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六章 반격(反擊) (5)
호발귀는 귀무살을 쫓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귀무살은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없는 사회 부적응자들이다. 절대 일반인들과 어울려 살 수 없는 외톨이 늑대다. 그래서 세상에 들어가면 안 된다.
이들은 산에서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해 보인다.
모든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산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비바람을 피하고, 모닥불 없이도 추운 날을 보낼 수도 있다. 생쌀을 먹거나 아니면 버섯을 따서 끓여 먹는 모든 행동이 매우 익숙하다.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자란 사람처럼 모든 것이 몸에 뱄다.
귀무살의 일과는 매우 규칙적이다. 틀에 짜인 것처럼 매시간이 똑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침 수련을 한다. 거의 한 시진 이상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련한다. 몸을 사용하는 공부, 권각술부터 검법까지 정성을 들여 다듬는다.
수련을 마친 후에는 시원하게 찬물로 목욕을 한다.
매우 건강한 아침이다.
목욕 후에는 아주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하고, 조금 쉬었다가 운공을 한다.
운공은 점심 무렵에야 끝난다.
오전 일과는 늘 똑같다. 비가 와도 거르지 않는다. 늘 같은 시간에 같은 수련을 한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이동을 시작한다.
점심부터 저녁 무렵까지 계속 살길을 타고 이동하다가, 해가 뉘엿뉘엿 스러지면 그제야 주변에서 잠자리를 찾는다.
어디까지 가서 자야겠다 하는 생각이 없다.
가다가 멈추면 바로 그곳에서 잠을 청한다. 주변을 살펴보고 가장 편안할 것 같은 잠자리를 찾는다. 조금 여유 있으면 씻고 자고, 귀찮으면 그냥 자는 게 다르다.
이들의 일상을 보면 매우 건전하다.
며칠을 뒤쫓았지만 악랄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절대 살인하지 않을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면 귀무살도 피해자인가?
그럴 수 있다. 귀문이라는 조직에 휩쓸려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무공을 수련했고, 살기 위해서 동료를 죽인다. 정해진 과정을 어기면 자신이 죽는다.
귀문에 입문하면 귀무살이 될 때까지는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쭉 진행된다.
‘귀무살’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에는 이미 아흔아홉 명을 죽인 살인귀가 되어 있다.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뿐인데, 동료들을 모두 죽인 살인귀가 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중간에 멈출 수가 없지 않나.
그 후, 명령이 떨어진다.
살인, 살인, 살인…… 왜 살인을 하는지도 모르고 명령을 쫓아서 사람을 죽인다.
그러다 보면 마을 멸살 사건 같은 일에도 휘말린다.
위에서 죽이라는 명령을 떨어트렸다. 그러니 실행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귀무살은 혈천방 살수체제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명령을 내리지 않고 산에서 살라고 하면 영원히 살인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호발귀의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귀무살은 명령을 쫓아서 살인하는 살인 기계가 아니다. 본인 스스로 살인을 쫓는 살인귀다.
산에 약초꾼 세 명이 나타났다.
약초꾼들은 산에서 낯선 사람을 보자마자 당장 경계태세부터 취했다. 더욱이 상대는 검을 찬 무인이다.
귀무살이 먼저 손을 들어서 그들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약초꾼들이 경계를 풀고 오히려 무인을 향해 다가왔다.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주했어야 하는데,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었다.
“어디로 가시길래 이 험한 산을 타십니까?”
약초꾼이 먼저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제야 귀무살이 본색을 드러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씩 웃었다.
살인귀의 웃음!
약초꾼들은 웃음을 보자마자 오금이 저리는지 움찔거렸다.
귀무살이 말했다.
“너희는 오늘 못 볼 것을 봤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킥킥! 너희는 귀신을 봤단 말이지. 귀신을 보면 어떻게 돼? 지옥으로 끌려들어 가.”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컥!”
약초꾼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날아온 검이 약초꾼의 목젖을 그어버렸다.
다른 두 명은 검이 번뜩이자마자 ‘다리야 날 살려라!’ 하고 냅다 도주했다.
