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八章 역전시도(逆戰試圖) (2)
츠으읏!
역천금령공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팔십일수가 아닌 혈마 무공을 사용할 생각이다.
‘해보자!’
그렇다. 시험해볼 게 있다. 만약에 이게 통한다면 거의 무적이다. 이 세상 어떤 무공도 혈마 무공을 상대하지 못한다. 누구와도 싸울 수 있다.
역천금령공과 함께 일어난 생기를 이령귀화에 실었다. 그리고 이령귀화를 전신에 유포했다.
촤아아아아악!
전신에서 뜨거운 활기가 용솟음쳤다. 동시에 호발귀에 이마에 선명한 혈선이 그어졌다.
“음! 혈마인가!”
삼대주가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호발귀를 포위한 네 명은 말할 것도 없다.
“혀, 혈마!”
“이익! 우릴 속여!”
혈마 무공을 알아본 무인들이 분노와 공포를 동시에 드러냈다.
세상에서 혈마 무공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혈마가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특징, 이마에 드러난 혈선을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다. 특히 혈천방 문도들은 혈마 상징에 대해서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간특하군. 이미 혈천방 본방에 보고할 자는 떠났다는 건가?”
삼대주가 말했다.
“맞아. 그리니 이제는 혈마 무공을 사용해도 무방하지. 너희가 본래 이걸 원한 거잖아.”
츠읏!
호발귀는 이령귀화를 풀어냈다.
사실, 이령귀화는 실타래처럼 줄줄 풀려나가지 않는다. 초식을 펼치면 빛이 명멸하듯 순간적으로 팍! 터졌다가 꺼진다. 순간적인 명멸이다.
하지만 생기는 진기와는 본질이 전혀 다르다.
생기는 줄줄 풀려나갈 수 있다.
생기는 생명을 유지하는 기운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주에 떠도는 생기가 흡입되어서 내 몸의 생기를 북돋는다. 이 기운이 강하면 ‘기운이 왕성하다’라고 하는 것이고, 이 작용이 약하면 ‘기운이 빠진다’라고 한다.
혈마 무공은 이 근원을 사용한다. 그러니 실타래 풀어내듯 흘려낼 수 있는 것이다.
생기가 나가서 네 명의 원정을 억눌렀다.
이것을 해보고 싶었다. 상대의 생기를 누른 상태에서 접전을 벌이면 어떻게 되는지.
일일십살을 할 때, 상대방 방으로 침입하면서 상대방의 생기부터 눌렀다.
그 방법을 다시 한번 쓴다.
이령귀화로 원정을 살짝 누름과 동시에 축지지망보를 펼쳤다.
쎅!
호발귀는 한순간에 상대방 앞에 도착했다. 손에 들린 단검은 이미 상대방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훅!”
지단 무인이 헛바람을 내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호발귀가 언제 자신의 앞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오래 지켜보지는 못했다. 호발귀는 정확하게 가슴 한가운데 자궁혈(紫宮穴)을 타격했다. ‘아!’하는 순간, 그는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호발귀는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움직였다.
옆에 있는 자에게 다가가서 목과 어깨의 경계인 거궐혈(巨闕穴)에 단검을 깊이 넣었다.
단검이 거궐혈을 통해서 폐까지 관통했다.
단검은 그자의 몸 안에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폐를 관통하는 순간, 사라지듯 뽑혀 나갔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자를 향해 던져졌다.
퍼억!
단검이 지단 무인의 미간에 자루째 꽂혔다.
그 순간, 호발귀는 이미 마지막 한 명 앞에 서 있었다.
탁! 타타탁!
송곳처럼 날카롭게 곤두세워진 검지가 인중(人中), 천돌혈(天突穴), 중완혈(中脘穴)을 일시에 타격했다.
“컥!”
지단 무인이 거센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그가 고개를 들어서 호발귀를 쳐다봤다. 제일 먼저 당한 자와 똑같은 표정이다. 네가 언제 여기에 왔냐는 물음이 담겼다. 도대체 사술인가? 신법인가? 어떻게 이 정도까지 빠른가?
쿵!
마지막 지단 무인은 물음만 던진 채 절명했다.
