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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19화 (119/500)

第二十四章 독무(毒霧) (4)

“괜찮아?”

도천패가 홀리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홀리는 입에 묻은 피를 소매로 쓱 닦으며 말했다.

“글쎄. 이런 놈이 귀문 교두라니. 그럼 이놈 윗선은 얼마나 강한 거야?”

“뭐? 아니, 혈천방을 상대한다면서 아직도 조직 체계도 몰라? 아무리 형부라지만 좀 한심한데?”

홀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

도천패가 멍한 얼굴로 홀리를 쳐다봤다.

“나중에 이야기해. 살아있으면 말해줄게.”

홀리는 다시 검을 고쳐잡았다.

귀문 교두들은 직분에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일부는 혈천방과 상하 관계에 있지만, 삼수창 같은 자는 혈천방과 완전히 분리된 은거 인사라고 봐야 한다.

과장 좀 보태서 말하면 귀문 교두가 혈천방주보다 강하다고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또 귀문 교두가 혈천방 당주를 상전으로 모셔도 이상하지 않다.

귀문은 아주 독특한 형태를 지닌다.

그렇다고 아무나 귀문 교두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귀무살을 양성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귀무살 같은 강자를 길러낼 능력이 있다면 누구든 귀문 교두를 할 수 있다. 또 아무리 직분이 높아도 그만한 능력이 없으면 맡지 못한다.

귀문 교두의 직분은 교두다.

그 이상의 직분은 없다. 하지만 대우만큼은 단연 최고다. 귀무살 총령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는다.

이때, 삼수창이 홀리를 보며 말했다.

“방금 내 창, 실수가 아냐. 일부러 살려줬다는 뜻이지.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돼.”

홀리가 살쾡이처럼 눈꼬리를 추켜세우며 말했다.

“저거 병신이네. 적을 살려주면서 고맙다고 말하래. 보아하니 제 명에는 못 죽겠다.”

삼수창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무덤덤했다.

홀리의 격장지계가 상당해서 웬만하면 울화가 치밀 법도 한데,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삼수창이 말했다.

“음문촌 사람들은 혈천방과 뜻을 같이하기로 한 것 같은데,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음문촌이라는 말에 홀리의 미간이 확 일그러졌다.

아무리 타인처럼 사는 관계라고 해도, 배가 다른 형제들이라고 해도 한 가족이다. 거기에 음문촌 사람 중에는 그녀와 가깝게 지내던 일족도 있다.

그들 모두 촌장을 따라서 혈천방으로 옮겨갔다.

혈천방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촌장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

촌장 뜻에 반기를 들 자유는 오직 자식들만 갖는다.

홀리가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 보고 있잖아. 혈천방과 싸우는 거. 귀문을 공격하는 목적이 뭐겠어? 새끼를 쳐야 어미가 나오지. 어미만 진작 나왔어도 새끼는 당하지 않지.”

“후후! 그런가? 그게 내 선택이면 존중하지. 다음 창은 십분 조심해라. 방금처럼 봐주지 않아.”

“너 정말 병신이네. 뭘 당연한 말을 경고까지 하고 그래?”

삼수창이 홀리에게서 눈길을 돌려 도천패를 쳐다봤다.

“네 몸에 구멍을 열 개 정도 내려고 하는데, 어디에 첫 번째 구멍을 내는 게 좋을까? 원하는 데가 있으면 말해.”

“이 자식이 날 가지고 노나!”

“후후! 아직 몰랐나? 널 가지고 노니까 묻는 거 아냐? 보아하니 말할 것 같지는 않고. 왼쪽 어깨 견료혈(肩髎穴)을 뚫어주지. 견료혈이 참 기가 막힌 혈이라서, 거길 뚫으면 왼쪽 팔을 못 써, 다행히 이번 싸움에서 빠져나가도 왼쪽 팔을 쓰기가 힘들걸?”

슈웃!

삼수창이 즉시 창을 뻗었다.

순간, 옆에 있던 홀리가 재빨리 창이 뻗어나간 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삼수창은 몸을 비틀어서 홀리의 검을 피했다. 그리고 계속 창을 뻗어왔다.

도천패는 대도를 들어서 은창을 힘껏 내리찍었다.

은창이 빠르지 않다. 달려드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삼수창이 어떤 절기를 펼칠지 모르지만, 창이 눈에 보일 때 절반 정도 잘라놓을 생각이다.

순간 대도와 장창이 부딪쳤다.

타앙!

도천패가 의도했던 대로 대도가 창대 한가운데를 내리찍었다. 한데,

슈욱!

갑자기 창대가 활처럼 구부러졌다. 그리고 창끝이 위로 쳐들리더니 정확하게 왼쪽 어깨 뒷면 견료혈을 푹 찍었다.