하지만 그들이 귀무살을 따돌릴 리 없다.
휙! 쒯!
검풍이 매우 짧게 불었다.
귀무살은 단 한 차례의 검풍도 헛되게 쓰지 않았다. 일 검에 목숨 하나를 빼앗았다.
검을 휘두르니 한 명이 쓰러진다.
세 번을 휘둘러서 세 명을 쓰러뜨렸다.
“꺼억! 컥!”
약초꾼은 숨이 끊어지지 않고 컥컥거렸다.
심장에서 역류한 피가 목을 타고 흘러나온다. 숨을 쉴 수가 없는 것이다.
귀무살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죽어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요즘 참 심심했는데. 그래도 가끔 이런 게 걸려드니까 산 타는 맛이 난단 말이야. 킥킥!”
귀무살이 중얼거리면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살폈다.
눈꺼풀도 뒤집어 보고, 입도 벌려보고, 귀엽다는 듯 볼도 툭툭 때렸다.
귀무살은 죽어가는 사람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생기가 사라져 간다.
호발귀는 생기가 가물거리는 모습을 봤다.
방금까지만 해도 단단하게 육신에 밀착돼 있던 푸른 빛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출렁거렸다.
그러다가 푹! 터졌다.
아니, 터진다는 말은 적당치 않다. 세상 속으로 흩어졌다.
원래 생기는 대자연의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것도 아니다. 몸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흐르는 것이다.
생기는 숨으로 들이마시는 공기에 섞여서 흡입된다. 음식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피부를 통해서도 받아들인다. 온몸으로 대자연의 기운이 스며든다.
젊었을 때는 받아들이는 작용이 활발하다.
늙으면 푸른 빛을 많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끌어들이는 힘이 점점 약해진다.
약초꾼은 젊고 건강했다.
생기는 아주 선명한 푸른 빛이었고, 힘차게 요동쳤다. 하지만 숨이 끊어지자, 한순간에 흩어졌다.
호발귀는 생기가 흩어지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약초꾼의 죽음을 확인했다. 맥을 잡아보지 않았지만, 바로 지금 숨이 끊어졌다. 호흡은 조금 일찍 떨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완전히 죽은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귀무살, 저놈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인 쾌락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저자는 검을 쥐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타인보다 강할 때는 여지없이 검을 드러내면서 쾌락을 만끽한다.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호발귀는 귀무살이 어떤 자들인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호발귀의 눈빛이 심유하게, 냉정하게, 차디차게 가라앉았다.
‘너희들 다 죽어. 기필코 죽인다.’
귀무살이 움직임을 멈췄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늘 이동을 시작했는데, 움직일 생각을 하지 낳는다.
귀무살이 잠을 잔다.
세상에 정말로 할 일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귀무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종일 빈둥거리기도 힘들 것이다.
잠을 실컷 잔 후에는 주변을 서성거렸다.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땅을 살피기도 한다. 특히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추격자를 찾는다!’
호발귀는 귀무살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짐작했다.
혹여 따라붙었을 추격자 혹은 길을 오다가 만났던 약초꾼들처럼 우연히 산에 올라오는 자들을 경계한다. 특별히 어떤 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찾는다.
호발귀도 편히 쉬었다.
귀무살은 절대로 호발귀를 찾지 못한다.
둘 사이의 거리가 무려 삼십 장이나 벌어져 있다. 사방이 탁 트인 곳이라면 윤곽이 뚜렷이 보이겠지만, 산에서는 그림자조차도 찾을 수 없다.
귀무살은 이틀에 걸쳐서 충분히 살폈다.
사흘째 되는 날, 귀무살이 호각을 꺼내 삑! 불었다.
산에서는 호각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사백 장, 오백 장까지 퍼져나갈 수도 있다. 산 안쪽이라면 틀림없이 들을 수 있고, 잘하면 바깥쪽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귀무살이 호각을 불었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귀무살도 호각은 한 번만 불었다. 두세 번 정도 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딱 한 번만 불고는 호각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또 빈둥빈둥 놀았다.
