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三章 위도(蝟島) (4)
“언니. 정말 언니 독공으로는 저기 못 들어가요?”
등여산이 불쑥 물었다.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안으로 따라 들어갈 수 없을까 해서요. 아무래도 뒤를 막아줄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호호! 그렇게 걱정이 돼. 걱정하지 마. 호발귀를 몰라? 이까짓 독쯤은 독섬칠공으로 너끈히 밀어낼 수 있어. 내가 시연까지 해줬으니까 해낼 거야. 호발귀, 무공 천재인 거 알아? 하나를 말하면 백, 천을 깨우친다고.”
당홍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등여산이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남남 같으면 하지 않을 걱정이겠지만, 호발귀를 마음에 품고 있다면 걱정하는 마음도 정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당홍은 등여산의 말을 그런 뜻을 들었다.
하지만 등에서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냥 매서운 눈으로. 숲만 쳐다봤다 숲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홀리가 다가서서 등여산의 팔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다.
등여산은 잡힌 팔을 뿌리치지 않았다. 숲에서 들리는 소리를 놓칠 수 없다는 듯 귀만 기울였다.
“뭐야! 뭘 숨긴 거야!”
그제야 등여산이 홀리를 쳐다봤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이다.
“뭐야? 정말 뭘 숨긴 거야?”
그제야 비로소 심상치 않음을 느낀 당홍이 등여산을 쳐다봤다.
“무슨 일인지 말 안 해!”
홀리 표정이 매우 사나워졌다. 지금도 말을 하지 않으면 당장 검을 뽑을 것처럼 보였다.
“이호독진은……”
등여산이 힘들게 입을 열었다.
“나도 확실한 건 몰라. 이호독진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어. 지금 내가 하는 말도 모두 추측이야.”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숲에 있는 독이 사람이 뿌린 것이 아니라 진(陣)에 의해서 생성, 소멸하는 것이라면, 위험한 것은 독이 아니야. 아니,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
등여산이 그녀답지 않게 횡설수설했다.
아주 지독한 독이 뿜어질 것이라고 했다가, 독은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가, 또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다고 말한다. 본인도 종잡을 수 없다는 말이다.
“독이 위험하지 않다면 뭐가 위험한데?”
당홍이 급히 물었다.
그나마 그녀가 독진에 대해서 가장 잘 안다. 그리고 퍼뜩 생각나는 것도 있다.
“이호(二護)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요. 독진 이름치고는 너무 평범하잖아요. 이호. 두 번 보호한다. 이중 보호.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점점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호는 중차(仲差)구나!”
당홍이 안색이 하얗게 변해서 말했다.
“언니, 중차가 뭔데?”
홀리가 물었다.
당홍은 등여산을 슬쩍 쳐다본 후, 말했다.
“가운데가 어긋나는 게 중차야. 책사가 그린 그림 중 사선을 중심으로 좌우로 독기가 달라. 처음에는 균형을 이루다가 시간이 지나면 이쪽 독과 저쪽 독이 섞이는데, 그럼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독무(毒霧)가 피어나. 직접적으로는 독이 사람을 죽이고, 간접적으로는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실수해서 죽게 돼. 물론 함정이 빼곡히 설치되어 있을 것이고.”
독이 두 개로 갈라져서 이호가 아니다. 침입자를 독으로 죽이고, 미로진으로 죽일 수 있는 이중 보호장치가 되어 있어서 이호독진이라고 부른 것이다.
“독이 섞이면 혼무(混霧)가 되는데, 그러면 독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 그걸 막기 위해서 작은 원 안에 독을 가둬놓는데, 독막이라고 해. 독막은 물처럼 출렁거려서 건드리는 순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전달돼.”
“그게 삼분지 일 지점?”
당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너는 이 모든 걸 알고 호발귀를 들여보낸 거야? 혼자! 혼자 당하라고!”
“나도 고민 많이 했는데, 말해주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
차앙!
홀리가 검을 뽑았다.
그녀의 얼굴이 차디차게 굳었다. 눈가에는 분노가 화염처럼 피어나 이글거렸다.
“아이고! 이거 왜 이러시나. 아무리 그래도 같은 편끼리 이러면 안 되지. 검 넣어요. 검 넣어.”
