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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16화 (116/500)

第二十四章 독무(毒霧) (1)

이호독진이 깨졌다!

독무가 싹 사라졌다!

짙은 독무가 숲 전체를 감싸고 있어서 아예 숲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무를 분별할 수 있다.

“보위님! 왼쪽을 막아주세요!”

등여산이 매우 급하게 말했다.

“귀문도가 매우 거칠게 달려들 거예요. 쫓아가지 마시고 끌어내세요. 여기서 싸우세요.”

“하하! 걱정하지 마시오.”

스릉!

도천패가 대도를 뽑아 들고 왼쪽, 독 없는 길을 노려봤다.

“내게 쌓인 게 있으면 나중에 해결해. 지금은 오른쪽을 막아줬으면 해. 독 없는 길이 두 개인 것은 입구도 두 개라는 뜻이야. 이쪽으로도 몰려올 거야.”

등여산이 홀리에게 말했다.

“아까 한 말, 설명이 더 필요해. 널 믿을 수 없다면 차라리 베어버리겠어.”

“알았어. 나중에 말해.”

“흥!”

홀리가 코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새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그러자 해자수가 재빨리 말했다.

“할 일 없으면 난 아씨 편으로……”

“그러세요.”

“이렇게 손발 맞춰서 일하면 오죽 좋아? 서로 죽이느니 사느니 하는 건 너무 삭막해.”

“뭐라고!”

“아, 누가 뭐라고 그랬나? 난 아무 소리도 안 했어.”

해자수와 홀리가 티격태격하며 오른쪽을 막아섰다.

등여산이 재빨리 말했다.

“언니! 언니는 나랑 같이 안으로 들어가요.”

“안으로?”

등여산은 눈빛으로 급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다행히 그녀의 눈빛을 홀리가 보지 못했다. 만약 봤다면 다시 달려들 것이다.

“응. 아, 알았어.”

당홍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천패를 향해 말했다.

“조심해! 다치면 죽을 줄 알아!”

“나 건드릴 사람 몇 되지 않아. 자신 있으니까 안심하고 다녀와. 조심하고.”

도천패가 오히려 당홍을 걱정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숲에 들어서자마자 당홍이 대뜸 물었다.

“호발귀, 다쳤을 것 같아요.”

“다쳐? 어딜?”

“아까 그 소리 기억나요? 강풍이 몰아치던 소리.”

쒝쒝쒝쒝쒝! 쒜에에에에엑!

마치 거인이 거칠게 싸대기를 후려치는 듯한 소리였다. 너무 거칠어서 기억한다.

모두 그 소리를 독진이 와해하는 소리로 들었다.

“그 소리가 왜?”

등여산은 대답 대신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엇!”

등여산의 손가락을 따라가던 시선이 백발연시포를 봤다. 그리고 독진 한구석에 수북이 꽂힌 화살도 봤다.

“그, 그, 그럼! 그 소리가!”

당홍은 너무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녀가 말한 삼분지 일 지점이다. 이곳부터 백발연시포가 줄지어 늘어섰다.

백발연시포는 환산만에서 본 것과 상당히 달랐다.

환산만 연시포는 열 발씩 당긴다. 화살도 화약이 터지는 힘으로 발사된다. 그래서 사거리도 멀고, 타격도 강하다. 철시를 사용해도 무난히 발사시킨다.

이곳 백발연시포를 구멍 백 개에 화살 백 개를 꽂아 넣었다.

열 개씩 열 줄이다.

각 줄마다 활줄이 팽팽하게 걸려 있다. 연시포 한 대에 활줄 열 개가 당겨진다.

활줄은 어떤 단초에 의해 쏘아진다.

열 대씩 순차적으로 쏠 수도 있고, 백 발이 일시에 쏘아지기도 한다.

위도 연시포는 단순히 시위를 튕기는 힘으로 발사되기 때문에 사거리가 짧다. 또 타격력도 약하다. 철시를 쓰면 제대로 타격을 가하지 못해서 대나무로 만든 시위를 사용한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데는 환산만 것과 비교해도 하등 떨어지지 않는다.

환산만 연시포는 연시포 한 대에 매달리는 무인이 많았다. 이곳은 사람이 서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무인으로 발사할 수 있게끔 개조한 모양이다.

“호발귀가 화살에 당했다는 거야?”

