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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28화 (128/500)

第二十六章 반격(反擊) (3)

“잘 가.”

호발귀는 등여산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제 겨우 서로 마음을 확인했다 싶었는데, 벌써 이별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만날 길이 없다.

싸움은 곧 일어날 것이다. 세상은 진짜 혈마를 맞이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수많은 사람을 죽일 것이고, 세상은 넘쳐나는 피와 시신으로 치를 떨 것이다.

그런 마당이니 등여산이 마인이 되려고 작심하지 않는 한은 곁에 다가오지 못한다.

등지고 걸어가는 모습!

이것이 등여산을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 될 것이다.

호발귀는 멍하니 앉아서 등여산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가슴이 텅 빈다.

심장이 밖으로 쑥 빠져나간 듯 허전하다.

‘잘했어. 잘한 결정이야.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사람이었어.’

호발귀는 피식 웃었다.

천원주도 등여산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용히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되도록 등여산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인다.

천원주가 말했기 때문에 등여산을 보낸 게 아니다.

혈마 혈겁은 생각보다 지독한 것 같다. 천살단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어떤 싸움이 펼쳐질지 예상된다. 혈마 재림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떠나보냈다.

등여산이 그런 핏물 속에 몸 담그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정말로 등여산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호발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탁탁 털었다.

“마음 추스르고 오는 길이야?”

홀리가 물었다.

“갔어?”

“다 봤으면서 새삼스럽게. 안 본 척하려면 연극이나 제대로 하던가. 그러고 보면 사람이 못 된 면이 있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좋게 말해서 보내지.”

“무슨 말이야? 난 화도 못 내나?”

호발귀가 짐짓 화난 듯 말했다.

“천살단 공격할 때 앞장서라고? 호호호! 그럼? 만약 천살단이 공격해오면 어떻게 할까? 옆에는 있고 싶고, 칼을 들기 싫고. 그런 거야? 여보세요, 머저리님. 옆에 있겠다고 작심하면 이미 그런 것까지 모두 생각을 정리한 거야.”

“……”

“일부로 등 떠밀어서 보내는 거, 내가 눈치챘는데 저 여우가 눈치 못 챘을 것 같아? 난 오히려 저렇게 가는 게 더 불안해. 무슨 생각이 있으니까 가는 걸 텐데.”

홀리가 등여산이 떠난 곳을 쳐다봤다.

“지금 강하 좀 다녀와 줘. 형수님도.”

호발귀가 도천패와 당홍에게 말했다.

“강하? 강하는 왜?”

“강하 독림에 융모초(絨毛草)가 있어.”

“융모초! 정말 그게 있어?”

호발귀가 말을 꺼내자마자 당홍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당홍은 독의다. 융모초가 어떤 풀인지 모를 리 없다. 또 얼마나 귀한 풀인지도 잘 알고 있다.

융모초는 잎사귀에 하얀 솜털이 가득 덮인 풀이다. 잎사귀는 아홉 개이며, 솜털이 워낙 길어서 여우 꼬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일면 구미호초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융모초는 희귀 식물이라서 구경하기가 무척 힘들다. 산삼보다 백 배 정도 귀하다고 할까? 약초꾼도 잘 모르고, 독의 정도는 되어야 아는 풀이다.

당연히 무척 비싸서 부르는 게 값이다. ‘꼬리 하나에 성 한 채 값’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정말 융모초가 있어?”

당홍이 재차 물었다.

“네. 당시에는 융모초인 줄 몰랐죠. 희귀한 풀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은색 털이 너무 고와서 건드리지 않았어요. 원래 독성 심한 풀일수록 예쁘잖아요. 특히 자라는 곳이 독림이라서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죠.”

“음! 그럼 우리 빨리 다녀와야 해.”

당홍이 말했다.

“융모초가 뭔데?”

도천패의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여러 효능이 있지만, 다른 것은 필요 없고. 내게 필요한 것은 기혈조절 작용이야. 융모초는 단시간 내에 기혈을 조정해 주는 약효가 있어. 혈기가 치솟았을 때, 어쩌면 단숨에 내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왜 이제 말해!”

도천패가 화를 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도천패도 혈기 상승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던 것이다.

“독림 어디에 있는데?”

“말해줘도 잘 모르는데. 독림에는 길이 없어서. 무조건 찾아보는 수밖에 없어요. 참! 십육비자 시신 있는 데였으니까, 어쩌면 유골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네요.”