해자수가 홀리의 오른팔을 꼭 감싸 안으며 달랬다.
“호발귀에게 독진을 말해주지 않은 이유, 당장 말해. 날 이해시켜. 말하기 싫거나 말할 수 없으면 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줄 테니까.”
홀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하게 말했다.
“나도 걱정돼! 걱정돼서 죽겠다고!”
등여산이 그녀답지 않게 빽! 소리쳤다.
하지만 홀리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건 대답이 아니야. 대답해!”
“호발귀에게 말하면? 말하면 안 가? 귀문을 공격하지 않고 돌아갈 거야? 그래도 갔을걸? 호발귀에게는 독진이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야. 독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갔을 거라고.”
“그것도 이유가 안 돼.”
홀리가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자 홀리의 오른팔을 꼭 잡은 해자수도 덩달아 끌려갔다.
“아이고, 이러면 안 된다니까. 화가 나도 서로 참고. 우선 말로 하자고. 말로.”
해자수가 죽을힘을 다해서 검든 손을 잡았다.
등여산은 피식 웃었다.
호발귀가 떠나기 전, 그에게 의사를 물어봤다. 혼자 왔으면 어디로 가겠느냐고. 호발귀는 독이 없는 길로 간다고 말했다. 호숫가를 빙 돌아가겠다고.
어떤 경우든 이호독진과 부딪친다.
그러면 이호독진의 위험을 알면 포기할까? 천만에. 포기하지 않는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해도 서슴없이 갔을 것이다. 독섬칠공을 독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가 독진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짐작하는 게 확실하지 않아서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는 오히려 해가 된다.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면 즉흥적으로 대응할 때보다 훨씬 위험해진다.
하나 더, 믿는 구석도 있다.
혈마 무공 귀화미요공을 믿는다.
귀화미요공은 단지 순간적인 빛을 내서 눈을 일시 멀게 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귀화미요공 속에는 뜨거운 열기가 담겨 있다. 화기(火氣)라고 해야 할까? 혈마 진기의 난폭함, 성남, 사나움이 불같이 뜨거운 방사(放射)를 일으킨다.
참회동에서 처음 귀화미요공을 당했을 때, 두 눈에 와닿는 열기를 느꼈다.
태양의 열기가 눈동자를 태운다는 느낌이었다.
불은 독을 태울 수 있다.
호발귀가 귀화미요공을 잘 쓴다면 독진을 뚫을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추측이다. 호발귀를 독진에 밀어 넣으면서 어느 것 하나 정확하게 아는 게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홀리가 다그치고 있지만,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아서 말해주지 못한다.
“말햇!”
홀리가 소리를 빽 질렀다.
“나는 책사니까.”
“뭐라고?”
“등여산이라면 호발귀를 저 속에 보내지 못해. 하지만 책사니까 보냈어.”
“그래?”
스릉! 척!
홀리가 검을 검집에 넣었다.
“지금 그 말, 네 입으로 한 거야. 만약 호발귀가 잘못되면 넌 내 손에 죽어. 나도 네 식대로 말할게. 등여산이라면 못 죽여. 호발귀가 마음에 품은 계집이니까. 하지만 책사라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 천살단 허수아비니까.”
홀리가 등여산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 * *
이제 침입 사실이 위도 전체에 알려졌다.
깊은 잠이 들었던 자들이 깨어나서 모이는데 대략 일다경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곧 공격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귀문은 위도 지하에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지상이 온통 독투성이니, 지하로 숨어들 수밖에 없다.
호발귀는 진기를 가득 끌어올린 채 천천히 숲 안으로 들어섰다.
패애애앵! 패애앵!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시작인가?”
호발귀가 빙긋 웃었다.
날카로운 살기가 감지된다. 살기는 감지되는 데 생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위험은 느껴지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다.
츠으으읏!
굉장한 살기가 전신을 압박해온다.
순간, 호발귀는 생각할 것도 없이 신형을 솟구쳐서 나무 위로 올라갔다.
타타타타탁! 타타타탁!
신형을 띄우자마자,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서 콩 볶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훗!”
