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八章 역전시도(逆戰試圖) (1)
호발귀가 먼저 지단 무인을 죽였다. 그러니 호발귀 뜻이 너무 분명하다. 너희들을 죽이겠다는 거다. 그렇다면 상대방도 병기를 휘둘러야 마땅하다. 여기서 더는 말은 필요 없다.
하지만 지단 무인은 말을 걸어왔다.
“누군지 알고 싶으면 내 소개를 먼저 하라? 후후! 하지. 난 혈천방 제삼대 대주(隊主) 풍재유(馮再柔)다. 그럼 묻지. 내 소개를 했는데, 나를 아나?”
“몰라.”
호발귀가 싱겁게 대답했다.
다른 곳에서는 분타 혹은 지단이라고 부르는데, 혈천방은 대(隊)로 구분하는 듯하다.
삼대 대주 풍재유가 말했다.
“우리도 너를 모른다. 그러면 우리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사람을 죽인 건가?”
호발귀는 다소 뜻밖이라는 듯 풍재유를 쳐다봤다.
‘지금은 분명히 말이 필요 없는 상황인데 왜 말을 걸어오지?’하는 표정이다.
“너희들이 하는 짓을 봤거든.”
“우리가 하는 짓?”
“그래. 너희가 한 짓.”
“우리 제삼대가 이곳에 뿌리를 내린 게 칠 년이다. 그동안 한 번도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짓을 했을 리 없는데, 도대체 무슨 짓을 했다는 거냐?”
호발귀는 미간을 찡그렸다.
혈천방은 참 이상한 문파다. 귀문도 훈련만 하지 움직이지 않는다. 대주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러면 귀무살만 움직이고 있나? 이들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지?
호발귀가 말했다.
“일곱 마을 몰살.”
“혈마냐?”
“아니라고 했잖아. 그걸 봤으니 가만있을 수 있나. 그래서 한 놈을 졸졸 따라왔는데, 여기로 오더라고.”
“난검?”
“그래. 그놈은 어제 죽였어. 너희도 다 죽이려고 해. 솔직히 너희, 살아있을 가치가 없잖아?”
호발귀는 일부러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여덟 명 중 한 명이 말하는 틈을 빌어서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얼핏 보면 일곱 명이 합공을 취하고, 한 명은 포위망에서 빠져나와 암기를 쓸 요량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그는 탈출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도주하지 않는다. 도주는 싸움이 시작되면 한다. 그동안은 호발귀에 대해서 최대한 정보 수집을 한다.
삼대 대주가 말을 거는 이유도 같은 목적이다.
호발귀가 누군지 파악하는 중이다. 티끌만 한 정보라도 주우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걸어온다. 기본적인 정보부터 시작해서 깊은 정보까지 캐낼 것이다.
뒤로 빠진 사내는 일곱 명이 앞을 막아주는 동안 전력을 다해서 도주할 것이다.
곧장 본방으로 달려가지는 않는다. 추격 염려가 있어서 중간에서 쉴 것이다. 물론 다른 연락책이 나타날 것이고, 추격자가 모르는 사이에 정보 교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호발귀가 말했다.
“너희도 마을 사람들의 고통을 맛봐야 해. 그래서 한꺼번에 죽이지 않는 거야. 하루에 열 명씩, 천천히 숨을 조여갈 생각이지. 후후! 어때? 괜찮은 계획이지? 어차피 너희들 도망갈 데도 없잖아.”
“그런가? 그런데 넌 아직 네가 누군지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정도 무인.”
“장난하는군.”
“정도 무인이니까 이 지랄을 하지. 아니면 왜 아무 상관도 없는 너희들과 싸우겠냐? 너희가 죽인 마을 사람들하고 친인척도 아닌데. 하지만 누군가는 네놈들이 저지른 못된 짓을 벌해야지. 그래야 세상이 공평하잖아.”
“사문은 어딘가? 무공을 보니 무명 잡배는 아닌 것 같은데.”
“무명 잡배 맞아. 정말 딱 맞는 말이야. 하하하! 사조부터 나까지 모두 무명 잡배거든.”
삼대 대주가 맞는 말을 했다.
대주는 농담으로 듣겠지만 정말 맞는 말이다. 원충노인부터 사부까지 누구 한 사람 무림에 알려진 사람이 없다. 그러니 무명 잡배가 맞는 말이다.
이번에는 호발귀가 물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우연히 온 거야, 아니면 뭔가 있었어?”
“안으로 숨어들어왔는데, 지붕 위 마루 밑까지 찾아도 없다면 여기 밖에 없지.”
알고 왔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바깥쪽으로 탈출시킨 하졸도 눈속임이다. 이들이 준비하고 스며들 동안, 눈을 가리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자신들의 생기가 읽힐 줄은 전혀 모르고.
츠으으읏! 츠읏!
삼대주가 본격적으로 싸움 준비를 했다.
