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七章 제삼대(第三隊) (2)
절남 안가에는 전서구가 십여 마리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일부러 비둘기를 키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먹이도 다 같이 먹지, 잠도 같이 모여서 자지…… 전서구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서구마다 가는 곳이 지정되어 있다.
비둘기가 잠자는 곳을 보면 천살단 무인만 알 수 있는 표식이 그려져 있다.
등여산은 전서 세 통을 작성했다.
각 전서를 전통에 넣고 밀랍으로 밀봉한 다음, 전서구의 발목에 채웠다.
“수고 좀 해줘.”
등여산이 전서구 세 마리를 날렸다.
그녀는 책사 신분이다. 안가에 있는 전서구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래서 아낙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전서구를 사용했다.
물론 그녀의 행동은 낱낱이 보고될 것이다.
등여산은 날아가는 비둘기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봐도 호발귀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 천살단에 가서 단주님을 설득할 생각이었지만, 그것이 거부당할 게 분명한 이상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다.
사실, 지금 같은 경우가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많이 해왔다.
언젠가는 둘 중의 하나를 골라야 할 시기가 올 거야. 그때는 어떻게 하지?
천살단이나 호발귀냐 하는 선택이다.
홀리가 물은 말이기도 하지만, 그녀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발귀 옆에 있을 생각이다. 그렇다고 천살단도 버리지 않는다. 여전히 천살단 책사로 있고 싶다. 하지만 천살단이 자신을 버린다면 감수할 생각이다.
어떻게 하겠나. 호발귀를 혼자 보내지 못하겠는데.
쉬이이익!
그녀는 망설임 없이 신형을 날렸다.
* * *
쉬이잇!
날카로운 파공음이 허공을 찢었다.
까악!
허공에서 거친 울부짖음이 터졌다. 그리고 힘차게 날갯짓하던 전서구가 날개를 접고 뚝 떨어져 내렸다.
쉬잇!
한 사람이 재빨리 다가가서 땅에 떨어진 전서구를 주웠다.
발목에는 전통이 매달려 있다. 밀랍으로 밀봉되어서 중간에 열어보지 못하게 표시했다.
그는 재빨리 전통을 낚아챘다.
주치균은 밀랍을 부수고 안에 든 밀지를 꺼냈다.
전서구는 본문으로 향하던 것이었다. 수신자가 ‘단주(團主) 직전(直傳)’으로 되어 있다.
“광동(廣東)?”
주치균은 밀지를 읽은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밀지 내용은 간단했다. 명령을 받았으니 본단으로 귀환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아주 긴히 알아볼 것이 있어서 광동 상양(商羊)에 다녀온다는 내용이다.
등여산답게 예쁜 글씨체로 다정다감한 글자를 선택해서 사용했다.
문장을 읽어보면 얼마나 죄송해하는지 글 쓰는 사람의 마음이 단박에 읽혔다.
주치균이 미간을 살며시 찡그리며 말했다.
“광동 상양에 뭐가 있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단주 손철목이 대답했다.
“상양이라면…… 태산파 육장로 한영검사(寒影劍士)가 은거한 곳입니다.”
또 다른 부단주 장향동(張香桐)이 말했다.
주치균이 손철목을 쳐다봤다.
손철목이 즉시 대답했다.
“한영검사가 은거한 곳은 맞지만, 현재는 은거지를 바꿔서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주치균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등여산이 가겠다는 곳이 태산파와 연관된 곳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또 그녀가 가겠다는 상양은 호발귀가 향하고 있는 곳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호발귀는 북으로 향하고 있고, 등여산은 남쪽으로 내려가겠다고 보고했다.
주치균은 신형을 날리고 있는 등여산을 쳐다봤다.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까만 점이 별처럼 흐르고 있다.
“너희는 곡천(曲泉)으로 가있어.”
주치균이 명령했다.
곡천에는 잡랑들이 기거하는 숙소가 있다. 곡천 전체가 잡랑들의 서식지다.
천살단은 본문 안에 잡랑들의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한데 전임 살단 총주 오택골이 답답하다면서 뛰쳐나갔다. 누구에게 구속당하는 게 싫다면서 곡천이라는 곳에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꾸몄다.
그곳에서 술 마시고, 도박하고, 호색질을 한다.
하고 싶은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산다.
