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七章 제삼대(第三隊) (1)
천살단은 중원 각처에 안가를 마련해놓고 있다.
임무 수행 중 급히 본문에 연락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거나 신변에 위험이 발생해서 몸을 숨겨야 할 때, 또 본문의 특별지시가 있을 때는 안가를 이용한다.
임무 수행 중이라도 위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으면 안가를 이용하지 못한다.
안가에는 상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객잔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라서 객주(客主)라고 부른다.
객주는 천살단 소속이지만, 신분은 철저히 비밀이다. 어떤 안가에 누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직 안가를 관리하는 비보전주만 안다.
삐걱!
등여산이 사립문을 밀치고 절남(折藍) 안가(安家)로 들어섰다.
그녀가 들어서자 마당 한구석에서 퇴비를 쌓아 올리고 있던 농부가 힐끔 쳐다봤다.
“뉘쇼?”
농부가 다소 퉁명스럽게 물었다.
“등여산이에요. 단을 떠난 지 오래되어서 밀마는 모르겠네요.”
등여산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두 손을 모아 앞으로 내밀었다. 포박하라는 뜻이다. 안가를 예고 없이 방문하면, 객주는 손님을 무조건 포박한다.
규칙이다.
일단 손님을 묶어놓고, 나중에 사정 여부를 확인한다.
이런 순서를 모른다면 천살단 가족이 아니다. 외인으로 보고 대처하면 된다.
부엌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밖을 쳐다보면 아낙이 즉시 올가미를 들고나왔다.
“잠시 실례할게요.”
아낙은 익숙한 솜씨로 등여산의 두 손과 두 발을 묶었다.
“여긴 어쩐 일로……?”
아낙이 차를 따르면서 물었다.
등여산에 대한 신분 확인은 끝났다. 손발을 묶었던 올가미도 풀렸다.
등여산은 책사로 대우받는다.
“지금 중원에서 일어나는 일, 전부 알아야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곧 준비하겠습니다.”
아낙이 공손히 말했다.
“아뇨. 절 안내해 주세요. 제가 직접 보는 게 빠를 거예요.”
“그건 규정상 곤란합니다.”
아낙이 난색을 보였다.
“알았어요. 그럼 갖다주세요.”
등여산은 자리에 앉았다.
안가에는 많은 정보가 수집되어 있다.
인근 지역에서 보고된 따끈따끈한 정보도 있고, 본문에서 내려보낸 중요 정보도 있다.
손님에 정보를 달라고 할 때, 즉시 내주어야 해서 비교적 많은 정보를 소장하고 있다. 그중에는 적에게 들어가거나 외부에 노출되면 안 되는 고급 정보도 있다.
그래서 객주는 자신만 아는 장소에 정보를 모아놓는다.
손님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 장소에 보관하며 유사시에는 즉시 폐기한다.
등여산이라고 해도 그런 장소에는 접근할 수 없다.
잠시 후, 아낙이 종이를 한 마름 안고 왔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전부 다 가지고 왔습니다. 천천히 살펴보세요”
“고마워요.”
등여산은 진심으로 고개 숙여서 인사했다
등여산이 찾은 것은 중원 각지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정반대로 천살단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천살단 안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었는지 살폈다.
특이한 사항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 장, 한 장 종이들이 옆으로 밀려났다.
아낙이 가져온 종이를 절반쯤 읽었을 때, 등여산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 천원주 출타.
매우 짤막한 글이다. 하지만 그 짧은 글이 당장 관심을 잡아끌었다.
‘천원주께서 출타? 왜?’
등여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원주는 웬만해서는 출타하지 않는다. 천원주는 중원에 가족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천원주가 나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이다.
또 안가에서 ‘천원주 출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언제든 천원주가 안가를 이용할 수 있으니 만반의 준비하고 있다가 즉시 편의를 제공하라는 뜻이다.
등여산은 다섯 글자에 불과한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지금 시점에 천원주가 나올 일이 없는데…… 그런데도 나왔다면…… 그동안 벌여놓은 일을 확인하고 즉시 명령을 하달하기 위해서야. 보고할 시간조차 아낀다는 거지.’