“큭!”

도천패가 신음을 토해냈다.

이 모든 게 숨 한 모금 들이쉴 동안 벌어진 일이다.

“음!”

이번에는 홀리가 신음을 흘렸다.

도천패에게 가서 괜찮냐고 묻지도 않았다. 피가 쭈르륵 흘러내리고 있지만, 돌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홀리는 내성을 입었다. 도천패는 왼팔에 상처를 입었다.

빠름과 강함에서 워낙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다.

뭐 이런 자가 다 있나? 이런 자는 감당하지 못한다.

“미치겠군.”

홀리가 투덜거렸다.

이때, 한쪽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이쪽저쪽 눈치만 보던 해자수가 쪼르르 달려왔다.

“잠깐잠깐잠깐! 에 그러니까 모두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아씨는 이쪽으로.”

해자수가 홀리의 손을 잡고 도천패 쪽으로 끌었다.

삼수창 창날이 즉각 움직이려고 했다. 해자수는 급히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내가 한마디만, 한마디만 하고.”

해자수가 중간에서 배시시 웃으면서 삼수창을 달랬다.

“흠! 나 같이 제삼자의 눈으로 보건대, 이쪽이 졌다 이 말이지 이쪽이 이겼다 이거고. 아이고 여기서 뭐 더 싸워봤자 뭐 목숨 밖에 뺏을 게 더 있나. 그거 뺏어서 뭐 하냐 이거지. 내 말은 그러니까 우선 이것 좀 드시고.”

해자수가 손을 품에 넣었다. 순간, 삼수창의 창이 해자수의 목에 대여 졌다.

“천천히, 천천히 꺼낼 테니까. 하! 무슨 수작질만 당하고 살았나. 무슨 의심이 이렇게 많아. 난 아무것도 없다니까. 싸울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어요.”

해자수가 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의 손에는 떡 같기도 하고, 인삼 말린 것 같기도 한 거무튀튀한 물체가 들려있었다.

“이게 보기는 뭐 별거 아니어도 복용했다 하면 내력이 일이십 년은 단숨에 느는 영과라 이 말이지. 삼백 년 묶은 천삼을 말린 건데, 우선 드셔보시고. 아, 뇌물이 별거 있나?”

해자수가 건삼을 두 손으로 받쳤다.

삼수창은 히죽 웃으면서 창대로 해자수의 손들을 탁 쳤다.

그러자 손에 올려져 있던 건삼이 땅에 툭 떨어졌다. 그리고!

펑!

갑자기 건삼이 폭발하면서 검은 연기가 주위를 확 덮었다.

“어디서 요망한!”

삼수창이 급히 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창끝에 걸리는 게 없었다. 해자수도, 도천패도, 홀리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 여기서 싸우면 안 된다니까. 사람이 목숨을 아낄 때는 아껴야지. 결과가 뻔한 데 뭐하러 싸워. 우리에게는 호발귀가 있잖아. 보아하니 삼수창 저놈, 호발귀에게는 한주먹감도 안 되던데, 호발귀에게 넘기자고.”

해자수가 중얼거리면서 홀리와 도천패를 잡아끌었다.

그는 두 사람이 끝까지 싸운다고 버틸까 봐 조마조마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됐어. 손 놔. 걱정하지 말고.”

홀리가 말했다.

“정말이죠? 아씨, 두말하면 안 됩니다!”

해자수가 손을 놓았다,

홀리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지 한쪽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홀리와 도천패에게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삼수창과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이대로 부딪치면 필패, 그러니 조금이라도 승산 있을 방법을 세워야 한다.

해자수가 시간을 잘 빼줬다.

두 사람은 피할 생각이 없다. 운공도 하지 않고 곧 다시 돌아갈 생각이다. 그 전에 조금이라도 승산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 없으면 마는 것이고.

해자수는 조심스럽게 도천패의 손도 놓아주었다. 사실, 도천패가 완력으로 빼내려고 했다면 벌써 빼냈을 것이다.

도천패가 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피 좀 지혈시켜줘.”

“응? 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해자수가 도천패 등 뒤로 돌아가서 혈을 눌렀다.

견료혈의 상처가 매우 심하다. 살점이 푹 패여서 당분간 왼손을 쓰기 힘들어 보인다.

도천패가 홀리를 보며 말했다.

“내 등에 타는 건 어때?”

홀리가 도천패를 쳐다봤다.

그녀는 도천패의 눈에서 뜨거운 투지를 읽었다.

등에 타라는 말은 등 뒤에서 공격하라는 말이다.

도천패의 등을 발판 삼아서 힘껏 도약해라. 허공에서 마음껏 검초를 펼쳐봐라. 그만한 여건을 만들어 주겠다.

