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135화 (135/500)

第二十七章 제삼대(第三隊) (5)

혈천방 무인들이 매우 당황한 것 같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어제만 해도 평화로운 모습을 잃지 않았는데, 오늘은 지단 안에서 신법을 펼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우물에 독을 푼 것이 결정적이다.

어제 하루 동안 지단 안에서 많은 환자가 발생했다. 복통, 설사, 두통 등등 온갖 증상들이 무차별적으로 나타났다. 무인이나 하인, 하녀를 가리지 않았다. 우물은 먹은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증상에 시달렸다.

호발귀는 잠을 자느라고 보지 못했는데, 의원이 바쁘게 오갔던 모양이다.

사방에서 탕약 끓이는 냄새가 진동했다.

저들은 중독 현상이 우물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물물을 퍼서 벌컥벌컥 들이켜는 사람이 있는데, 그때 물맛이 혀를 탁 쏜다. 독이 들어있기 때문에 당장 혀를 자극한다.

아무리 미련해도 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인가, 우물물이 변질한 것인가? 침입자가 없으니 우물물이 변질하지 않았을까?

죽는 사람이 없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하루에 열 명씩 꼬박꼬박 죽어 나가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가 우물에 독을 탄 것이 틀림없다.

지단은 서둘러서 독이 든 우물을 봉쇄했다. 그리고 멀리 계속 상류에까지 가서 계곡물을 떠왔다.

물을 길어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르면 평온함으로 위장할 수 없다.

‘당황했구나. 후후!’

지단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허리를 쭉 펴고 누웠다.

전서구가 날아가지 않는다.

지단에서 본방으로 소식을 보내지 않고 있다.

어제 날린 전서구는 혈천방에 도착했을까? 아직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로 지단에서 본단으로 소식을 보낼 때는 전서구 열댓 마리가 서로 연계된다. 첫 번째에서 두 번째, 두 번째에서 세 번째로 보내진다.

거리가 멀면 멀수록 전서구는 늘어난다.

어쩌면 지단이 폭삭 주저앉은 다음에서 첫 번째 전서구를 받아들지도 모른다.

혈천방에서 소식이 오는 것은 기대하지 못한다.

‘실수했어.’

호발귀는 고개를 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전서구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봤을 텐데.

전서구를 어디서 날렸는지 보지 못했다.

정보를 수집하고, 전서구를 관리하는 곳이 따로 있을 텐데, 그곳이 어디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전서구가 날아오르는 장면만 봤어도 당장 알 수 있는데.

모두 경험 부족이다.

혈천방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오늘은 어디서 전서구를 날리는지 꼭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지켜봤는데, 뜻밖에도 침묵으로 응답했다.

혈천방 무인들이 난검과 다른 두 명의 시신을 꺼내 전각 앞에 늘어놓았다.

누군가가 와서 시신을 살폈다.

지단주인지 수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간신히 움직이는 모습만 보인다.

의원인 듯싶은 자도 시신을 살폈다.

먼저 살핀 자와 의원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의원이 소견을 말한다.

사내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다른 무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시신 위에 기름을 쏟아부었다.

불길이 댕겨졌다. 시신 세 구가 불덩이가 되어서 활활 타올랐다.

‘응?’

호발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들은 다른 시신은 조용히 처리했다. 몇 명이 죽었는지도 모를 판이다. 그런데 귀무살 시신만은 공개적으로 불태웠다. 시신 태우는 냄새가 지단 전체로 퍼져나가지 않나.

‘왜 저러지?’

호발귀는 저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신을 태울 것 같으면 다른 시신들도 한꺼번에 태우든가, 조용히 처리할 요량이면 귀무살 시신도 그렇게 하던가. 왜 귀무살 시신만 불태우나.

“음……”

호발귀는 시신들이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 또 침음했다.

뒤늦게 자신이 또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각에는 귀무살이 세 명 있었다.

난검은 확실히 귀무살이고, 다른 두 명은 귀무살일 것으로 추정되는 자들이다.

그럼 다른 두 명은 어디서 왔나?

난검처럼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당사자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일을 처리하고 온 것인가? 왜 세 명뿐인가? 마을을 도륙한 자들은 모두 일곱 명인데. 그러면 다른 네 명은 어디로 갔나.

