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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21화 (121/500)

第二十五章 혈마(血魔) 유인(誘引) (1)

지하에서 솟구친 독무는 위도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위도를 싹 쓸어서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켰지만 대략 한 시즌쯤 지나자 허공 중에 산산이 흩어졌다.

엄청난 대재앙이 위도를 쓸고 지나갔다.

호발귀는 탈진해서 털썩 주저앉았다.

진기를 너무 과다하게 사용한 탓에 손발이 덜덜 떨렸다. 속에서 구역질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그는 쉬지도 못했다.

당홍의 표정이 매우 침중하다.

“왜 그래요? 해독이 잘 안 돼요?”

“아니. 해독은 했어. 독섬칠공으로 다 빨아냈으니까.”

사실, 해독의 가장 중요한 요혈은 추궁과혈이었다. 극독이 몸을 핥고 지나갔다. 당연히 정상이 아니다. 혈맥도 손상되었고, 근육도 파괴되었다.

그런 점들을 추궁과혈로 다스려준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는 독섬칠공에서 끝났다.

추궁과혈은 정상인이 되느냐 독에 상처 입은 몸으로 사느냐 하는 관건이 된다.

당홍이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 견료혈 상처가 심해. 그러잖아도 심한 상처에 독까지 스며들어서…… 왼팔을 살릴 수 없어. 어깻죽지부터 잘라내야 목숨이라도 건져.”

“아!”

등여산이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이 말이 다른 사람 입에서 나왔다면 다시 한번 상처라도 살펴보겠다. 독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 독의는 광독풍파이지만 당홍도 광독풍파의 진전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그녀는 추궁과혈을 하기 전부터 이런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차피 왼팔을 잃어야 하는 도천패를 남겨두고 홀리와 해자수에 집중한 것 같다.

호발귀가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독기를 훑어내면 안 됩니까?”

“힘들어. 지금 장장 절단하지 않으면 살지도 못한다니까.”

당홍은 의외로 침착했다.

당홍의 말이 사실이다. 도천패의 견료혈에는 이미 고름이 만들어졌다. 독기가 스며들어서 상처를 잔뜩 할퀴어놓았다. 그래서 고름이 몸 밖까지 삐져나왔다.

“지금 여기서 치료할 거야. 뜨거운 물 좀 부탁해.”

당홍이 단검을 뽑았다.

이대로 팔을 자를 생각이다. 견료혈을 잘라내려면 어깻죽지 윗단부터 잘라내야 한다. 자칫하면 왼쪽 균형이 무너진다. 왼팔만 잃는 것이 아니라 무림에서 은퇴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 이 방법밖에 없는 겁니까?”

“나도……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어.”

당홍이 울먹였다.

“그것참…… 형수님은 사람을 참 바보로 보는 경향이 있네요. 내게 독섬칠공을 가르쳐준 분이 형수님이에요. 그런데 저보고 왼팔 잘리는 것을 보고 있으라는 겁니까?”

“……”

당홍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이 울고 있는 것 같다.

“비키세요. 제가 해보겠습니다.”

“안 돼.”

당홍이 냉정하게 말했다.

“이 사람, 형수님 지아비이기 이전에 내 보위입니다. 문주가 보위를 살펴봐야죠.”

“잘못하면 너도……”

“아이고! 그게 무서워서 왼팔 잘리는 걸 보고 있어야 합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구경이나 하세요.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이 둘이나 있어요. 이 사람들이나 챙겨주시고.”

호발귀가 도천패 앞에 앉았다.

도천패의 독상을 치료하는 방법이 있다.

썩은 근육은 도려내면 그만이다. 중독된 피는 정화하면 된다. 하지만 뼛속까지 파고든 독기는 좀처럼 빼내기 힘들다.

삼국시대, 관우가 어깨에 독화살을 맞았을 때 화타는 팔을 째고 뼈를 긁어냈다.

뼈에 물든 독은 오직 뼈를 갉아내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도천패는 그럴 상황도 안 된다. 독이 워낙 넓게 퍼져있다.

당홍은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독이 어디까지 퍼져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깨를 자르면서 독이 퍼진 부위를 살펴봐야 하는데, 만약 어깨를 지나서 목까지 타고 들어갔다면 절망이다.

당홍이 어깨를 자르겠다고 말할 때는 도천패의 죽음까지도 예상한 것이다.

독섬칠공 일곱 번째 공부로 화독강이 있다.