어떻게? 방법은 하나다. 자신의 몸뚱이로 창을 받아낸다. 은창이 몸을 찌르는 순간 어떤 방법으로든 은창을 잡는다. 갈고리로 얽은 듯 꽉 잡는다.

병기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홀리에게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공격하라는 거다.

삼수창에게 창이 없을 때, 적수공권인 그를 치면 승산이 훨씬 높아진다.

설혹 그렇다고 해도 삼수창을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워낙 빠른 자라서 권각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도천패는 어떻게든 활로를 뚫어보려고 한다.

“그건 안돼.”

홀리가 고개를 저었다.

“언니한테 누구 죽는 꼴 보려고 그래? 죽으려면 같이 죽어야지. 혼자 죽게 내버려 두면 내가 죽어.”

“풋!”

도천패가 피식 웃었다.

사실이 그렇다. 도천패의 의도대로 진행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쉽게 공격할 수 있다. 하지만 도천패는 죽는다. 삼수창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다. 그가 창을 찌르는 곳은 하나같이 즉사할 수밖에 없는 절대 요혈이다.

도천패의 의도대로 하면 도천패는 즉사한다. 결코, 허투루 공격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어.”

홀리가 중얼거렸다.

“문주는 어떻게 됐을까?”

도천패가 숲 안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쪽도 뭔가 사정이 있을 거야. 들어간 지 한참 됐는데, 아직 안 나오고 있잖아. 쳇!”

홀리가 혀를 찼다.

“아까 그 말 다시 한번 해봐.”

“무슨 말?”

“나 부른 호칭. 그거 듣기 좋던데.”

“아까는 정신 차리라고 한 말이고, 지금 다시 부르면 책사와 나, 둘 중 한 명을 선택하게 되는 거야. 그래도 좋아?”

“그런가? 그럼 잠시 보류. 문주놈 생각부터 알아야지. 큭큭! 대책이 없으면 그냥 부딪치자. 갈까?”

도천패가 몸을 일으켰다.

삼수창은 서두르지 않았다.

위도에서는 빠져나갈 곳이 없다. 위도 자체가 호수에 둘러싸인 섬, 감옥이다. 이미 호수에는 방어망이 펼쳐져 있다. 배가 떠 있고, 귀문 문도가 각종 암기로 무장한 채 대기하고 있다.

저들이 배를 타는 순간 혹은 수영을 하는 순간 귀문 문도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물속 싸움은 지상 싸움과는 전혀 다르니 귀문 문도가 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육지에서 도망 다녀야 하는데, 어디로 갈 것인가? 사방이 물로 막혔다.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 도망가지 못한다.

저벅! 저벅!

삼수창은 숲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가 반대쪽 길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과 마주쳤다.

“내가 먼저 가! 구질구질한 건 질색이라!”

쒜에에엑!

홀리가 먼저 신형을 띄웠다.

그녀의 신형이 좌우로 번뜩였다. 순식간에 사람이 둘로 늘어났다. 좌측에 한 명, 우측에 한 명, 두 사람이 공격한다. 실체는 한 명이지만 둘로 보인다.

“후후! 뛰어난 신법이군. 그런데 어쩌나? 난 그 신법을 깰 수 있는 창술이 있는데.”

팟! 파파파파팟!

삼수창이 은창을 떨치자 창날이 열 개로 쭉 불어났다.

은창은 정확히 홀리가 이동하는 곳을 향해 쫓아왔다. 홀리의 신형은 두 개이지만, 삼수창은 오직 한쪽만 공격한다. 홀리의 실체만 쫓아온다.

도천패가 당했던 바로 그 창술과 마주쳤는데, 그녀도 방법이 없다.

삼수창은 이미 홀리의 빠름을 읽고 있다.

“이익!”

홀리가 이를 악물고 억지로 검을 쳐냈다.

삼수창을 상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러서기도 싫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부딪쳐 볼 생각이다. 아니, 도천패가 생각했던 창을 뺏는 방법, 자신이 해볼 생각이다. 그때,

퍼엉! 펑! 꽈아앙!

숲 안쪽…… 삼분지 이 지점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아니, 폭음이 울리자마자 갑자기 시커먼 연기가 훅 밀려왔다.

“커억!”

“큭!”

검은 연기에 휘감긴 귀문 문도가 속절없이 쓰러졌다.

“큭!”

해자수도 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도천패는 대도를 땅에 푹 찔렀다. 그리고 칼을 꽉 굳게 잡았다. 하지만 어느새 두 무릎이 풀썩 꿇렸다. 사지에 힘이 빠지는 것을 어떻게 견디나.

쿵!

도천패마저 무너졌다.

“아!”

홀리가 탄식을 토해내기도 전, 검은 연기가 그녀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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