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二章 살기충천(殺氣衝天) (2)
“후후후! 후후!”
호발귀는 미친 사람처럼 실소를 흘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너무 어처구니없었다.
잡랑을 찾기가 힘들 줄 알았다. 그래도 천살단 최고 강자들인데, 잘 숨어있겠지.
그런데 너무 쉽게 찾아진다.
파리는 악취가 풍기는 곳을 잘 찾는다. 모기는 피 냄새에 끌린다. 늑대는 새끼 염소의 울음소리를 십 리 밖에서도 듣는다. 더불어서 살인자가 살인할 곳을 용케 찾는다.
호발귀는 혈기(血氣), 탁하고 살기가 묻은 혈살기(血殺氣)를 쫓아갔다.
호발귀의 추적술은 무림에서 통상적으로 시행하는 추적술과는 상당히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생기는 갓 태어난 아기의 생기다.
물론 아이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탁기를 물려받은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갓 태어난 생명체는 생기가 맑다.
생기는 세상과 어울리면서 탁기를 흡수한다. 탁해진다.
무인의 경우, 탁해진 생기를 운공으로 정화한다. 맑고 싱그러운 생기로 돌아간다. 정종 무공이다.
탁한 생기를 더욱 진한 살기로 감싸는 일도 있다. 피를 즐기고, 살인을 마다하지 않고, 싸움이 벌어진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족속들이 있다.
이들은 생기가 탁하다 못해 피 냄새를 풍긴다.
호발귀는 이런 혈기를 혈살기라고 지칭한다.
선한 사람은 생기를 유지하고, 악한 사람은 혈살기를 띈다. 온몸이 피에 절은 사람을 쫓아갈 때는 혈살기만 추적하면 된다.
상식적으로 천살단 무인들은 혈살기를 띄면 안 된다.
그들은 정파 무인이다. 선한 사람이다. 악한 자들로부터 선한 사람을 구해주는 정의로운 사람들이다. 마음속에는 항상 인의를 품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혈살기는 상당히 정화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척 쉽게 찾아진다.
혈천방 무인을 찾을 때처럼 코를 찌르는 악취만 쫓아오면 잡랑이 있다.
이건 굉장히 잘못되었다.
“후후후! 후후후후!”
호발귀 눈에 혈살기에 절어 있는 무인들이 보였다.
저벅! 저벅!
호발귀가 걸었다.
“누구냐!”
잡랑이 대뜸 물어왔다.
“너희, 다 죽는다.”
호발귀의 대답은 살벌했다. 아니, 대답보다도 손에 들린 검이 더 소름 끼치는 소리를 울렸다.
파라라락!
마영심도가 펼쳐졌다.
“걱! 걱! 거어어억!”
방금 말을 건 잡랑이 비명도 아니고 신음도 아닌 괴상한 소리를 흘렸다.
아래에서 위로 쳐올린 검이 옆구리를 파고들어서 허파까지 단숨에 갈라냈다.
폐가 갈리면서 바람이 샌다.
목구멍을 통해 빠져나올 소리가 허파에서 실실 빠져나간다.
마영심도는 지초(地招) 사(四), 좌우중(左右中) 각삼(各三), 천초(天招) 삼(三), 구명초(救命招) 일(一)로 구성되어 있다.
지초, 땅에서 위로 펼치는 도초가 사초식이다. 땅에 누워 발로 상대를 차는 지당권[地術拳]처럼 땅에 바짝 붙어서 주로 하체를 노리는 도법이다.
좌초, 우초, 중초는 각 삼 초다. 칼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도법도 달라진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며 펼치는 천초도 삼 초나 된다.
그중 땅에서 도약한 후에 내리치는 도법이 일 초다. 나머지 이 초는 모두 안정된 곳, 나무나 바위에서 아래를 향해 몸을 던지면서 펼치는 도법이다.
마영심도 십육 초에 통달하면 어떤 지형에서도 능숙하게 칼을 쓸 수 있게 된다.
또 하나, 마영심도의 특징은 면도(面刀)를 사용한다는 데 있다.
면도는 도신이 매우 얇다. 너무 얇아서 종이처럼 가늘다. 칼을 들면 칼끝이 휘영청 늘어진다.
그토록 얇고 예리한 칼을 사용하는 만큼 강한 힘으로 내리치는 도법이 아니라 날카롭게 베어내는 칼이다. 한순간에 홱 베고 지나가는 도법이다.
구명초는 목숨이 경각에 달리지 않은 한, 펼치지 않는다.
구명초를 펼치면 상대는 즉사한다. 어떤 경우, 어떤 상대를 막론하고 즉사했다.
파라라라라락!
검이 흔들리며 메뚜기 날갯짓처럼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호발귀가 들고 있는 검은 면도가 아니다. 하지만 마영심도를 끌어내자 검이 파르르 떨린다.