독기를 강기로 바꾸어 육신을 보호하기도 하고, 공격에 가미시키기도 한다.

도천패의 몸속에 스며든 절독을 독강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삼법 일 이독법으로 독강을 흡수한다. 그러면 뼛속에 깃든 독기까지 말끔히 뽑아낼 수 있다.

다만, 그러자면 내력을 심하게 써야 한다.

내 몸에 깃든 독기를 독강으로 바꾸기도 힘든데, 남의 몸에 들어 있는 독기를 강기로 바꾸는 작업이니 얼마나 힘들겠나. 내 진기를 움직여서 옆에 있는 등여산의 진기를 움직이기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자칫하면 시전자의 내공이 크게 훼손될 수도 있다.

성공 가능성은 이팔이다.

실패 가능성이 팔 할이나 된다. 열 번 시도하면 한두 번 성공하는 게 고작이다.

실패는 곧 시전자가 폐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점을 알기 때문에 당홍이 호발귀에게 부탁하지 않은 것이다.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호발귀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했다.

만약 당홍이 화독강을 펼칠 정도로 내력이 충분하다면 이미 그녀가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차독법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

자신은 망설이지 않고 펼칠 수 있지만, 호발귀에게 부탁하지는 못한다.

이게 연인인가?

문주와 보위라는 관계보다 더 깊은 관계를 만들어서 자신까지 희생할 수 있는 것인가?

‘기력이 너무 달려.’

도천패를 치료하기 위해서 옆에 앉았지만 좀처럼 진기가 안정되지 않았다. 차독법을 무리하게 펼쳐서 지금도 손이 덜덜 떨렸다. 이런 몸으로 화독강까지?

‘이거로는 안 돼. 틀림없이 실패한다.’

호발귀는 두 눈을 감고 진기를 최대한 가라앉혔다.

무심무실공을 떠올렸다. 호흡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숨이 더욱 가빠졌다. 너무 뚜렷하게 호흡이 느껴져서 도무지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무심무실공마저 유지되지 않는다.

“안 되잖아. 괜히 한다고 했지?”

장진 스님이 놀렸다.

“진기를 어떻게 이어가지? 끝까지 이을 자신이 없어. 진심으로 말하는데, 이번 한 번만 도와줘.”

“독섬칠공을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하나? 내가 독공을 알아? 혈마 무공이라면 모를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최대한 노력해 보라는 거야. 노력하다 보면 뭐 하늘도 감동하겠지.”

“하늘이 아니라 부처님이 감동하는 거 아닌가? 부처님이 감동해야 도와주지.”

“왜 그래? 하늘이 부처님이고, 부처님이 하늘이지. 하늘이 도와주면 부처님도 도와주고, 부처님이 도와주면 하늘도 도와주고.”

장진 스님이 웃었다.

호발귀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장진 스님이 나타났다는 것은 또다시 선악에 갈림길에 섰다는 것이다.

혈마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지금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서 모든 걸 중지해야 한다. 운기도 하지 말고 가만히 쉬어야 한다.

“쉬어야 할까?”

“솔직히 지금 몸으로 진기를 어디까지 이을 수 있어? 화독강? 웃기는 소리.”

장진 스님은 화독강을 알고 있는 듯 히죽 웃었다.

“손은 어때? 계속 떨리지? 호흡은? 아이고!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리네? 관둬라. 관둬.”

장진 스님이 손을 휘휘 내둘렀다.

화독강을 펼치다가 진기가 끊어지면 어떻게 되나? 도천패의 몸에서 만들어진 독강이 순식간에 흩어진다. 도천패는 당연히 즉사할 것이고, 호발귀도 역풍을 맞아서 진기가 뒤집힌다.

둘 다 생명이 위독하다.

“그러면 하나만 물어보자고. 내가 혈마가 되면 도천패를 구할 수 있나?”

“혈마가 못하는 건 없었지? 아마?”

“혈마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가만, 생각 좀 해보고. 혈마가 도대체 뭘 못했지? 혈마가 되는 게 나쁜 게 아닌데. 왜 부득부득 안 되려고 하지? 특별히 안되려는 이유라도 있나?”

장진 스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별히 안 될 이유는 없지. 내가 세상이 피로 물들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걸 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데. 죄의식도 없을 거고. 그냥 혈마 해버릴까?”

“거봐. 그것도 괜찮다니까.”

장진 스님이 호발귀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잘해보라고!”

호발귀는 진기를 운기했다.

