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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09화 (109/500)

第二十二章 살기충천(殺氣衝天) (4)

호발귀가 잡랑을 죽인 현장은 이미 많은 사람이 들어차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좀 지나갑시다.”

“아! 뒤로 지나가도 충분한데 왜 꼭 앞으로 지나가려고 그래.”

“가는 김에 구경 좀 하려고. 양해 좀 해주쇼.”

“여기 다 지나가는 사람들이오. 천천히 갑시다.”

우로 십삼 리 좁은 길에 많은 사람이 들어차서 아우성거렸다.

그렇다고 살인 현장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은 이미 살단 무인들이 장악했다.

무인 몇몇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아우! 저거 봐! 살이 새까맣게 변했네. 얼마나 독이 지독했으면 사람이 저 모양이야?”

“죽은 모습이 저런데 살았을 때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치사하게 독을 쓴 것도 모자라서 거기다 칼질까지 해? 악마가 따로 없네.”

“사람 새끼가 아니지.”

“사람 새끼가 뭐야, 개돼지만도 못한 놈이지. 저런 짓은 개돼지도 안 해.”

사람들이 시신들을 보며 치를 떨었다.

살단 무인들은 옆에서 떠들건 말건 묵묵히 시신을 수습했다.

그들은 경건했다. 표정이 무척 무겁고, 분노에 가득 찼다. 한 명, 한 명 시신을 수습할 때마다 두 손을 꽉 잡아주면서 묵념을 했다. 잘 가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이 무척 비통해 보였다.

“힘내슈! 혈마놈 꼭 잡고!”

“마귀 새끼는 천벌 받아서 죽을 거요!”

사람들이 살단 무인을 응원했다.

살단 무인들은 매우 비장해 보인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살단 무인은 시신을 옮기면서 잔인한 장면만 사람들한테 슬쩍슬쩍 보여주고 있다.

베인 곳, 떨어져 나간 수족, 쏟아져 내린 오장육부.

가장 크게 보여주는 부분이 독살당한 모습이다.

죽은 사람은 누가 봐도 독살당한 흔적이 역력하다. 피부색이 시꺼멓게 변색하였다. 어떤 사람은 절반은 검은색으로 다른 절반은 붉은색으로 얼룩져 있다.

표정도 잔뜩 일그러져 있다.

목숨이 붙어 있을 당시 중독 때문에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확연히 짐작할 수 있다.

너무 처참하다!

살단 무인들은 그런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호발귀가 독을 써? 호발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개 짖는 소리야 하고 웃을 것이다.

호발귀 곁에 광독풍파의 손녀가 있다.

이름은 당홍, 독의 광독풍파의 독섬칠공을 온전히 이어받은 독공 대가다.

충분히 독살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광독풍파를 호발귀에게 말해준 사람이 바로 등여산이다. 당홍이 옆에 있어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호발귀도 알고, 도천패와 당홍도 안다. 모두 만나봤고,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독살하지 않는다.

호발귀는 특히 그렇다. 무공만 사용해도 충분한데 무엇 하러 독까지 사용하나.

더욱이 시신은 사후에 중독되었다.

단순히 피부 변색만 보면 독살당한 게 맞지만, 유심히 보면 사후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독은 오로지 피부 변색만 일으켰다.

오장육부가 멀쩡하다. 독성이 피부밑, 뼈나 살, 장기에 침투하지 못했다.

호발귀가 우물에 독을 풀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살단 무인들은 식도와 위장부터 타들어 갔어야 한다. 혀가 타고, 목구멍이 타들어 가야 한다. 위장이 썩어 문드러진 후, 피부가 변색하여야 한다.

독살되면 이런 순서를 거친다.

죽은 시신들은 안은 멀쩡한데 오직 피부만 새카맣다.

칠보사를 잡아다가 죽은 사람에게 물리면 어떻게 될까? 독이 통할까? 참 바보 같은 물음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독이 통하나. 피가 흐르지 않는데, 독성이 어디로 흘러가나.

죽은 사람은 독에 반응하지 않는다.

살단 무인들이 잔인한 모습이라고 슬쩍슬쩍 보여주는 검상을 살펴보면 여전히 붉은 핏물이 묻어있다. 피가 굳어서 갈색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중독 현상은 보이지 않는다.

안이 멀쩡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어떻게 이런 것까지 보겠나. 그저 겉모습만 볼 뿐이다.