네 명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생기를 무기로 만들면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상대방은 싸울 의사가 없다.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방금까지 잔뜩 긴장하고 있었어도, 이 순간만은 지극히 평온한 상태에 머물렀다.
호발귀는 적이 아니다. 그저 대화나 나누는 상대다.
호발귀가 정녕 그런 상대라면 긴장할 필요가 없다. 싸울 필요가 없으니 진기도 끌어올리지 않는다. 투지? 경계심? 그런 게 도대체 왜 필요한가?
네 명은 순간적으로 그런 상태가 되었다.
거기에 호발귀가 축지지망보를 사용했다. 그야말로 번개처럼 들이닥쳐서 목숨을 빼앗았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무방비 상태로 당한 것이다.
호발귀는 삼대주를 쳐다봤다.
삼대주의 얼굴에 놀람이 가득하다.
“믿을 수 없군! 이건 혈마 무공이 아니다. 뭐냐? 사술이냐? 아니, 사술도 아냐.”
삼대주가 기가 막힌 듯 같은 소리를 계속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호발귀의 움직임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수하들이 멍청하게 가만히 있다가 죽었다는 사실은 믿지 못하겠다.
사술이 아니라면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 없다.
“네놈! 역시…… 혈마였구나!”
삼대주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게 왜 애먼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호발귀는 혈마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자신이 혈마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혈마라고 불릴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곱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이면서 누명을 씌우려고 했던 자가 혈마라면, 자신이 맞다.
호발귀가 말했다.
“네놈들이 한 짓을 보면 속이 뒤집혀. 그래서 역으로 쳐보려고. 원래 남을 공격했으면 당하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법이잖아. 당연하게 받아들여.”
“훗! 다 이긴 듯이 말하는군. 아무리 혈마라고 해도 나 역시 무인. 길고 짧은 것은……”
“알아, 알아.”
호발귀가 삼대주의 말을 끊었다.
“물론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데, 하지만 우린 이미 대봤잖아? 언제 칼을 대봤는지도 몰라? 그럼 충고 하나 하지. 도망가. 싸우면 분명히 죽어.”
호발귀가 씩 웃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이미 칼을 대봤다. 이령귀화에 실린 생기로 삼대주의 생기를 눌렀다.
삼대주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삼대주뿐만이 아니다. 생기를 자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다.
스읏!
삼대주가 검을 쳐들었다.
호발귀도 단검을 쳐들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이령귀화를 사용해 보려고 한다. 처음부터 생기를 누르는 것이 아니다. 공격해 오는 도중에 펼쳐볼 생각이다.
일단 상대방이 투지로 활활 불타오르게 한다.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나게 만든다.
당연히 공격해 올 것이다.
하면 이번에는 반대로 꾹 눌러본다.
파르르르릉!
호발귀는 이령귀화로 상대방의 생기를 건드렸다. 꾹 누르지 않고, 반대로 쳐올렸다.
“후욱!”
삼대주가 큰 숨을 들이켜며 어깨를 휘둘러봤다.
몸 상태가 매우 좋다는 것을 자각했다. 근래에 느껴본 적이 없을 만큼 힘이 넘칠 것이다. 상대는 혈마이지만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생기를 북돋우는 결과다.
“간닷!”
삼대주는 고함까지 쩌렁 내질렀다. 그리고 번개처럼 쏘아왔다.
촤촤촤촤촷!
검이 순식간에 십여 개로 나뉘었다. 검마다 진기를 담고 전신을 노린다.
이런 검, 본 적이 있다. 귀무살 총령 귀검이 이런 검을 사용했다. 물론 삼대주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했다. 그때는 정말로 검 열 자루가 느껴졌었다.
‘지금!’
사라라라랑!
호발귀는 삼대주의 생기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이령귀화를 살짝 짓눌렀다.
삼대주가 돌연 움찔거렸다.
일순, 자신이 정말 옳은 공격을 하고 있는지 불안감이 치솟았을 것이다. 방금까지는 확신에 차서 달려들었는데, 순간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호발귀는 단숨에 삼대주에게 달려들었다.
