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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25화 (125/500)

第二十五章 혈마(血魔) 유인(誘引) (5)

“내 지아비 살아있어서 데려왔어. 다행히 혈마는 되지 않았더라고. 잠깐만 바람피워. 반쯤 죽었다가 살아났으니까 그 정도는 용서해 줄게.”

홀리가 등여산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고마워.”

등여산이 옆을 스쳐 지나가는 홀리에게 말했다.

홀리가 등여산을 쳐다봤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정말 괜찮다는 뜻인 듯, 손을 들어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 스쳐 갔다.

“반가워.”

등여산이 호발귀를 보면서 말했다.

“왜 여기 내려와서…… 독이 많은데.”

“풋! 자, 먹어. 내가 정말 정성껏 준비한 거야.”

등여산이 꼬치에 꿰어진 생선 한 마리를 내놨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기는 했지만, 너무 작다. 아무리 크게 봐줘도 손바닥을 넘어서지 않는다.

호발귀가 선뜻 받지 못하고 망설였다.

“먹어. 뭐라도 먹어야 기운 내지.”

“모두 다 같이……”

“우린 다 먹었어.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쫄쫄 굶었잖아. 이거라도 먹어.”

“그거…… 빨리 좀 먹지. 보는 사람 감질나게. 생선이라고 꼴랑 한 마리 잡아서는 누구 코에 붙이지도 못하고, 냄새는 또 어찌 솔솔 피워대던지.”

배 위에 앉아 있던 해자수가 한마디 했다.

호발귀는 생선을 받아서 뼈째 씹어 먹었다.

생선이 너무 작아서 입 작은 사람도 한 입, 두 입, 세 입이면 싹 사라진다.

“어제 일 기억해?”

등여산이 보는 사람 섬뜩하게 씩 웃으면서 물었다.

호발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날 죽이려고 했던 것도 기억해?”

“야, 약간.”

호발귀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약간이라니. 아주 자세히 기억해야지. 나 죽이려고 여기까지 쫓아왔잖아.”

“그래서 도망가려고 했잖아.”

“어? 다 기억하네?”

“조금은……”

“말해봐. 어제 정말 잡혔으면 죽이려고 했어?”

혈마와 부딪치면 죽는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다. 등여산이 설마 그런 점을 몰라서 물을까? 이건 질책이고, 추궁이다. 절대로 혈마가 되지 말라는 호통이다.

호발귀는 마지 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지금까지 지내온 정리가 있지. 날 죽인다고? 사람 너무하네.”

등여산이 눈에 쌍심지를 돋웠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자 어색한 기분이 싹 사라졌다.

사실, 모두 무슨 얘기를 하나 귀를 잔뜩 기울이고 있었다. 한데 지극히 평범한 얘기밖에 하지 않아서 마음을 풀었다. 보통 인간관계보다는 조금 진한 대화이지만, 특별한 말은 아니다.

등여산이 허리에 손을 착 얹고 다그치듯 말했다.

“그걸 다 기억하면, 내가 답 달라고 한 것도 기억하겠네?”

“응?”

“답 줘. 다시 만나면 답 달라고 했잖아.”

“그게……”

“생각 중?”

호발귀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남자가 맺고 끊는 게 없어. 그리고 어떻게 여자가 먼저 고백하게 만드냐?”

등여산이 톡 쏘아붙이고 배에 올랐다.

배에 탄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등여산을 쳐다봤다.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뜻밖의 말!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등여산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등여산과 호발귀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는지 모르지만, 대화 내용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너 작전 바꾼 거야?”

홀리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네가 충고해줬잖아. 그 충고 받아들이려고. 나 이제 안 숨겨.”

“그래서? 고백까지 했어? 도대체 언제?”

“……”

“하! 독 먹고 쓰러지고, 죽이겠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고백할 틈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네. 그 와중에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어쨌든 하긴 했어.”

“그러면 묻자. 천살단과 혈마가 언제까지 관계가 좋을 거라고 생각해? 사이가 틀어지면 어떡하게?”

“제발 부탁인데, 기분 좋을 때 초 좀 치지 말아줘. 넌 다 좋은데 초치는 나쁜 노릇이 있어.”

“얘 좀 봐라?”

홀리가 정말 놀란 눈으로 등여산을 쳐다봤다.

놀란 사람은 홀리뿐만이 아니다. 배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다 놀랐다.

등여산이 원래 이랬나. 이런 성격이었나?

등여산이 밝은 얼굴로 도천패를 보며 말했다.