‘왜 이렇게 변한 거야?’

등여산은 주치균을 떠올렸다.

주치균은 항상 싱그러웠다. 맑고 밝았다. 자신만만했다. 무공도 뛰어났다. 늘 얼굴에 웃음을 달고 살았다. 농담도 자주 했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은 음침해진 것 같다. 웃지도 않고 사납기만 하다. 옆에 있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무엇보다도 목적을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기로 작정한 사람 같다.

그리고 주치균은 호발귀를 죽이는 데 모든 걸 건 것 같다.

‘왜 이렇게 변했어.’

등여산은 주치균만 생각하면 한 가지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그가 변한 데는 자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치균이 단순한 동료로 옆에 있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좋아한다는 감정을 드러냈는데, 아무 눈치도 채지 못했을까.

주치균의 마음은 진작 알고 있었는데, 받아들이지도 않고 냉정하게 뿌리치지 않았다. 선을 딱 긋지 않고 흐리멍덩하게 좋은 게 좋은 식으로 지내왔다.

사실, 주치균을 사내로 보지 않는다.

그는 매우 좋은 친구이지만, 가슴이 떨린다거나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로 지냈다.

주치균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본인 스스로 마음을 정리할 줄 알았다. 주치균은 매우 명석하고 뛰어난 사내니까.

그렇게 감정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고 지낸 결과가 이런 사달을 일으킨 것은 아닌지 자책한다.

“난 이제 호발귀에게 가.”

등여산이 시신을 수습하는 잡랑 무인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잡랑 무인이 주치균인 듯, 주치균이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 듯 말했다.

“호발귀를 도와줄 거야. 단주님이 언제 호발귀를 버릴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충실히 도와줘야지. 그러니까 이런 일, 인제 그만둬.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때는 내가 막아야 하잖아. 네가 공격하고 내가 막는 거야. 우리 이러지 말자.”

등여산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호발귀, 주치균…… 두 사람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두 사람 모두 가까운 사람들인데, 지금은 낯선 사람처럼 서먹서먹하다.

사박! 사박!

등여산은 우로 십삼 리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거리에 앉아서 주먹밥을 먹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책사님이시죠?”

“네.”

“전갈입니다.”

사내가 품에서 서신 한 통을 꺼내 건넸다.

등여산은 계속 길을 걸으면서 서신을 읽었다.

비보전에서 보내온 소식이다.

호발귀는 우로를 빠져나가 천애(千崖)로 향하고 있다. 황 고개 싸움을 의식했는지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한적한 산길을 택해서 움직이는 중이다.

‘천애. 가깝네.’

등여산이 중얼거렸다.

천애라면 빨리 따라가면 한 시진, 천천히 가도 반나절이면 만날 수 있다.

비보전에서는 다른 소식도 보내왔다.

천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귀문 위치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다. 귀문으로 짐작되는 곳을 파악해 놓았을 뿐, 확인하지는 않았다.

천애를 지나면 삼호(森湖)가 나온다.

호수 주변으로 큰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서 매우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낸다.

호수 한가운데 위도(蝟島)라는 섬이 있다.

섬에 나무가 많아서 마치 하늘에서 보면 고슴도치가 웅크리고 있는 형세를 띈다.

위도가 귀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오 년 전, 위도에 금광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서 위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다. 땅이란 땅은 모조리 파헤쳤다.

물론 소문은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금광을 찾아서 땅을 파헤치던 사람들이 수로를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모두 수장당하고 말았다.

그 후에는 위도를 찾는 사람이 없다.

이 소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 가지 특징이 나온다.

첫 번째, 많은 인력이 투입되었다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두 번째, 들어간 사람은 있는데 나온 사람이 없다.

세 번째, 그 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다.

딱 귀문의 특징이다.

“고마워요.”

등여산이 무심히 중얼거리다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자신에게 서신을 건네준 사내는 어느새 원래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주먹밥을 먹는 중이었다. 등여산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사실, 등여산은 자신이 걸으면서 서신을 읽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서신을 받고 가만히 서서 읽었고, 서신을 건네준 사내가 계속 옆에 서 있다고 착각했다.

“내가 왜 이러지?”

등여산은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정신이 얼마나 다른 곳에 있었으면, 옆에 있던 사람이 떠나는 것도 몰랐을까.

이토록 정신이 산만하기는 처음이다.

‘이러면 안 돼. 단단히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해. 하아!’