팔십일수 창환수가 펼쳐졌다. 삼대주의 검을 빼앗아서 삼대주의 몸에 찔러 넣었다.
“컥!”
삼대주는 부지불식간 검을 빼앗겼다.
삼대주 같은 고수가 상대방에게 검을 빼앗기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삼대주는 몸을 관통한 자신의 검을 불신의 눈으로 쳐다봤다.
“큭!”
그가 신음하며 검을 뽑으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창환수는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손목을 꺾어버린다. 병기 끝을 움켜쥐고 단숨에 방향을 꺾어버린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손목이 뚝 꺾인다.
당연히 상대방은 자신이 펼친 수법 그대로 돌려받는다.
“이건…… 혈마 무공이…… 아냐.”
삼대주가 무너지면서 말했다.
이마에는 분명히 혈마 표식인 혈선이 그어져 있는데, 사용하는 무공은 혈마 무공이 아니다.
삼대주는 죽는 순간까지 그 점이 의아했다.
호발귀는 일일십살에 흥미를 잃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혈천방 제삼대를 몰살시키는 일에 회의감이 치밀었다.
이들을 전부 몰살시켜야 하나?
자신은 혈마가 아니다. 살인마가 아니다.
혈천방과 싸우기 위해서 지단 멸살을 선택했지만, 이 많은 사람을 다 죽이는 것은 마뜩잖다. 아니, 마음 깊은 곳에서 계속 거부감을 드러낸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도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다. 어떤 면에서 보면 거침없는 살인자 소리를 들어도 마땅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죽여야만 했다. 너무 나쁜 자라서 살려두면 많은 사람을 해칠 것이기에 죽여야만 했다.
어떤 이유로든 많은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그것과 일일십살은 완전히 다르다. 아무것도 모르고 곤하게 자는 자를 암살하는 일은 정말 힘들다. 죽일 때마다 정말 이 자를 죽여야만 하는 회의감이 치밀었다.
혈천방 사람들은 모두 나쁜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호발귀는 멍하니 앉아서 혈천방 제삼대를 쳐다봤다.
저들은 이미 수장을 잃었다. 흉수가 야산에 있는 걸 알고 제삼대 대주가 십일 호위 이끌고 올라왔다. 그리고 모두 전멸했다.
아마도 이런 사실은 먼저 떠난 한 명에 의해서 지단 무인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아니 틀림없이 통보되었다.
무인이 떠나면서 대주에게 포귄지례를 취했다. 대주도 죽을 것을 예감했다.
지금 제삼대로 내려가면 혈전이 벌어진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자와 누명을 쓴 혈마의 싸움이 벌어진다.
호발귀는 제삼대 무인들이 두렵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점은 두렵다.
“후유!”
호발귀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일어섰다.
그리고 삼대가 위치한 골짜기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제삼대를 놔둔다. 더는 일일십살을 하지 않는다.
이미 혈천방에 자신이라는 존재가 드러났다. 일곱 마을을 멸겁으로 이끈 귀무살 일곱 명 중 한 명도 죽였다. 이곳에서 이룰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진배없다.
호발귀는 산등성이로 올랐다.
원래 계획은 지단을 멸살한 후, 이곳에서 반격을 기다릴 참이었다.
며칠만 지내다 보면 틀림없이 혈천방 무인들이 나타날 것이다. 거세게 공격해 올 것이다.
그들을 무너트리고 내친김에 본방까지 공격한다.
다음에 자신을 공격할 자는 본방에서 나온 자일 것이니, 그들에게 본방 위치를 알아낸다.
그런데 지금은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제삼대를 이렇게 놔두고 떠나면…… 혈천방은 일단 자신을 수소문해야 한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공격해 올 것이 아닌가.
그러니 세상으로 나간다. 자신의 모습을 바깥세상에 내놓는다. 혈천방이 찾기 쉽게 해준다. 더불어서 혈마에 대한 누명도 일정 부분 벗겨줄 생각이다.
먼저 생각은 반드시 혈천방과 만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 나중 생각은 불확실하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낸 후에도 혈천방이 공격해 올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제삼대 무인들을 몰살시키지 않아도 된다.
호발귀는 미련 없이 산길을 탔다.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