기운이 굉장히 날카롭고 강렬해졌다. 호발귀에게 더 말을 걸어봤자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공을 알아낼 순서다.
뒤로 물러섰던 한 명이 슬금슬금 더 물러섰다.
“칠살진!”
삼대주가 말했다. 그러자 포위하고 있던 무인들이 자리를 잡으려는 듯 일제히 이동했다.
슷!
호발귀는 단검을 고쳐잡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팔십일수만 사용할 생각인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촤왓!
서북방에 있던 자와 동남방에 있던 자가 동시에 공격해 왔다.
호발귀는 재빨리 옆으로 물렀다. 앞뒤에서 동시에 쳐오면 막기가 곤란하다.
촤아악!
이번에는 동북방과 서남방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호발귀는 이번에도 신형을 퉁겨내서 검초를 흘려보냈다.
쒜에엑! 쒜엑!
공격해 온 두 사람이 호발귀를 스쳐지냐며 서로 자리를 바꿨다.
이것이 시작이다.
전후에서, 좌우에서 각기 다른 방향에서 두 명씩 공격을 전개했다. 처음에는 일련의 순서가 보이더니 조금 지나자 사방에서 여섯 명이 동시에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파앙! 팡! 파아앙!
호발귀는 은허신법을 펼쳤다.
빠름으로는 축지지망보가 훨씬 빠르지만, 축지지망보는 움직인 다음에 멈춰야 한다. 그 사이를 이들이 파고들 것이다. 잠시 멈춘 사이에 검이 쏟아져 들어오면 막을 방도가 없다.
슈웃!
호발귀는 다가오는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창환수를 펼친다. 상대방의 병기를 빼앗은 후, 상대방에게 되돌려 준다. 가슴을 찔러오면 가슴으로, 머리를 베어오면 머리를 베어준다. 오는 대로 간다.
그러자 칠살진도 변했다. 호발귀가 움직이자, 즉시 사방에서 꼬치 꿰듯 덮쳐왔다.
까앙! 깡깡깡깡!
호발귀는 작은 단검으로 검 여섯 개를 막아냈다. 그 순간,
쒜에엑!
섬전처럼 검날이 눈앞에서 번쩍 빛났다.
호발귀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지만 검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계속 달라붙으면서 옆머리, 인중, 머리, 몸 등 머리 부위를 집중적으로 찔러왔다.
쓋! 쓋쓋쓋쓋!
검 일곱, 여덟 자루가 동시에 얼굴을 찌르는 듯했다.
타앙!
호발귀는 이번에도 단검으로 쳐냈다.
보법은 여전히 은허신법이다. 펼치는 무공은 온전히 팔십일수다. 아니, 솔직히 창환수밖에 펼친 적이 없다. 다른 움직임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일어난 몸짓이다.
팔십일수! 즉흥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꼭 생각하고, 펼쳐야만 전개된다.
‘모든 게 한 수 늦어.’
검이 들이닥치면 본능적으로 초식을 뻗어내야 하는데, 생각이란 걸 해야 한다.
무슨 초식을 펼칠까? 어떤 초식이 이 초식에 대응할 수 있을까?
모든 무공을 생각해서 펼쳐야 한다.
차라리 혈마 무공을 배우지 않고 팔십일수만 수련했다면 어땠을까? 팔십일수가 능수능란하게 연결되었다면 전혀 다른 무공이 펼쳐진다. 혈마와는 완전히 다른 초고수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팔십일수는 매우 뛰어난 무공이다.
이런 무공을 혈마 무공은 왜 막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팔십일수를 펼치려면 무공을 갓 배우기 시작한 초심자가 되어야 한다.
‘상관없잖아.’
호발귀는 단검을 뽑아 들고 일곱 명을 노려보았다.
이들이 펼치는 칠살진은 매우 독특하다. 6명이 공격하고 있고 삼대 주는 공격에 가담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방금처럼 삼대주가 검을 쓴다.
기회다 싶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공격하고, 상대가 방어하면 즉시 피한다. 그리고 다른 여섯 명이 재빨리 빈 자리로 돌아와서 원형 그대로 공격한다.
기가 막힌 공수 전환이다.
여섯 명이 일시에 공격을 가해왔다면, 호발귀는 팔방풍우(八方風雨) 같은 초식을 전개했을 것이다. 아니면 이들 사이를 빠져나가서 측면을 공격했을 수도 있다.
칠살진은 그런 면도 차단한다.
좌우가 일조, 동북과 서남이 일조, 북서와 남동이 일조다.
각기 두 명씩 순차적으로 공격해 온다. 하지만 연환 속도가 매우 빨라서 일시에 들이치는 것 같다. 좌우에서 떨친 검이 몸에 닿기도 전에 다음 일조가 검을 떨쳐낸다.