어차피 칼날 위에 맡긴 목숨이니 살아있을 때 마음껏 즐겨야 한다는 것이 잡랑 신조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라!
지금도 이런 틀이 잡랑들 몸에 배어 있다. 그래서 곡천으로 가라고 하면 마음껏 먹고 마시는 것부터 생각한다.
주치균이 차갑게 말했다.
“가서 다른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해라.”
“알겠습니다!”
두 부단주가 힘차게 대답했다.
“술 금지. 도박 금지다. 여자도 출입시키지 말고! 오직 무공! 무공! 무공만 수련해라.”
“넷!”
“지금 너희 무공으로는 귀무살 정도밖에 상대하지 못해. 만약 호발귀하고 붙었다고 생각해봐. 너흰 다 죽었어. 후후! 웃기지? 나조차도 상대하지 못하는 호발귀를 너희에게 상대하라니.”
“아닙니다!”
“호발귀는 상대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조금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그만한 자신이 생기면 술 마셔도 좋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강해져야 해!”
“네!”
부단주들이 고개를 숙였다.
특히 이부(二府) 부단주인 장향동이 더욱 깊이 머리를 숙였다.
부단주들은 다섯 개 당을 거느린다. 일부 손철목이 다섯 개, 이부 장향동이 다섯 개를 가졌다.
하지만 이번에 황고개 사건에서 이부는 당 세 개를 잃었다.
고개가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쉬이잇! 쉬잇!
잡랑들이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주치균은 그들을 지켜보다가 발을 떼어놓았다.
어두운 밤길을 걷는다. 등여산이 상양으로 간다고 하니 더는 쫓을 이유가 없다. 그럼 지금부터는 뺨에 검흔을 새겨놓은 자, 호발귀를 쫓는다.
본단에서는 일절 접촉하지 말라는 명령이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놈의 숨통은 내가 끊어야지.
주치균은 북쪽으로 걸었다.
호발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대충 짐작된다. 놈이 가는 방향에 혈천방 제삼대(第三隊)가 있다. 그러니 틀림없이 그곳으로 가는 중일 것이다.
저벅! 저벅!
캄캄한 밤에 발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 * *
“아하! 힘들다! 좀 쉬었다 가자!”
도천패가 길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좀 쉬었다가 가.”
당홍도 힘에 부친 듯 모양 생각하지 않고 철퍼덕 주저앉았다.
도천패는 덩치가 크지만, 신법은 매우 날렵하다. 아주 빠르고 가벼운 경공이 있다. 몸이 무거워서 힘든 게 아니다. 쉬지 않고 내쳐 달려왔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밥 먹고 잠자는 약간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직 달리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한시바삐 강하 독림으로 가서 융모초를 구해야 한다.
자칫하면 융모초를 건네주기도 전에 혈마 싸움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마음이 몹시 조급하다. 혈마 싸움만 생각하면 잠시도 쉬지 못하겠다. 두 발 뻗고 있다가도 일곱 마을 사람들이 죽은 모습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그때. 등짐장수가 두 사람 앞을 지나갔다.
그는 마침 두 사람 앞에서 힘에 부친 듯 등짐을 추슬렀는데, 그 바람에 옆구리에 차고 있던 전낭이 뚝 떨어졌다.
“저기 전낭 떨어졌어요.”
당홍이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등짐장수는 당홍을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 말을 못 들은 듯 그냥 걸어갔다. 분명히 당홍의 말을 들었는데도 일부러 무시하고 있다.
“이상한데?”
당홍은 잠시 망설이다가 등짐장수가 떨군 전낭을 집어 들었다.
전낭 안에는 작은 전통 하나만 들어있었다. 밀랍으로 봉해져 있어서 아직 아무도 열어보지 않은 전통이다.
“이게 뭐야?”
당홍은 밀랍을 털어내고 안을 들은 밀지를 꺼냈다.
“엇!”
밀지를 읽어가던 그녀가 경악성을 토해내며 눈을 부릅떴다.
“왜?”
“치잇! 아무래도 우리, 호발귀에게 당한 것 같은데?”
당홍이 밀지를 도천패에게 넘겨주었다.
밀지에는 이미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돌아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서를 보낸 사람은 등여산이다. 비록 천살단 정보망을 이용해서 전서를 전해 왔지만, 밀지 내용은 믿을 수 있다.
