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四章 독무(毒霧) (3)
쒜엑! 쒝! 쒜에엑!
홀리가 움직일 때마다 귀문도가 펑펑 나가떨어졌다.
사인은 한결같다. 목동맥이 베어져서 피를 샘물처럼 콸콸 쏟아내며 쓰러진다.
귀문도가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들은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여자가 아주 지독한 살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저거! 음문촌이다. 음문촌 무공이야!”
누군가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귀문도는 당장 주눅이 들었다.
다른 문파의 무공이라면 어떻게든 넘어설 생각을 한다. 이겨야 사니까. 하지만 음문촌 무공은 다르다. 음문촌은 혈천방과 맥을 같이 하고 있지 않은가.
같은 무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물며 상대는 자신들보다 훨씬 상수다. 정상적으로 싸우면 백전백패할 것이고, 협공을 가한다고 해도 이쪽 무공을 환히 꿰뚫어 보고 있으니 질 가능성이 크다.
귀문도는 미처 대처할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고 계속 물러섰다.
하지만 그들은 물러서면서도 허점을 노렸다. 그들 역시 귀무살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악귀다. 물러서는 것은 곧 죽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지금 이 난관을 타개할 방법은 어떻게든 여자를 죽이는 방법밖에 없다.
“이거 사문(四門) 체면이 말이 아니네.”
누군가가 툴툴거렸다.
물러서는 귀문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다. 소위 귀문 문도가 한 명에게 쫓겨서 절절맨다면 나중에 어떻게 강호를 활보하겠나. 어떻게 다른 귀무살을 대하나.
‘돌파해야 해!’
귀문도의 눈가에 독기가 일렁거렸다.
도천패는 홀리를 흘깃 쳐다봤다.
강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
도천패는 지금까지 보아온 무인 중에서 홀리처럼 빠른 무인을 본 적이 없었다.
홀리는 무척 빠르다.
도천패는 호발귀에게서 귀무살 귀무령 귀검과 싸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옥유부검이 무척 빨랐다고 한다. 너무 빨라서 방비할 수 없었다고. 검이 날아오는 것을 봤는데도 피할 수가 없어서 그냥 맞았다고 한다.
지금 홀리의 검이 그렇다.
어쩌면 홀리와 귀검의 검은 원류가 같은지도 모른다. 쾌검의 원류가 음문촌이고, 혈천방에서 뒤늦게 받아들인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나와 싸우면 아주 좋은 승부가 되겠어.’
도천패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
패도와 쾌검은 늘 좋은 흥밋거리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딱 좋다.
패도와 쾌검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광풍 폭우를 일으켜서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막아버리는 패도가 이길까, 아니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형을 종잡을 수 없는 쾌검이 이길까?
이건 부딪혀봐야만 안다.
병기를 들지 않은 주먹싸움이라면 당연히 패도가 이긴다.
몸무게가 이백 근에 이르는 거구와 여자와 비슷한 일흔 근 무게를 가진 자가 싸운다면 당연히 거구가 이긴다.
이백 근 거구는 몸이 무거운 만큼 당연히 느리다. 하지만 주먹이 매우 묵직하다. 일흔 근 사내는 몸이 매우 빠르다. 느린 주먹쯤은 거뜬히 피한다.
이 둘의 싸움은 매우 흥미롭다.
얼핏 보면 몸이 빠른 자가 이길 것 같은데…… 실제로 싸움을 붙여보면 항상 거구가 이긴다.
둘 다 훈련을 받았거나, 아니면 둘 다 훈련을 받지 않은 똑같은 상태에서 싸움을 벌이면 대부분 가벼운 자가 거구의 주먹 무게를 견뎌내지 못했다.
하지만 병기를 들었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이때는 주먹 무게라는 것이 없다. 양쪽 모두 한 방만 맞으면 끝난다.
홀리의 검공은 목동맥 절단이 특징인 것 같다. 그렇다면 패도를 뚫고 들어와서 검을 그어야 하는데, 가능할까?
홀리도 바보가 아닌 이상, 처음부터 목을 노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리를 베고, 옆구리를 베고, 그렇게 점차 힘을 빼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목동맥을 벨 수 있다.
정말 누가 이길까?
도천패는 홀리의 싸움을 보면서 자신의 심장이 뜨거워졌다.
쒜에엑! 쒝! 쒝!
비수, 표창, 비황석, 자모환…… 온갖 암기가 쏟아졌다.
귀문 문도는 가까이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암기만 던졌다.
휘리링!
도천패는 대도를 휘둘러서 날아오는 암기를 떨어냈다.
