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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12화 (112/500)

第二十三章 위도(蝟島) (2)

삼호는 매우 큰 호수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다. 동쪽에서 싸움이 나도 서쪽에서는 알지 못한다. 병장기가 부딪치고 세상이 떠나가라 고함을 내질러도 전혀 듣지 못한다.

또 눈으로 확인도 되지 않는다.

삼호는 동그랗게 생기지 않았다. 이리저리 굴곡져 있다. 그래서 삼호를 빙 돌다 보면 위도를 볼 수 있는 곳보다 볼 수 없는 곳이 훨씬 더 많다.

사람들 대부분은 위도가 보이는 곳에서 건너가려고 한다.

그 말을 달리 해석하면 위도가 보이는 곳은 경계가 가장 삼엄한 곳이다.

위도가 보이지 않는 곳도 경계는 삼엄하다.

삼호를 침입한 사람 중에 돌아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작해요.”

등여산이 말했다.

그러자 당홍이 재빨리 앞으로 나와 허공에 독가루를 뿌렸다. 그리고 잠시 제 자리에 멈춰서서 독가루가 흩어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찬했다.

“없어.”

당홍이 짧게 말했다.

그녀는 삼호 주변에 펼쳐져 있을 독을 경계했다.

공기 속에 스며 있는 냄새를 맡는다. 땅에 가라앉은 냄새, 풀잎에 살포시 내려앉은 냄새를 찾는다.

어떤 독향(毒香)도 당홍을 빠져나가지는 못한다.

일행 중에는 당홍만큼이나 독향을 잘 맡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호발귀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맨 뒤에서 움직이며, 사방을 예리하게 주시했다.

호발귀는 생기로 생기를 감지한다.

일행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숨어있는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우상 십 장.”

도천패는 호발귀가 ‘우상’이라고 말했을 때, 벌써 신형을 띄었다. 뒤에 따라붙은 십 장이라는 말은 듣지 않았다. ‘우상’이라는 말이 들렸을 때 도천패도 이미 경계 무인을 파악한 뒤였다.

쒜에에엑! 퍼억!

단숨에 십 장을 좁혀가서 일도를 뻗어냈다.

상대방은 기습해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칼을 맞고 쓰러졌다.

경계 무인들은 나무 위에 거주할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나무로 임시 집을 만들어서 편하게 사방을 감시했다. 그곳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경계 초소다.

위장이 매우 뛰어나서 미리 정보를 듣지 못했다면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호발귀가 말했다.

“우하 오 장.”

쎄에에엑! 퍼억!

이번에는 홀리가 땅을 검으로 훑었다.

“컥!”

갑자기 땅에서 답답한 비명이 터졌다. 피도 확 솟구쳤다.

검이 지나간 자국에서 한 사람이 흙을 밀쳐내면서 벌떡 튀어나왔지만, 이내 절명했다.

홀리도 경계 무인이 땅속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호발귀가 ‘우하’라고 말했을 때, 홀리는 벌써 땅을 주시했다.

땅을 모두 살필 필요는 없었다. 사방이 환히 트인 곳만 찾아보면 된다. 그리고 기가 막힐 정도로 감쪽같이 땅을 파고 들어가 있는 자를 찾아냈다.

숨어있을 만한 곳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찾아냈다.

등여산이 말해준 것과 똑같지 않나.

- 삼호는 굉장히 넓어요. 거기에 나무가 빽빽해서 숨어들기는 좋지만 감시하기에는 쉽지 않은 곳이에요. 한데 귀문은 이런 약점을 정반대로 바꿔놨어요.

무형시경(無形視警).

맞아요. 혈마에게 멸문당한 미산파(眉山派) 경계 방법이에요.

미산파는 은둔 비문(秘門)이다.

깊은 산속에 틀어박혀서 중원 무림에 일절 간여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무학만 발전시켰다.

인원은 적고 감시할 곳은 넓고.

미산파는 무형시경이라는 독특한 경계법을 찾아냈다.

먼저 사방을 쉽게 감시할 수 있는 나무를 골라서 둥지를 튼다.

나무에서 감시할 수 있는 시야를 최대한 확보하고, 감시할 수 없는 곳은 다음 나무로 넘긴다. 나무에서 나무로 연결되며, 숲 전체를 조망한다.