그러면 호발귀가 한 말은 뭐지?
강하 독림에 가면 융모초가 있다고 했다.
융모초는 분명히 양기를 가라앉혀준다. 또 독림은 융모초가 자라기에 아주 이상적인 요처다.
독을 아는 사람이 호발귀 말을 들으면 의심할 수가 없다. 말을 꺼낸 사람이 융모초가 당장 필요한 사람이고, 평소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내가 당했네. 내가 당한 거야.”
당홍이 어처구니없어서 중얼거렸다.
“호발귀가 우리를 털어낸 것 같아.”
“뭐! 털어내! 이 자식이 정말!”
“우리 당한 거 맞지?”
“어. 맞아. 내 이 자식을 보면 당장 멱살을 후려잡고 싸대기를 날리든가 해야지.”
“훗!”
당홍이 웃었다.
“왜 웃어? 기분 나쁘게 웃네?”
“멱살이나 잡을 수 있고? 가만히 보니까 이제는 무공 차이가 꽤 나는 것 같은데.”
“내가 봐줘서 그래! 그리고! 내가 먼저 사조 눈에 띄었어! 내가 조금만 알랑거렸으면 그놈은 투심문에 발도 못 붙였어! 그러니 내가 위야!”
“그래봤자 보위잖아. 호발귀는 문주고.”
“어? 내 편 아니야?”
“어휴! 일어서. 가게. 생각 같아서는 괘씸해서 고생 좀 하라고 버려두고 싶지만. 어떻게 해? 가야지.”
“또 달려야겠지?”
“아니면? 싸움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릴 거야?”
“내 이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이게!”
도천패가 투덜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 * *
숲에 살기가 어린 것을 보았다.
등여산은 책사이기 이전에 태산파 문도다. 절정 무공을 수련한 무인이다.
주치균만 숨어 있었다면 모를 수도 있었겠지만, 살단 무인까지 숨어 있었다. 그러니 모를 수가 없다. 또 살단도 굳이 뒤쫓는 것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쫓아왔을까? 왜 자신은 까마득하게 물렸을까? 왜 이제야 알았지?
그래서 숲 쪽 방향으로 전서구를 하나 보냈다.
전서구는 분명히 떨어질 것이다.
자신이 산양으로 간다는 글을 읽을 것이고, 비로소 살단을 제 자리로 돌려보낼 것이다.
최소한 호발귀는 살단 공격은 피할 수 있게 된다.
또 한 통은 천살단 단주님께 보냈다.
전서에 호발귀와 같이 있겠다는 생각을 적었다. 하지만 천살단을 배신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뜻을 함께 적었다.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다.
나머지 한 통은 당홍과 도천패에게 보냈다.
호발귀가 어떤 속임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강하로 가고 있다.
등여산은 전서구를 강하로 보냈다. 그래서 역으로 추격해 오도록 했다. 천살단 정보망이라면 두 사람을 쉽게 추격할 수 있다. 밀지를 전하는 것도 간단하다.
아마도 이것이 그녀가 천살단 정보망을 이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이후에는 책사의 모든 권한이 박탈된다.
안가를 이용할 수도 있고 정보망을 사용할 수도 없다. 호발귀 옆에 있겠다고 말한 이상, 귀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 된다. 무엇보다도 천살단은 호발귀와 선을 긋고 싶은데, 자신 때문에 계속 연결되게 생겼다.
이래도 호발귀를 혈마로 만들까? 그렇다면 자신과도 인연을 끊어야 한다. 그래야 호발귀와 연결된 선이 모두 끊어진다. 등여산은 배신한 책사가 되어야 한다.
등여산은 단주가 그렇게까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단주님은 할아버지처럼 자상하다. 천살단 모든 식구를 다 안다. 아저씨 같고, 삼촌 같고, 큰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 같은 분들이다.
특히, 천원주는 어머니처럼 따랐다.
그런 분들이 자신을 내칠까? 그럴 리 없다.
자신이 호발귀 곁에 머문다면 천살단도 암암리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쒜에에에엑!
등여산은 신형을 쏘아냈다.
호발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겠다.
호발귀가 가는 방향 쪽에 혈천방 제삼대가 있다. 틀림없이 거기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