“아까 그 소리가 너무…… 심하게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쒜에에엑!

등여산이 신형을 쏘아냈다.

당홍은 등여산이 홀리에게 말하지 않고 급히 달려온 이유를 알았다. 홀리에게 말했다면 틀림없이 그녀도 쫓아왔다. 귀문 문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 이 두 사람!’

당홍은 속으로 한숨을 토해냈다.

등여산은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공공연히 호발귀를 걱정한다. 단순한 걱정이 아니다. 연인으로서 걱정하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이 모두에게 읽힌다.

홀리는 진작부터 마음을 드러냈다. 호발귀에게 ‘넌 내 거야!’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 둘의 충돌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어떤 식으로 충돌할지, 충돌이 좋을지 나쁠지 예단할 수 없다. 다만 치정으로 인한 충돌은 늘 결과가 좋지 않았다. 만약 호발귀가 처신을 잘못하면 분명 재앙이 될 것이다.

당홍이 등여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신형을 날리며 말했다.

“전에 호발귀가 단순한 이용물에 불과하다고 말했잖아? 그래서 말인데, 만약에 천살단에서 호발귀를 버리라고 하면 어떤 식으로 버릴 거야?”

등여산은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여인의 직감으로 판단하건대, 등여산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등여산이 말했다.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어요. 그럴 일이 없어야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버리라고 하면 우리에게 말해주긴 할 거야?”

“나중에 이야기해요.”

등여산은 그런 말을 하기 싫다는 듯 재빨리 신형을 솟구쳤다.

* * *

“후후후!”

“큭큭! 멧돼지 사냥이잖아?”

사방에서 괴소가 터져 나왔다.

귀문 문도가 잠에서 깨어났다. 승천하기 직전의 이무기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하지만 귀문 문도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당황하고 있다. 독진이 깨지자 부랴부랴 서둘러 나왔다. 괴소 속에서 두려움, 공포, 죽음이 읽힌다.

“어디…… 몸 한번 풀어볼까!”

쉬리리링!

도천패가 양손으로 대도를 잡고 크게 휘둘렀다.

그때, 기습적으로 등 뒤에서 유성추가 날아왔다. 긴 줄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사냥하려는 것이다.

“이놈이! 이렇게 느려서 어떻게 날 베겠냐!”

도천패는 빙글 돌아섰다. 동시에 대도로 유성추를 걷어냈다. 아니, 걷어냄과 동시에 휘릭! 후려쳤다.

하늘에서 번쩍! 칼이 떨어졌다.

“크악!”

유성추를 사용했던 자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유성추는 삼 장 밖에서 공격할 수 있다. 대도는 길어야 이 장이다. 일 장이라는 거리가 차이 난다. 그 정도의 거리면 어떤 공격이든 서너 걸음쯤은 물러설 수 있다.

귀문 문도는 피하지 못했다. 패력으로 내리친 칼은 굉장히 잔인해 보이는데, 그런 칼에 상반신이 쭉 갈라졌다.

“붙지 마! 멀리 떨어져서 공격해!”

누군가가 소리쳤다.

굳이 그가 소리칠 필요도 없었다.

귀문 문도는 도법의 허점을 파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격 신호를 보냈다. 공격해 오는 척하고는 물러섰다. 도천패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피는 것이다.

쒜에에엑!

느닷없이 철추가 머리로 떨어졌다.

“이 자식들이! 너무 느리다니까 내 말은 콧등으로 들은 거야, 뭐야! 이렇게 공격하니 죽지.”

도천패는 대도를 들어 철추를 쳐올렸다.

순간, 철추가 빙글 돌면서 대도를 휘감았다. 일단 병기부터 빼앗을 생각이다.

한데, 도천패가 먼저 움직였다.

빙글 몸을 회전시켰다.

머리 위로 쳐든 대도가 팔방풍우(八方風雨)을 일으켰다. 사방으로 거센 칼을 날렸다. 비바람을 쏟아냈다.

팔방풍우는 머리 위에서 한 번 터졌다. 다음은 얼굴에서, 다음은 어깨에서…… 도천패는 열 번을 회전했고, 대도가 도천패를 쫓아서 열 번을 둥글게 쓸어냈다.

“크악!”

철추를 휘두른 자가 제일 먼저 비명을 쏟아냈다.