이렇게 허공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한 사람이 상당히 넓은 지역을 감시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늘진 곳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나무와 나무 사이에 지감(地監)을 둔다. 땅을 파고 들어가서 땅 위만 살핀다.

넓은 지역은 천감(天監)이 보고, 세부적인 곳은 지감이 파악한다.

- 일삼오칠구로 천감이 서고, 이사육팔로 지감이 숨어있다고 봐야 해요. 이 사람들 사이는 상당히 넓어서 신속하게 처리만 한다면 천감 한 명, 지감 한 명 처리하는 것으로 통로를 확보할 수 있어요.

제 생각이 맞는다고 확신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지금 제가 찾아낼 수 있는 건 이것뿐이네요.

호발귀가 적을 찾아낸다.

나무를 말하면, 다음은 땅을 말한다. 십 장 밖에 천감이 있다면 십 장 안에 지감이 있다.

소리 없이 공격하는 것은 도천패와 홀리가 맡았다.

당홍은 오로지 독만 파악한다.

- 귀문은 무형시경만 믿지 않을 거예요. 미산파가 무형시경으로 철통같은 경계망을 펼쳤지만, 결국 혈마에게 침입당했어요. 혈마가 본진을 칠 때까지 경계가 뚫린 것을 몰랐죠. 그래서 허점을 보완했을 텐데, 경계에 많은 사람을 투입할 수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겠죠? 독이에요. 독이 반드시 깔려있어요.

등여산은 독이 있다고 확신했다.

무형시경은 긴가민가했지만, 독은 십 중 십 존재한다고 확언했다.

두 명이 쓰러졌지만, 움직이는 기척은 없다. 예상했던 대로 경계 간격이 무척 넓어서 사달이 났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 보면 사각지대이니까.

또 이들은 단지 경계만 한다.

이들이 통보를 보내면 비로소 대응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침입자를 격살한다.

그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천감, 지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조용히 앉아서 은밀히 연락만 취한다.

도천패와 홀리가 죽인 자들은 연락조차 취하지 못했다.

“기가 막히네. 여기에 정말 사람이 숨어있었네. 무형시경이라는 말을 듣고 무슨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소린가 했는데. 하! 이걸 땅바닥에 쓱쓱 그린 그림만 보고 알아냈다는 거지?”

해자수가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요즘 여자들은 다 이렇게 무서운가? 책사도 무서운 사람이었네.”

도천패가 고개를 흔들었다.

“어찌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무식한 것 같지 않아? 아씨는 여길 알고, 책사는 뚫을 방법을 말해주고, 당 소저는 독을 찾고 있는데 남자들이 하는 짓이란 칼질밖에 없으니. 딱히 그런 것은 아닌데, 그런 느낌이라는 거지. 머리는 텅 비었고, 오직 칼질만 할 줄 아는 바보랄까?”

“그 바보 속에 너도 들어가.”

“누가 뭐래나? 내가 제일 바보지 뭐. 킥킥!”

해자수가 피식피식 웃었다.

경계는 뚫었다. 이제 위도로 잠입하면 된다.

그들은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배를 타고 가면 당장 발각된다. 천감은 숲만 보는 게 아니다. 사방이 트여 있어서 호수도 눈에 잡힌다. 바깥쪽과 안쪽을 모두 살피고 있다.

저들에게 발각된다고 해도 상관없나? 어차피 싸우러 왔으니, 싸우면 그만인가?

천감, 지감이 소식을 보내면 무인들이 달려든다. 그러면 그들과 싸워야 하는데, 싸우는 장소가 호수다.

육전이 아니라 수전이 된다.

수준은 아무래도 저들의 유리하다.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물속에 사는 마음껏 싸울 수 없다. 무공으로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니라 깊은 물을 이용해서 오로지 목숨을 뺏는 싸움이 되면, 저들이 불리하다고 볼 수 없다.

또 삼호는 수심이 무척 깊다.

물색이 검푸른 빛이다. 깊이가 몇 길이나 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수전은 나올 때 벌이더라도 들어갈 때는 삼가는 것이 좋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등여산은 삼호에 경계 무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정작 위도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땅에 그려진 그림만 보고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위도 상황은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한다. 일단 위도로 잠입한 다음, 위도의 위험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는 싸움을 피하는 것이 좋다.

그들이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물론 밤이라고 해도 삼호는 대낮처럼 밝다. 달빛과 별빛이 환한 빛을 쏟아낸다. 하늘에서 떨어진 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주변을 더욱더 환하게 밝혀놓는다.

