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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06화 (106/500)

第二十二章 살기충천(殺氣衝天) (1)

쉬이이익!

호발귀는 은허신법을 펼쳐서 표홀하게 움직였다.

원충노인의 팔십일수와 혈마 무공 중 소요귀명검법은 통하는 부분이 많다.

어쩌면 팔십일수를 이해하고 있어서 소요귀명검법을 빨리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적정(寂靜)이라는 말은 매우 어렵다.

단지 고요하고 평온하고 맑다는 뜻이 아니다. 번뇌로부터 해탈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해탈이라는 말은 나와는 상관없는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듣는다. 하지만 고요함을 유지하라는 말은 ‘그까짓 것 가만히만 있으면 되지’하고 간단히 생각한다.

고요함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것이 적정이다.

하물며 호발귀는 이런 적정 상태를 신법을 펼치면서 유지한다.

병주기식, 망기호흡!

숨을 죽여라. 호흡을 잊어라!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는 적정만 이해하면 나머지는 그냥 터득된다. 근본을 알고 있으니 손을 놀리는 수법(手法) 또한 저절로 터득될 수밖에 없다.

쒜에에엑!

호발귀는 빠르게 움직였다.

호발귀는 우로로 달리지 않았다. 길에는 올무 함정이 깔려있다. 길에서 벗어나 길 아닌 곳을 치달린다. 푸석거리는 바위를 박차고 표범처럼 치달린다.

고요한 가운데 사방을 둘러본다.

귀신이 고요한 세상 속으로 스며들 듯이 미끄러져 달려간다.

강하게 땅을 딛는다. 하지만 땅을 딛는 소리는 울리지 않는다.

빗살처럼 빠르게 달린다. 하지만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은허신법은 매우 은밀하면서도 빠르다.

어느 순간, 호발귀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눈앞에 몇 사람이 보인다. 땅을 파고 올무를 묻고 있다. 밤이 깊어서 축시(丑時)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횃불을 밝히지 않았다. 오로지 달빛에 의존해서 작업했다.

움직임이 매우 능숙하다.

‘잡랑!’

몇 사람을 보는 순간, 적정이 깨졌다. 아니, 적정이 차디찬 살기로 변했다.

스읏!

호발귀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들에게 걸어갔다.

모두 깊이 잠들었다. 도천패도, 당홍도, 홀리도 편안하게 단잠을 잔다.

그들을 깨우지 않고 홀로 달려왔다.

이 싸움은 자신만의 싸움이다.

잡랑은 다른 사람들을 노리고 함정을 판 게 아니다. 오직 한 사람, 자신만을 노리고 함정을 팠다. 오직 혈마를 잡기 위해서 애먼 사람을 죽였다.

그러니 이 싸움은 자신의 싸움이다.

“야! 뭐해! 농땡이 피우지 말고 빨리 일해!”

잡랑 중 한 명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아마도 작업을 지시하는 자인 듯한데, 호발귀는 잡랑으로 오인한 듯하다.

호발귀는 그에게 걸어갔다.

“웃! 너는!”

그가 비로소 호발귀를 알아보고 경악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너무 늦게 알았다.

쒜에엑!

어둠 속에 검광이 번뜩였다.

살기를 가득 품은 차디찬 검이 야공을 갈랐고, 정확히 그의 머리를 몸에서 분리했다.

퍽! 푸와왁!

그의 몸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호발귀는 마영심도 십칠 식을 펼쳤다.

웬만해서는 장진 스님이 말하는 것을 듣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듣는다.

‘어디 마음대로 해봐라!’ 하는 심정이다.

이대로 혈마가 된다고 해도 죽여줄 사람이 있다.

이제는 뒤가 무섭지 않다. 혈마가 되면 어쩌나 하고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홀리는 틀림없이 죽여줄 것이다.

옛날 혈마처럼 혈마후에게 조정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홀리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그녀를 잘 알지도 못한다. 홀리는 호발귀 생각과는 반대로 혈마가 되면 반드시 조정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정말 혈마가 된다면 틀림없이 죽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쒜에에엑!

검광이 다시 번뜩였다.

장한 옆에 있던 잡랑이 배를 잡고 비틀거렸다. 어느새 검광이 배를 가로로 부욱 가르고 지나갔다.

“커억!”

비명이 뒤늦게 터져 나왔다.