“부지런히 찾아야겠네.”

당홍이 미간을 찌푸렸다.

“융모초는 알지만, 제련 방법은 모릅니다. 혹시?”

“나도 몰라. 융모초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아서. 다녀오는 동안 생각해 볼게. 우선 융모초부터 구하고, 제련은 같이 생각하자. 뭐해! 빨리 준비하지 않고!”

말은 호발귀가 꺼냈는데, 당홍이 먼저 서둘렀다.

호발귀는 싸울수록 혈기가 상승한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에 혈마가 된다.

혈기를 누그러트릴 수 있는 약초가 있다면 당장 캐내야 한다.

“우리가 가는 길은 밀마로 남겨놓을게. 아! 소문이 나을까? 소문만 따라오면 되겠다. 호호!”

홀리가 웃었다.

“강하에 융모초. 절묘하네. 딱 이 시점에.”

홀리가 호발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강하 독림에 융모초가 있어?”

호발귀는 도천패가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려서 홀리를 봤다.

“없어.”

“호호!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뭐 제련 방법은 몰라? 어쩌면 그런 말이 천연덕스럽게 나와?”

홀리가 피식 웃었다.

당홍은 독 전문가다. 당연히 융모초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안다. 호발귀를 혈마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약초다. 그러니 당장 움직인다.

융모초라는 말만 꺼내도 움직인다.

두 사람은 독림을 샅샅이 뒤질 것이다. 뒤지고, 뒤지고, 또 뒤지고…… 그러다가 찾지 못하면 그제야 독림을 벗어날 텐데, 그때는 이미 싸움이 시작된 후이다.

저들 역시 혈마 싸움판에 가담하지 못한다.

혈겁 속에 뛰어들 생각이 있었어도, 혈마가 하는 짓거리는 보면 정이 떨어져서 물러설 것이다. 그때는 사마외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악마가 되어 있을 테니까.

그래도 두 사람이 온다면 어떻게 할까?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다. 아마도 그때쯤이면 도천패와 당홍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혈마로 살아갈 때의 일이고…… 호발귀는 혈마로 살 생각이 없다.

호발귀가 홀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뜻을 안다면……”

“뜻이 뭔데?”

호발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홀리가 불쑥 말했다.

“이 싸움, 나 혼자 하자.”

“죽고 싶구나?”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어. 옆에 있으면 같이 표적이 되니까, 떨어져서 지켜보다가……”

“혈마가 되면 죽여달라고?”

“……”

“사람이 참 이기적이야. 주는 것도 없이 도와달라고만 하네? 그래서 내가 얻는 것은 뭔데?”

호발귀는 말을 하지 못했다.

홀리에게 주는 것이 없다. 아무것도 없이 죽여달라는 부탁만 하고 있다.

홀리가 말했다.

“얻는 것도 없이 도와줄 수는 없고, 오늘 밤에 같이 자자. 부부지연이라도 맺어야 도와주지. 어때? 할래?”

“……”

호발귀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됐네. 나도 자존심 있는 여자야. 이딴 걸로 멱살 잡지 않아. 차라리 말 안 하니까 좋네. 만약 좋다고 했으면 네가 싫어졌을 거야. 난 더 비참해졌을 거고.”

“미안하다.”

“사과는 됐고. 좋아! 마음껏 싸워봐. 원하는 대로 빠져줄게. 하나만 명심해. 백회혈(百會穴)이 쪼개질 듯 아플 거야. 그러면 끝난 거야. 모든 걸 포기해.”

“백회혈?”

“그래. 백회혈. 싸우는 중이면 그냥 칼에 맞아. 혈마가 본능적으로 피하겠지만, 이를 악물고 칼에 맞아봐. 그러면 내가 수고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 보지.”

“그래. 그럼 잘 죽어!”

홀리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정말로 빠지는 겁니까?”

해자수가 졸래졸래 따라오며 말했다.

“아니.”

“빠지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럼 꼭 같이 붙어 다니시지 왜 빠지시는지?”

“호발귀가 빠지라잖아.”

홀리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말했다.

“그럼 호발귀가 위기에 처해도 안 도와줄 겁니까?”

“혈마를 모르네. 혈마에게 적수가 있다고 생각해?”