“빨리 가요. 우리도 따뜻한 밥, 먹어야죠.”

“일단은 목욕부터 하자고. 옷도 좀 갈아입고. 이거 옷에서 이상한 냄새가 팍팍 풍겨가지고. 아이고야.”

해자수가 옷을 탁탁 털면서 말했다.

독무가 흩어진 지 꽤 됐는데도 여전히 옷에서 독무 냄새가 풍겼다. 코를 찌르는 악취 때문에 재채기가 쉴 새 없이 나왔다. 콧물도 줄줄 흐르고.

“그래. 오늘은 사람답게 좀 살아보자. 먹고, 자고, 입고. 여기는 인가도 가까우니까. 객잔이 있으면 좋겠는데, 거기까지 바라는 건 너무 무리지?”

당홍이 웃으면서 말했다.

“뭐 객잔이 없으면 민폐 좀 끼치는 거지 뭐. 돈 있잖아. 돈. 돈 주면 다들 좋아한다고.”

해자수가 제일 신났다.

일행은 삼호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귀문 문도는 모두 떠났다. 삼호는 텅 비었다. 혈천방과 더는 싸울 일이 없다.

해자수가 코를 킁킁거리면서 앞장섰다.

“내가 이쪽 지리는 잘 모르지만 사람 냄새가 나. 이 근방 어디에 분명히 민가가 있어. 여봐 여봐. 이거 사람 다니는 길이잖아. 이 길로 쭉 가면은 마을이 나온대니까.”

해자수가 사람 다니는 길을 찾아냈다.

좁은 소로이지만 사람 발자국이 무수히 찍혀 있다. 아예 단단하게 길이 다져졌다.

“고맙다.”

도천패가 말했다.

“뭐가?”

호발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거참 사람은 좋은 뜻에서 말하는데 딱딱하게 받기는. 살려줘서 고맙다고! 말 다 들었어. 이거 날아갈 뻔했다며?”

도천패가 자신의 왼팔을 만졌다.

“보위라고 들이기는 했는데, 아직 제대로 써먹지는 못했어. 기껏해야 피라미 몇 마리 잡은 정도라서. 이왕 끌어냈으니 제대로 써먹으려고 힘 좀 쓴 거야.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호발귀가 말했다.

“봐! 이놈 말하는 거 보라고! 내 이놈, 이런다고 했지!”

도천패가 옆에 있는 당홍에게 버럭 말했다.

“어휴! 아무래도 내가 남자 잘못 고른 것 같은데. 이 남자들, 이거 어떡해?”

당홍이 홀리에게 말했다.

“뭘 깊이 생각해요? 죽여버려요.”

홀리가 말했다.

“주, 죽여? 너, 너 나보고 형부라며! 형부를 죽이라고 해!”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예요?”

당홍과 등여산이 동시에 도천패를 보며 물었다.

“저기 봐! 저기! 마을 보이지!”

해자수가 반색했다.

앞쪽에 마을이 보인다. 열댓 가구 정도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객잔 같은 것은 있지 않다. 나그네를 위한 마을이 아니다. 그저 조그마한 농촌 마을이다. 마을에 민폐를 끼친다고 해도 여섯 명이 한 집에서 머무를 수는 없을 것 같다.

“따뜻한 물로 목욕 좀 했으면 했는데, 틀렸네.”

당홍이 말했다.

“따뜻한 물은 고사하고 찬물도 어렵겠는데? 그나마 이게 어디야? 옷이나 바꿔 입자고.”

해자수가 단걸음에 뛰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호발귀가 재빨리 해자수를 낚아챘다.

“왜? 왜?”

해자수가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는 해자수를 꼭 잡고 눈빛을 빛냈다. 차분하고 싸늘한 눈길로 마을을 쏘아봤다.

“왜? 매복이라도 있어?”

도천패가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호발귀는 마을에서 생기를 잃지 못했다. 호발귀의 원정이 감응을 일으키지 않았다.

호발귀가 말했다.

“죽은 마을이야.”

“뭐라고! 완전 멀쩡히 있는 마을인데 뭐가 죽어?”

해자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죽은 마을이야. 사람이 없어. 아니면 모두 죽었거나.”

“무슨 소리야? 여기서 그게 느껴진다고?”

해자수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듯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또 마찬가지다. 뭔가를 느끼기에는 상당히 먼 거리다.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거리다. 마을 사람들이 집 안에 틀어박혀 있다면, 산이나 들로 일을 하러 나갔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죽은 마을이라니.