“내가 먼저 간다.”

도천패가 말하면서 물속으로 사르르륵 기어서 들어갔다.

그는 자신 키만 한 널빤지를 배에 댔다. 가능하면 물소리조차 죽이고 호수를 건너야 한다.

스으읏!

도천패가 물과 하나가 되어서 스르륵 미끄러졌다.

두 번째로 당홍이 나섰다. 그녀도 널빤지를 배에 깔고 삼호 호수 속으로 기어서 들어갔다.

도천패와 당홍의 거리는 무려 사오 장이나 된다.

두 사람의 간격이 상당히 넓게 벌어졌다. 그래야 천감 눈에 띄지 않는다.

두 사람은 나란히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 물살이 흔드는 대로 따라간다는 듯이 이리저리 휘청거리면서 흘러간다.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흔들거린다.

“다음은 나.”

등여산이 말하면서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홀리가 말했다.

“내가 간다고 할 때도 고개를 끄덕여줄 거지?”

“당연하지.”

호발귀가 서슴없이 말했다.

홀리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즉시 말했다.

“지금 표정 그대로.”

“지금 표정? 내 표정이 어떤데?”

“좋아 죽어.”

다행스럽게도 위도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정작 위도는 어떨지 모르지만, 경계 무인들은 강하지 않다. 오직 감시 목적으로 세워놓은 것 같다.

“아! 여기야. 여기 있어.”

모두 호수를 건너오자 당홍이 대뜸 말했다.

당홍은 독 냄새를 맡았다. 아주 강렬하고 진한 냄새가 코를 찔러온다.

삼호에는 독이 없었는데, 위도에는 천지가 독이다.

“무슨 독이에요?”

등여산이 물었다.

“그건 부딪쳐 봐야지. 무슨 독인인지는 모르겠는데, 좌우지간 천지가 독이야.”

“이 섬 전체에 깔린 거예요?”

“아니. 섬 주위로는 안 깔려 있어. 배를 타고 온다면 위도 어디에 내리든, 안으로 들어가면 중독돼. 섬 가장자리를 따라서 이동해야 해. 그러면 안으로 들어가는 출구가 나올 것 같아.”

섬 전체에 독이 깔려있다. 다만 물이 닿는 부분, 가장자리에는 깔려있지 않다.

당홍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이호독진(二護毒陣) 같아.”

“이호독진요?”

“이호독진!”

등여산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홀리는 경악성을 토해냈다.

놀란 사람은 여인들밖에 없다. 사내들은 정말 머리가 없는 듯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호발귀의 표정을 보고 홀리가 툭 말했다.

“혈마 수하 중에 독괴(毒傀)라고 있어. 언니 사문과는 사이가 안 좋을 건데, 나중에 혈마가 죽을 때 함께 죽었어. 그자가 만든 독진이 이호독진이야.”

“언니 사문? 언니 사문이라면?”

도천패가 두 여자, 당홍과 등여산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하! 정말! 나, 나, 나. 나 보고 언니라고 한 거야! 아무리 봐도 내가 자기들 또래는 아니라는 거지.”

당홍이 답답해서 툭 쏘아붙였다.

등여산은 벌써 생각에 잠겼다.

옆에서 농담하건 말건 일절 간여하지 않고 고개를 푹 떨군 채 땅만 쳐다봤다.

등여산이 뭐라고 중얼거렸다. 쭈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땅에 그림도 그렸다. 풍뎅이를 그리는 듯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가운데를 일직선으로 쭉 그었다.

진법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봐도 진을 연구하는 것 같다.

“이게 이호독진이야?”

도천패가 방해되지 않도록 당홍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나도 이호독진은 몰라. 말만 들었어.”

당홍도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냐. 이게.”

등여산이 고개를 내저으며 그렸던 그림을 지웠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그렸다.

원을 그리고 이번에는 원 안에 사선을 그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다. 언제 어디서 귀문도가 나타날지 모르는데, 몸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호숫가에 모여있다.

독진이 어디서부터 시작될지 모르니 움직일 수가 없다.

“아씨도 이호독진을 몰라요?”

해자수가 물었다.

“나도 몰라. 혈마하고 같이 죽은 사람들 무공은 모두 실전됐어. 독괴 독공도 그때 사라졌고. 그런데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혈천방이 많은 걸 찾아냈네.”

홀리가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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