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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33화 (133/500)

第二十七章 제삼대(第三隊) (3)

호발귀는 경계서는 무인을 공격하지 않았다.

경계를 서는 무인은 하졸(下拙)이다. 저들을 백 명, 천 명 죽인다 한들 혈천방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저들을 공격하면 안에서 경종이 일어난다.

정작 귀무살 같은 자들이 빠져나갈 여지가 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바깥을 내버려 두고 안에서부터 공격한다.

스으으읏!

호발귀는 매우 빠르게, 그러면서도 은밀히 움직였다.

경계 무인들에게 발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팔십일수 중에 면화섬보(棉花纖步)를 밟고 있다.

면화섬보라는 말에는 솜에서 실을 빼내 고운 면사를 짜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솜처럼 가볍고 폭신거려서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보법이다.

호발귀는 팔십일수 중에서 사용할 만한 것들을 모두 되새김했다.

면화섬보도 그래서 찾아냈다.

자신이 일부러 생각해 냈고, 인위적으로 진기를 운용했기 때문에 보법이 밟아진다.

면화섬보를 시전하면 손과 발에 진기가 운집된다.

대체로 진기가 운집되면 손발이 강해진다. 매우 탄탄해진다. 벽돌처럼 단단해질 것이다.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경기가 사지에 몰리니 당연하다.

면화섬보는 정반대로 작용한다.

오히려 진기를 운집시키면 손발에서 힘을 빼낸다. 대신 아주 강한 탄력을 심는다.

손발이 훨씬 가벼워진다.

공방을 벌일 때는 부적절한 보법이다. 하지만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가는 데는 최적의 방법이다.

면화섬보의 주목적은 소리를 흘리지 않고 담장을 넘는 데 있다. 아니면 지붕을 걷거나.

쉬이잇! 쉬잇!

호발귀는 면화섬보를 운영하면서 치달렸다.

그래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매우 조용하다. 땅을 딛는 소리가 전혀 울리지 않는다. 마치 땅을 밟을 때마다 솜뭉치를 밟는 듯 퉁퉁 울린다.

면화섬보는 처음 펼치는데 마음에 쏙 든다. 앞으로도 종종 사용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물건을 훔치러 들어갈 때는 이보다 좋은 신법이 없어 보인다.

호발귀는 무인들이 숨어 있는 모습을 환히 봤다.

저들을 일부러 찾을 필요도 없었다.

몸은 숨어 있지만 생기는 숨기지 못한다. 푸른 빛 생기가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호발귀는 오간각도 펼쳤다.

방원 일 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핏줄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범위를 더 넓혀도 된다. 방원 삼사 장 정도 떨어져 있는 사람도 얼굴에 있는 점까지는 볼 수 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저들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보였다.

경계 무인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함정이 문제다. 함정은 생기를 띄우지 않는다. 오로지 눈으로 찾아내고 피해야 한다.

파아아앗!

오간각이 주위를 대낮처럼 밝혔다.

이런 능력들이 부지불식간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면 굉장히 좋을 텐데, 꼭 의식하고 일으켜야만 한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 부분부터 당장 살펴봐야겠다.

‘팔십일수는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언제 어느 때든 사용 가능한 무공이야. 굉장히 유용한 무공인데, 이게 왜 죽었지? 의식하고 진기를 일으키면 사용 가능한 걸 보면 완전히 죽은 것 같지는 않은데, 역천금령공에 기가 눌렸나?’

호발귀는 무인들을 헤치면서 조용히 나아갔다.

가끔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주로 발밑에 덫이 있을 때다. 살짝만 밟아도 발판이 밑으로 푹 꺼지면서 연결된 줄에 의해서 화탄이 치솟도록 만들어져 있다.

발판 주위로 화탄들이 보인다.

‘역시 함정은 귀찮아.’

호발귀는 조심스럽게 함정을 피해갔다.

저들은 누구도 뚫지 못할 천라지망(天羅之網)을 설치해 놓았다. 하지만 호발귀는 무려 반 각 만에 거뜬히 돌파해서 안으로 무사히 들어왔다.

자신이 뒤쫓던 귀무살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지닌 생기나 마당을 쓰는 하인이 지닌 생기나 푸른 빛은 똑같다. 내뿜는 기운의 강도도 비슷하다. 무인이 내뿜는 생기 속에는 진기가 포함되어 있어서 조금 강렬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귀무살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안쪽을 뒤지다 보면 나올 것이다.