“호발귀다!”
“기습이다!”
잡랑이 분분히 병기를 들고 뛰쳐나왔다.
호발귀는 천천히 걸어갔다. 처음부터 모습을 숨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만약 그가 기습을 가했다면, 잡랑은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갈 동안 새카맣게 몰랐을 것이다.
“너희 죽는다! 이제는 너희가 죽을 차례야!”
호발귀가 중얼거렸다.
“으으!”
호발귀의 말을 들은 잡랑이 치를 떨면서 물러섰다.
파라라라락!
검이 매미 날개처럼 부르르 떨었다. 검날 떨리는 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벌 수천 마리가 일시에 날아오르는 소리처럼 모골을 송연하게 만든다.
“아아악!”
“크윽!”
잡랑이 무더기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일어서다가 쓰러지고, 뛰쳐나오다가 쓰러진다. 누가 공격하는지도 모르고 죽는 자도 있다.
호발귀는 신법을 펼칠 생각이 없었다.
잡랑은 절대 도주하지 않는다. 앉은 자리에서 절명하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긴다. 그러니 서둘 필요 없이 천천히 살검을 쏘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발에 신법이 얹혔다.
호발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은허신법을 밟았고, 손에 든 검으로는 마영심도를 펼쳐냈다.
검 귀신이 퍼뜩 사라진다. 그리고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나 살검을 휘두른다.
“큭!”
그나마 비명을 짧게 토하면서 쓰러지는 자는 다행이다. 죽음도 빨리 찾아왔을 테니까.
“이건 사람이 아니다!”
칠 당주가 중얼거렸다.
“가서 단주님에게 말해라. 절대로! 절대로! 이놈. 건들지 말라고. 알았어!”
육 당주가 옆에 있는 잡랑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며 말했다.
“저도 여기서 죽겠습니다. 다른 자를 보내십시오!”
잡랑이 투지를 불태웠다.
“가! 자칫하면 우리 살단, 피바다에 잠긴다. 가서 우리 삼당 못살 당했다고 전해!”
“무슨 소립니까! 한낱 저런 놈 때문에! 방법이 없는 겁니까!”
“풋! 네 놈은 저 검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대화를 듣고 있던 칠 당주가 말했다.
육 당주에게 멱살을 잡힌 잡랑은 다른 당주를 쳐다봤다.
팔 당주의 눈빛도 마찬가지다. 눈가에 깊은 그늘이 덮였다.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다.
잡랑은 살겁을 면치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가! 가서 전해! 흉성을 드러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이걸 잘 이용하시라고!”
육 당주가 잡랑을 확 떠밀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말씀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쉬이잇!
잡랑이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이따위 일에 우리가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차피 일이 터진 거, 죽기는 죽어야겠는데. 그래도 명색이 잡랑인데 곱게 죽을 수는 없잖아?”
육 당주가 다른 두 당주에게 말했다.
“저 새끼를 끌고 가야겠는데. 어떻게 끌고 가지? 독도 소용없고, 화약도 소용없고, 무공은 더더욱 쓸모없고.”
삼당 당주는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 삼당 팔십여 명이 왔다. 칠당이 사십 명으로 제일 많고, 육당과 팔당이 비슷하다.
이들이 속속 쓰러지고 있다.
“죽이지는 못해도 팔다리 중 하나라도 갖고 가야지. 독은 당홍이 있어서 안 통한 거고, 화약은 심지 타는 냄새가 풍겨서 피할 수 있었던 거지. 요건은 피하지 못하게 만들면 돼.”
세 사람은 서로를 쳐다봤다.
죽을 생각만 하면 못할 게 없다.
당주 세 명은 웃옷을 벗고, 몸에 화약을 둘둘 감았다. 한 사람이 반경 십 장은 초토화할 정도로 많은 화약을 매달았다. 그리고 등 뒤로 심지를 매달았다.
“자, 저승에서 보자고.”
육 당주가 먼저 심지에 불을 붙였다.
칠 당주와 팔 당주도 웃으면서 불길을 댕겼다.
심지는 대략 차 한 잔 마실 동안 타들어 간다. 등 뒤로 해서 천천히 탄다. 시간이 최소한 호발귀 곁에 바싹 다가붙을 정도는 주어져야 한다.
“가지!”
팔 당주가 신형을 날렸다.
몇 명이나 죽였는지 모르겠다.
검을 천천히 썼는데도 금방 마흔 명 넘게 쓰러트렸다.
잡랑이 솟아낸 피는 비가 왔을 때처럼 땅을 축축하게 적셨다. 핏물 때문에 진창길을 걸을 때처럼 철퍽거렸다.