홀리가 피식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혈마가 미친 인간이라면 아무래도 한칼 정도는 맞지 않을까 싶은데. 아, 미치광이 황소를 보십쇼. 길길이 날뛸 때는 건들 놈이 없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작심하고 우르르 달려들면 단박에 넘어가지 않습니까. 그거하고 똑같겠죠. 뭐.”

“풋! 어떻게 혈마하고 미친 황소하고 비교해. 혈마는 적수가 없어. 우리 도움이 필요 없다는 얘기야. 옆에 있어봤자 짐만 되는 거지. 그래서 빠져나온 거야.”

“에이, 적수가 없으면 옛날 혈마는 왜 죽었게요. 다 적수가 있으니까 죽은 거지. 그리고 호발귀는 아직도 혈마가 되려면 새카맣게 멀었는데요, 뭘.”

“위도에서 호발귀…… 혈마가 됐었어. 어떻게 혈마에서 벗어났는지는 모르겠는데, 혈마가 됐던 것만은 분명해. 이거. 이게 분명히 나타났어.”

홀리가 자신의 미간을 가리켰다.

미간에 새겨진 혈선.

“정말입니까?”

해자수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누구든 호발귀와 싸우면 죽어. 그러니 우리는 옆에서 알짱거리는 게 아니라 주변 정리를 해주는 게 훨씬 좋아.”

“아! 그렇게 심오한 뜻이!”

해자수가 자신의 무릎을 찰싹 쳤다.

“호발귀가 움직이는데 필요한 모든 걸 준비해줘. 나는 주변을 정탐하면서 공격해오는 자들의 신상 내력을 살펴볼게. 누가 공격하는지 알면 방어하기도 훨씬 쉬울 거야.”

“아이고! 이놈 이제 되게 고생하게 생겼네.”

해자수의 자신의 발바닥을 툭툭 쳤다.

호발귀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떼어놓았다.

싸움의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는 늘 죽음을 입에 달고 산다. 말만 하면 싸우다 죽는다는 소리를 한다. 혈마가 되는 것에도 광적일 정도로 경계했다.

모든 게 그만큼 자신이 없는 것이다.

옛날 혈마는 중원의 삼분지 이를 굴복시켰는데, 호발귀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

홀리가 말했다.

“그리고 천살단도 알아볼 수 있으면 알아봐 줘.”

“천살단은 왜요? 그놈들이야 뭐, 당분간 쥐죽은 듯이 지켜볼 게 뻔하지 않습니까?”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등여산이 불안해. 나는 책사가 그렇게 떠날 줄은 몰랐거든. 그 여자는 원래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어. 그래서 호발귀에게 마음도 드러낸 거고. 떠나지 않을 거라고 이미 마음에 굳힌 마음을 굳힌 상태야.”

“그랬습니까?”

“나중에 천살단이 호발귀를 이용하다가 버리면 그때는 호발귀 곁에 남겠다. 이렇게 결심을 굳힌 여자였다고. 그런데 다시 돌아갔거든. 아무래도 가서 정말로 누명을 벗겨달라고 하소연이라도 할 모양이야. 멍청하게.”

“킥킥! 책사보고 멍청하다고 말하는 분은 아씨밖에 없을 겁니다. 킥킥!”

“천살단을 잘 보고 있다가 구금이나 감금되는 일이 벌어지면 즉각 움직여야 해.”

“에이, 우리가 움직인다고 천살단이 꿈쩍이나 하나요? 천살단 근처에도 못 갈 겁니다. 괜히 어설프게 움직였다가는…… 에휴! 살단 봤죠? 그 아귀들이 달려들면…… 에휴!”

“누가 공격한대?”

“그럼요?”

“내게 다 생각이 있어.”

홀리가 씨익 웃었다.

“아휴! 난 아씨, 그 웃음만 보면 오금이 저리더라. 또 무슨 못된 짓을 꾸미시려고.”

“꾸미는 게 아니라 돕는 거야. 어쨌든 천살단을 잘 봐야 하는데, 방법 있어?”

“알았습니다. 내게 그 새끼들이 좀 있는데 한번 움직여보죠. 이게 모두 아씨를 위해서 하는 겁니다. 아씨, 나중에 저한테 술 한 잔 거하게 사셔야 해요. 킥킥!”

해자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홀리와 해자수는 호발귀와 적당한 거리를 벌렸다.

지켜볼 수는 있지만, 위급한 경우에는 도움을 주지 못할 정도로 먼 거리다.

“이 정도면 딱 적당해.”

홀리가 말했다.

‘혈마는 도움이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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