밤이 찾아오고 잠을 잔다. 낮에 그렇게 자놓고 또 잠이 올까?
나흘째 되는 날, 전서구가 날아왔다.
혈천방은 참으로 용의 주도한 조직이다. 소식 하나 주고받는데, 나흘이 걸린다.
귀무살은 익숙하게 전서구를 낚아채서 전서를 꺼내 읽었다.
그리고 또 쉬었다. 이번에는 그냥 쉬지 않았다. 전보다 더 예리하게 주변을 살폈다.
‘움직인다!’
귀무살이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귀무살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아니다. 사람 사는 마을과는 전혀 상관없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호발귀의 눈에는 숲이 마치 마을처럼 보였다.
숲 전체에 생기가 가득 깔려 있다.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귀문은 백 명, 이백 명 수준이다.
이곳은 그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 어림잡아도 거의 오륙 백 명은 넘어선다.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귀문보다 더 큰 곳을 찾았다. 귀무살이 그를 제대로 안내했다.
생기는 중 일부는 숲에 있다. 숲에 숨어서 꼼짝하지 않는다. 숲을 지키는 경계 무인이다.
강하에 있던 혈천방을 생각하면 이곳 경계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숲에는 경계 무인 외에도 독이나 암기 혹은 온갖 함정이 잔뜩 깔려 있을 것이다.
‘혈천방 본방인가? 아냐. 그러기에는 경계가 허술해. 지단 정도일 것 같은데?’
호발귀는 미행하던 귀무살을 주시했다.
저벅! 저벅!
귀무살이 숲을 걸어 들어갔다.
그는 누구에게도 제지받지 않았다. 마치 숲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모두 침묵했다.
귀무살도 사람들이 숨어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말을 걸지 않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곧장 앞만 보고 걸어갔다.
이곳에서는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것 같다.
아니다. 그는 곧 제지를 받았다. 숲에서 한 명이 걸어 나와 귀무살 앞을 막아섰다.
“난검(難劍) 십칠(十七).”
귀무살이 말했다.
“통행증.”
그러자 귀무살이 품에서 밀지를 꺼내 건네주었다.
전서구를 통해서 받은 밀지다.
‘저게 통행증? 후후! 재미있네.’
호발귀는 두 가지 사실을 알았다.
귀무살이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 귀무살을 알아보지 못한다. 또 저들은 호각을 부는 사람에게 임시 통행증을 부여한다.
그러면 아무나 호각을 불어도 되나?
호각에 어떤 용도가 있을 것이다. 호각을 부는 길이라거나 특수한 울림 같은.
또 전서구를 통해서 받은 밀지가 통행증이라는 사실을 알기도 힘들다. 하루 전날에 적어서 보낸 것이니 위조도 어렵다. 어떤 내용이 기재되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곳을 출입할 방법이 없다.
“들어가십시오.”
귀무살을 막아선 무인이 정중하게 길을 터줬다.
그제야 귀무살도 위세를 드러냈다. 앞에 선 무인을 본 척도 하지 않고 거만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럼 이제부터는 내 싸움인가?’
호발귀는 진기를 일으켰다.
일단 팔십일수를 사용했다. 순간적으로 두 눈에 오간각이 켜졌다. 숲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는 자연적으로 운용되지 않는다. 이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운용을 해야만 일어난다. 뒤에서 주먹이 날아와도 피해야겠다 하고 생각한 후에 몸을 움직여야만 피하는 동작이 나오는 것과 같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는 나중에 생각한다. 우선은 어떤 식으로든 사용한다.
역천금령공으로 생기를 읽고, 오간각으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파파파팟! 파파팟!
숲에 있는 저들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확실히 사람들이 숨어 있다.
곳곳에 깔린 함정도 봤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함정이 이곳에 깔린 것 같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된 함정은 더는 함정이 아니다. 단순한 장애물일 뿐이다. 숨어 있는 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더는 경계 무인이 아니다. 단순한 장애물이다.
스읏!
호발귀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