호발귀는 나무에 오래 머물지도 못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솟구쳐서 즉시 신형을 띄웠다.
타타타타탁! 타타탁!
여지없이 콩 볶는 소리가 또 들렸다.
방금 그가 디뎠던 나무는 온통 벌집이 되었다. 화살 수십 대가 나무를 꿰뚫었다.
쒜에에에엑!
화살이 또 날아온다.
화살은 그를 쫓아온다. 움직임을 쫓아서 정확하게 화살을 날린다. 움직이는 동안에 착지할 곳을 미리 정해서 쏘는 듯하다. 공격이 매우 급하다. 숨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다.
“타앗!”
호발귀는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서 신형을 솟구쳤다.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뛰는 단순한 움직임에 무슨 진기가 이토록 많이 소모되는 것일까?
쉬지 못해서 그렇다.
화살 공격은 숨을 돌릴 시간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숨이 꽉 막힌 상태에서 연달아 신형을 쏘아내야 한다. 잠시라도 멈추면 화살받이가 된다.
처음 도약할 때는 나무 위로만 오르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만큼의 호흡만 남겼다. 진기도 전력으로 끌어낸 것이 아니다. 가볍게 이끌었다.
한데, 그 진기로 무려 세 번이나 도약하고 있다.
첫 번째 도약은 의도한 것이지만, 다른 두 번은 억지로 쫓겨서 도약했다.
일순, 진기가 꽉 막히는 현상이 일어났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멈추면 화살을 쳐내야 하는데, 독무에 가려서 화살이 보이지 않는다. 느낌으로만 쳐내기에는 사방에서 너무 많은 화살이 쏟아진다.
쉬이이잇! 타타타타탁!
방금 그가 내려섰던 자리가 또다시 벌집이 되었다.
이번에는 호발귀도 그냥 신형만 띄우지는 않았다. 착지와 동시에 검을 휘저었다. 나뭇가지 수십 개를 일시에 잘라냈다. 그리고 잘라낸 가지를 발로 차서 사방으로 퍼트렸다.
파파파파팟! 쒜에에엑! 타타타타탁!
화살이 움직임을 쫓아갔다.
호발귀를 향해서 날아온 화살도 있지만, 그가 쳐낸 나뭇가지를 쫓아간 화살도 많다.
스읏!
호발귀는 큰 바위 위로 내려섰다.
아니, 내려서는 것과 동시에 몸을 눕히고, 뱀처럼 미끄러져서 바위 밑으로 몸을 굴렷다.
타타타타탁!
화살이 사정없이 바위를 격타했다.
“하아아!”
호발귀는 비로소 숨 한 모금을 들이켰다.
움직임을 멈추자 화살 공격도 멈췄다.
‘대단한 진법이다. 독에 이어서 화살까지. 그런데…… 어떻게 움직임을 예측하는 거지?’
호발귀는 미간을 찡그렸다.
화살은 살아있는 생명처럼 따라붙었다. 움직임이 일어나고, 화살이 그 뒤를 따라온다면 이해할 수 있다. 화살은 움직임이 멈출 곳을 예측해서 공격한다.
이것은 사람이 직접 화살을 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독무 속에 사람이 숨어있나? 아니다. 생기가 감지되지 않는다. 설혹 숨어있다고 해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하게 깔린 독무를 뚫고 화살을 날린다는 것은 불가하다.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사람도 할 수 없는 모순된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사람이 쏘는 것이라면, 누군지 모르지만, 신의 솜씨에 가까운 궁술이다. 만약 진법이 화살을 발동한 것이라면 손뼉을 쳐줄 정도로 절묘한 산법(算法)이다.
‘공격은 이것과 연관 있어.’
호발귀는 출렁거리는 독망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독망을 밀쳐내 볼까? 독망을 흔들어봐? 장담하던데 당장 화살이 날아올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길을 잃었다는 점이다.
화살을 피해서 신형을 정신없이 날렸다.
그 때문에 원래 가던 길을 잃어버렸다. 자욱한 독무에 가려서 길도 보이지 않는다. 등여산이 말한 삼분지 이 지점, 진의 중심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이거 난감한데?”
호발귀는 손을 들어서 눈을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