독상을 치료하려면 당연히 독섬칠공을 일으켜야 하지만 독상과는 전혀 상관없은 역천금령공을 일으켰다.

독섬칠공으로 치료하지 않는다. 장진 스님이 나타났으니 역천금령공을 쓴다.

장진 스님이 혈승이지만, 때로는 도움도 준다. 천지자연의 이치에 맞춰서 모습을 드러낸다. 혈마가 되기 직전에 나타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가 변한다는 뜻이다.

‘마음을 편하게 갖자. 혈마가 된들 어떤가. 혈마가 되면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는 이 순간 죽는 거로 치자. 다행히 옆에 홀리가 있으니까.’

혈마가 되면 홀리가 죽여줄 것이다.

이처럼 편한 게 어디 있나. 좋아!

원정에서 파란 광채가 치솟았다. 역천금령공이 보호하는 원정, 생기다.

호발귀는 도천패의 생기도 찾았다.

도천패의 생기도 자신 것과 똑같이 파랗게 빛난다. 모든 인간의 생기가 파랗다. 이승을 떠나기 직전, 눈앞에 파란 불빛이 반짝 명멸하는데, 생기가 흔들리는 징조다.

호발귀는 도천패의 명문혈에 장심을 붙였다. 그리고 역천금령공을 힘있게 밀어 넣었다.

파츠츠츠츳!

이화귀령을 일으키지 않는다. 역천금령공을 원형 그대로 밀어 넣는다. 자신의 생기가 밀려들어 간다. 그리고 도천패의 생기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다.

꽈앙!

생기와 생기가 부딪쳤다.

그 순간, 호발귀는 역천금령공을 발끝부터 머리 위까지 삽시간에 확 끌어올렸다.

생기가 뼈에 깃든 독기를 훑으면서 올라왔다.

“끄으으윽!”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도천패가 마구 사지를 비틀며 꿈틀거렸다. 마치 허리를 짓밟힌 맹수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과 흡사했다.

입에서는 꾸역꾸역 피를 토해낸다.

“뭐하는 거야!”

당홍이 깜짝 놀라서 호발귀를 제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홍은 등여산에게 어깨를 잡았다.

“혈마 무공이에요.”

“뭐 안돼! 그걸로는 안돼! 독섬칠공만이 치료할 수 있어!”

당홍이 호발귀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등여산은 당홍을 단단히 붙잡고 말했다.

“호발귀를 믿어보세요. 호발귀가 보위님을 죽이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믿어보세요.”

“훅!”

당홍이 흐느끼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도천패의 죽음까지 생각하고 팔을 자르려던 그녀였지만 막상 도천패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기어이 무너져내렸다.

등여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의 미간에 붉은 혈선이 나타났다.

혈마가 드러내던 상징적인 표식이다. 오직 혈마만이 이마 정중앙에 붉은 세로 혈선을 그린다.

혈마는 세상을 피로 물들였기 때문에 혈마라고 불렸다. 하지만 사실은 세상을 베기 전부터 혈마라고 불렸었다. 귀신처럼 미간에 붉은 혈선을 그려냈기 때문에 붙여진 별호다.

호발귀에게서 그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정말 혈마가 되는가!

등여산은 답답했다.

터엉!

생기처럼 강력한 진기는 없다.

이 세상 어떤 고수도 자연이 만들어낸 힘보다 강할 수는 없다. 인간이 날린 도강(刀剛)보다 한 여름에 불어오는 강풍이 더 강하고 거세다.

생기는 자연의 힘이다.

촤아아악!

거센 힘이 도천패의 육신을 싹 휩쓸었다.

탁기(濁氣)는 모조리 뽑아내고, 맑고 싱그러운 기운으로 전신을 꽉 채웠다.

도천패는 벌모세수(伐毛洗髓) 했다.

근골은 더 강인해졌고, 근육은 탄탄해졌으며, 피는 맑아졌다.

어깨를 파고들었던 창상도 일순간에 가셨다. 창상 구멍이 메꿔진 것은 아니지만, 썩은 고름이 딱지처럼 뚝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새살을 드러냈다. 그런데!

텅!

도천패의 몸에 들어갔다가 튀어나온 생기가 파랗지 않다. 약간 혼탁한 하늘색이다.

츠읏!

역천금령공은 생기를 다시 원정에 안착시켰다.

그 순간, 호발귀는 끓어오르는 살심을 느꼈다.

바로 앞에 누워있는 도천패의 머리를 으깨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시작이군.’

호발귀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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