등여산은 천원주가 출타한 이유를 짐작했다.
천살단은 모든 일을 정리, 정돈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활동을 정리한다. 정보 수집 등 불가결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일단 모두 보류한다.
천원주 출타는 그런 내용으로 읽어야 한다.
천살단은 호발귀를 버렸다. 혈천방과 동조하여 완전히 물러서기로 작심했다.
당분간 호발귀와 무림의 싸움을 지켜볼 생각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단주를 만나서 사정을 한다고 해도 명령이 번복되지는 않는다.
등여산은 다른 정보도 모두 읽었다.
내용이 모두 한 쪽 방향으로 흘러간다.
중원 무림과 호발귀가 충돌하는 일에 절대 간여하지 않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른 정보는 없어요?”
“최근 정보는 내일 아침에 도착합니다. 푹 주무시고 나면 내일 아침에는 도착해 있을 겁니다.”
아낙이 공손히 말했다.
“새로운 정보입니다. 기다리실 것 같아서 즉시 가져왔습니다.”
아낙이 종이 한 뭉치를 안고 왔다.
등여산은 새로운 정보를 읽었다. 각지에서 올라온 정보다. 그중에는 본단에서 보내온 정보도 있다.
본단은 그녀가 절남 안가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명령서를 보내왔는데, 안가에 머물지 말고 조속히 귀환하라는 내용이다.
등여산은 다른 정보까지 꼼꼼히 훑었다.
그러다가 퍼뜩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어제 가져온 정보도 그렇고, 오늘 정보도 마찬가지다. 호발귀에 관한 내용이 없다. 호발귀와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도 쏙 빠졌다.
“제게 숨긴 거 있죠?”
“네.”
아낙은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지금이라도 주실 수 있나요?”
“아뇨. 못 드려요. 본단 특별 명령이 있었어요. 호발귀에 관한 정보는 일절 함구하라는. 특히, 책사님께는 드리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낙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내용은 매우 단호했다. 어떤 사정이 있어도 호발귀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겠다는 거다.
“이해해요. 수고했어요.”
등여산이 일어섰다.
“가시게요?”
“가야죠. 본단에서 빨리 오라고 난리인데.”
등여산이 활짝 웃으면서 걸었다.
등여산은 본단으로 가지 않았다.
절남 안가를 나와서 휘적휘적 걷다가 빈대 벼룩이 들끓을 것 같은 허름한 객잔으로 들어섰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삐걱거리는 침상, 곰팡내가 푹푹 풍기는 이불, 모서리가 깨진 책상, 금이 가서 물이 새는 찻잔…… 온갖 것이 허름한 객잔이다.
등여산은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았다.
침상에 앉아서 두 손으로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푹 묻었다.
시간이 흘렀다.
한 시진, 두 시진…… 낮이 지나고 날이 어둑해졌다.
똑똑!
밖에서 문 두들기는 소리가 울렸다.
등여산은 고개를 쳐들지 않았다. 지금은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게 귀찮았다.
똑똑!
“저, 손님? 손님!”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가서 번잡스럽다.
천살단이 호발귀를 버렸다.
그럼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천살단과 뜻을 같이해서 버릴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단주가 호발귀를 버렸는데, 천살단 책사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호발귀는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멀리서 그가 점점 타락하고, 찢어지고,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쿵쿵! 쿵!
밖에서 문 두들기는 소리가 거세게 들렸다.
등여산은 생각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더 근본적인 이유, 혈천방과 천살단이 왜 동시에 그를 혈마로 만들려는지 생각했다.
우지끈! 꽈앙!
밖에서 문 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장한 두 명이 문을 부실 듯 밀어내며 들어섰다.
그들은 등여산이 침상 위에 앉아 있자 한숨을 땅이 꺼지라 내쉬며 멈춰 섰다.