그녀는 큰 숨을 뿜어냈다.

* * *

“우리 품앗이하기로 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다 말해줄게. 두 가지 조건이 있어. 먼저 내 말을 의심하지 마. 난 사실만 말하니까. 절대로 믿어.”

홀리가 입을 열었다.

“둘째, 어떻게 움직이든 나도 같이해.”

홀리가 호발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내 지아비야. 내가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 옆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 그전에 난 당신을 보호할 책임이 있어. 당신을 해치는 칼이 있다면 내가 막아.”

“음문촌 여자들이 대체로 이렇게 기가 세.”

해자수가 도천패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홀리는 옆에서 중얼거리는 말은 신경 쓰지도 않고 호발귀만 쳐다보며 말했다.

“혈천방을 공격하겠다면 같이 해. 천살단을 치는 것도 마찬가지고. 옛날 혈마처럼 세상을 없앤다고 해도 따라가. 그러니까 날 떼어놓을 생각은 하지 마. 이게 내 조건, 아니 이제는 조건도 아냐. 통고야. 무조건 할 거야.”

“그래. 해.”

호발귀가 말했다.

홀리를 옆에 두고 자신을 죽일 보위로 삼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호발귀에게는 보위가 두 명 있다. 도천패는 그를 보호하는 보위고, 홀리는 그를 죽일 보위다.

엄밀히 말해서 이런 것은 연인 관계가 아니다. 직분, 임무를 말하는 것이니 일이다.

호발귀는 홀리를 그렇게 대하고, 홀리는 호발귀는 지아비로 대한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게 어떻게 대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홀리가 말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귀문은 사소(四所)야. 위치는 삼호 위도. 교두 사두(四頭)는 삼수창(三手槍) 풍공공(馮公公)이야. 장창, 단창 모두 잘 써.”

“삼수창 풍공공!”

당홍이 깜짝 놀라서 경악성을 토해냈다.

“왜? 알아?”

도천패가 물었다.

“혈천방에 있을 때 들은 적이 있어. 삼수창의 삼수는 세 번째 손이라는 뜻이야. 창이 몸에 붙어서 마치 손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여. 귀무살 백십구로도 유명해.”

“백십구.”

도천패가 되뇄다.

귀무살이 죽인 자라면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그것도 백십구 회나 임무에 성공했다.

대단한 자인 게 분명하다.

홀리가 말했다.

“그건 다 지나간 이야기고. 지금 이야기가 더 중요해. 사소는 귀문 칠소 중에서 귀무살을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어. 더 중요한 건, 사소 귀무살은 하나같이 잔인하다는 거야. 맹수한테 물려 죽은 듯이 엉망진창이 된 시신이 있다면 사소 귀무살이 한 짓이야.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 더는 몰라.”

홀리가 호발귀를 쳐다봤다.

그때, 호발귀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당홍이 재빨리 말했다.

“우리 좀 쉬었다가 해.”

“……?”

모두 무슨 말이냐는 듯 당홍을 쳐다봤다.]

“사소가 해마다 귀무살을 배출하고 있고, 사소 출신 귀무살이 무척 잔인하다면 귀문도 그럴 거 아냐. 그러면 우리 매우 지독한 싸움을 하게 될 건데, 아무래도 쉬었다가 하는 게 좋겠어.”

“그럴 필요가……”

도천패가 피식 웃으면서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홍이 말하는 도중에 허리를 잘라버렸다.

“우리 삼 일만이라도 그냥 잠만 자면서 쉬자고.”

당홍은 눈짓으로 호발귀를 가리켰다.

호발귀는 잡랑을 죽인 후 침울해하고 있다. 침묵이 길어진다. 무엇인가 고민거리가 생긴 것 같은데, 말을 하지 않는다. 심각하게 생각만 한다.

귀문을 공격하는 일은 급하지 않다.

호발귀가 찾는 귀무살은 언젠가는 만난다. 사부가 잡혀있지만 오늘내일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급하게 달려갈 이유가 없다.

일단, 호발귀에게 안정을 찾게 해주자.

눈치 빠른 해자수가 재빨리 말했다.

“여기서 좀만 가면 놀기 좋은 데가 있어. 거기는 뭐 물도 좋고 경치도 좋고, 사람들이 찾아오지도 않고, 늘어지게 낮잠 자기 딱 좋지 뭐. 어때? 안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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