이런 순차적인 공격은 호발귀를 계속 포위망 안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
몸을 피하거나 단검을 쳐내서 공격을 피한다. 그러면 다음 일조는 이동할 위치를 계산해서 포위부터 한다. 그다음 공격을 가해온다. 두 명의 검을 피하고 몸을 빼냈을 때는 이미 다른 두 명에게 포위된 상태다
이들의 공격을 피하려고 움직이면 또 다른 두 명에게 포위되고, 공격받고…… 같은 상태가 계속 반복된다.
이들은 칠살진에 매우 익숙하다.
수십, 수천 번 수련한 흔적이 보인다.
‘축지지망보!’
호발귀는 팔십일수 중 가장 빠르고 강력한 보법을 떠올렸다.
축지지망보를 펼치면 한순간은 멈춰야 하지만, 대신 한 사람은 확실히 죽일 수 있다.
쒜에에엑!
북서와 남동에서 공격이 일어났다.
순간, 호발귀의 신형이 안개처럼 흐릿해졌다. 잔상이 흐른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흐릿한 영상이 뒤따라서 움직인다.
“컥!”
느닷없이 비명이 터졌다.
호발귀는 북서에 있는 자를 쳤다.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면서 단검으로 가슴 정중앙을 푸욱 찔렀다.
북서에 있는 자가 답답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호발귀가 이토록 빠르게 달려들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호발귀는 전신 진기를 모두 쏟아냈다. 이제 멈춰야 한다. 그래서 멈췄다. 가슴에 박힌 단검을 뽑아내자마자 상대방의 등 뒤로 돌아서서 그의 등에 기댔다.
다른 두 명은 호발귀를 포위하지 못했다. 호발귀가 너무 빨리 움직여서 미처 이동 위치를 잡아내지 못했다.
“후욱!”
호발귀가 죽은 자의 등에 기대어 잠시 진기를 고르는 동안, 포위망이 다시 이어졌다.
쒜에엑! 쒜엑!
저들이 일시에 공격해 왔다.
이번 공격은 조금 다르다. 예전에는 두 명씩 공격해왔지만, 이번엔 다섯 명이 일시에 공격해 온다.
‘이게 말로만 듣던 오행진인가?’
저들은 한꺼번에 공격해 오는 듯하지만, 아니다. 일정한 순서가 있다. 오른쪽, 오른쪽, 오른쪽, 오른쪽…… 계속 오른쪽에 있는 자가 공격을 한다.
앞에 있는 자가 머리를 쳐오면, 그 옆에 있는 자는 다리를 공격한다. 그 옆에 있는 자는 몸통을 치고, 다시 그 옆에 있는 자는 머리를 내리찍는다.
이들은 공격을 막다 보면 한 바퀴 빙글 돌게 되어 있다. 더욱이 이들은 쉴 새 없이 공격한다.
‘다시 한번!’
파앗!
축지지망보가 펼쳐졌다.
호발귀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앞에 있는 자의 심장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언제 찌르고, 언제 빠졌나.
호발귀는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는 무인의 등 뒤에 서 있다.
이제 남은 자는 삼대주까지 다섯 명이다.
사사사사삿!
지단 무인 네 명이 신속하게 움직여서 동서남북, 네 곳을 차지했다.
여섯 명이 육합진을 펼치다가, 한 명이 죽자 즉시 오행진으로 변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상진을 펼친다. 진법 전환이 무척 자연스럽고, 빠르다.
이때, 뒤로 쭉 빠져서 구경하던 자가 삼대주를 향해 두 손 모아 포권했다.
삼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단 무인은 대주가 허락하자 즉시 신형을 쏘아내, 지단 안으로 달려들어 갔다.
아마도 저자는 곧 지단을 탈출할 것이다.
지금까지 본 것들, 판단한 것들을 혈천방 본방에 전달해야 한다. 직접 전달할지 누군가를 통해서 전달할지는 모르지만, 제삼대가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혈마와 전혀 다른 인간이 출연했다.
그가 제삼대를 휩쓸어버린다. 대주를 비롯한 십일 호위를 무참히 격살했다.
그는 호발귀가 아니다. 혈마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 전혀 본 적이 없는 이상한 무공을 사용하는데, 어떻게 손 써볼 틈도 없을 만큼 빠르다.
그놈은 자신이 정도 무인이라고 자처한다.
조금 껄렁거리는 면도 있다. 말투가 배운 사람 같지 않고 천박한 면이 있다.
왜 이런 놈이 아직 무림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보고 내용이 대충 예상된다.
호발귀는 그를 보내줄 생각이었다. 혈천방을 건드려서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든다. 혈마와는 싸우지 않을 작정이지만, 낯선 자라면 싸우려고 하지 않겠나.
스읏!
호발귀는 삼대주와 네 명을 쳐다봤다.
남은 자들은 자신들이 다 죽을 것을 예감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스읏!
무인 네 명이 일제히 검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