알아야 할 것이 많았다.

생각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고, 난검의 입을 통해서 사실을 들었어야 한다.

그런데 다짜고짜 죽여버렸다.

난검을 보는 순간 살심이 치밀었다. 약초꾼을 놀리듯 죽이는 모습이 떠올라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심정으로 단숨에 죽여버렸다.

마혈을 제압하고 사실을 알아낸 후에 죽여도 늦지 않았는데. 물론 고문을 버틸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전서구 문제도 그렇고 모두 경험 부족이다.

이번 일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한다.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다.

호발귀는 시신을 태우라고 지시한 자를 눈으로 뒤쫓았다.

그는 전각을 벗어났다. 그리고 골목길을 돌아서더니 두 번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앉아서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밤을 꼬박 밝히면서 일일십살을 했다. 그러니 낮에는 잠을 자둬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잠을 자지 못할 것 같다. 잠을 청하려고 하면 자꾸 일이 생긴다. 지단이 당황해서 이것저것 하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눈길이 간다.

이번에는 일단의 무리가 빠르게 지단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응?’

호발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들의 모습을 보면 분명히 지단을 탈출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뒤도 안 돌아보고 죽을힘을 다해서 지단 밖으로 뛰어간다. 등에는 무거운 봇짐까지 짊어졌다.

피난길에 나서는 사람들 같다.

호발귀는 도주하는 사람들을 예의 주시했다.

저들은 몸이 무겁다. 신법이 가볍지 않다. 하졸(下拙)이다. 무공을 수련하기는 했는데 성취가 높지 않다.

그런 자들이 벌건 대낮에 눈에 띄는 모습을 탈출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저 사람들은 뭐야?”

호발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들이 고수라면 도주하는 자들이 있구나 하고 넘겨버리겠는데, 하졸이니 신경이 쓰인다.

혈천방 사람들이 언제부터 너그러웠다고 도주하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나. 뒤쫓지 않는다는 것은 저들을 일부러 보냈다는 건데, 도대체 목적이 뭔가? 저들을 어디로 보내는 거지?

그때, 원정이 출렁거렸다.

다른 생기를 느끼자 역천금령공이 저절로 운용되었다.

누군가가 호발귀가 숨어 있는 야산 쪽으로 스며들었다. 호발귀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쫓아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볼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좌우지간 십여 명 넘는 사람들이 야산으로 들어섰다.

‘흠!’

호발귀는 생기의 움직임을 살폈다.

저들은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 푸른 빛이 일렁거리는 모습만 보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짐작된다.

이들은 몸이 매우 가볍다. 신법이 경쾌하다.

‘고수군!’

호발귀는 즉시 신형을 띄워 나무 위로 올라갔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에 몸을 숨기고 숲을 쳐다봤다.

스읏! 스스스슷!

일단의 무리가 빠르게 숲을 지나간다.

호발귀가 숨어 있는 것은 모르고 있다. 알고 있다면 저토록 빠르게 질주할 리 없다.

그렇지만 저들도 경계는 한다.

네 명씩 삼 조로 움직이고 있다.

각 조는 서로의 뒤를 지켜준다. 일 조의 뒤를 이 조가 지킨다. 또 이 조 뒤는 삼 조가 지킨다.

역순도 가능하다. 앞선 조가 뒤를 지켜줄 수도 있다.

이들은 서로서로 지켜준다. 조 단위로 움직이면서 다른 조에게 보호받고, 또 다른 조를 보호한다.

이들은 때에 따라서는 삼각 형태를 이룰 수도 있다.

변형이 매우 자유로운 진형이다.

스읏!

호발귀는 단검을 뽑았다.

지금은 오직 팔십일수만 가지고 싸운다. 그래서 장검보다는 단검이 훨씬 낫다.

원래 투심문은 병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싸우는 것보다 도망치는 것을 상수(上手)로 여긴다.

어쩔 수 없이 싸울 때는 되도록 승부를 내는 선에서 그치도록 유도한다. 그래도 안 될 때는 어쩔 수 없이 병기를 사용하는데, 이때도 생명을 빼앗는 것은 될 수 있으면 피한다.