이제는 봐주지 않는다. 봐줄 이유가 없다. 다시 만나면 절대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

쉬이익!

호발귀는 지붕으로 올라갔다.

‘자, 그럼 한숨 자볼까?’

호발귀는 편하게 지붕에 누워서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작전을 완전히 바꿨다.

혈마라면 막무가내로 돌진해 왔을 것이다. 경계 무인부터 박살 내면서 점점 안으로 파고든다. 앞을 막는 자들은 가차 없이 베어버린다. 칼에 피를 묻히는 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들이쳐서 닥치는 대로 죽이는 것이 혈마 방식이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

이곳은 혈마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공격한 것으로 보일 필요가 있다. 혈마가 아닌 제삼자가 지단을 몰살시켰다면, 혈천방도 발칵 뒤집힐 것이다.

그러니 예전에 혈마가 사용했던 방법은 되도록 삼간다.

혈마록에 기재된 무공도 쓰지 않을 생각이다. 독섬칠공도 워낙 티가 나고…… 결국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로 이곳 전체를 갉아먹는 수밖에 없다.

밤이 깊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뜸해졌다.

방마다 촛불이 켜졌다.

호발귀는 더 기다렸다.

‘아직 일러.’

지금은 움직여도 저들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은밀히 움직일 자신이 있다. 하지만 더 기다린다. 방법을 바꿨다고 하지 않았나.

‘아직 일러.’

달이 중천에 떴다.

방마다 켜져 있던 촛불도 거의 다 꺼지고 한두 곳만 희미하게 반짝거린다.

지단은 길에 횃불을 밝히지 않는다.

경계하는 무인들은 있는데, 불을 밝히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도 주위를 살필 수 있는 자들이다.

‘이제 슬슬 움직여볼까?’

호발귀는 비로소 지붕 위에서 내려왔다.

그는 경계 무인들이 어디에 있는지 저들보다 더 잘 안다. 숨어 있는 자가 몇이고, 움직이는 자가 몇인지, 그중 특히 주의해야 할 자는 누군지도 파악해놨다.

네 걸음 걷고 잠시 멈춘다.

스으읏!

은허신법을 펼쳐서 골목 건너편으로 단숨에 이동했다.

저쪽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다. 골목을 뚫어지게 지켜본다. 하지만, 호발귀가 이동하는 모습은 발견하지 못했다. 여전히 뚫어지게 지켜보기만 한다.

저들에게는 약간의 방심도 작용하고 있다.

바깥 경계가 뚫리지 않았다. 조용하지 않은가. 그러니 안쪽은 특별히 경계할 것도 없다.

감히 누가 이곳까지 잠입할 수 있으랴 하는 자신감이 있다.

사악! 사앗!

호발귀는 저들처럼 편하게 걸어갔다.

저들이 지켜보는 곳을 알고 있어서 안심하고 걸을 수 있다. 또 걸음을 옮길 때는 면화섬보를 사용했기 때문에 어떠한 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이거 정말 좋네. 이걸 왜 이제야 알았지?’

호발귀는 우물에 도착했다.

스읏!

두레박을 집어서 손을 담갔다.

단전에 위도의 독이 저장되어 있다. 독화가 만들어낸 절명독이 차곡차곡 쟁여져 있다.

그 독을 풀어낸다.

지단 무인들을 독살시킬 생각은 없다. 단지 극심한 고통을 줄 생각이다. 위통이 일어날 것이다. 설사할 것이다. 복통도 심하게 일어날 것이고, 두통은 말할 것도 없다. 구역질도 치밀고, 어지럽고, 사지가 덜덜 떨린다.

저들을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로 이끈다.

이곳에는 의원도 있을 것이다. 무림 문파 쳐놓고 의원 없는 문파는 없다.

하지만 어떤 의원도 호발귀가 푼 독을 알아내지 못한다. 당홍조차도 알지 못한 독인데, 독의도 아닌 일반 의원들이 알아낼 리 만무하다.

또 위도의 독은 독섬칠공에 흡수되면서 전혀 성질이 다른 독으로 변형되었다.

호발귀조차도 모르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일 독이다.

호발귀는 단검을 꺼내서 손끝을 살짝 베었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시뻘건 피가 두레박에 담기면서 요약한 미소를 보냈다.

“후후!”

