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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15화 (115/500)

第二十三章 위도(蝟島) (5)

호발귀에게는 혈마 무공, 독섬칠공에 버금갈 만큼 뛰어난 무공을 또 알고 있다.

원충노인의 팔십일수.

세상은 팔십일수를 모른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투심문만의 무공이다.

대체로 일인비전(一人祕傳) 무공들은 존재 여부를 드러내지 않고 전수되다가 어느 순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는 괴상한 특성을 보인다.

무림을 활보하는 동안에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그런 무공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후인이 객사하면 그것으로 유전이 끝난다.

혈마 무공이 일인비전이다. 독섬칠공과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도 일인비전이다.

‘무심무실공!’

호발귀는 팔십일수를 떠올렸다.

팔십일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무공이다.

팔십일수는 한 마디로 도둑놈이 터득해야 할 모든 행동 방침을 수용하고 있다.

소리 없이 접근하고, 은밀하게 빼내고, 발각되지 않게 도주한다.

팔십일수를 가만히 뜯어보면 모든 게 소매치기를 하는데 필요한 움직임이다.

이것 외에 뭐가 더 있나?

다만,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는 일반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일반인이 가진 것을 훔치기 위해서 팔십일수까지 터득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저 약간, 대략 사오 개월 정도만 노력해도 손재주 있는 놈은 잘 따라서 한다.

팔십일수는 무인을 상대로 소매치기를 하는 아주 고도의 수법이다.

무림에서 살다 보면 무인에게 소매치기할 경우가 왕왕 생긴다. 상대가 하수라면 괜찮지만, 소매치기는 대상자가 거의 고수일 가능성이 크다.

왜? 하수에게는 굳이 힘들게 소매치기할 필요가 없다.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두들겨 패면 된다. 그 짓을 못 하니 슬쩍 훔쳐서 갖겠다는 거다.

투수, 배수, 수수…… 다 필요 없다. 그냥 도둑질이다.

무공이 강한 고수에게 도둑질을 시도하다가 발각되면 그야말로 피똥 싸도록 얻어맞는다. 재수가 없으면 목숨도 잃는다.

그래서 팔십일수가 필요한 것이다.

천하제일인의 주머니도 털 수 있나? 감각이 인간의 경지를 벗어났는데?

무심무실공이면 된다.

무심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무실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마음이 없고 실체가 없다. 눈에 보이는 형상이 없다. 이렇듯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느낄 수 있나?

무심무실공은 원충노인이 바라는 가장 궁극의 목표다.

인간이 어떻게 형체가 없을 수 있나. 몸을 움직이는데 어떻게 기척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나.

하지만 해보자는 것이다.

계속 수련하다 보면 무심무실공의 경지에 이를 수 있고, 그러면 천하제일인의 주머니도 털 수 있다.

호발귀는 사문의 절학을 떠올렸다.

‘은호(隱呼), 망흡(忘吸). 일층우일층적몽경(一層又一層的夢境)……’

내쉬는 숨을 숨기고, 들이쉬는 숨을 잊고, 꿈속에서 움직이듯이……

스읏!

독망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순간, 독망이 출렁거렸다.

‘그래. 착하지. 가만, 가만.’

독망이 출렁거리기는 하지만 파장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살살 움직이는 느낌, 말캉거리는 느낌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독망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손을 물속에 집어넣는다.

물방울이 튀지 않게끔, 파문이 일어나지 않게끔 천천히, 서둘지 않고 집어넣는다.

파문은 일어나지 않지만, 손은 물을 느낀다.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역시!’

생각이 맞았다. 화살은 움직임을 쫓아온다.

독망이 출렁거리면 파장이 일어난다. 진동이 넓게 번져간다. 움직임이 생긴다.

화살은 파장이 일어나는 영역 전체를 공격한다.

파장을 일으킨 중심부에서부터, 파장 끝부분까지 전체를 휘감아서 공격한다. 그러니 움직이는 사람은 화살이 계속 쫓아오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으으읏!

독망 사이로 스며들었다. 출렁거리는 물결을 느끼면서 지나갔다.

‘길부터 찾아야지?’

무심무실공이 화살 공격은 피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길까지 밝혀주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앞으로 움직이다 보면 눈앞에 나무가 불쑥 나타났다. 나무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떤 때는 발이 밑으로 푹 빠졌다. 발밑에 뭐가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길을 걷는 것처럼 막막하다. 사실이 그렇다. 눈을 감고 걷는 것이다. 눈을 뜨고 걷지만 두 눈 꼭 감고 걷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이 상태로는 길을 찾지 못해.’

