 부족하기는 호발귀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미숙한 상태에서 싸우는 것이니 손해 볼 것이 없다.

‘저긴가?’

주치균은 ‘녹향루(綠香樓)’라고 적힌 깃발을 봤다.

호발귀는 묵묵히 차가 끓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소문이 사실이다. 모습을 버젓이 드러낸 체 시중을 활보하고 있다. 공격하고 싶은 자는 얼마든지 공격해 보라는 태도다. 아니, 신경도 쓰지 않는다.

‘네놈이 언제부터 차를 마셔댔다고!’

주치균은 거침없이 걸어가서 호발귀 맞은편에 앉았다.

호발귀가 고개를 들어 주치균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서 찻주전자를 쳐다봤다. 느닷없이 나타났는데도 놀라는 기색도 없이.

호발귀가 말했다.

“차 한 잔 따라줄까?”

주치균은 살얼음이 풀풀 날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네놈 따위가 따라주는 차는 마시고 싶지 않다. 나가지. 여기는 사람이 많아.”

“풋! 급하긴.”

“나가지 않겠다면 여기서 해도 좋고.”

“나가긴 나가는데, 이거 돈 주고 산 거야. 한 잔이라도 마시고 나가자고.”

호발귀가 주전자를 들어서 찻잔에 찻물을 따랐다.

또르륵!

황갈색 발효차가 찻잔 가득 채워졌다.

“내가 따라주는 게 싫다면 직접 따라 마시던가.”

호발귀가 찻주전자를 주치균 앞에 놓았다.

“흥!”

주치균은 코웃음을 흘리며 주전자를 집어서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리고 차를 마셨다.

두 사람은 그렇게 묵묵히 차를 마셨다.

‘내가 왜 이 차를 마시고 있지?’

주치균은 미간을 찡그렸다.

호발귀와 대화를 나눈다거나 차를 같이 마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놈을 당장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가서 일 검에 베어낼 생각만 가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놈이 내민 주전자를 들어서 차를 따랐다. 그리고 마시고 있다.

호발귀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지고 있다.

놈이 지금 칼을 쓰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그런가? 왜 팽팽하던 투지가 사라지고 있나.

‘안돼! 이놈을 죽여야 해!’

주치균은 눈가에 투지를 실었다. 하지만 투지가 실리지 않았다. 눈에 힘을 준 것은 맞지만, 단지 힘만 들어갔다. 투지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차 맛을 잘 모르는데, 여기 차는 맛있네. 구수하고 시원해. 이게 차 맛이 맞는지 몰라도.”

호발귀가 말했다.

주치균은 침묵했다.

호발귀 따위와 다도를 말하고 싶지 않다. 놈이 아는 차 맛은 엉터리다. 다도와도 전혀 상관없다.

‘싸울 거니까 지금은 참자. 곧 싸울 거야. 이 차만 마시고 나가는 거야.’

주치균은 계속 투지를 일깨웠다.

호발귀에 대한 마음은 투지를 넘어서 살기였다.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이었다. 그런데 왜 이러지? 왜 이렇게 계속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일으켜야 하는 거지?

호발귀는 아예 눈까지 감고 차를 마셨다. 차 맛을 음미하는 듯 찻물을 입에 물고 살살 굴렸다. 그러다가 꿀꺽 삼켰다.

“가지. 사람이 점점 많아지네. 나는 괜찮은데, 그쪽은 별로 안 좋을 것 같아서. 나 같은 놈하고 차를 마시는 것도 그렇고. 뭐랄까? 우린 서로 혈통이 다르잖아. 그쪽은 왕족, 난 한낱 소매치기. 서로 어울릴 사람들이 아니지.”

호발귀가 먼저 일어섰다.

호발귀는 주치균을 데리고 강가로 갔다.

사람들이 졸졸졸 쫓아온다. 무인 두 명이 강가로 간다. 왜 가겠나? 싸우러 가는 게 뻔하지 않나. 싸움 구경을 할 수 있는데 왜 쫓아가지 않겠나.

강가에 도착하자, 호발귀가 강물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 혈마 아닌 거 알잖아.”

“그런 건 상관없다.”

“아니, 내가 물은 것은…… 정도의 잣대라는 것을 알고 싶어서. 정도의 잣대로 쟀을 때, 나는 어떤 죄목 때문에 공격당해야 하는 건지 알고 싶은데? 왜 나랑 싸우려고 하는 거지? 최소한 어떤 기준인지는 말해줄 수 있잖아.”

호발귀가 주치균을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넌 혈마 무공을 수련했어. 죽을 명분은 그것으로 충분해.”

“풋!”

호발귀가 웃었다.

“내가 혈마 무공을 깨우친 건 참회동에서야. 그때 이미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도 나를 강하 독림으로 보낸 거고. 날 이용해서 혈천방을 없애려고.”

“치사하게 목숨 구걸이냐?”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 내 적은 혈천방이야. 그러니까 돌아가. 정 싸우고 싶으면 혈천방과 싸움이 끝난 다음에 와. 그때는 기꺼이 받아주지.”

호발귀가 차분하게 말했다.

주치균은 진기를 모으려고 했다. 한데 도무지 투지가 일어나지 않는다. 싸우겠다는 마음이 스르륵 사라진다. 계속 몸도 마음도 축 처진다.

‘이런 싸움 해봤자 뭐해.’

주치균은 불현듯 치민 생각에 깜짝 놀랐다.

갑자기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다. 왜 이런 생각이 일어나는 거지? 왜 검을 뽑지 못하지?

주치균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등여산 보내라.”

“보냈는데?”

“다시 왔다. 널 위해서 제삼대를 몰살시켰어. 너도 이미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그런가.”

호발귀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놈, 진심이네!’

주치균은 호발귀의 말이 진심으로 보였다.

놈은 등여산이 혈마 싸움에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말투며 표정이며 모두 진실된다.

어떤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는 놈인데, 혈마인데…… 왜 놈을 믿는 것이냐!

“등여산이 오면 다시 보내. 네놈 곁에 있으면 책사까지 공격 대상이 된다.”

“보내긴 하겠는데, 갈지는 모르겠네.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면 단주의 명령까지 거부하고 온 것 아닌가. 발길을 돌릴 때는 단단히 작심했을 텐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돌려보내나.”

호발귀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익!’

주치균은 검을 뽑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검을 뽑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검을 뽑자마자 살수를 써야 하는데, 도저히 살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호발귀가 하는 말이 모두 사실처럼 여겨진다.

왜 이 자를 죽이려고 하나?

이런 생각이 일어나면 안 된다. 왜 이러지?

주치균은 혼란스러웠다.

“싸움은 다음으로 미루지. 그게 좋겠어. 구경하는 사람도 많고. 그리고 천살단에는 검을 쓰고 싶지 않아. 내 적은 혈천방이야. 그건 분명해.”

호발귀가 강변을 걸어갔다.

‘안 돼! 돌아와!’

주치균은 이를 악물었지만, 호발귀를 돌려세우지 못했다.

‘내가 왜 이러지? 이게 무슨 일이야.“

주치균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호발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살심이 들끓었는데 왜 갑자기 싹 사라진 것이다.

호발귀가 점점 멀어져 갔다.

주치균은 끝내 호발귀를 돌려세우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주먹까지 불끈 쥐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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