피 묻은 두레박을 우물에 밀어 넣었다.

스읏! 첨벙!

두레박이 묵중한 소리를 흘리면서 우물에 잠겼다.

스읏!

이번에는 지붕 위로 올라섰다.

호발귀는 서둘지 않았다.

이곳에서 며칠 있을 생각이다. 하루아침에 폭삭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차근차근 무너뜨리면서 이들에게 시간을 충분히 준다. 서서히 숨통을 조인다.

혈마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혈천방 본방에 전할 것이다.

자기들이 어떻게 당했고, 매일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매우 소상하게 보고할 것이다.

일단 독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혈천방은 혼선을 일으킨다.

이곳을 공격한 사람이 호발귀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또 앞으로 지단에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더더욱 흉수가 누군지 모를 것이다.

지단과 본방은 연락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본방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없다. 본방에서 무인을 파견해도 좋다. 귀무살을 보내면 두 손 들고 기꺼이 환영한다.

스으으읏!

호발귀는 무인 두 명이 지키고 있는 전각을 향해 신형을 쏘아냈다.

무인이 방문 앞에서 경계를 선다면 안에 있는 사람은 상당히 고위층일 것이다.

쉬잇! 쉬이잇!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뛰었다. 지붕 위를 날다람쥐처럼 재빨리 이동했다. 하지만 어떤 소리도 흘리지 않았다. 면화섬보는 정말 좋은 신법이다.

스읏! 슷!

지붕에서 차분히 기와를 들어냈다.

한 장, 한 장…… 천천히 드러냈다. 솜처럼 가벼운 손길이 기와를 만졌고, 아주 조용히 들어 올렸다.

방 안에는 부부인 듯싶은 남녀가 침상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호발귀는 거침없이 들어낸 기와 사이로 뛰어내렸다.

쉬잇! 사앗!

두 발이 땅에 닿았지만, 역시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바깥에 있는 경계 무인도, 잠들어 있는 남녀도 소리를 듣지 못했다.

호발귀는 침상으로 걸어갔다.

누군가 낯선 자가 나타나면 낯선 기운 때문에 본능적으로 눈을 뜬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잠을 자고 있어도 생기는 살아있고, 생가기 낯선 생기를 감지하는 것이다.

침상에 누워서 자는 남녀는 낯선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역천금령공이 잠든 자의 생기와 부딪혔다. 잠자는 자의 생기를 조용히 다독였다.

낯선 기운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호발귀는 침상 앞에 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한 손으로는 사내의 입을 틀어막고, 단검을 든 다른 손으로는 심장을 단숨에 푹 찔러넣었다.

사내의 몸에서 거센 진기를 읽었다.

사내는 고수다. 적어도 귀무살에 버금가는 상당한 고수다. 그러니 손속에 사정을 담을 필요가 없다.

“큿!”

잠든 자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부르르 떨었다.

그는 눈을 부릅떴고, 호발귀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단검은 이미 심장을 관통했다. 사내는 모든 능력을 상실했다. 저승사자가 사내의 넋을 낚아챘다.

사내가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꾸룩!

심장에서 핏물 솟구치는 소리가 울렸다.

호발귀는 사내의 입을 틀어막은 채 잠시 더 있었다. 옆에 잠든 여자까지 죽이고 싶지 않다. 그러니 사내가 발버둥 치다가 여자를 깨우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

부르르르!

사내가 경련을 일으켜다. 생기는 소멸하였다. 남은 것은 육신이 일으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 일 뿐이다.

스읏!

호발귀는 천정으로 신형을 솟구쳤다.

오늘 밤, 할 일이 많다.

처음부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잠입한 것은 아니다. 독을 풀고, 은밀히 한 명씩 죽이고…… 이 모든 것을 치밀하게 생각해서 한 것이 아니다.

저들이 말한 혈마 방식대로 멸문시키기가 싫었다.

무인이 방문을 지키는 곳만 골라서 열 명을 죽였다.

일일십살(一日十殺)!

하루에 열 명을 죽인다.

오늘 열 명, 내일 열 명, 모레 열 명……

이제 내일이면 이곳 전체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자. 혈천방 본방은 무엇을 하는지 보자.

일일십살 역시 생각하고 시행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지단을 발칵 뒤집는 데는 이보다 좋은 것도 없어 보인다.

스으읏!

호발귀는 지단 뒤쪽 경계가 느슨한 산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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