호발귀는 일단 걸음을 멈췄다.

독망을 건드리지 않고 움직이는 법을 찾아냈다. 운무 속을 움직이고 있지만, 운무가 알아채지 못한다. 너무 작은 움직임이라서 봐주고 있다.

‘이렇게 움직여서는 길을 찾지 못해. 뭔가 눈에 보이는 게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보이지 않으면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귀화미요공!’

호발귀는 평온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등으로 물살 거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느낌을 유지했다. 파문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용히 미끄러졌다.

손끝으로 오 장 앞을 겨냥했다.

귀화미요공을 터트리면 제일 먼저 두 손가락에서 섬광이 터진다. 화살이 손끝을 향해 집중 타격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타격 시점을 오 장 앞으로 옮긴다. 될까?

모르겠다. 호발귀도 이런 방법으로 귀화미요공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귀화미요공은 이령귀화에 속한 진기다.

역천금령공으로 전개할 수 없고, 오직 이령귀화로만 전개해야 한다. 쌍두사 중 이령귀화에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공부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말하면 바로 밑 직속 부하다.

이령귀화를 일으켰다.

진기를 둘로 나눠서 양강 진기는 엄지손가락에 싣는다. 음한 진기는 검로 몰아넣는다. 여기서 두 손가락을 부딪쳐서 강한 충돌을 일으키면 귀화미요공이 터진다.

이번에는 바로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진기를 오 장 앞으로 쏘아냈다.

츄웃!

진기가 독망을 뚫고 쏘아졌다. 그리고 오장 앞에 이르렀을 때, 아주 강한 힘으로 충돌했다.

꽈앙! 퍼엉!

생각했던 대로 오 장 앞에서 귀화미요공이 터졌다.

일순,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귀화미요공이 일으킨 불꽃은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호발귀는 똑똑히 봤다.

바로 옆에 숲길이 있다. 순간,

쒜에에에엑! 파파파파팍! 파파파팍!

귀화미요공이 터진 자리에 화살 수십 대가 틀어박혔다. 움직임이 일어난 곳은 여지없이 강타한다.

귀화미요공은 또 다른 움직임도 불러왔다.

화르르르륵! 화라라라락!

귀화미요공이 독무를 불태웠다.

물론 순간적이다. 아주 단단한 가죽에 불을 붙이려다가 실패한 경우와 같다. 독무는 이미 말캉거림이 느껴질 정도로 단단하게 압축되었다. 불에 쉽게 타지 않는다.

쒜에에에엑! 타타타타타탁!

화살이 또 날아왔다.

같은 자리에 두 번이나 연속해서 화살이 쏘아져 왔다.

‘응? 이거 이상한데?’

호발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호발귀도 독망을 불태울 생각은 없었다. 길만 찾았으면 목적은 달성했다.

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화살이다. 화살이 쏘아져 오는 것도 움직임이다. 독망을 뚫고 날아온다. 그러니 독망 전체가 출렁일 정도로 거센 파장을 일으켜야 한다.

화살은 화살의 움직임을 쫓지 않았다.

이럴 가능성은 오직 하나뿐이다. 화살이 날아올 동안 독망이 일시 해제된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독망이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물건도 아닌데,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진법이란…… 이거 정말 머리 좋지 않으면 배우기 힘들겠는데. 어느 구석 하나라도 계산이 잘못되면 말짱 꽝이잖아. 골치 아파. 그냥 싸우는 게 편해.’

스으으읏!

호발귀는 숲길로 들어섰다.

이제 쭉 나가면 독진의 중심처에 이른다.

길을 열기 시작하자, 독망을 뚫고 움직이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 되었다.

‘여기가 중심.’

호발귀는 좌우를 휘휘 둘러보았다.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른 곳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이화독진의 심장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일어난다. 등여산이 말한 삼분지 이 지점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오자 왠지 심장 울림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호독진이 쿵쿵 울리고 있다.

이곳은 그야말로 살기의 총체다.

사방에 환산만에서 보았던 백발연시포가 빼곡하게 세워져 있다.

얼핏 봐도 오십여 포는 되어 보이니, 화살이 모두 쏘아지면 오천 대가 날아온다.

누구도 살지 못한다.

그러면 백발연시포를 가동하는 단추는 어디 있을까?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연통 세 개가 중심이다.