도천패의 칼은 철추에 휘감기지 않았다. 힘으로 둥근 추를 밀어냈고, 동시에 상대방의 가슴을 쫙 베었다.

빙글, 빙글, 빙글……!

십륜십도(十輪十刀)는 대력도강의 두 번째 초식이다.

“크윽!”

“컥!”

답답한 비명이 연이어 터졌다.

귀문 문도는 대도의 사정거리를 알아채지 못했다. 대도의 길이와 팔 길이, 그리고 두 발을 넓게 벌릴 수 있는 보폭까지 더한 게 도권(刀圈)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기에 하나 더, 도약이 있다.

도약하는 거리까지 계산해야 하는데, 귀문 문도는 도천패를 잘못 읽었다. 몸집이 커서 조금 둔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빠르다.

쒜에엑! 퍼억!

칼이 번쩍 터졌다. 힘으로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렸다.

그 칼에 귀문 문도 한 명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도천패는 삽시간에 십여 명을 죽였다. 미처 다섯 호흡도 세기 전에 호수에 핏물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저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동료의 죽음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다. 어차피 이들 모두가 사망대장정을 치르는 동안 죽여야 할 적이다. 백 명이 출발해서 한 명만 살아 돌아와야 한다. 그러니 지금 아흔아홉 명이 죽어준다면 훨씬 좋다.

그러니 얍삽하게 생각하면 먼저 공격하는 놈은 바보다.

하지만 귀문 무인들은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최후에 공격하는 게 좋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병기를 움켜잡고 거리를 좁힌다. 당장 달려들 생각이다.

홀리는 역검(逆劍)을 잡았다.

검자루를 거꾸로 잡았다. 검 끝을 자신의 팔꿈치 쪽으로 향하게 했다.

역검으로 검을 팔 뒤에 숨기고 천천히 다가섰다.

상대방도 홀리가 역검 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굳이 검을 숨겼다고 볼 수는 없다.

역검은 검의 거리가 굉장히 좁아진다.

어지간히 빠르지 않으면 오히려 당할 공산이 크다.

찌르는 검이 아니라 베는 검이며, 그것도 도천패처럼 회전 무공을 사용할 때 유용하다.

귀문 문도가 차분하게 다가왔다.

솔직히 홀리는 고수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사납고 거친 모습도 아니다.

야생적인 모습이 모든 분위기를 죽여버렸다.

단지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외딴 섬에서 살다가 갓 튀어나온 성질 사나운 여자 정도로 보인다.

그래도 귀문 문도는 홀리를 경시하지 않았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다가왔다.

홀리는 저들이 다가와도 꿈쩍하지 않았다. 눈빛만 사납게 빛났다. 길들지 않은 맹수가 먹이를 노려보는 눈빛이다. 차분하면서도 냉정하다.

스읏! 스스슷! 스으읏!

홀리와 귀문 문도 간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러던 한순간,

쒜에에엑!

홀리가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굉장히 빠르다. 동으로 가는가 싶으면 서로, 서로 가는가 싶으면 다시 동으로 치닫는다

중간에 움직이는 모습은 생략된다.

그냥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귀신이 움직이는 듯 신형만 불쑥불쑥 나타난다.

“혈맥참(血脈斬)! 혈맥참이다!”

누군가 그녀의 검법을 알아봤다.

음문촌과 혈천방은 무공이 상통한다. 같은 무공은 아니다. 분명히 다르다.

음문촌과 혈천방은 혈마 수하다.

같이 한솥밥을 먹으면서 싸웠다. 그래서 서로 무공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은 서로 좋은 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에 맞게 개조했다.

혈천방은 음문촌의 혈맥참을 받아들여서 산맥검법(散脈劍法)으로 발전시켰다.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크아악!”

비명이 뒤늦게 터졌다.

홀리가 십여 명을 지나친 후에야 첫 번째 문도가 비명을 쏟아냈다.

홀리는 목 옆에 있는 동맥만 잘라냈다.

파아아앗!

사방에서 핏물이 솟구쳐 나왔다. 동맥을 그었기 때문에 상당히 피가 많이 솟구쳤다.

목 옆 동맥을 비스듬히 그어내려면 일단 상대방과 바짝 밀착돼야 한다. 상대방이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고, 자신의 검은 자유롭게 움직여야 한다.

빠름에서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크으으윽!”

마지막 비명을 끝으로 귀문 문도 십여 명이 일시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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