“아! 방에 계셨으면 대답 좀 하시지. 우린 또 뭐가 잘못된 줄 알았지 뭡니까! 가끔 이런 곳에 와서 미친 짓 하는 인간들이 있어서. 송장 치우게 하지 마쇼!”
객잔 사람들은 너무 움직임이 없자. 자살이라도 한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등여산은 잠시 쳐들었던 고개를 다시 무릎 사이에 묻었다.
‘어떻게 하지?’
깊은 밤, 등여산은 절남 안가를 다시 찾았다.
농가 부부는 일과를 마치고 단잠에 빠졌다. 부부가 잠든 방에서 드르릉 코 고는 소리가 울려 나온다.
쉬이잇!
등여산은 농가 안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객주가 내주지 않은 정보를 읽어볼 생각이다.
‘짐작이 맞는다면……’
아낙은 정보를 부엌에서 가져왔다.
부엌에 정보를 숨겨놓았거나, 아니면 다른 밀실로 통하는 문이 있는 것 같다.
등여산은 밀실이 숨겨져 있다고 확신한다.
스스스스슷!
소리를 흘리지 않고 슬그머니 부엌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때, 방안에서 등불이 확! 하고 밝혀졌다.
‘음!’
등여산은 몸을 피하려다가 멈춰 섰다.
어차피 침입 사실이 발각되었다. 누군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불을 켠 것이라면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다. 이미 절남 안가 주변에 배치한 무인들이 뛰쳐나오는 중일 것이다.
그들과 싸워도 괜찮다면 도주해도 무방하다. 도주하면 침입자로 간주하고 즉각 공격을 가해올 것이다.
덜컹!
부엌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아낙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부엌을 쳐다봤다.
여인은 놀라지 않았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여인이 부엌으로 들어섰다.
“여기 경계가 굉장히 뛰어나네요. 제가 발각될 정도면……”
“아뇨. 경계 같은 것은 없어요. 오실 줄 알고 기다렸기 때문에 안 거지. 사실, 부엌에 오신 줄도 몰랐습니다. 느낌이 이상해서 열어본 건데.”
“미안해요.”
등여산은 사과했다.
“책사님 소문, 익히 들었어요. 어떤 거 하나에 꽂히면 옆에서 전쟁을 벌여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호발귀에 대한 거, 드리지 않으면 또 오실 거죠?”
등여산이 옅게 웃었다.
아낙은 부지깽이를 들어서 아궁이 속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잿더미 속에서 손상되지 않은 종이를 꺼냈다.
“내일 아침에 불사를 것이었습니다. 보세요.”
아낙이 종이를 건넸다.
“고마워요.”
등여산은 종이를 받아서 읽었다.
호발귀에 관한 내용이다.
호발귀는 도천패와 당홍을 심부름 보냈다. 홀리와 해자수도 뒤로 밀어냈다. 그리고 귀무살로 추측되는 자를 쫓고 있는 것까지는 확인했으나 그 후의 종적은 놓쳤다.
‘이 사람, 혼자 상대할 생각이야! 혈마 싸움을 혼자 하려고 해. 주위 사람을 다 정리했어. 내가 제일 먼저 정리당한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등여산은 호발귀의 마음을 단숨에 헤아렸다.
“본단에서 제게 보여주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뭘 보셨어요?”
아낙이 종이를 받아들여서 다시 아궁이 안에 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즉시 불을 댕겼다.
화르르륵!
종이가 불탔다.
“전 뭘 보여드린 게 없는데, 책사님은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요.”
“아! 제가 가끔 이렇게 정신이 나가요. 다른 일이었는데, 깜빡 착각했어요.”
등여산이 활짝 웃었다.
“밤이 늦어서 재워드렸으면 좋겠는데……”
“아뇨. 정말 고마워요. 평안하세요.”
등여산은 진심으로 아낙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처음 본 사람이다. 객주는 천살단 무인과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다. 어쩌다가, 몇 년에 한 번 만나면 많이 만나는 그런 사이다. 그런 데도 큰 도움을 받았다.
등여산은 오랜만에 정말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