연통은 숲길 좌측에 세 개, 우측에 세 개가 있다.

좌·우측 연통을 통해서 독무가 뭉실뭉실 피어 나온다.

이곳이 이호독진의 중심이다. 옳게 찾아왔다.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도 독무가 짙다. 하지만 호발귀는 이미 어둠에 익숙해졌다. 독섬칠공이 소료혈애서 만들어내는 독망도 제 기능을 발휘한다.

‘혈천방에 돈이 이렇게 많나?’

호발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호독진의 형태를 보면 지하에서 독을 만든 후, 연통을 통해 바깥으로 흘려보내는 것 같다.

그러자면 매우 많은 독이 필요하다. 그것도 매일 이 정도의 독무를 만들어내고 있다. 독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인가? 상당히 어렵게 채취한다. 더욱이 독기도 당홍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 돈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감당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둥 밑에 독물(毒物)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독을 만들 필요가 없다. 독물에게 먹이만 주면 독물이 알아서 독무를 내뿜는다. 그렇다면 매일 이 정도의 독이 뿜어져 나오는 것도 설명된다.

어떤 독물일까? 한 마리로는 어림도 없고, 위도 전체에 독을 퍼트리려면 적어도 수천 마리는 되어야 한다.

독사는 독무를 피워내지 못한다. 독충들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공기를 오염시키는 독물이 뭐가 있을까?

‘꽃!’

독화(毒花)다. 연통 밑에 꽃밭이 있다. 수십 종류의 독화가 꽃가루를 풍겨낸다. 좌측과 우측에서 성질이 다른 독가루가 연통을 통해 흘러나온다.

당홍이 독일 성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이해된다.

독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어떤 독이라고 말할 수 없다. 수십 종이 혼합되어 있다.

양쪽에서 흘러나온 독은 서로를 밀쳐낸다. 바람을 타고 섬 전체로 흘러간다. 그러다가 진형에 갇힌다. 나무와 섬의 형세에 갇혀서 더는 퍼지지 못한다. 두 독은 팽팽하게 견제하다가 강하게 밀착한다. 독무, 독망이 형성된다.

이호독진은 바람과 나무와 풀과 섬의 지형을 이용한 고도의 진법이다.

이호독진을 깨려면 양쪽 연통 여섯 개를 동시에 잘라내야 한다.

그러면 조절되지 않은 독무가 쏟아져 나올 것이고, 독망이 팽창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진다. 독진이 깨지는 것이다. 위도를 감쌌던 독기는 삼호로 퍼져나간다.

세상 속에 흩어진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화살 오천 대를 감당해야 한다.

‘저곳과 저곳에 귀화미요공를 일으켜서 화살을 유도한다.’

호발귀는 중심 밖 이십여 장을 쳐다봤다. 좌측에 하나, 우측에 하나, 두 곳에 귀화미요공을 일으켜서 화살 이천 오백 대씩을 쓰게 만든다.

그 후, 무정삼절 제일식 멸천겁으로 연통 세 개를 잘라낸다. 은허신법을 펼쳐서 소리 없이 우측으로 이동한 후, 다시 연통 세 개를 베어낸다.

슈웃! 퉁! 쓔웃! 투우우웅!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손가락을 튕겨냈다. 좌측 이십 장 밖에서 빨간 불꽃이 번쩍 터졌다.

퍼억!

독망은 너무도 싱겁게 터졌다.

이호독진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폭발이라도 일어날 줄 알았는데, 연기 흩어지듯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안개가 걷히고 숲이 드러났다.

짐작으로 살펴봤던 백발연시포 오십여 대가 뚜렷하게 보였다.

사방에 꽂힌 화살들이 얼마나 위험했던 순간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으음!”

호발귀는 팔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화살을 충분히 유도해냈고, 또 자신이 생각해도 감탄할 정도로 빨리 움직였다. 그런데도 화살을 세 대나 맞았다. 남들이 보면 ‘겨우 세 대’라고 말하겠지만.

쓰으윽!

옆구리를 꿰뚫은 화살도 뽑아냈다.

피가 펑펑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제는 피가 쏟아져도 당황하지 않는다. 모르기는 해도 자상을 치료하는 부분에서는 어떤 의원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해졌다.

피를 지혈시키고, 금창약을 발랐다.

마지막으로 허벅지에 꽂힌 화살을 뽑아냈다.

귀문을 공격하기도 전에 손해부터 봤다. 싸움은 이제 시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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