“해자수, 마을을 탐색해줘.”

홀리가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홀리는 혈마에 대해서 가장 잘 안다. 생기가 발동했을 때, 이마에 혈선이 드리워졌을 때, 혈마의 감각은 일반인의 감각 능력을 훨씬 능가한다.

홀리조차도 그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세계이기 때문이다.

홀리가 말하자 그제야 해자수도 긴장했다.

“겉보기는 멀쩡한데……”

해자수가 중얼거리면서 마을을 향해 쏜살같이 치달렸다.

해자수는 금방 돌아왔다.

“모두, 모두! 죽었어.”

해자수는 말을 더듬거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입술까지 부르고 떨었다.

“어떻게 죽었는데?”

“칼에. 칼 맞아서 죽었는데. 근데…… 그 죽은 모습이 이거 어떻게 말도 못 하고. 꿈에 나올까 봐 겁나서 가보라고도 못 하고.”

해자수가 쩔쩔맸다.

“그렇게 잔인해?”

홀리가 물었다.

“아씨! 잔인한 정도가 아니고. 저건 아우!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 놓나? 아무리 잡것들이라고 해도 이거야 원. 사람이 사람 같지 않은 가봐.”

해자수가 치를 떨었다.

순간 등여산이 눈빛을 반짝였다.

“혈천방이 반격을 시작한 것 같아.”

모두 등여산을 쳐다봤다.

“멀쩡한 사람들, 그것도 농민들을 무참하게 죽였다면 이건 틀림없이 반격이야.”

“반격?”

호발귀가 눈빛을 차갑게 굳히며 물었다.

“응. 여기가 어디야? 삼호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야. 위도는 이미 독 천지가 됐고, 독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들이 지천이야. 그리고 삼호 근처에서 민간인이 죽었어. 이건 대량 살인이야. 어떤 살인귀가 삼호 근처에서 대량 살인을 저지른 게 돼.”

“이것들이 치졸하게 옛날 방식을!”

홀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옛날 방식이라니?”

당홍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혈천방 일이라면 당홍도 상당히 알고 있는 편인데, 옛날에 이런 식으로 대량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홀리가 말했다.

“옛날. 이백 년 전 일. 혈마는 혈마가 되고 싶어서 혈마가 된 게 아니거든. 그는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그를 끌어내어 혈마로 만든 거야. 지금처럼 살인을 저지르고는 모든 살인을 혈마에게 덮어씌웠어. 그 결과는.”

홀리가 뒤를 이을 필요가 없다는 듯 말을 중단했다.

그 결과, 혈마는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혈마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공격에 저항하다 보니 죽이는 자가 많아졌다. 그러다가 살심도 높아졌다.

혈마의 칼은 무섭게 중원을 몰아쳤다.

지금 그것과 비슷한 일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예상이 맞는다면 위도, 그리고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모두 호발귀가 저지른 일이 된다.

“저 마을 사람들, 딱 보니 오늘 아침에 죽었거든. 그럼 누군가 우리가 살아나온 걸 본 사람이 있네. 그러니까 우리가 올 시간에 맞춰서 딱 죽였지.”

“정말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이유 없이 싸워야 하는 건가? 서로 아무런 원한도 없는 사람끼리.”

“원한이야 싸우다 보면 생기는 거지.”

홀리가 말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어디죠?”

등여산이 해자수에게 물었다.

“마을로 가면서 봤는데, 저 산굽이를 넘어가면 바로…… 아! 갑시다. 가봅시다. 설마 저쪽 마을도 몰살시켰을라고.”

해자수가 먼저 신형을 띄웠다.

정말이다. 여덟 채 가구, 오십여 명이 몰살당했다. 노인, 아녀자,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죽었다. 단지 죽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가장 처참하게 죽였다.

얼마나 처참했는지 보자마자 고개를 돌릴 정도다.

“계속 이런 식으로 죽일 수는 없을 텐데?”

호발귀가 등여산을 쳐다봤다.

“대략 네다섯 개 마을 정도만 도륙하면 돼. 그 정도면 중원이 발칵 뒤집혀.”

호발귀가 뜨거운 눈으로 등여산을 쳐다봤다.

혈천방이 반격을 시작했다지만, 공격은 천살단에서 벌일 가능성이 크다.

혈마가 민간인을 죽인 사건이지 않나.

홀리가 ‘만약에’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물은 말이 의외로 빨리 현실이 되어서 들이닥쳤다.

등여산, 천살단이 공격을 시작하면…… 어떻게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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