호발귀는 그래도 살검을 멈추지 않았다.
살심이 끊임없이 피어난다. 역천금령공이 생가를 보호하고 있어도 살심은 일어난다. 화를 내는 것도 인간 본성이다. 또한, 화는 중독성이 있어서 내면 낼수록 더 강해진다. 화가 많은 사람일수록 폭력성도 강해진다.
이령귀화가 끊임없이 화를 북돋는다. 혈기를 끌어낸다. 사방으로 혈기를 마구 뿌린다.
안은 얼음처럼 차가운데, 밖은 용암처럼 들끓는다.
차가운 기운은 살기로 변했고, 뜨거운 기운은 난폭하기 그지없는 혈기로 둔갑했다.
차디찬 살기와 뜨거운 분노가 섞여서 터져나간다.
파라라라락!
마영심도가 잡랑을 베었다. 거침없이 살을 갈랐다.
호발귀는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이 없었다. 전혀 다른 생각, 악마를 제거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악마를 제거하니 사람들은 좋아할 것이다.
당연히 좋게 봐야 한다. 손뼉 치면서 응원해야 한다. 좋은 일을 한다고 칭찬해야 마땅하다.
이것이 현재 호발귀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이다.
그러니 더 거침없이 칼을 쓴다.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악마를 제거하는 것이니 추호도 용서하지 않는다. 일 검을 맞으면 숨이 끊길 수밖에 없는 절명도(絶命刀)도 펼친다.
파라라라라락!
검이 파랑을 일으키며 쏘아졌다. 그때,
“비켯!”
커다란 소리가 터졌다.
그러자 호발귀를 포위 공격하던 잡랑들이 일시에 물렀다. 그리고 고수 세 명이 쾌속하게 쏘아져 왔다.
그들은 천천히 움직여서 호발귀를 포위망 안에 두었다.
치이이익!
심지 타들어 가는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피비린내와 볏짚 타는 듯한 냄새가 섞여서 묘한 악취를 일으켰다.
“악마가 따로 없군. 네 놈을 진작 죽였어야 했는데.”
육 당주가 말했다.
“흐흐흐!”
호발귀가 음침하게 웃었다.
괴소를 흘리고 싶어서 흘린 게 아니다. 상대방의 말이 가소로워서 웃었다. 물론 자신의 웃음소리가 목청 밖으로 새어 나갈 때, 어떤 소리가 되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웃고 싶으니까 웃었다.
악마가 누구에게 악마라고 하나!
파라라라랑!
검이 울렸다. 마영심도가 피를 보자고 아우성친다. 빨리 살을 찢고 싶다고 재촉한다.
“조심해! 마영심도다!”
팔 당주가 말했다.
삼당주는 혈마 무공을 알아봤다. 마영심도가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마영심도가 워낙 특징이 강해서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크크큭!”
호발귀가 또 웃었다.
심지 타는 냄새가 난다. 이들 세 명의 몸에서 심지가 타고 있다.
이들의 생각이 읽힌다. 역시 악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던지고 있지 않은가.
심지를 잘라낼까? 잘라낼 수 있다. 몸을 베면서 심지까지 베면 된다. 아주 쉽다.
하지만 호발귀는 그러지 않았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봐!
호발귀의 눈가에 조롱이 피어났다. 어서 화약을 터트려보라고 재촉하기까지 한다.
쒜에에엑!
육 당주가 사력을 다해서 검초를 펼쳤다. 호발귀의 목과 허리, 두 군데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파라라락! 쒜에에엑! 퍼억!
호발귀가 마주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검은 정확하게 육 당주의 목을 꿰뚫었다.
“크윽!”
육 당주가 쓰러지면서 호발귀의 몸을 꽉 껴안았다.
육 당주는 검이 날아오는 것을 봤지만 막지 않았다. 아니, 막지 못했다. 막을 방법도 없었고 막을 생각도 없었다. 대신, 그는 목을 내주며 한달음에 달려들어서 호발귀를 꽉 껴안았다. 그리고 양손을 깍지 꼈다.
순간, 깍지 낀 손에 진기가 주입된다. 육 당주는 이미 절명했지만 죽기 전에 일으킨 진기가 열 손가락을 단단하게 고정한다. 호발귀를 꽉 붙잡고.
츠츠츠츠츳!
심지는 계속 타들어 갔다.
호발귀는 심지를 보지 못하나? 심지 타는 냄새를 맡지 못하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마영심도만 쓰고 있지 않나.
그 순간, 동시에 세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꽝! 꽈앙! 꽝!
폭발은 동시에 터졌다.
당주 세 명의 몸이 가루가 되어서 날아갔다.
폭발력이 주변에 있던 잡랑을 쓸어냈다. 그리고 호발귀 역시 폭발 속으로 끌어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