도천패가 수련한 무공은 투심문 무공이 아니다. 투심문이 훔쳐 온 다른 문파의 비공이다.

투심문 무공을 쓰는 데는 장검보다는 단검이 낫다. 단검술, 박투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단검을 들고 권각술을 펼친다는 심정으로 싸운다.

사삿! 사사삿! 사삿!

야산으로 숨어들어온 일단의 무리가 빠르게 숲을 지나갔다.

저들은 주위를 충분히 경계한다. 하지만 머리 위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호발귀는 생기를 짓눌렀다. 그러면 어떤 기척도 흘러나가지 않는다. 누가 있다는 느낌을 전혀 갖지 못한다.

툭!

호발귀가 감 떨어지듯 뚝 떨어졌다.

그는 떨어지는 순간에 이미 단검으로 무인 한 명을 찍었다. 목덜미를 장난하듯이 툭 치고 빠졌다.

하지만 당한 자는 치명적이다.

대추혈(大椎穴)이 끊어졌다. 척추와 머리를 연결하는 연결선이 절단되었다.

“크윽!”

대추혈을 찔린 자가 피그르르 무너졌다.

순간, 호발귀는 신형을 휘돌려 땅에 내려섰다. 아니, 내려서는 순간 다시 퉁겨 오르며 옆에 있는 자의 목을 그었다.

퍼억! 푸아아악!

사내는 목동맥이 절단되면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냈다.

“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이번 수는 홀리의 수법을 흉내 냈다. 혈마 무공을 쓴 것은 아니다. 다만 치명적인 요혈을 베어냈을 뿐이다. 사용한 수법은 낭채도(囊采刀)다.

낭채도라고 하니까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면도로 주머니 따는 수법이다.

상대가 느끼지 못하도록 충분히 주의하면서 주머니를 딴다.

호발귀는 피 흘리는 자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다른 자에게 던졌다. 동시에 또 다른 자를 향해 삼마돌각수를 펼쳤다.

퍼억!

무인의 이마에 구멍 세 개가 뻥 뚫렸다.

호발귀의 손가락은 창만큼이나 단단하다. 나란히 모은 손가락 세 개가 이마를 뚫었다.

펑! 쉿!

축지지망보가 유용하게 쓰였다.

삼마돌각수로 사내를 무너트림과 동시에 그의 신형은 이미 다른 자 앞에 서 있었다.

퍼억!

단검이 심장을 뚫었다.

“크으으윽! 이런 말도 안 되는……”

심장 뚫린 사내가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사내는 목에서 피를 뿜어내는 동료를 막 밀쳐내는 참이었다. 그런데 불쑥 호발귀가 다가오더니 단검을 꽂았다. 미처 검을 뽑지도 못했는데.

뒷 조 네 명은 앞 조 네 명이 격살 당하는 장면을 봤다.

“적이닷!”

“웬 놈이냐!”

두 번째 조에 있던 자들이 제각각 한 마디씩 고함질렀다.

그러자 삼 조에 있던 자들도 재빨리 다가왔다. 그리고 호발귀를 에워쌌다.

호발귀는 순식간에 여덟 명에게 포위되었다.

“웬 놈이냐!”

이조 중 한 명이 날카롭게 물어왔다.

호발귀도 마침 말한 사내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여덟 명 중 말한 자의 진기가 가장 강하다. 여덟 명이 포위하는 것을 봤는데, 신법이 제일 가볍다. 또 침착하다. 앞 조 네 명이 죽었는데도 당황하지 않는다.

다른 일곱 명과는 판이하게 기도가 다르다.

말한 자가 열두 명을 이끄는 우두머리다. 우두머리가 아닐지라도 무공은 제일 강하다.

호발귀가 말했다.

“나도 너희를 모르겠는데? 너희 누구야?”

“혈마냐!”

“혈마? 웬 잡놈을 끌어들여! 나와 말을 나누고 싶으면 네놈들이 누군지부터 말해. 그렇지 않으면 칼 든 놈들끼리 말 섞을 필요가 없잖아. 어디 해 보던가.”

휘리리릭!

호발귀가 단검을 빙글빙글 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