귀문 문도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자리 이동을 쉴새 없이 해서 도천패가 쫓아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도천패가 쉬지 못하도록 계속 암기를 던졌다.
도천패도 결국은 지칠 것이다.
쒜에엑! 쒜엑! 쒜에에엑!
앞뒤 좌우에서 암기가 쏟아졌다.
도천패는 칼을 한 바퀴 크게 휘돌려서 암기를 떨어트렸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중간에 다섯 번이나 변화를 일으켜야만 했다.
암기를 떨구는 것도 보통 신경 쓰이지 않는다.
쒜에에엑!
도천패가 바람을 가르며 질주했다. 귀문 문도가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따라잡은 네 명을 향해 대뜸 대도를 내리찍었다.
퍼억! 퍽퍽퍽!
네 명이 일시에 나가떨어졌다.
이것이 패도다. 어떤 자든, 어떤 무공을 사용하든 감히 병기를 맞댈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
그때, 멀리서 키 작은 사내가 걸어왔다.
그는 자신보다 두 배는 더 긴 장창을 들고 있었다. 장창이 워낙 길어서인지 키 작은 사내가 더욱 작아 보인다.
도천패는 나타난 자가 누군지 짐작했다.
‘삼수창!’
도천패가 눈살을 찌푸렸다.
삼수창이 나타나자 귀문 문도는 일제히 공격을 멈추고, 양쪽으로 쫙 갈라섰다.
삼수창은 굉장한 강자다.
들리는 말로는 귀무살 총령인 귀검과 무공을 견줄 정도로 강하다고 한다.
도천패는 바싹 긴장했다.
멀리서 삼수창이 천천히 걸어왔다. 키 작은 사내가 걸어왔다. 하지만 도천패에게는 마치 거대한 고래가 입을 쩍 벌리고 와락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일순 대력도강이 무력해 보였다.
대력도강으로 이 큰 고래를 갈라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득, 자신감이 사라졌다. 도저히 베어낼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아예 칼이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을 앞에 놓고 이토록 겁을 먹기는 처음이다.
휘리링!
도천패는 소심해진 마음을 추스르려고 일부러 대도를 휘둘러 봤다.
“삼수창이냐!”
그는 삼수창인 줄 알면서도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이것도 점점 떨어지는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다.
삼수창은 대꾸 없이 걸어왔다.
키에 비해서 머리가 크다. 머리가 상반신 절반만 하다. 눈도 크다. 중년을 훌쩍 넘긴 사내인데, 눈은 어린아이처럼 맑다. 눈동자가 아주 검다.
삼수창을 보는 순간 도천패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마치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이 높을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처럼 깊은 공포가 숨을 확 조여왔다.
삼수창의 눈동자에서 검은 살기가 확 풍겨왔다.
검은 살기? 도천패는 추상적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살기면 살기지, 살기에 무슨 검은 살기가 있나. 도대체 검은 살기의 실체가 무엇인가?
지금은 왜 무인들이 ‘검은 살기’라고 말하는지 실체를 알겠다.
눈동자를 보는 순간 죽음이 보인다. 한순간, 정신이 똑 떨어질 것이고, 그다음은 없다. 아득한 침묵이 몰려온다. 새까만 어둠이 뒤덮는다.
그런 일을 삼수창이 벌일 것이다.
삼수창이 그런 일을 벌일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 검은 살기가 밀려온다.
‘으……!’
도천패는 식은땀을 흘렸다.
삼수창이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소리 지른다고 겁먹을 사람이 있나. 내가 누군지 알고. 있잖아. 또. 모르면 어때. 내가 너를 죽일 생각인데, 얌전히 두 손 놓고 죽지는 않을 것 아내. 그냥 싸우면 되는데 무슨 말이 많아.”
쒜에에엑!
삼수창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창을 뻗어왔다.
“엇!”
도천패는 깜짝 놀라서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섰다
일순, 창이 십여 개로 쫙 불어났다.
백발연시포에서 화살 열 대가 일시에 쏘아진 것처럼 하얀 은창이 일제히 머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매우 빠르고 강하다.
빠름은 홀리를 능가하는 것 같고, 강함은 대력도강을 넘어선다. 대도를 들어서 막았다면 오히려 칼이 밀려났을 것이다. 그리고 벌써 승부가 끝났을 것이고.
‘내 상대가 아니다!’
도천패는 예비 초에 불과한 창만 보고도 삼수창의 무공을 확실히 알았다. 그때,
쉬이익!
홀리가 달려와 옆에 섰다.
“얘가 삼수창이야?”
홀리가 삼수창을 보고 동네 강아지 대하듯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얘?”
삼수창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형부, 뭐해? 안 싸울 거야?”
홀리가 도천패를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
“형부?”