내장이 손가락을 비집고 삐죽 튀어나왔다. 핏물도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영심도는 마인의 마음으로 펼쳐야 한다.

마인의 마음이 무엇인가? 살인자의 마음이다. 오직 사람을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펼친다. 귀신처럼 빠르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사용한다.

비정한 칼. 잔인한 칼, 지옥에서 툭 튀어나온 칼이 마영심도다.

호발귀는 검으로 도법을 펼쳤다. 하지만 살심이 지나치게 강해서 마영심도 도법을 훼손하지 않는다. 검이 칼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호발귀다!”

“으……!”

“죽여!”

잡랑들이 일제히 병기를 뽑아 들었다.

저들은 호발귀를 보고 공포에 질리기도 했지만, 투지도 일깨워냈다.

잡랑은 맹수를 잡을 줄 아는 들개다. 자신들보다 강한 자를 잡은 이력이 있다.

잡랑은 절대로 정면 대결하지 않는다.

맹수가 달려들면 무조건 피한다. 막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무조건 멀리 달아난다. 대신 틈만 생기면 달려든다. 그러다가 반격할 기미만 보이면 즉시 물러선다.

절대로 부딪히지 않지만, 물러서지도 않는 것이 자신보다 강한 맹수를 사냥하는 방법이다

이런 공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숫자가 많은 쪽이 유리해진다.

맹수는 실수하게 된다. 병기에 몸이 긁힌다. 처음에는 긁힌 상처였지만, 다음에는 베이는 상처가 되고, 더 깊은 상처가 되고, 피를 점점 많이 쏟아낸다.

아주 작은 상처를 하나씩 당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큰 상처가 생긴다.

다다다닥! 다다닥!

잡랑이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호발귀에게는 틈이 없다. 하지만 틈이라는 게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다. 만들면 있는 것이다. 등이 바로 틈이다.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가 호발귀가 뒤돌아서면 잽싸게 물러난다.

호발귀가 한 사람을 콱 집어서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러면 공격당한 자는 무조건 도주한다. 멀리 떨어진다. 그리고 공격당하지 않은 자가 재빨리 공격 신호를 보낸다. 호발귀가 크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는다.

달려드는 시늉을 하다가 물러서고, 다시 달려들고.

저들은 급하지 않다. 하지만 쉬지도 않는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이 이길 것을 안다.

호발귀는 화살에 맞아 죽은 사람을 떠올렸다. 단창에 머리에 뚫려서 죽은 사람도 떠올렸다. 그들은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찾겠다는 이유로 이들이 죽였다.

길 가는 사람을 잡아다가 생으로 죽였다.

너희 용서받지 못한다!

살심이 피어난다.

호발귀의 입에서 잔인한 살소가 새어 나왔다.

“흐흐흐흐흐!”

호발귀가 웃었다.

악마, 살인마의 웃음소리다.

탁!

호발귀의 왼손에서 사발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환한 불빛이 번쩍 빛났다.

귀화미요공이다!

“읔!”

앞에 있던 자가 눈부셔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병기를 들고 싸우는 자가 스스로 눈을 가렸다. 그러고도 살기를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 아닌가.

쒜에에엑! 퍼억!

검이 잡랑의 몸을 반이나 갈랐다.

잡랑을 피를 철철 흘리면서 쓰러졌다.

“크윽! 끄으으윽!”

그가 신음을 흘리면서 몸을 들썩거렸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잘린 부위에서 붉은 피가 뭉클뭉클 쏟아져 나왔다.

휘익! 촤락!

호발귀는 검에 묻은 피를 허공에 흩뿌렸다.

그 피는 옆에 있던 자의 얼굴에 뿌려졌다.

잡랑은 얼굴에 핏물이 튀었는데도 꿈쩍하지 않고 호발귀를 노려봤다. 그는 최소한 이런 것에 움찔거리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당하게 되어 있는 것을.

쒜에에엑!

검이 하늘로 솟구치는가 싶더니 이내 쏜살같이 내리쳐왔다.

잡랑이 칼을 들어 검을 막았다.

이것이 실수다. 잡랑은 앞뒤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몸을 날려 피했어야 한다.

쒜에엑! 퍼억!

검이 잡랑의 칼 든 손을 잘랐다.

“아아악!”

잡랑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비명도 오래 지르지 못했다.