도천패가 뜻밖의 호칭에 홀리를 쳐다봤다.
홀리는 도천패에게 형부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호칭 같은 것을 부를 일도 없었지만, 굳이 부를 때면 ‘보위’라는 투심문 명칭을 썼다.
이번에 처음으로 형부라고 부른 것이다.
“형부가 상대하기 싫다면 내가 상대하고. 그런데 덩칫값 되게 못한다. 딱 봐도 어른과 어린애 싸움인데 뭘 쩔쩔매고 그래? 아! 원래 어린애하고는 안 싸우나?”
홀리는 삼수창과 도천패를 동시에 도발했다.
도천패는 그제야 정신이 퍼뜩 났다.
‘제길! 내가 심마(心魔)에 걸렸었나? 겁먹은 게 옆에서도 보였어? 되게 쪽팔리네.’
“처제! 내가 나이가 많아도 훨씬 많은데 말 좀 올리지?”
“해준 게 뭐 있다고 말까지 올리래?”
“처제라고 불러줬잖아!”
“호호호! 긴장 좀 풀린 것 같네?”
홀리가 다시 눈을 찡긋거렸다.
“그래. 덕분에 긴장 좀 풀었다. 고맙다.”
도천패는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홀리가 와서 몇 마디 해준 덕분에 두려움에서 일어나는 긴장감이 훨씬 가셨다.
도천패는 자신감을 가지고 삼수창을 노려봤다.
홀리는 물러서지 않고 옆에 섰다. 도천패와 함께 협공을 가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표시했다.
이 대 일의 상황인데도 삼수창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천천히 다가왔다. 아예 두 사람이 안중에 없다는 태도다.
“처제, 이 사람…… 우리 완전히 무시하는 거 맞지?”
“그런 것 같은데. 그럼 용서 못 하지.”
홀리가 먼저 신형을 쑥 뽑아 올렸다.
역시 역검이다. 왼손으로 검을 잡고, 삼수창의 왼쪽 옆구리를 노린다.
쒝!
어느새 검이 옆구리를 갈랐다. 아니, 옆구리를 노리는가 싶었는데 검이 번쩍 위로 쳐들렸다. 귀문 문도를 베어냈던 혈맥참이 다시 터졌다. 한데,
깡!
그녀의 검이 은창에 막혔다.
삼수창은 단지 창을 세웠을 뿐이다. 하지만 홀리가 쳐낸 검을 정확하게 막았다. 삼수창은 한 손으로 창을 세웠는데, 흔들리지도 않는다. 전력을 다한 홀리의 검을 아주 간단하게 막아냈다.
순간, 대력도강도 터졌다.
홀리가 움직일 때 도천패는 이미 하늘 높이 떠 있었다.
홀리가 삼수창과 부딪힐 때, 도천패는 대도를 내리쳤다. 대도가 삼수창의 머리에 내리꽂힌다.
일기감하(一氣砍下)!
단숨에 아래를 향해 베어낸다. 그때,
슉!
홀리를 밀어낸 삼수창이 번쩍 허공으로 쳐들렸다.
삼수창은 대도와 부딪치지 않았다. 대도 옆으로 스치며 도천패를 곧바로 찔러왔다.
대도보다 창이 훨씬 길다.
대도가 머리를 치기 전에 삼수창에 목젖부터 꿰인다.
도천패는 급히 왼손으로 오른손을 쳐서 탄력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힘을 빌려서 빙글 몸을 비틀었다.
그 순간, 홀리가 다시 달려들었다.
그녀는 벌써 삼수창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 복부를 횡으로 부욱 그었다.
타앙!
홀리의 검은 창대에 막혔다.
삼수창이 창을 쓰는 수법은 무척 쉬워 보인다. 너무 간단하게 움직인다. 은창이 세 번째 팔이라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뜻이 일어나면 즉시 은창이 화답한다.
홀리는 검이 막히자, 즉시 물러섰다.
하지만 은창이 놓아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창끝으로 옆구리를 푹 찍어왔다.
따앙!
홀리가 급히 검을 돌려 창을 막았다.
하지만 그녀는 삼수창에 떠밀려 쭉 옆으로 밀려났다. 검과 창이 부딪치는 순간, 창에 깃든 힘을 이기지 못했다.
“우욱! 쿨럭!”
옆으로 밀려난 홀리가 급하게 피를 토해냈다.
뱃속에서부터 기어 올라온 피가 입을 통해 쏟아졌다.
심각한 내상이다.
스읏!
삼수창이 창을 거뒀다. 바로 뒤쫓아와서 일격만 떨쳐내도 피할 수 없었는데, 한 수 봐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