손목을 자른 검이 안으로 푹 파고들더니 잡랑의 머리를 꽈리처럼 터트려버렸다.

퍼억!

잡랑이 비명을 그치고 쓰러졌다.

호발귀는 피에 굶주린 마귀다. 거침없이 잡랑을 베어 넘긴다. 단지 제압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박살을 내서 영혼마저도 죽이고 있다.

“으으으!”

살아남은 잡랑들이 겁에 질려서 주춤주춤 물러섰다.

* * *

“이게 도대체!”

도천패가 신음을 토해냈다.

호발귀가 사라진 것을 알고 재빨리 쫓아왔다. 그리고 길가에 널브러진 시신을 봤다.

참혹하다!

호발귀가 만들어 낸 시신들인데, 어떻게 이리 처참할 수 있나.

죽은 사람은 일곱 명이다. 그들이 흘린 피가 냇물이 되어서 줄줄 흘러가고 있다.

사람이 이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도 있구나.

“이건…… 이건 혈마야.”

홀리가 중얼거렸다

모두 홀리의 말에 침묵했다.

죽은 잡랑은 매우 잔인한 칼에 당했다. 단지 죽이는 칼이 아니라 박살을 내버리는 칼이다.

피를 뒤집어쓴 혈마가 아니라면 저지르지 못한 살인이다.

“뭐 이게 어때서! 내 칼에 죽는 놈도 이래!”

도천패가 대도를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사실이 그렇다. 도천패는 패력을 위주로 하는 도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광풍처럼 상대방을 몰아친다. 상대를 단숨에 두 동강 낸다. 그래서 죽은 자가 처참할 수밖에 없다.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죽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도천패의 도법을 보고 잔인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패도라는 말을 한다. 무공 혹은 병기 자체가 힘이 넘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잔인하다는 것은 병기가 지닌 힘을 넘어서 그 이상으로 격타할 때 나온다.

“빨리 가. 빨리 쫓아가. 아무래도 불안해.”

당홍이 도천패의 등을 쳤다.

도천패가 당홍을 쳐다봤다.

그의 눈빛 속에 ‘당신은?’이라는 물음이 담겨 있다.

“나는 여기 좀 정리하고 따라갈게. 날이 밝으면 사람들이 몰려올 거 아니야. 이 시신들을 보면 호발귀는 완전히 악마가 돼. 앞으로 누구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 거야.”

당홍이 빠르게 말했다.

“그 뭐야. 나도 도울 테니까. 난 싸움판에 끼어봤자 별로 할 일도 없고. 사실 이렇게 뒤처리하는 게 내 전문이기도 하고. 가시오. 내가 이분하고 같이 처리하고 곧 뒤따라갈 테니까.”

해자수도 뒤에 남았다.

도천패는 홀리를 쳐다봤다.

한데 그녀가 없다. 홀리는 벌써 신형을 날려 호발귀를 쫓아가는 중이다.

“거참 같이 좀 가지!”

도천패가 빠르게 신형을 쏘아냈다.

“이 사람들 태워야겠어요. 한군데 모아주세요.”

당홍이 말했다.

해자수가 주위를 쓸어보며 말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묻어줍시다.”

해자수는 당홍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폭이 넓은 칼을 집었다.

퍽! 퍽퍽퍽!

해자수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 시신들을 언제 다 묻지?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당홍이 곤란한 눈으로 시신들을 쳐다봤다.

그녀의 마음을 짐작한 듯, 땅을 파던 해자수가 말했다.

“구덩이를 넓게 파서 한꺼번에 묻읍시다. 사실, 그게 태우는 것보다 훨씬 빨라요. 시신을 태우면 그냥 갑니까? 다 타는 걸 보고 가야 할 텐데, 그럼 더 늦어요.”

해자수는 이런 일에 경험이 있는 사람처럼 땅을 빨리 파냈다.

“아이고 힘들다. 내 소싯적에 전쟁터 좀 따라다닌 사람 아니요. 남들처럼 칼 들고 싸울 용기는 없고, 뒷전에 머물러 있다가 나중에 시신 처리를 했지. 그때는 뭐. 한쪽에 쌓아놓고 불태우기도 했는데, 불태운 시신이 나중에 보면 더 끔찍해. 묻는 게 나아.”

파팍! 팍팍팍!

해자수가 땅을 파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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